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째 서가에 모셔만 둔 책들 뽀개는 날. 6월 22일. 각 잡고 읽기.




 "나는 통증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면 이러한 시도와 접근 방식이 전제하는 사유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 나는 통증의 개념보다는 통증을 왜 연구해야 하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왜 금기시되어 왔으며, 왜 덜 다루어지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정희진 32)"



정희진 선생님이 "통증 연구, 연구"라는 단어를 썼기에 여기서 생각을 이어가 본다. 경험 나눔의 차원이 아닐 때, 즉 논문의 형식미를 갖춘 "연구"일 때도 정의를 포기해야 하는가? 조작적 정의 시도라도 해야 다음의 절차가 풀리지 않는가? 일단, "연구"의 장에서는 용어에 대한 정교한 구분을 하지 않고서는 논의의 신뢰성과 권위를 확보하기 어렵지 않던가?  고백하자면, 나는 "고통, 통증, 아픔," "질병, 질환, 병" 이 용어들을 구분해서 적재적소에 쓰고 있는지 자기검열하다가 잘 몰라서, 그냥 '아몰랑' 하기도 한다. 


▶정희진 선생님 말씀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선생님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왜 금기시되어 왔"는지 궁금하다 하셨는데, 통증이 화제어로 금시시 되어 온 것이 시대나 사회를 떠나 보편적 경향인가? 통증이 너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굳이 '언어화' '문제시화' 하지 않는 사회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통증을 수반한 통과의례를 일종의 문화적 '주민등록증' 삼는 사회에 대해, 외부자적 시선들은 호들갑을 떨고 새디스트니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느니 하는 주석을 남기지만, 정작 그런 통증을 살고 있는 이들은, 그 통증을 대상으로 '논문'을 생산해내지 않는다. 



"고통과 몸은 내 인생과 공부의 평생 동지인데 '동지'들은.... (정희진33)"

- 올리버 색스

- 엘라지베스 퀴블러 로스

- 오오누키 에미코 

 


정희진 선생님도, '동지' 리스트에 올리버 색스 선생님을 맨 앞에 올리셨습니다. 2021년 1분기를 올리버 색스 글들 탐닉하며 보냈던 저에게도 이 분은 경이로운 마인드 그 자체. [중독 인생] 읽고 난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이 분이 마약에서 벗어난 것도 기적이네요. 깊은 탐닉에서 어떻게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경이로움. 


▶ 오누키 에미코, 정희진 선생님 덕분에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봅니다. "쌀"의 상징적 의미 연구한 짧은 책만으로 끝낼 뻔했는데,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서 활동하시는군요. 게다가 연구 영역이 굉장히 폭 넓으시네요. 제목만 봐도 당장 읽고 싶어집니다.


        





 "지금 이 글도 작은따옴표와 괄호투성이인데 일종의 협상적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몸에 대한 소유격이나 대상화가 전제된 나'의' 몸, 몸에 '대한'.... 같은 표현을 최대한 피하려고자 노력하지만 가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43)'


▶"문화" "신'  "종교".....소유격을 씀으로써, have동사 be동사를 씀으로써 산으로 바다로 가는 추상어들이 많죠. 그럴 때마다 작은따옴표를 친다면, 바다 너머 안드로메이다로.....저도 마찬가지의 고민 종종 해보았기에 격 공감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탈코르셋' 운동과 거리가 있다. '탈코르셋'은 기본적으로 젊은 (중산층) 여성의 몸을 전제로 한 것이다. 물론 대단히 중요한 여성주의 실천이지만 통념과 달리 모든 여성이 규범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44)"


오호! "탈코 탈코"하는 친구들 이야기에, 제가 심드렁한 태도를 감추기 어려웠던 이유를 이제 알겠네요?^^




"용서의 또 다른 어려움은 사건은 구조적이되(정치학), 용서는 개인의 몫(심리학)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56)."

"나는 용서 지향적 사회보다 '평등한 복수'가 가능한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 이것이 먼저다. (57)"










 "모두가 작가인 이 시대에 고통이라는 주제는 '사연팔이'라는 최근 출판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60). 이 책의 문체에는 당사자, 연구자, 운동가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무너져 있다. 여성주의 글쓰기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연구'가 아니더라도 취약한 처지에 있는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63)." 


"돌봄 윤리를 제안하는 여성주의 연구와 여성주의자의 일상 사이에 생기는 불가피한 괴리 (61). 보살핌 노동의 가치와 보살핌 노동자의 처지는 다른 우주이다. 논문을 쓰고 있는데, 공부를 해야하는데, 생계 활동을 해야 하는데, 어머니, 아버지, 자녀를 간병해야 하는 여성들이 있다 (66)." 




▶ 언어의 맛이라는 것이 참 신묘합니다! 최근 "질병서사 illness narrative"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많이 쓰이더라고요.  정희진 선생님 글에서 갑자기 "사연팔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니  흥미롭습니다. 텍스트의 홍수라는 현상은 동일한데, 한 편에서는 "서사narrative"로 장르화해주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사연팔이"라고 편히 불러주기도 하네요.


 "고통의 문제는 페미니스트들이 그토록 강조해 온 상황적 지식 situated knowledge여야만 한다. 맥락 없는 언어는 폭력이다 (84)." 

"글쓴이의 위치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면 남의 고통을 팔거나 나의 고통만 중요한 글이 된다. 고통의 공감 불가능성 때문이다. (86)"


"나는 당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는 다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90퍼센트의 사람들은 자신감이 없고 우울하다. 10퍼센트의 사람들은 근자감과 조증 기운이 넘친다. 자신감이 물리력, 폭력, 권력인 시대다 (93)"






"주체는 개별성으로 인식되지만 타자는 집단으로 지칭된다... 페미니즘을 '하나'로 사고하는 자체가 성차별이다." (150)

















"학문과 사회 공동체의 관계는 늘 논란거리지만, 논문의 내용과 주장을 사회적 의미, 역할, 기여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논문과 '잡문'의 차이는 글의 형식이 아니라 '품질'로 구별되어야 하지 않을까? (191)"




"각자의 '봉쇄 일기'를 기다리며: 팬데믹의 원인은 돌봄노동(살림)을 비하하고 자연파괴(죽임)을 추구해온 인간의 경제 활동이다 (209)."





"남성 중심의 근대 국가는 여성의 몸을 자기 실현의 그릇으로 삼았꼬, 이처럼 남성의 시선에 갇힌 여성의 재생산 능력은 '능력'이 아니라 여성을 기아와 죽음에 이르게 한 '저주' 였다 (230)."


"근대 국민 국가의 성립이 여성의 성과 재생산 통제를 가져온 것은 필연이었지만, 여성주의 연구자가 탐구해야 할 것은 젠더가 근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여성 억압 현실이 어떻게 근대와 자본주의를 만들었는가?"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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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6-2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각잡고 읽으셨습니까?ㅎㅎ

얄라알라 2021-06-23 07:30   좋아요 0 | URL
네^^ 어제 책 3권 읽었거든요. 눈동자가 잘 안 돌아가더라고요. 눈에 각을 잡았나봐요^^;;;;; 쉬엄쉬엄해야하는디, 20대때로 착각했어요 ㅋ툐툐님 굿 모닝 하시어요^^

미미 2021-06-2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장 깨기아닌 모셔둔 책 깨기 입니까? 멋져요!!!😆

얄라알라 2021-06-23 07:29   좋아요 1 | URL
50일 정도 책을 안 읽었더니, 모든 책들이 ˝모셔둔 책˝이 되버렸네요. 미미님 좋은 아침 시작하시길^^

단발머리 2021-06-22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딱 각잡고 준비하셨는데요!! 통증연대기는 반갑고요ㅋㅋㅋㅋㅋ 저도 다른 책 찾아봐야겠어요!

얄라알라 2021-06-23 07:29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책에서 소개해주신 책 중 2권만 이전에 읽어보았더라고요 통증 연대기는 단발머리님께서도 추천하시는 거니, 오늘 목차라도 꼭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