"사람은 사람에게서 힘을 얻게 마련"이라는 삶의 경험을 농축하신 분들도 많겠지만,  "나무와 풀"에서 덤으로 기운을 더 얻는 이도 있겠죠. 제가 그렇습니다. 아는 건 없어도, 제대로 돌보거나 돌봄을 받는 관계를 맺지도 못하면서 나무를 보면 사시사철 참 좋습니다. 기운을 충전받기에 고마움을 늘 느낍니다. 1년에 365일 생일이라면 365일 수목원 나들이 생일선물을 해달라고 사랑하는 이에게 조르고 싶을 지경입니다. 나무 구경을 제대로 하러 작정하고 떠났습니다. 세계에서 인정한, 주목받는 수목원. 천리포수목원으로요. 


다양한 경로로 입장권 할인 받거나, 무인발권 시스템으로 대기 없이 빠르게 티케팅할 수 있습니다. 

설레는 마음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안내 지도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군요. 발길가는 대로 돌아다닐 작정이므로 사실 지도를 미리 머릿속에 채워두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혼자 5시간 쯤 확보하고 올 경우라면, 지도를 꼼꼼 살피겠습니다만......


천리포수목원은 그 설립자, 민병갈님을 알고 보면 더 감동입니다.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남긴 푸른 눈의 한국인"이라는 이 분은 미군이라는 신분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으셨다지요. 하지만 (만약 전생이 있다면) 마치 전생에 한국인이었듯 한국의 많은 부분이 친숙하고 못내 좋아서, 3년 동안 어머니를 설득하여 귀화하셨습니다. 그 사이 천리포수목원 부지를 매입하여 풀과 나무로 채워나가셨지요. 수목원 내, 민병갈 전시관에는 누군지 참 재치 넘치게 이 분을 일컬어 "오타꾸의 궁극을 보여준 식물계의 전무후무한 인물"이라고 표현하셨더라고요.  연세가 드실 수록, 되레 그 어려운 식물 학명도 척척 외우시고 수목에 대한 앎과 사랑이 깊어지셨기에.....

어머니께서 걱정하실까봐 하루 4갑씩 피우던 담배를 참아냈던 효자이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열심히 한글을 익히고, 한국 땅의 나무와 풀들을 공부하시고 아끼셨다지요. 이 분의 생전 쓰셨던 집무실입니다. 한눈에 수목원의 주요 전경을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암투병으로 몸이 쇠약해지셨을 때도 이 수목원으로 그토록 돌아오고 싶어하셨답니다. 


발길 가는 대로 탐색해서 이하 사진에 두서가 없습니다...
꽃은 꽃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예사로운 생명이 하나 없습니다. 만지고 싶어 자꾸 발길이 느려집니다.


수목원 설립자 민병갈 박사는 유언대로 목련나무 아래 잠드셨다네요. 그래서인지 수목원에서 목련나무, 유난히 눈에 많이 들어오더군요.

오호! 그런데, 이 가을에 목련 꽃을  발견합니다. 봄에 피는 꽃의 대명사 목련이 아니던가요?
이게 왠일? 하며 수목원을 나오다보니, 수목원 입구에 이런 mission이 있었네요. 의도치 않게 미션 완료한셈이네요. 인증 샷은 아래에! 


혼자 왔더라면, 점심 식사로는 생수만 챙기고 5시간이고 머무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나무 한 그루 한그루 참 개성이 강한데 서로 어우러지네요. 원산지를 보면 민병갈 박사가 세계 각지에서16,000여종의 식물을 수집하고 키워왔음을 실감할 수 있어요.  


민병갈 박사의 집무실과 그 밖 풍경입니다. 심지어 천리포 수목원에서는 탁트인 서해바다와 함께 낭새섬도 볼 수 있어요. 하루에 두번 길이 열려서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도 불린다지요. 



이미 9월 숙소 예약이 꽉차서 포기해야했던 수목원 내 한옥 별채. 그 중에서도 이 집이 단연 으뜸입니다. 메롱나무집. 봄에 오고 싶습니다. 


이렇게 감사히 힘을 얻어 왔으니, 이제 어떻게 이 힘을 흘려보낼까요. 보내고 새로 받고.....흐르며.....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09-29 0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