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흐드러지게 피고 꽃 이파리 날렸던 4월 첫 주말, 남도로 통하는 고속도로마다 승합차며 대형버스가 즐비하다. 추돌사고로 인한 교통정체도 3건이나 경험했다. 광활한 대륙도 아니건만, 왕복 10시간 30분을 꼬박 안전벨트를 메고 있었다. 남도 여행길에 읽을거리 2권 챙기길 자~알 했다. 특히 [어슐러 K. 르 귄의 말]은 탁월한 선택.
책 선배님들이 별 다섯 ★★★★★ 꽉 채워 칭송한 인터뷰집이다. 사실, 인터뷰집은 읽을 땐 재미있어도 묵직하게 가라앉는 문장이 많지 않아서 피하는 장르였다. 어슐러 K. 르 귄 역시 서문 제목을 "인터뷰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로 달았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인터뷰어는 출판사 홍보팀에서 책에 관해 쓴 보도자료를 읽고 오는 사람들이다. 편리한 발췌 문장까지 갖춰서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 발췌 문장을 크게 읽고 나서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자, 여기에서 하신 말씀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시죠."
그런 인터뷰어들은 책을 한 권 쓴 유명인들과는 잘 맞는다. 그 유명인이 실제로 그 책을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터뷰어도 실제로 읽지 않았으니까.
9쪽
하긴,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인터뷰이 이름조차 제대로 몰라 실시간 방송에서 실수를 하는 D급 인터뷰어를 본 적 있는데, 숱한 인터뷰 요청을 받아왔을 문학계 거장은 어떠할까? 다행히 어슐러 K. 르 귄은'데이비드 네이먼David Naimon'이라는 A급 인터뷰어를 만나 "배드민턴 경기와 같은 좋은 인터뷰"를 생의 말미에 진행했음은 그 자신에게도, 팬들에게도 큰 축복이다. 게다가, 그 인터뷰집을, 무려 13권 째 르 귄의 저작을 번역하고 서신까지 주고 받았던 이수현이 우리 말로 옮겼다는 점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행운이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 물 흐르듯 이뤄지는 언어의 즉흥연주, 교감이 경청으로 화답 받는 찐케미 인터뷰의 정석을 보여주는 [어슐러 K. 르 귄의 말]. 평생 이심전심 해온 지피지기일지라도 친구의 깊은 생각을 이처럼 유연하게 끌어내긴 어려울 텐데... 인터뷰어 데이비드 네이먼이 어려서부터 어슐러 K. 르 귄을 읽으며 만남을 상상해 왔기에 가능한 케미가 아닐까 한다.
저는 제가 쓰는 글의 소리를 들어요...몸 안에서 글이 울리면, 스스로가 쓰는 글을 들으면 올바른 리듬을 들을 수 있고, 그러면 문장이 깔끔하게 이어지는 데 도움이 됩니다. (18)
이야기는 갈등을 다룬다고,
플롯을 갈등에 바탕을 둬야만 한다고 말하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인 선언이기도 하죠. 삶은 갈등이고, 그러니 이야기에서 정말 중요한 건 갈등뿐이라고 말이에요.
(41)
[왜 미국인은 드래건을 두려워하는가?]였고, 딱 집어서 모든 판타지를 상상력이 많이 들어간 모든 소설을 단지 오늘의 주식시장을 다루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들용이라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폄하하는 미국인의 경향에 대해 슨 글이었어요. 삶에 대해 즉각적인 이득만 따지는 태도죠.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을 어디까지 대변할 수 있는가? 제 아버지는 인류학자였고 이 질문과 정면으로 부딪혔어요. 이해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동의 없는 가져다 쓰기가 되어 버리는가? (116)
우리는 다른 존재의 마음을 상상할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상대를 멋대로 이용하지 않도록, 매 걸음을 아주아주아주 조심해야죠. (118)
무엇보다 나는 [어슐러 K. 르 귄의 말]을 통해 이수현 번역가를 다시 만나 즐거웠다. 젊은 시절 미모가 대단했던 르 귄 만큼이나 유난히 또렷하고 까만 눈동자가 아름다웠던 이수현님. 진중하고 사려깊은 성품을 반영하는 저음의 음성과 밝은 표정, 오랜 세월이 지나 활자로 다시 만난 이수현은 여전히 사차원 재치와 지적인 매력을 글로 품고 있었다. 어슐러 K. 르 귄(1929년 출생)과 이메일 서신을 주고 받가가, 작가가 루즈벨트 대통령 재임 기간의 사람임을 인식하고는 "내 마음속의 유교인이 깨어나서, 평생 그를 어슐러라고 부르기는 불가능해져버렸고!"(140)라고 적다니! 사차원 매력이 여전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