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책을 읽는 중간중간,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가 생각난다. 어느 소설을 읽고도 이렇게까지 오래 찜찜해 한 적 없는데...... 왜일까?.....그건 아마도 "다섯째 아이"의 엄마, 헤리엇을 싫어하는 마음이 영 떳떳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헤리엇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혼자 아이 넷을 돌봐야 하는 와중에 다섯째로 태어난 아이가 '半사피엔스 + 半네안데르탈인' 돌연변이로  느껴진다면? 그 누구라도 "모두에게(다른 아이들, 남편, 시댁 어르신, 친정 어머니...등)" 만족스러운 선택을 내릴 수 없음은 뻔한데, 내가 헤리엇에게 너무 가혹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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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왜 나는 지난 리뷰에서 헤리엇의 아버지, 데이비드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이상적인 다산 가족의 환상이 산산이 깨졌는데도, 밑빠진 독 물 붓듯 양육비를 메꾸려 쉴 새 없이 일하는 데이비드를 나도 모르게 측은하게 보았나 보다. 늦었지만, 데이비드를 다른 관점에서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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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은 분명 데이비드의 자식이다. 하지만, 그는 다섯째 아이 벤에게 "어쨌건 그 앤 내 애가 확실히 아니야"(101)라며 선을 긋는다. 데이비드는 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고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본 적도 없다. 작가는 데이비드의 속마음을 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는 한 벤은 해리엇의 책임이었고 자신의 책임은 아이들, 진짜 아이들이었다.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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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을 짐승이나 외계인으로 비인간화했던 헤리엇.

벤에게 애정 커녕 증오감을 품고 망설임 없이 밀어낸 데이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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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나 후회, 한숨이 데이비드가 상상해온 행복한 삶에 들어올 여지가 없듯 "부족한" 아이는 데이비드가 품을 여지가 없나 보다. 재력이 대단한 데이비드의 친부와 사회적 지위가 번번한 데이비드의 친모 내외가 수를 써서 벤을 시설에 감금하기로 결정했을 때 데이비드는 도리어 농담하며 웃기까지 했다. 지구에 잠시 왔던 벤이 이제 화성으로 돌아가려나 보다고.  시설에 가면 그 아이가 머잖아 죽을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그것이 바로, 남들 보기 부족함 없는 이상적 가정을 꿈꿨던 데이비드가 자신의 세계에 들이기에 부적합한 자들을 처리하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설 읽은지 한 일주일 만에 벤의 아버지 데이비드에까지 생각이 미친 걸 보면, 나 역시 돌봄의 주책임자를 엄마로 한정짓는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게 아닐까? 부끄럽다. 반성한다.  여러모로, [다섯째 아이]는 여전히 내게 찜찜함을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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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1-13 0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전 이책 읽을 때 엄마에게 이입해서 너무 불쌍했어요 ㅠㅠㅠ <케빈에 대하여>랑 비슷한 시기에 읽어서 더 그랬던 듯도. 데이비드의 태도 지적해 주신 데 공감이 가네요. 순식간에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에 오래 남는 소설 같습니다.

얄라알라 2023-01-13 15:02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도....여러 분이 그런 말씀 해주시네요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도 떨떠름(?) 합니다....그래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가도 싶고요^^

고양이라디오 2023-01-13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지는 책이네요. 순식간에 읽어진다니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ㅎ

얄라알라 2023-01-13 15:01   좋아요 1 | URL
저도 첫 번째 읽을 때는, 쉬지 못하고 읽었어요. 외출하려다가 [다섯째 아이] 때문에 외출포기^^;;
고양이라디오님께서도 혹시 읽으시면 한 자리에서^^

yamoo 2023-01-13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 애가 확실히 아닌데, 해리엇은 도대체 벤을 시설에서 왜 데려왔을까요?? 그냥 놔뒀다면 모든 가족이 해피했을 거 같은데...데려오고나서 무책임하게 부랑아 학생에게 맡겨버리고...우리나라 엄마였으면 대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듯해요. 끝까지 책임지고 키워서 올바른 아이로 성장했을거 같다는 생각을 햇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