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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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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봄은 여인의 계절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꽃가루와 황사를 걱정하면서도 노랫가락이 절로 나오니 말이죠.

 

사실 짐짓 들떠있는 척하지만, 해마다 이 계절만 돌아오면 왠지 모르게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만물이 소생하고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건만...

'처연함'이랄까... ?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보일듯 말듯한 슬픔에 애잔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이번에 소개할 작품 역시 어딘지 모르게 이런 계절을 닮아 있는 것 같군요.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살인이라던지...

화목해 보이는 가족들에게 감추어진 상처라던지...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는 관계들이 사실은 비정상적으로 일그러져 있다던지...

 

 

미나토 가나에의 <속죄>라는 작품은 <고백>에 이어 제가 두 번째로 접한 작가의 작품인데요, 이 두 작품 모두 '복수'를 중심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자랑거리라고는 '깨끗한 공기'가 유일한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정밀기계 생산업체(아다치 제작소)가 들어섭니다. 그리고 회사 공장이 가동되면서 직원 가족들이 속속 이사를 오지요. 에미리네도 그 중 하나였죠. 아, 에미리 아빠는 평사원이 아니라 창업주의 손자로 아다치 제작소의 유력한 후계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에게 에미리와 같은 사랑스러운 외동딸과 아사코처럼 교양있고 세련된 아내가 곁에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겠죠... 

 

작품은 이 아사코에게 부쳐지는 사에의 편지로 시작됩니다. 사에가 누구냐고요? 에미리의 친구 중 한명이죠. 에미리가 죽기 직전, 학교 운동장에서 함께 배구를 하며 놀던 네 명의 친구 중 한명...

 

네...

안타깝게도 에미리는 시골 학교로 전학을 온 지 얼마 안 지나, 환풍기 수리기사로 가장한 남자를 따라 갔다가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사에, 마키, 아키코, 유카와 함께 놀다가 혼자만...

 

범인은 당시 초등학교4학년 동급생으로 함께 배구를 하며 놀고 있던 다섯명의 여자아이들에게 접근해서는 수영장 탈의실의 환풍기 수리를 도와달라는 구실을 댑니다. 그리곤 함께 가겠다고 따라나서는 다른 아이들을 물리치곤 에미리만 데리고 수영장쪽으로 사라지죠.

 

그로부터 한시간 쯤 흐른 뒤, 네명의 친구들은 에미리를 찾아 나섰다가 수영장 탈의실에서 죽어 있는 에이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비극이었지만 아사코를 포함하여 마을 사람들은 네 명이나 목격자가 있으니 범인은 쉽게 붙잡힐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문제는 이 네명 모두 범인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수사는 난관에 부딪치고... 외동딸을 잃은 아사코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맙니다. 

친하게 어울려 놀던 네명도 사건이 일어난 뒤부턴 두 번 다시 함께 어울리지 않게 됩니다. 안타깝죠... 만약 이들이 함께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고 자신들이 겪었던 아픔을 서로 나누면서 슬퍼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랬더라면 더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사건이 발생한지도 어느덧 3년이 훌쩍 지나버립니다. 

아사코는 마을을 떠나기 하루 전날, 죽은 딸의 친구들 네명을 마지막으로 부릅니다.  소녀들은 기억하기 싫은 사건이었기에 아사코의 초대가 반갑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범인조차 붙잡지 못한 채 죽은 딸을 마을에 두고 떠나야 하는 아사코의 마지막 청을 거절하긴 힘들었을 테죠.

 

그런 소녀들에게 아사코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찾아내던가 아니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속죄를 하라. 그렇지 않으면 복수 하겠다'

 

그저 딸을 잃은 엄마의 애통함이려니... 하고 잊어버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만, 네 명의 소녀들은 아사코가 남긴 이 마지막 말을 믿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네명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죠.

 

체구가 작아 인형같았던 사에는 결혼 뒤 남편을 따라 유럽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그만 남편을 죽인 살인범이 되어 돌아옵니다.  

당차고 똑똑했던 마카는 초등학교 교사가 됩니다. 그런데 체육수업 도중 흉기를 들고 학생들에게 달려든 범인을 제압하다가 그만 범인을 죽게 만듭니다. 용감한 그녀의 행동은 처음엔 칭찬을 받지만 부상당한 범인의 둔부를 발로 걷어차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다면서 비난을 받게 되지요.  물론, 그녀의 행동은 법정에서 업무상 과실치사로 판결나지만 말입니다.

 

한편,

남자처럼 체구가 크고 뚱뚱했던 아키코는 의붓딸을 성폭행한 자신의 친오빠를 죽이고 맙니다. 

그래요...

오빠와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 의붓딸에게 못쓸 짓을 하고 있는 친오빠를 보는 순간, 에미리를 떠올렸을 겁니다. 친구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던 아키고...

에미리에게 속죄할 수 있는 길은 오빠를 죽이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유카...

어려서부터 천식을 앓고 있는 언니에게 엄마의 관심이 집중되어 늘 소외감과 애정결핍에 시달렸지요. 언니를 미워하면서도 언니를 동경하고 부러워했던 어린 동생은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로부터 그 어떤한 위로나 도움도 받지 못합니다. 그녀가 기댈 곳은 파출소의 안도 순경뿐...

그런데 공교롭게도 언니가 경찰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안도 아저씨와 형부를 동일시(?)한 유카는 그만 형부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갖게 됩니다. 그리고 유카가 형부와의 잘못된 관계를 청산하려는 과정에서 몸싸움 끝에 형부가 그만 계단 아래로 떨어져 사망하고 맙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을 아사코가 보게 되죠......

자신의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걸 지켜보면서 아사코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기뻤을까요? 딸의 원수를 갚아서 마음이 놓였을까요? 

아닙니다.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사실 아무런 잘못도 없었던 어린 아이들에게 아사코가 가당찮은 속죄를 주장하는 이유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더랬죠.

그런데 그 이유가 마지막으로 쓰여진 그녀의 편지를 통해 밝혀집니다. 

 

경악스러운 반전과 결말에, 나도 모르게 '악!'소리가 터져나옵니다. 

그런데 이 비명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나 예상치 못함에서 오는 놀람이라기보다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본사회 특유의 부조리가 전해주는 충격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이처럼 우리와 엇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른 일본인과 일본사회를 소설 그것도 주로 추리소설을 통해서 접하곤 합니다. 실체가 아닌 허구로 말이지요.... 부디, 그 실체는 허구를 닮았으되 허구 자체가 아니길 바래봅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이야기 구조가 복잡한 것에 비해 작품은 200페이지 남짓한 경소설 분량밖에 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도 충분치 않을 뿐더러,  '속죄'라는 제목이 부적합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딸의 죽음은 엄마에게는 견딜 수 없는 슬픔이지요. 그러나 질투로 인해 연인을 갈라놓고 그중 한사람을 자살하게 만든 아사코가 딸을 잃어버렸다고해서 과거에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속죄는 결코 될 수 없는 법이지요.

 

 

속죄란 용서나 사죄보다 한차원 더 높은 겁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떠안게 된 비극을 속죄라고 할 순 없지요. 그건, 인과응보에 더 가깝겠지요. 속죄란 용서를 빌 수 있는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당사자의 용서 여부에 상관없이 자신의 죄를 스스로 갚아 나가는 겁니다. 이언 매큐언의 작품 <속죄>의 브리오니처럼 말이지요.

 

사실, 저는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바로 얼마 전에 읽었어요. 미나토 가나에의 이 작품을 읽게 된 것도 동명소설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때문이었습니다.

근데, 두 작품이 너무 비교가 되네요. 그렇다고 해서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을 폄하하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그냥 아쉽다는 말을 하고 싶을 따름이죠. 십여년의 시차(?)를 두고 있으니, 어쩌면 미나토 가나에가 이언 매큐언의 작품을 읽었을 수도 있고... 영감을 받아서 작품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봤을 따름입니다.

 

아무튼 저로선,

같은 제목이지만 전혀 다른 두 작품을 읽으면서 명작이란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거나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닌, 주제의 구현과 감동에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지요. 

 

 

감동이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을 다르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또한 느끼게 함으로써 온통 '나'에게만 쏠려 있던 '시선'을 나 이외의 타인과 좀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시켜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바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관심 즉 사랑이죠. 

 

그러므로 제가 판단하는 좋은 책이란, 읽고 난 다음 내 눈에 비쳐드는 일상의 풍경들이 참으로 낯설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그동안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를 수도 있고... 정당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부당하며...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얼마든지 거짓일 수 있는...

 

 

아무래도 저는 오늘도 낯선 하루를 보내야 할 것 같군요.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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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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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어든 건, 순전히 개인적 취향(?)때문이었다.

사람이 너무 볼살이 없으면 왠지 저렴해 보인다. 특히, 남자 그것도 중년에 접어든 경우엔 더더욱...

그런데 이 남자는 왠지 한눈에 빠져들게 만드는 옆모습을 갖고 있다.

 

나의 취향을 제대로 자극한 이 사람은, 덴마크인으로 전직 무용수이자 배우였으며 노련한 선원이자 펜싱선수였다고 한다.

경험상 이처럼 다재다능한 사람이 쓴 작품은 성공 확률이 높은 편인데, 1992년도에 나온 이 책 역시 출간되자마자 타임지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서구사회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고 시리다. 마치 그린란드를 뒤덮고 있는 눈과 얼음처럼...

 

 

스밀라 야스페르센.

그녀는 눈(雪)을 닮았다. 아니, 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덴마크인 아버지와 그린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눈처럼 차고 희다. 그리고 뜨겁다. 마치 감각을 마비시키는 얼음처럼....


 

슬픔을 표출하는 그녀의 방식은 눈(眼)이 아닌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마치 바이올린 선율처럼... 

 

나는 소파에 앉았다. 먼저 그날의 영상이 몰려온다.

나는 그냥 흘려 보낸다.

그 다음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몰려와 미묘한 우울과 가벼운 의기양양함 사이에서 진동한다.

나는 그도 역시 흘려보낸다. 그 다음에 평화가 온다.

내가 레코드를 올려놓았을 때 찾아온 것이다.

그 다음 나는 자리에 앉아서 운다.

어떤 특정한 물건이나 사람 때문에 우는 게 아니다.

내가 살아온 삶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창조해낸 것이었고 나는 내 인생이 달라지기를 원치 않는다.

기돈 크레머가 연주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나는 운다.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p83 中-

 

 

이 책을 힘겹게(?) 다 읽은 후, 이 글을 쓰기 전 검색을 해봤더랬다. 그만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윗 문장이 가장  많이 인용되어 있었다.

낯설었지만(?), 이 문장만큼 스밀라라는 인물을 잘 표현한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인용한 문장들을 확인하기 위해 책을 펼쳐들었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첫번째로 붙여 놓은 스티커 역시 정확하게 이 문장을 가리키고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다음 단락을 통해서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이사야는 외로운 아이였고... 아이의 엄마는 무기력한 알콜중독자이며...

스밀라는 현대문명으로 상징되는 덴마크를 혐오하는, 딱 그만큼 그린란드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나는 베냐를 이해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은 이전보다 더.

언제나 이런 식은 아니었다. 내가 언제나 사물을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언제나 이런 식은 아니라고 나는 혼잣말했다. 처음으로 덴마크에 왔을 때, 여러 현상을 경험했다. 덴마크인들의 소름끼치는 끔찍함이나 아름다움, 혹은 회색의 칙칙함 속에서. 그러나 그것들에 대해 설명해야 할 크나큰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다.


이사야가 집에 올 때는, 때때로 자기 집에 먹을 것이 없을 때였다. 율리아네는 친구들과 식탁에 앉아 있었고, 담배와 웃음과 눈물과 무지막지하게 마셔대는 알코올은 있었지만 밖에 나가서 프렌치 프라이를 사올 5크로네는 없었다. 이사야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 애는 자기 엄마에게 소리친 적도 없었다. 삐친 적도 한번 없었다. 참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심하면서 내뻗은 손을 뿌리치고 자기 길을 갔다. 가능하면 다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때때로 수리공이 집에 있었고, 때로는 내가 있었다. 그 애는 나한테 배고프다는 말을 하지 않고서 한 시간 이상 거실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거의 어리석음에 가까울 정도로, 그린란드인다운 극단적인 예의를 유지하면서.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p329 中-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는 그린란드인 꼬마 남자 아이가 눈 덮힌 옥상에서 떨어져 추락사한다. 스밀라의 이웃이자 친구인, 이사야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시작된다.

 

이 모든 일은 한 아이가 지붕에서 떨어진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사건이 해결되기 이전에 절대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련의 사건들이 연관되어 있었다. 야켈센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재확인을 받는 것이었다. 유럽인에게는 쉬운 설명이 필요하다. 그들은 언제나 모순적인 진실보다는 간단한 거짓말을 선호한다. -p455

 

나는 영웅이 아니다. 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아이의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손에 내 집념을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p493

 

죽고 사는 문제가 갑자기 중요해지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제 문제가 내 손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이상 이사야하고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아니, 나하고만 관련된 일도 아니다. 아니 수리공과 관련된 것도 아니다. 아니, 심지어 우리 사이에 있는 문제도 아니다. 뭔가 더 큰 것이다. 아마도 그건 사랑일지도 모른다. -p498

 

 


'아...!'

스밀라가 아이의 석연찮은 죽음의 이유를 찾아 나선 까닭은 다름 아닌 사랑때문이었구나...

 

분노도... 슬픔도...호기심도... 의무감도... 아닌, 순전히  사랑때문에... 인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그 사랑때문에...


 

이 문장을 읽고 나서, 독자인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작가 김연수의 '부탁'은 결코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더 많이 더 자주 입 맞춰달라는 그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따위는 더 이상 찾을 필요가 없었다.  

 


 

 

추리소설인 이 책의 미덕은...

사건 추리에 있다기보다는 인물에 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대단히 과장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45퍼센트와 이번에는 그 두려움이 무색하게 되리라는 광적인 희망 45퍼센트, 거기에 소박하게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여린 감각 10퍼센트를 더하여 이루어진다.


나는 더이상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내가 더이상 볼거리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그렇지만 물론, 누구나 사랑에 압도될 수는 있다. 지난 몆 주간 나는 매일 밤 몇 분씩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나 자신에게 허락해주었다. (...)

나는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명확하게 사물을 바라본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광기의 한 형태다. 증오, 냉담, 분노, 중독, 자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간혹, 자주는 아니지만 때때로 나는 인생에서 사랑에 빠졌던 때를 떠올린다. 그 일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퇴어크라고 부르는 남자가 고급 선원 식당의 식탁 건너편에 앉아 있다. 이 만남이 10년 전에 이루어졌더라면 나는 그와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한 사람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렬하여 우리의 허울을 뚫고, 본질적인 편견과 억압을 뚫고, 내장에 곧바로 파고들 때가 있다. 5분 전, 내 심장 주위에 조임쇠가 걸리더니 이제 점점 더 죄어오고 있다. 이런 감정의 동요는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내몸의 반응으로 열이 오르고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으며, 찌르는 듯한 두통을 유발하고 있다.

10년 전이라면 이런 두통은 내 입을 그의 입에 갖다 누르고 그가 자기 통제력을 잃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그 현상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 찬 채로 바라보지만 이것은 단지 수명이 짧고 치명적인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p441~442 中-

 


나는, 우리는 지금 인간이 사랑에 대해 써내려갈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문장을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이처럼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문장 속을 지나왔는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른다.'라는 말처럼, 나는 가장 멋진 여성을 만나고 왔으면서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저 어서 빨리 이사야가 죽은 이유만 알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어리석게도...

 

 

이 단락을 인용하면서, 왠지 이 책만큼은 언젠가 꼭 다시 읽게 될 것만 같은 깊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퇴어크의 냉정함은 표면뿐이었다. 그 뒤에는 열정이 있었다. 갑자기 돌이 살아 있는지 아닌지는 내게도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갑자기 운석은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세계를 향한 서구 과학의 태도의 결정체가 되었다. 계산, 증오, 희망, 공포, 모든 것을 측정하려는 시도. 그리고 살아 있는 생물에 대한 어떤 공감보다도 더 강렬한 것. 바로 돈에 대한 욕망.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p609 中-

 

 

한 아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이어진다.

이사야는 진실때문에 죽었다. 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 진실을 알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진실과 대면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도 그냥 적당한 수준의 용기가 아니라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인간이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용기를 갖출 수 있을까? 

도대체 용기란 뭘까?

사랑보다 강한 걸까? 

아니, 어쩌면 사랑 그 자체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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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즈가 울부짖는 밤 블랙펜 클럽 32
오사카 고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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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즐겨 찾는 블로거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모즈가 울부짖는 밤』

1986년도에 쓰여진 일본의 하드보일드 추리소설로, 작가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경찰 내부의 음모를 다룬 시리즈물을 4편이나 연이어 발표했다고 한다. 

 

첫장면부터 죽어버리는 킬러와 킬러를 몰래 뒤쫒던 경찰...

그리고...

도심 한복판에서 극좌파의 폭탄테러로 용의자(가케히 슌조)와 한명의 여인(구라키 다마에)이 사망한다.

 

이야기는 이 두 건의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이 두개의 사건을 하나로 교합하려고 시도하지만 내가 보기엔 억지로 꿰어 맞춘 기색이 역력하다. 그냥 킬러의 이야기 한가지만으로 스토리를 라인을 짰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 

같은 조직원에게 죽임을 당한 킬러는 운좋게(?) 살아나지만 그만 기억력을 잃고 만다. 그리고 경찰과 킬러가 속해 있던 우익폭력단은 킬러가 갖고 있는 사진파일을 손에 넣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작가와의 두뇌싸움은 어떻게 절벽에서 떨어진 킬러가 살아났느냐?와 사진파일이 갖고 있는 비밀이라 하겠다. 근데, 여기에는 트릭이 있다. 살아난 킬러는 킬러의 여동생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남자 쌍둥이 동생이었던 것이다. 그가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꾸민 후 죽은 형의 흉내(?)을 내면서, 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근데, 이 남자가 킬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설정이 다소 황당하다. 어린 시절 친아버지로부터 여자로 취급당하면서 성적 학대까지 받아서 잔인한 살인자의 길로 들어섰고, 또한 동생을 불쌍하게 여긴 형은 이를 방조했다니...

 

 

한편,

경찰의 음모라는 것 역시 조직 내에서 자신이 모시는 상관을 중심으로 뭉치거나 각자 자신의 이익이나 복수를 위해서 서로 견제하고 이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정의의 상징으로 나오는 구라키 나오타케는 폭탄테러로 숨진 아내가 자신의 상사인 무로이겐과 결혼 전부터 불륜관계였다는 걸 알고는 경찰 조직에 저항하며...

공안경찰인 아케보시 미키 그리고 오스기 료타 역시 양심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일개 '내부고발자'에 불과할 뿐이고...

킬러가 갖고 있던 사진 파일이라는 것 역시 어이없게도(?) 불륜 관계를 확인하는 사진일 따름이었다.

 

여기에 듣도 보도 못한 사르도니아공화국의 에체베리아대통령 암살 계획이 나오는가 하면,

무로이겐 공안부장의 사위가 에체베리아대통령에게 처형되었다는 것과 구라키 부부의 죽은 어린 딸이 실은 무로이겐과의 불륜 관계에서 태어났다는 등등...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너무 많이 등장해서 진부하다 못해 살짝 짜증이 일었다.  1986년이면 20년도 훨씬 더 전이니, 그 당시에는 이런 소재들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추리소설도 고전명작 아니면 최신걸작 위주로 엄선해서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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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의 인형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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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아이>에 이어서 장용민의 두번째 장편소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첫번째보단 두번째가 더 좋았다. 물론,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에 적응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전편보다 이야기 구조가 훨씬 더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집중이 잘 됐다.

 

이 느낌, 뭐랄까...?

아, 맞다! 퓨전 음식을 먹은 그런 기분이다. 그만큼 장용민의 작품들은 서구의 하드보일드계 문학과 중국의 무협소설을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인상이다.

 

목각 인형이라는 단순한 소재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힘이 굉장하다. 특히, 중국 고대에서 조선말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시간적 배경과 한중일 세 나라를 넘나드는 공간적 배치가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널리 알려진 유방-항우의 대결과 불로초를 찾아나선 진시황 이야기 및 갑신정변 등을 '괴뢰희'의 창시자 창애와 여섯개의 인형으로 묶어낸 솜씨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뛰어난 요리사가 흔한 재료와 잘 알려진 요리법을 활용하여 전혀 새로운 퓨전 음식을 만들어내듯, 역사적 사실과 허구(전설/설화) 및 작가적 상상력을 결합시켜 재밌으면서도 가볍지 않고.... 진중하면서도 어렵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낸 것 같다.

 

물론,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드라마의 대유행에서 알 수 있듯이 요즘 한국 드라마 분위기가 이쪽으로 기울어서 작품의 신선함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이야기는 소더비 경매장에서 괴상망측하게 생긴 목각 인형이 2천만 유로(약 3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낙찰되면서 시작된다.

 

한편, 일백 미술관의 큐레이터인 주인공 정가온은 췌장암 진단을 받은 그날 자신과 엄마를 버린 남사당패 꼭두쇠인 아버지 정영후의 부고 소식을 받는다. 그리고 사라진 아버지 대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여동생인 설아와 5일 뒤에 있을 삼우회에 참석하라는 초대장 한장이 그에게 남겨진다.

 

결국, 이야기는 불로 즉 영생의 비밀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여섯 개의 인형을 차지하기 위한 일본의 천황파와 홍콩 삼합회, 그리고 한국 재벌가의 충돌을 기둥으로 삼아 펼쳐진다.  특히, 꼽추로 태어나 진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초를 찾아나선 서복을 따라가 그를 도와 일본에서 나라를 세운 창애에 관한 이야기는 한편의 아름다운 전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는 줄거리 쫓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렇게 독후감을 쓰면서 반추해 보니,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참 의미심장하다.

 

불로장생...

살아 생전 무소불위의 권력도 모자라 영생을 탐하는 인간의 욕망...

작품의 결말은 이에 대한 신(神)의 답변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반전에 제대로 주저앉은 나, 그래서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기로 했다.

 

참고로,

그는 나처럼 중국어를 잘 할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중국, 특히 서안에서 머문 경험이 있을 것 같다.

 

그냥, 작품을 쓰기 위한 단순한 자료조사라고 하기에는 중국 대륙과 중국어에 대한 작가의 식견이 너무 넓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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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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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한국 작가가 쓴 SF추리소설은...

 

일단 이 작품은 영화시나리오를 방불케 한다. 그만큼 작품 구상부터 영화화를 감안하고 쓰여졌다는 걸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배경과 등장인물들 그리고 사건 등을 모두 해외로 설정하다보니 마치 외국 작품을 한국어로 옮긴 번역서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한국소설의 세계화(?)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허리우드식 모방이라고 해야할지... .? 판단은 유보하기로 한다. 작품의 '옳고/그름'과 '좋고/나쁨'을 따지는 건 내 몫이 아니므로...

 

소위, '궁극의 아이'란 미래를 '기억'해내는 아이를 말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한다는 건, 미래에 살던 인물이 과거에 태어나 머리 속에 남아 있던 '기억'을 되살린다는 뜻이리라. 어딘지 모르게 불교의 '환생론'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일까? 작품의 주요 스토리 라인인 '악마 개구리'일당의 이야기와 함께 곁가지(?)격으로 달라이 라마 으뜬 가쵸가 등장한다. 

  

2001년도에 있었던 9.11테러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를 미리 알고 있는 주인공이자 궁극의 아이인 신가야는 사람들에게 테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역부족이다. 다만, 이때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신가야의 외침에 귀 기울여 살아남은 생존자 두명은 나중에 신가야를 위해 봉사하게 된다. 그러니까 신가야는 죽으면서 10년 뒤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맞춰 계획을 세워놓는다. 

 

끙...

과거인 중세로 건너간다는 코니윌리스의 <둠즈데이 북>에서는 인간은 설령 과거-현재-미래로 시간여행을 할 순 있지만 사실 자체를 바꿀 힘은 없다는 것으로 나오는데...

어쩌면 이게 더 과학적이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만약 이미 예정되어 있던 미래를 예측하고 그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취한다면, 미래는 더 이상 일어났던 그대로 되풀이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신가야의 계획이 미래에 영향을 미쳤고 미래가 바뀌었으므로 더 이상 신가야가 살았던 그 미래 그대로 똑같이 미래가 펼쳐질 수는 없는 것!  

 

암튼, 각설하고...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난 직후 주인공 신가야는 앨리스라는 한 여성을 만나 닷새간의 사랑을 나누고 더 이상 악의 세력에 봉사(?)하지 않기 위해서 자살을 택한다. 홀로 남겨진 앨리스는 딸 미셀을 낳아 키우고... 미셀이 열살이 되자 신가야가 십년 전에 계획해 놓은 일들이 차례로 일어난다. 

 

그의 딸 미셀은 일곱번째 궁극의 아이였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악마개구리 일당의 마지막 생존자 벨몽은 또 다시 미래를 엿보기 위해서 미셀을 납치한다....

 

여기에 여성 저널리스트가 등장하고.... 악의 비밀에 접근한 댓가로 9.11테러의 희생자가 되며.... 그녀의 남편이자 FBI 요원인 사이먼이 신가야의 편지를 받으면서 십년 전에 죽은 아내의 죽음에 쌓여 있던 베일을 벗겨낸다....

 

 

전체적으로 굵직한 이야기 구조는 이렇다.

스놉시스만으로도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으며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고전에서 최우수상을 탔다는데...

글쎄, 뭐가 특별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TV만 켜면 나오는 미드와 잊을만 하면 개봉하는 허리우드 영화와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원.... 

물론, '한국 작가도 이 정도는 쓸 수 있다'라는 의미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작품이 나온지 3년이나 지나서 읽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3년이라는 시간차가 식상함을 불러왔다는 얘기인데.... 전혀 근거없다 할 순 없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작이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역시나 실망스럽다.

 

아, 호불호를 언급하지 않기로 했건만....

결국, 이렇게 마음을 또 다시 드러내고 말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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