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의 [몽실언니]는 40년 전, 1984년 초판되었다. 해방직후와 6*25전쟁을 시간적 배경 삼았지만, 책 읽다 워낙 생경한 단어를 자주 접하다 보니 22세기 배경의 SF소설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불과 70여 년 전 고난한 삶과 격동기 풍경을 공감은 커녕 낯설어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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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나는 '암죽'이라는 음식을 [몽실언니]에서 처음 들어보았는데, 발음 때문인지 '밤'같은 열매로 만든 죽인줄 알았다. 몽실이의 갓난 동생은 이 암죽을 먹고 컸다. 세상에 태어나자 마자 엄마를 잃었기 때문에 암죽이 모유 대용이었다.

*

'암죽'도 몰랐던 내가, "설빔"을 "설빙" 으로 오해하는 꼬마들에게 놀라움을 표한다. "아!!!팥빙수 아냐!" 하며 황당해한다. 그러는 나는 정작 마트에서 '파조기' 안내판을 '파기(폐기) 조기'로 오해했다. 폐기예정 음쓰인줄 알았단 말이다.




그런 내가 "설빔"을 "설빙"이라며 입맛 다시는 꼬마들에게 놀라워할 수 있을까? 원클릭이면 옷을 바로 배송받는 패스트패션 천국에 사는 꼬마들에게 일 년에 한 번 설빔 알기를 기대한 내가 고루했다. 언어의 생물성을 깜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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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2-26 0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큰아이가 제일 좋아하던 동화책입니다. 딱 이 책입니다. 초판이고요. 아직도 가끔 몽실이와 작가 권정생을 이야기하지요.
˝새끼 입에 먹을 거 들어가는 거 보는게 제일 좋다.˝
이게 여태 제가 올린 유일한 짤의 제목입니다. 동화 말고 드라마 <몽실언니>에서 극중 몽실이의 상이군인 아빠 한진희가 했던 대사였습니다. ^^

얄라알라 2023-02-26 12:39   좋아요 0 | URL
˝새끼 입에 먹을 거 들어가는 거 보는게 제일 좋다.˝

그 말의 의미가 뭔지 알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몽실언니> 아버지는 군에서 도망나와 ‘상이군인‘이라고도 불리지 못했다고 했던 것 같고, 그래서 더 자격지심이랄까, 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릴 지경으로 못나 보였는데
골드문트님이 올려주신 대사를 보니, 몽실이 아버지에 대한 편견이 조금 달라지려 합니다.^^

참 좋은 책이예요~~ 들려주셔서 감사드려요 골드문트님.

새파랑 2023-02-26 1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몽실언니 드라마로 본 기억만 나네요. 그런데


설빙 맛있습니다 ^^

얄라알라 2023-02-26 12:38   좋아요 1 | URL
[몽실언니]를 여기저기, 다양한 루트로 추천받아왔는데
몽실이의 생명력이, (섹슈얼리티를 무기와 자원삼는) 성인 스칼렛 오하라와는 또 다른 맛의 질김을 보여주고 멋지더라고요.
읽으며 부끄러움을 많이 느끼게 했던 동화입니다.

새파랑님, 근데 요즘 ˝설빙˝ 매장 거의 없지 않나요?^^ 저도 설빙 인절미 들어간 메뉴들 좋아했엇는데 저희 동네 대형 매장은 철수한지 오래 되었고,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가고 싶네요. 설빙 ㅋ

persona 2023-02-2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지라서 파조기 아니었나요? 겉에 흠집 난 거요. 오징어나 진미채나 명란젓 같은 거 저는 파지가 오히려 좋더라고요. ㅎㅎㅎ 다시마도 괜찮고요.

얄라알라 2023-02-26 12:36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최근에 그 단어를 처음 들어봤어요..^^:;;;

˝설빔˝을 팥빙수인줄 아는 애들 앞에서, 놀람 감탄사를 뱉었던 제가 부끄럽죠 ^^

아! 제주구좌 ˝못난이˝ 당근이라는 걸 사봤는데 그거 참 괜찮은 선택이더라고요.
아마 파조기 개념인가봐요^^

persona 2023-02-26 12:40   좋아요 1 | URL
못난이 과일 채소들 안 예쁠 뿐이지 괜찮은 것 같아요! 제로웨이스트 샵에서 처음 봤어요. 저는. ㅎㅎㅎ 파지 쪽은 시장에 잘 안나오니깐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거 같아요. 부끄러워하실 것 까지야…^^
저도 어릴 때 ‘모과’를 뭐가? 로 잘못 알아들은 적이 있어요. ㅋㅋㅋ 경험이 없는 어린이다 보니깐 ㅋㅋㅋ 그런 일이 종종 있는 것 같기도 해요. ㅎㅎㅎ

얄라알라 2023-02-26 12:49   좋아요 1 | URL
‘모과‘ ㅋㅋㅋ
너무 귀여우세요.
‘모과‘나 ‘뭐가?‘나 엄청 비슷하네요

저는 1년째 생활영어좀 잘 해보고 싶어서 노력 많이 했는데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표현에 더 신경이 쓰이고 관심가나봐요

모과..ㅋㅋ아, 모과향을 갑자기 맡고 싶어집니다

persona 2023-02-26 13:34   좋아요 2 | URL
모과를 누가 주셔서 그걸로 모과차를 엄마가 만들어 주던날인데요.
-엄마 이게 뭐야? 향 좋다!
-모과?
-이거이거
-모과.
-아니 이게 뭐냐구!
로 시작해서 엄마가 웃겨서 일부러 모과라고만 한동안 답하셨었어요. 전 막 답답해서 이게 뭐냐고 뭔지도 모르고 먹냐고 막 그러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