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배경의 SF 영화 [Children of Men]을 보았던 이유는 순전히 배우 때문이었다.

크리스찬 베일

매즈 미켈슨

클리브 오웬

애정하는 배우들의 영화는 놓치지 않으려 하니까.

몇 년 전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불임이 표준이 된 세계, 마지막 남은 임산부와 태어난 아기라는 설정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줄거리를 슬렁슬렁 넘겼다.(그래서 지금도 줄거리 기억은 잘 안 난다. 오로지 주인공 클리브 오웬의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만 훔쳐 보았으니까.....) 특히, 영화 후반부의 이 장면.


아가를 본 어른 사람들이 경이롭고 감격에 찬 표정으로 길을 터주는 이 장면은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오늘 어린이병원에서 딱 저런 표정으로 아가들을 보고 있었다. 그 대형 병원은 어린이 전문 병원인지라 대기실 복도에 아가들이 바글거렸다. 말이 좋아 아가이지, 엄마 몸 속에서 하루 종일 잠자던 태아의 모습과 크게 차이 안나는 쬐그만 신생아들도 있었다. 그 복도에서 1시간 이상 머물렀는데, 나는 챙겨갔던 책을 아예 꺼내보지도 못했다. 정확히는 책 꺼낼 생각조차 안났다. 병원 복도에 들고 나는 아기들의 물결에 마음을 빼앗기고, 아기들에 자꾸 머무는 시선을 애써 감추느라. 특별한 지인 찬스가 아니라면 일상에서 아가 보기 힘들어진 저출산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렇게 많은 어린 생명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자꾸 눈이 아가들에게 머물러서, 그 아가들의 부모님들이 싫어할까 조심해야 했다. 원체 아가를 너무도 좋아하지만, 내 시선은 틀림없이 끈적거렸으리라.

나도 모르게 '아! 미래를 위한 희망! 너희 작은 생명들....'이런 프로파겐다적 생각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가는 그냥 생명으로서 소중할 뿐인데, 나도 모르게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희망이라는 거국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딱, 영화 속 저 장면처럼......


이 영화는 2027년을 배경 삼는다. 근미래라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가까운 내일이다. 과연 2027년 대한민국의 거리 풍경은 어떠할까? 우리는 아가들의 옹알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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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2-16 12: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영화를 90년대 나왔다면 리얼리~? 하며 봤을지도.ㅋ 27년이래 봤자 얼마 안 남았네요. 2000년이 됐을 때도 세상이 되게 많이 바뀌어 있을 줄 알았는데 밥 먹고 화장실 가고, 태어나고 죽고. 세상은 돌고 도는 것 뿐이죠. 저는 애들 별로 안 좋아했는데 요즘은 좋더군요. 저도 나이 들었나 봅니다. ㅠ

얄라알라 2024-02-18 17:32   좋아요 3 | URL
2027년..
노스트라다무스 예언...때문에 21세기가 없는 줄 알았는데^^;;;

stella. K님 비오는 일요일 행복한 오후 보내시어요

레삭매냐 2024-02-16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별무소용
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들이 말한 막대한 예산이라는
말도 예산 전용으로 거짓말이라
는 걸 잘 알게 되었지만...

의료 교육 모두에서 소아과 기피,
한 때 최고의 직업이라고 불리던
교사가 불과 몇 년 사이에 기피
직이 되었다는 역설 등등 -

노키즈존이 점점 늘어나는 어느
나라의 서글픈 현실이네요.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미래의 단순 노동자로 보는 시선
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인구 절벽
은 이제 되돌이킬 수 없는 현실
이 된 느낌입니다.

얄라알라 2024-02-18 17:33   좋아요 1 | URL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근심 그득한 표정으로
레삭매냐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끄덕 공감합니다

이렇게 수도권에 건물을 몰아 짓는데 지방 소멸은 어떻할 것이며...암울해요

2024-02-20 0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02-22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가들 너무 이뻐요ㅎ 저도 귀여운 아가들을 보면 자꾸 눈이 가고 기분도 좋아진답니다ㅎㅎ

아기라는 말보다 아가라는 말 너무 정감가고 귀엽고 좋네요ㅎ

아가라는 말 검색해보니 정의 2, 3 번에 감탄사로 분류된 게 너무 웃기네요ㅎ 아기를 부를 때, 시부모가 젊은 며느리를 정답게 부르는 말이래요ㅎ

얄라알라 2024-02-23 14:49   좋아요 1 | URL
그 사전 매우 현실적이네요. 그런데 21세기에도 시어머니와 젊은 며느리 사이에 ˝아가˝라는 말이 쓰이나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ㅎㅎ우리도 이젠 미국처럼 차가운 호칭으로 부르게 될 날도 곧 올것 같아서요

근데 저는 이 글 올릴 때 저 멋진 배우님들 언급하는 댓글이 하나라도 달리지 않으까 했는데 얼굴에 빠지는 건 저만인가봐요 ㅎㅎ

고양이라디오 2024-02-23 16:02   좋아요 1 | URL
아ㅎㅎㅎ 저는 남자라서 이쁜 배우 아니면 관심이 없다는...ㅎ

크리스찬 베일은 저도 좋아하는 배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