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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 윤치호 일기 제4권 1896년
윤경남 지음 / 신앙과지성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벌거벗은 한국사: 벼랑 끝 조선, 그들은 왜 러시아로 향했나?> 편을 시청한 후 윤치호에 대한 궁금증이 급상승했더랬는데 도서관 서고에서 바로 이 책이 눈에 띄는 게 아닌가. 언젠간 읽을 책이라는 생각으로 대출해왔다
이 책은 부친과 함께 고종의 탈출을 꾀하다 실패한 '춘생문 사건'으로 피신한 시기부터 시작된다. 뒤이어 고종의 아관파천이 성공하고, 때마침 러시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초청장이 날아든다.
윤치호는 구한말 흔치 않은 개화파 인사였다. 특히 일본, 중국 등에 머물면서 개화 사상을 기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가 된 후 미국의로의 유학 경험은 선진 문물과 문화에 대한 동경과 함께 조선의 미개함에 분노하게 하는 특유의 사상을 갖도록 했다.
애국가 작사라는 진위 논란과 우국지사와 친일파라는 불명예가 공존하는 가운데 무려 60여 년에 걸쳐 영어로 기록한 그의 일기는 개인의 삶을 통해 당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날 것 그대로의 역사책이 아닐까 싶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윤치호에게 조선의 현실은 암울하다 못해 참혹했다.
낮에는 손님들의 방문으로 소일하다. 온통 흥분의 도가니다. 모두 눈물을 흘리며 이를 갈고 있다. 서울 전역에 단발령이 내린 것이다. 조정에서도 상투와 망건을 쓰는 것을 금지했다. 사람들이 이런 일로 인해 폭동을 일으킬까봐 공포에 떠는 사람도 있다. 일본 군대가 출동해서 그 폭동을 막아주겠지.
국모가 일본놈들에게 살해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비굴하게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굴던 백성들이 지금 와서 뭔가 행동을 일이키려 하는구나. 명령에 잘 따르도록 길들여진 조선 사람을 위해서 혹은 그들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확실해진다. 조선 사람들의 그런 씨알머리 없는 소리에는 한 푼어치도 동조하지 않을 테다. -21쪽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로 조선에서 청나라를 몰아내자 러시아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민비 일파을 몰아내기 위해 초유의 <을미사변>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여러 나라에 알려졌지만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심지어 조선의 백성들마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민비는 조선 백성들로부터도 외면받았던 것이다.
일본에 대한 칭송이 뉴욕에 사는 모든 인종들의 입에 회자하고 있다. 조선 왕실이 당한 비극적 참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고 신경 쓰지 않는데도 말이다. 일본이 왕비뿐만 아니라 궁중의 모든 대신들을ㅡ물론 왕까지ㅡ살해했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일본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은 실패했어도, 그들이 하는 짓은 모두 잘한 짓이란 말인가? 힘만 있으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는 격인가! -96쪽
반면, 윤치호는 이에 대해 울분과 민비에 대한 애통함을 여러 차례 표현할 뿐만 아니라 <갑신정변>의 실패에 대한 분석도 현실적이다. 30대 초반으로 해외에서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더라 아직 조정에서 변변한 직함도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관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났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옥균 일당은 그들이 요인 6, 7명만 제거하면 일이 성공할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그들은 이 나라를 최악의 파국으로 몰아 넣었다. 또한 왕비께서는 김옥균과 그 일당들을 죽일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까지 말씀하셨다. 왕비의 옥좌는 영원히 안전하다고 볼 수 없었다. 왕비는 백여 명의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래서 모든 백성에게 미움을 산 것이다. 머리가 잘 돌아가 새로운 말을 잘 만들어내는 유길준은 박영효를 퇴출시키는 비극적인 음모를 꾸몄고, 왕비를 파멸에 이르게 만들었다. 스기무라와 유길준은 왕비 한 사람을 없애버리면, 조선에서 알게 모르게 악을 제거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와비를 시해한 것이다. 그들의 비열한 범죄는 조선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더러운 책력임이 증명되었다. -60쪽
이런 인물이었으니,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민영환이나 간신배들 사이에서 배척당했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조선에 올곧은 선비며 충신이 없었던 게 아니다. 19세기 당시 조선은 60년 세도정치로 바른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사장당하고 흥선대원군과 민비외척의 권력 다툼 속에서 기회주의자들만 살아남아 있었다.
윤치호는 나라의 운명보다는 개인의 영달과 일신의 안녕에만 관심을 갖는 정치인들과 심지어 고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유길준은 자신을 뽐내는 일에는 가장 뛰어난 모사꾼이다. 그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원칙이나 예의나 자존심도 없는 사람이다. 거짓말을 자랑삼아 하면서 사실처럼 우겨된다. 정직한 사람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거짓말하는 일이 더 빨리 성공하는 지름길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결국 그는 주사직으로 시작하여 1년에서 1년 반 사이에 대신 반열까지 올라 세력이 커진 셈이다. -30쪽
나는 이완용이 정말 싫다. 그의 특권 의식과 저질스러운 교활함이 족제비 같은 뒷거래를 좋아하는 그가, 평범하거나 하류층에 속하는 사람에게 대하는 노새 같은 완고함이 싫다. 그러면서도 그는 권력층 앞에서는 강아지처럼 알랑거리며 순종한다. 이런 온갖 행위가 나도 모르게 그에게 적대감을 일으키게 한다. 그가 세우고 싶어 하는 '사대부'혹은 선비학교는 그를 위해서라도 따로 세워 다니게 해야겠다. -32쪽
이완용은 그렇다쳐도 나름 독립운동가로 알고 있던 <서유견문>의 저자인 유길준에 대한 윤치호의 평가가 특히 인상적이다. 아마 두 사람의 관계는 일기에도 밝혔듯이 유길준의 후임으로 학부협판이 된 윤치호에게 유길준이 알렌 박사가 맡긴 4,000불에 대한 영수증을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면서 일어난 것 같다. 알렌 박사는 선교자이자 의사로 조선에 파견되었는데 <갑신정변> 때 칼을 맞아 외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해주면서 조선 왕실로부터 신뢰를 얻는다. 이에 조선 최초의 서양병원인 광혜원 등을 세우기도 하지만 철도부설권 등 여러 이권에 간여하여 엄청난 수수료를 챙긴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알렌이 유길준에게 준 4,000불 역시 어쩌면 부정을 눈감아주는 대가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니 유길준이 당당하게 착복을 하고는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영수증을 요구했겠지...
윤치호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결국 민영환과 함께 러시아로 출발한다. 다만, 원래의 여행경로인 남방루트(상해-인도양-수에즈운하-모스크바) 대신 일본 요코하마항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에 도착해 기차를 타고 뉴욕에 도착해 다시 대서양을 건너 영국 리버풀을 거쳐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자세히 나오지 않고 드문드문 등장할 뿐이어서 아쉽다. 일기를 쓰지 않았을 리는 없는데 번역 과정에서 누락시켰을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대관식이 열리기 직전 사절단은 무사히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그렇지만 '특별전권대사'인 자신을 명함에는 '대관식 특별대사'로만 기입한 것부터 시작해서 황제의 대관식이므로 대관식장엔 모자를 벗고 들어가는게 예의라는 윤치호의 조언에 격노한 민영환이 대관식에 불참하는 등 두 사람은 곳곳에서 충돌한다.
민영환 공은 조선의 예법과 관습에서 벗어난다는 구실로, 대관식이 거행되는 잠깐 동안이라도 갓(사모)을 벗어야 한다는 의례를 완강하고 단호하게 끝내 거부했다. 이는 그의 개인비서인 "물고기" 씨, 김득련이 민 공에게 사모를 벗지 말도록 겅의한 것이 틀림없다.
나는 민 공의 마음을 바꾸도록 간곡하게 설득해 보았다. 그가 최고로 중차대한 임무를 가지고 상감의 어명을 받들고 대관식에 온 사람임을 강조하고, 잠시 동안만 그 고루한 조선 관습을 접어두는 일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님을 간청했다. -107쪽
단발이야 '수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 사상에 유배된다고 할 수 있지만 모자를 벗는 것도 이것과 연관짓는 건 억지라고밖에 할 수 없다. 아마도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고 외국어도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조선 사대부였던 민영환의 자격지심이 만들어낸 헤프닝이지 않을까 싶다.
한편, 중국과 이홍장에 대한 윤치호의 평가는 냉정하다 못해 경멸에 가까울 정도인 반면 대관식 때 화려한 예복을 입은 니콜라이 황제가 2000년 전에 살았던 헐벗은 젊은이(예수)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에 감격해 한다. 기독교와 서양문명에 깊이 전도되어 있던 윤치호의 기울어진 가치관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종이 니콜라이 황제에게 보낸 예물에 대해서도 약소국으로서의 비참함을 자각한 것까지는 이해하겠으나 비하에 가까운 표현은 윤치호라는 인물됨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특별 사절들 가운데서 중국 사절들은 화려한 비단에 수놓은 옷을 걸쳤음에도 불구하고, 누런 이를 드러내고 길게 땋아 늘인 머리를 짧게 잘라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본 사절단들은 유럽식 복장에 가장 세련되고 부러운 동방의 나라로 군림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듯했다. 페르시아 사절단은 아주 화려한 저장에 잘생긴 친구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런 유의 친구도 그 친구의 왕이 최근에 살해되고 그의 정부는 영국파와 러시아파로 갈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비참한 처지에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할 때, 불상한 우리 측 대표들은 다른 행복한 국가 대표들로부터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103쪽
이홍장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그는 외교적 의전을 잘 알 뿐 아니라 빈틈없이 행동을 할 줄 아는 중국 사람이다. 그는 서양 문명이 중국 문명보다 우월한 것을 알 만큼 민첩하고, 그 자신이 서양 문명을 수용함으로써 그 자식을 중국에 전수하는 재주마저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모험을 즐기는 유능한 외국인 여러 사람을 돈을 넉넉하게 주어 자기 주위에 포진시켜 놓은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후원자인 이홍장 칭찬을 해외에 요란하게 퍼뜨려서, 사람들은 그가 자질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렇게 시간과 돈, 영향력 행사, 그리고 측근의 외국인들에 의해 이홍장이라는 가공의 위대한 인물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전형적인 인물의 능력과 위대함은 일본인 때문에 여순항, 위해위, 그리고 북양 함대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가 바닷물에 침몰해 버렸다. 고맙게도 일본은 이홍장의 기세를 꺽어 놓았다. 오늘 우리 앞에는 그렇게 못된 노새처럼 구는 진짜 이홍장만이 남아 있다. -110쪽
5월29일(금요일)
아름다운 날씨, 모스크바
오전 10시에, 조선왕이 니콜라이 2세 황제의 대관식을 축하하며 보내는 선물을 전하기 위해 파스콤 장군과 함께 크렘린 궁전에 가다. 선물은 자수를 놓은 병풍 2개, 큰 대나무로 만든 창 가리개 발 4개, 수놓은 돗자리 4개, 진주조개로 장식한 장개장 1벌, 백동향로 2개이다.
이 선물은 조선 사람이 사적으로 러시아 사람에게 건네는 선물로는 알맞다. 그러나 조선왕이 러시아 황제에게 주는 선물치고는 너무 빈약하게 느껴진다. 선물을 보관하려고 받아 든 관리들의 옆얼굴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아, 불쌍한 우리 조선 나라여! -122쪽
조선은 그저 경제력만 없는 나라가 아니었다.
고종 황제가 민영환을 통해 러시아 니콜라이 황제에게 부탁하고자 했던 다섯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왕이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없어 자존심 다 내던지고 심지어 나중엔 국토마저 담보로 삼아 차관을 구걸하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6월5일(금요일)
아름다운 날씨, 소낙비 오다. 모스크바
오후 2시에 민영환 공과 나는 외무대신 로바노프 왕자를 만나러 가다. 다음은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다.
민영환: 신임장을 제출하기 위해 황제 알현을 할 수 있을까요?
로바노프: 민 공의 요청을 황제께 아뢰었습니다. 황제께서 그 조건을 수락하실지 여부는 내가 답변해 드릴 수 없습니다. 황제 폐하의 지침을 받는 대로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민영환: 조선 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감안하셔서 제가 귀하에게 내놓는 다섯 가지 제안을 러시아 정부가 받아들여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1. 조선군대가 믿을 만한 수준으로 단련될 때까지 러시아 군대가 국왕의 경호를 지원해 줄 것.
2. 군대와 경찰의 훈련을 위해 다수의 군사교관을 파견해 줄 것.
3. 궁내부와 내각과 광산과 철도분야를 지도할 고문관을 파견해 줄 것.
4.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직통 전신을 가설할 것.
5. 일본에서 빌린 국채를 갚기 위해 300만 엔을 차관해 줄 것 등입니다. -127쪽
6월7일(주일)
더운 날씨, 모스크바
오전 10시30분에 재무대신 세르게이 비테를 방문하다. 민영환 공은 이미 황제와 로바노프 대신에게 한 말을 거의 되풀이해 말했는데, 무엇보다도 조선 국왕의 호위 문제를 황제가 윤허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비테는 영어를 못하므로 스타인이 내게 재통역을 해야만 했다.
(...)
오후 2시경 숙소로 돌아오다. 스타인이 내게 말하기를 비테가 자기에게 살짝 알려주는데, 조선 국왕이 자기 정적들을 자기 손으로 처단할 힘조차 없다면 어떻게 다른 나라 사람이 그를 보호해줄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맞다, 맞아!) 비테의 말은 매정하고 굴욕적이자만,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므로 알아차려야만 하다. -133쪽
조선사절단이 초조하게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러시아 외상 로바노프와 일본 특사 야마가타 사이에는 조선을 분할 통치하자는 4개항으로 이뤄진 비밀 협정이 체결된다. 이것도 모르고 사절단은 러시아측의 긍정적인 반응을 확신하면서 모스크바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난다. 그리고 이곳에서 5개 조항의 친서에 대한 러시아의 답변서를 받는다.
6월30일(화요일)
더운 날씨에 소낙비 오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외무대신 로바노프가 민 공에게 5개 조항의 친서에 대한 대답을 보내왔다. 그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상감은 원하는 기간만큼 러시아 공사관에 체류할 수 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상감이 환궁할 경우에 러시아 정부는 그의 안전에 대한 답변을 보낸다.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관에 경비병을 한 명 배치한다.
2. 군사 교관에 관해, 러시아 정부는 경험 있는 고위 관리를 서울에 보내어 그 문제에 관해 조선 정부와 협의하도록 한다 이 견해에 있어서 첫째 문제는 조선왕을 경호하기 위한 자체 조직이다. 조선의 경제적인 여건을 조사하고 재정적인 개선 방책을 찾기 위해 경험 있는 전문가를 조선에 파견할 것이다.
3. 서울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 산하에 두 명의 신뢰할 만한 관리를 고문관으로 파견한다.
4. 차관 문제는 조선의 재정 조건과 요구사항을 충분히 파악한 후에 고려해 볼 것이다.
5. 러시아는 조선의 지상 통신선을 연결하는 사안에 동의하며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한 조력할 것이다. -165쪽
사절단의 전권대사인 민영환도 러시아에 갔다 온 후, <해천수범>이라는 책을 남겼다는데 이 책에는 조선이 러시아에 요구한 5개 조항이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고 하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조선 조정에선 계속 전갈을 보내 윤치호 대신 조선말이 서툴러 황제의 모후를 '황제 에미'라고 옮긴 러시아 국적의 김도일만 데리고 니콜라이 황제를 알현하는 등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된다. 윤치호를 견제하려는 세력들이 고종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윤치호를 배제시켰던 것이다.
불쌍한 이범진! 뭇 여인들과 러시아 통역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감 전하가 이범진을 냉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범진이 이따금 전하께 간언을 드렸기 때문이다. 전쟁 귀신 숭배하는 어리석음을 물리치시코, 감놔라 대추 놔라 하는 점쟁이들에 대해서, 그리고 부도덕한 남자와 여자들과 조정의 각료들을 무시하시도록 말씀드린 것이다.
"중전께서 생존해 계실 때는, 중전이 그 귀신놀이의 장본인이라 생각했었소. 하지만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소. 중전께서는 오직 대전 전하의 기분을 좋게 해드리기 위해서만 여러 가지 해로운 일들을 하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이범진이 눈물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괘씸한 러시아 통역관, 김홍육; 저질의 계교나 부리는 지겨운 간신배, 주석면; 신들린 이자들이 피둥피둥 살만 찌는 궁중 나인들까지 부추겨 나약하고 희망도 없는 왕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상감과 세자의 눈과 귀가 되어 날치고 있는 것이다. 상감 전하는 온순해 보이지만 진실을 감추고 있는 지배자일 뿐이다. 우리 상감의 착한 성격이나 고질적인 나쁜 성질들이 하나같이 영국 역대의 역사에 잘 알려진 어떤 왕을 생각나게 한다. -77쪽
어쩌면 이때부터 나라와 백성보다는 일신의 안녕에만 집착하면서 간신배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고종에 대한 실망감이 윤치호의 마음에 싹트기 시작했던 건 아닐까.
윤치호는 민영환으로 대표되는 조선 사대부와 특권층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결국 민 공 같은 특권 계층에 있는 조선 고관들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신중하게 자신을 낮추어 행동하는 관리는 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 공은 천성이 예민하고, 합리적이고, 자신을 털어놓을 만큼 소탈한 면도 있다. 그러나 조선의 부패한 조정 안에서 그의 끝없는 성공 가도는 오히려 그를 타산적이고, 이상스럽게 역정을 잘 내게 하고, 오만하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민 공이 외국에서 교육을 받았더라면, 사물을 피상적으로만 관찰하기보다는 사물의 핵심에 들어가서 이치를 규명하는 사람이 되고, 좀 더 진실하고 용기 있는 조선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154쪽
민 공의 사람 다루는 개념: 이중적이고, 위계와 비밀스런 계략으로 일관한다.
겸손에 대한 개념: 한숨을 몰아쉬면서 온갖 자기비하의 말을 함.
위엄에 대한 개념: 심술꾸러기처럼 입술을 쑥 내밀고 팔자걸음으로 벌릴 수 있는 한 다리를 벌리고 굽신거리며 걷는다.
권위에 대한 개념: 자기 아랫사람에게 최상의 특권 의식을 보여준다.
천절하거나 말거나, 공평하거나 말거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기 기분이 내키는 대로 변덕스럽게 대한다.
예절에 대한 개념: 지나치게 칭찬하는가 하면 마음에 없는 친밀감을 늘어놓기도 한다.
분별력에 대한 개념: 소심하고 필요 이상으로 혼자서 속을 끓인다.
조심성에 대한 개념: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원만을 미소로 위장하고 등뒤에서 몰래 자기의 적을 강타하려고 표적을 겨눈다.
궁금에 대한 근검 절약성: 그가 쓸데없이 공금을 한 푼이라도 아낄 때는 한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그러한 그가 조선에 돌아가면 녹슬어 못쓰게 될 풍차와 밀방아 기계를 사는데 1,500루블의 공금을 낭비했다.
고상한 품위에 대한 개념: 그 신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179쪽
결국, 두 사람은 귀국길을 함께 하지 못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헤어진다.
민영환 이하 사절단은 모스크바 철도를 이용해서 돌아가는 한편, 윤치호는 불어를 더 배워보겠다는 핑계 혹은 변명을 내세워 파리로 향하기 때문이다.
파리와 마르세유에 3개월 정도 체류하는 동안 윤치호는 베르사유 궁전,세인트 채플, 판테온과 노트르담 등을 둘러본다. 이때 남긴 일기들에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러시아에 머물 때와는 달리 감상적이고 정감이 넘치며 사색적이다.
프랑스의 굳은 날씨와 향수에 젖어 그해 말 12월 윤치호는 마르세이유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인도양을 거쳐 상해에 도착해 중국인 아내와 막 태어난 아들과 조우한다.
사실, 윤치호의 러시아 방문과 파리 체류 시기는 그의 인생 행로 중 초창기로 30대 초반의 혈기와 미숙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렇지만 윤치호는 붓 가는대로 써내려간 일기라는 형식을 십분 활용하여 조정의 무능과 관료의 타락 및 미숙함을 지적하고 때론 적나라한 표현도 불사하여 정사보다 오히려 더 사실적이고 실감나게 시대 상황을 담아냈다고 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구한말 조선의 부패상과 국제적인 위상을 절감했다.
그런데 이상했던 건 학창시절 역사 수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TV 역사 프로그램에서조차 이런 이야기들은 접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윤치호는 매국노로만 알고 있었기에 그가 영어로 일기를 썼다는 사실도 그를 비난하는 이유가 되었을 뿐이었지, 그가 왜 영어로 일기를 썼는지에 대한 의문이나 당시 조선에 머물렀던 외국인들이 남긴 기록들을 읽어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더랬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 걸쳐 우리가 정말 배우고 가르쳐야 할 역사는 갑오농민전쟁과 3.1운동만이 아니었다.
'부끄러운 과거는 애써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
인류의 역사에서 비극이 자꾸만 되풀이되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가와 민족들이 자국의 역사를 미화시켜 자긍심을 고취시키려고만 할 뿐, 잘못된 과거는 최대한 숨기고 망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에서 두 번 다시 되풀이하면 안 될 끔찍한 일들일수록 자꾸만 반복되어 일어나는 것이다.
빛나는 영광의 순간만 기억하는 사람보다 뼈아픈 실수를 되새기는 사람이 성장하듯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역사일수록 외면해선 안된다. 역사는 취하거나 망각하는 술(酒)이 아니라, 쓰지만 몸에는 좋은 약(藥)처럼 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