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가 문제에 접근하는, 특히 그  과정에서 접촉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는 연구자의 생경험과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연관성을 보이는가?



오래 품어온 온 질문이다. 올리버 색스를 존경하는 이유와도 연관된다. 색스는 보도블록 틈새로 삐져 올라온 잡초와 동물원 원숭이의 무브먼트에서 인간의 정신, 나아가 우주를 이루는 원소까지 열렬히 탐색하는 호기심 전문가이다. 그러나 사람을 대할 때, 호기심을 채워주는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같은 눈높이에서 존중하고 '병'이라는 단편이 아닌 존재로서 전면적 이해를 하고자 노력한다. 의사로서 훈련된 직업 윤리라기보다는 색스라는 사람의 성향과 사람됨 자체 때문인 것 같다. 그는 관찰하고 판단하는 자와 대상 사이에 위계적 관계를 설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의 마음(뇌? 정신? 무튼....)에 들어가 보고자 겸손한 태도로 노력한다. 이런 태도는 [환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색스 박사는 [환각]에 인용된 인물들을 환자 이전에, 독특하고 고유한 정신활동을 하는 존재로 인정해준다. 색스의 이런 태도는 개인사 및 가족사와 관련된다(고 추측한다). 



자서전 [온 더 무브]에서 색스는 형 마이클을 향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낸다. 마이클은, (방계 직계 모두)  명민한 색스家 중에서도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이다. 천재인 올리버 색스가 '천재'라고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형 마이클은 유년기 경험한 기숙학교의 폭력 때문에 촉발되었는지 정신분열과 파킨슨 병을 겪으며 세상과 단절되었다. 색스 역시 어린 시절 '나도 형처럼 되면 어쩌나?' 질병 낙인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사실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머니께 저주를 들었던 색스 자신이야말로, "정상성'의 좁은 범주를 충족시키리는 폭력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본인이 환자로서 다른 의사의 진료를 받았던 경험을 통해 환자에게 "당신 참 독특하네요!"라는 선언이 폭력이라는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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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다리는 생명 없는 물체로서, 실물이 아니고 내 것도 아닌 '남의 다리'였다. 그러나 나의 느낌을 의사에게 전달하려고 하자 의사는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색스 당신은 참 독특해요."....내가 왜 독특하단 말인가? 장담컨대 의사가 환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환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의식의 강]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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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이 [환각]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도 관련되리라고 본다. 


다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각]의 챕터 구성 자체가 '경험한 질병=한 사람"의 시각을 강화시킬 우려도 있다(물론 올리버 색스를 닮은 독자의 성숙한 태도가 뒷받침된다면 질병을 한 개인으로 덮어씌우는 무례를 범하지 않겠지만). 색스는 다양한 환각 유형을 범주화하고 이를 경험한 환자들의 '1인칭 이야기'를 곁들이는 글쓰기를 했다. 조급한 독해는 'Mr. A는 섬망증, Mrs. B는 환상사지, Mr.C는 환청' 식 대응 관계로 등장인물들을 다수화 시킬 수 있겠다.  과연 어떤 글쓰기가 이들이 경험한 정신활동을 왜곡을 최소화하여 전달하면서도 이들을 환자나 기묘한 사람들로 대상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질문과 연관해 올리버 색스의 시도를 독자는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1]  환각에 대한 생물 문화적 접근 

 * 샤를보네증후군의 경우_ "시각 환각을 신경학적으로 결정하는 범주가 있는가 하면, 개인적이고 문화적으로 결정하는 요인이 있을 것이다" (40) 예를 들어, 영어를 모국어 삼는 환각경험자의 환청은 주로 영어! 


2]  환각 경험(자)에 대한 문화적 태도

* 많은 문화권에서 환각은 명상, 종교적 의례, 식물(약물) 등을 통해 도달 추구하는 긍정의 현상이자 예술의 영감이자 영적 고양의 경험. 그러나 서구 문화권에서는 병적인 현상으로 낙인찍는 경우가 많다. (1973년 실험, 8명의 가짜 환자들이 환청 증세를 호소하자 모두 정신과 입원처리 된 실험이 그 예) 올리버 색스에게 쏟아진 숱한 편지들도, 그 동안 낙인찍힐까봐 누구에게도 말 못하던 경험을 나누고자 함이 아닌가? 환각을 병적 증후로만 몰아가는 문화적 태도로 인해 잃은 것은 무엇일까?


3] 환각 연구 이면의 정치경제학

* 올리버 색스는 이 책에서 그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나 역시 이 분야에 아무 지식이 없으나 감각박탈이나 환상사지치료에 쓰이는 기술 등은 얼마든지 군사적 용도(고문이나 전투력 증강 등)로 (악)용될 수 있지 않나, 현재도 그런 방향으로 연구가 이뤄지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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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1-20 12: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올리버 옹이 어렸을때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저주의 말 이후 ‘다른 사람‘이 되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수자들, 타인의 고통에 보다 예민해지고 더욱 공감하게 된 사람으로요. 어떤 면에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문학과 상상력을 통해) 상처받은 만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요.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거나 혐오하는 사람들은 그만큼의 상처를 입었을지 모르지만 그 사실을 회피하고 외면해버린 사람들이란 생각도 드네요. 그러니까 그들에게도 자신의 상처를 정면으로 들여다볼 여지가 있었다면, 타인을 조롱하고 혐오하지는 않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암튼 저 부지런히 <환각>읽어야 겠어요 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22-02-04 16: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쓰고 이제서야 얄라님의 질문을 확인하고 답변합니다.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연구자가 문제에 접근하는, 특히 그 과정에서 접촉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는 연구자의 생경험과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연관성을 보이는가?˝

저는 깊은 수준의 연관성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경험뿐 아니라 연구자의 유전적 자질 또한 깊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콩심는 데 콩나고 팥심는 데 팥나는 거 아니겠습니까ㅎ? 그리고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겠습니까? 어느 정도의 연관성인지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요.

˝소설가의 모든 소설은 자전적 이야기다.˝ 라는 이야기도 들어본 거 같습니다.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요. 박완서 작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거 같고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하루키, 박완서 등 소설에 소설가의 이야기, 사상, 생각이 녹아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지요.

얄라알라 2022-02-05 11:33   좋아요 1 | URL
예, 고양이라디오님,
아프고 힘든 사람들 그냥 못 지나치시는 분들 있잖아요.
[아내를 모자로....] 어제 새벽에 1/2정도 읽었는데, 올리버 색스는 병, 아픈 사람, 이전에 인간을 보려하더라고요.

미셸 푸코의 [비정상인]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푸코 역시 ‘비정상?, 다름‘ 취급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혹시라도 2월 책으로 [광기의 역사]조심스럽게 후보 리스트에 제안드려봅니다. ^^

그레이스 2022-02-04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임상기록을 소유한 의사면 믿을만하겠지요

얄라알라 2022-02-05 14:46   좋아요 0 | URL
자신에 대한 열렬한 탐구정신이 다른 사람(환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이어지는, 모범적인 의사이신듯해요^^ 그레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