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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 윤치호 일기 제4권 1896년
윤경남 지음 / 신앙과지성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벌거벗은 한국사: 벼랑 끝 조선, 그들은 왜 러시아로 향했나?> 편을 시청한 후 윤치호에 대한 궁금증이 급상승했더랬는데 도서관 서고에서 바로 이 책이 눈에 띄는 게 아닌가. 언젠간 읽을 책이라는 생각으로 대출해왔다


이 책은 부친과 함께 고종의 탈출을 꾀하다 실패한 '춘생문 사건'으로 피신한 시기부터 시작된다. 뒤이어 고종의 아관파천이 성공하고, 때마침 러시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초청장이 날아든다.



윤치호는 구한말 흔치 않은 개화파 인사였다. 특히 일본, 중국 등에 머물면서 개화 사상을 기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가 된 후 미국의로의 유학 경험은 선진 문물과 문화에 대한 동경과 함께 조선의 미개함에 분노하게 하는 특유의 사상을 갖도록 했다.


애국가 작사라는 진위 논란과 우국지사와  친일파라는 불명예가 공존하는 가운데 무려 60여 년에 걸쳐 영어로 기록한 그의 일기는 개인의 삶을 통해 당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날 것 그대로의 역사책이 아닐까 싶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윤치호에게 조선의 현실은 암울하다 못해 참혹했다. 



낮에는 손님들의 방문으로 소일하다. 온통 흥분의 도가니다. 모두 눈물을 흘리며 이를 갈고 있다. 서울 전역에 단발령이 내린 것이다. 조정에서도 상투와 망건을 쓰는 것을 금지했다. 사람들이 이런 일로 인해 폭동을 일으킬까봐 공포에 떠는 사람도 있다. 일본 군대가 출동해서 그 폭동을 막아주겠지.
국모가 일본놈들에게 살해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비굴하게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굴던 백성들이 지금 와서 뭔가 행동을 일이키려 하는구나. 명령에 잘 따르도록 길들여진 조선 사람을 위해서 혹은 그들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확실해진다. 조선 사람들의 그런 씨알머리 없는 소리에는 한 푼어치도 동조하지 않을 테다. -21쪽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로 조선에서 청나라를 몰아내자 러시아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민비 일파을 몰아내기 위해 초유의 <을미사변>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여러 나라에 알려졌지만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심지어 조선의 백성들마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민비는 조선 백성들로부터도 외면받았던 것이다.



일본에 대한 칭송이 뉴욕에 사는 모든 인종들의 입에 회자하고 있다. 조선 왕실이 당한 비극적 참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고 신경 쓰지 않는데도 말이다. 일본이 왕비뿐만 아니라 궁중의 모든 대신들을ㅡ물론 왕까지ㅡ살해했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일본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은 실패했어도, 그들이 하는 짓은 모두 잘한 짓이란 말인가? 힘만 있으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는 격인가! -96쪽



반면, 윤치호는 이에 대해 울분과 민비에 대한 애통함을 여러 차례 표현할 뿐만 아니라  <갑신정변>의 실패에 대한 분석도 현실적이다. 30대 초반으로 해외에서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더라 아직 조정에서 변변한 직함도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관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났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옥균 일당은 그들이 요인 6, 7명만 제거하면 일이 성공할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그들은 이 나라를 최악의 파국으로 몰아 넣었다. 또한 왕비께서는 김옥균과 그 일당들을 죽일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까지 말씀하셨다. 왕비의 옥좌는 영원히 안전하다고 볼 수 없었다. 왕비는 백여 명의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래서 모든 백성에게 미움을 산 것이다. 머리가 잘 돌아가 새로운 말을 잘 만들어내는 유길준은 박영효를 퇴출시키는 비극적인 음모를 꾸몄고, 왕비를 파멸에 이르게 만들었다. 스기무라와 유길준은 왕비 한 사람을 없애버리면, 조선에서 알게 모르게 악을 제거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와비를 시해한 것이다. 그들의 비열한 범죄는 조선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더러운 책력임이 증명되었다. -60쪽




이런 인물이었으니,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민영환이나 간신배들 사이에서 배척당했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조선에 올곧은 선비며 충신이 없었던 게 아니다. 19세기 당시 조선은 60년 세도정치로 바른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사장당하고 흥선대원군과 민비외척의 권력 다툼 속에서 기회주의자들만 살아남아 있었다. 


윤치호는 나라의 운명보다는 개인의 영달과 일신의 안녕에만 관심을 갖는 정치인들과 심지어 고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유길준은 자신을 뽐내는 일에는 가장 뛰어난 모사꾼이다. 그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원칙이나 예의나 자존심도 없는 사람이다. 거짓말을 자랑삼아 하면서 사실처럼 우겨된다. 정직한 사람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거짓말하는 일이 더 빨리 성공하는 지름길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결국 그는 주사직으로 시작하여 1년에서 1년 반 사이에 대신 반열까지 올라 세력이 커진 셈이다. -30쪽

나는 이완용이 정말 싫다. 그의 특권 의식과 저질스러운 교활함이 족제비 같은 뒷거래를 좋아하는 그가, 평범하거나 하류층에 속하는 사람에게 대하는 노새 같은 완고함이 싫다. 그러면서도 그는 권력층 앞에서는 강아지처럼 알랑거리며 순종한다. 이런 온갖 행위가 나도 모르게 그에게 적대감을 일으키게 한다. 그가 세우고 싶어 하는 '사대부'혹은 선비학교는 그를 위해서라도 따로 세워 다니게 해야겠다. -32쪽 



이완용은 그렇다쳐도 나름 독립운동가로 알고 있던 <서유견문>의 저자인 유길준에 대한 윤치호의 평가가 특히 인상적이다. 아마 두 사람의 관계는 일기에도 밝혔듯이 유길준의 후임으로 학부협판이 된 윤치호에게 유길준이 알렌 박사가 맡긴 4,000불에 대한 영수증을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면서 일어난 것 같다. 알렌 박사는 선교자이자 의사로 조선에 파견되었는데 <갑신정변> 때 칼을 맞아 외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해주면서 조선 왕실로부터 신뢰를 얻는다. 이에 조선 최초의 서양병원인 광혜원 등을 세우기도 하지만 철도부설권 등 여러 이권에 간여하여 엄청난 수수료를 챙긴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알렌이 유길준에게 준 4,000불 역시 어쩌면 부정을 눈감아주는 대가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니 유길준이 당당하게 착복을 하고는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영수증을 요구했겠지...




윤치호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결국 민영환과 함께 러시아로 출발한다. 다만, 원래의 여행경로인 남방루트(상해-인도양-수에즈운하-모스크바) 대신 일본 요코하마항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에 도착해 기차를 타고 뉴욕에 도착해 다시 대서양을 건너 영국 리버풀을 거쳐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자세히 나오지 않고 드문드문 등장할 뿐이어서 아쉽다. 일기를 쓰지 않았을 리는 없는데 번역 과정에서 누락시켰을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대관식이 열리기 직전 사절단은 무사히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그렇지만 '특별전권대사'인 자신을 명함에는 '대관식 특별대사'로만 기입한 것부터 시작해서 황제의 대관식이므로 대관식장엔 모자를 벗고 들어가는게 예의라는 윤치호의 조언에 격노한 민영환이 대관식에 불참하는 등 두 사람은 곳곳에서 충돌한다. 



민영환 공은 조선의 예법과 관습에서 벗어난다는 구실로, 대관식이 거행되는 잠깐 동안이라도 갓(사모)을 벗어야 한다는 의례를 완강하고 단호하게 끝내 거부했다. 이는 그의 개인비서인 "물고기" 씨, 김득련이 민 공에게 사모를 벗지 말도록 겅의한 것이 틀림없다.
나는 민 공의 마음을 바꾸도록 간곡하게 설득해 보았다. 그가 최고로 중차대한 임무를 가지고 상감의 어명을 받들고 대관식에 온 사람임을 강조하고, 잠시 동안만 그 고루한 조선 관습을 접어두는 일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님을 간청했다. -107쪽  




단발이야 '수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 사상에 유배된다고 할 수 있지만 모자를 벗는 것도 이것과 연관짓는 건 억지라고밖에 할 수 없다. 아마도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고 외국어도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조선 사대부였던 민영환의 자격지심이 만들어낸 헤프닝이지 않을까 싶다.  


한편, 중국과 이홍장에 대한 윤치호의 평가는 냉정하다 못해  경멸에 가까울 정도인 반면 대관식 때 화려한 예복을 입은 니콜라이 황제가 2000년 전에 살았던 헐벗은 젊은이(예수)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에 감격해 한다. 기독교와 서양문명에 깊이 전도되어 있던 윤치호의 기울어진 가치관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종이 니콜라이 황제에게 보낸 예물에 대해서도 약소국으로서의 비참함을 자각한 것까지는 이해하겠으나 비하에 가까운 표현은 윤치호라는 인물됨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특별 사절들 가운데서 중국 사절들은 화려한 비단에 수놓은 옷을 걸쳤음에도 불구하고, 누런 이를 드러내고 길게 땋아 늘인 머리를 짧게 잘라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본 사절단들은 유럽식 복장에 가장 세련되고 부러운 동방의 나라로 군림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듯했다. 페르시아 사절단은 아주 화려한 저장에 잘생긴 친구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런 유의 친구도 그 친구의 왕이 최근에 살해되고 그의 정부는 영국파와 러시아파로 갈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비참한 처지에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할 때, 불상한 우리 측 대표들은 다른 행복한 국가 대표들로부터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103쪽

이홍장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그는 외교적 의전을 잘 알 뿐 아니라 빈틈없이 행동을 할 줄 아는 중국 사람이다. 그는 서양 문명이 중국 문명보다 우월한 것을 알 만큼 민첩하고, 그 자신이 서양 문명을 수용함으로써 그 자식을 중국에 전수하는 재주마저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모험을 즐기는 유능한 외국인 여러 사람을 돈을 넉넉하게 주어 자기 주위에 포진시켜 놓은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후원자인 이홍장 칭찬을 해외에 요란하게 퍼뜨려서, 사람들은 그가 자질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렇게 시간과 돈, 영향력 행사, 그리고 측근의 외국인들에 의해 이홍장이라는 가공의 위대한 인물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전형적인 인물의 능력과 위대함은 일본인 때문에 여순항, 위해위, 그리고 북양 함대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가 바닷물에 침몰해 버렸다. 고맙게도 일본은 이홍장의 기세를 꺽어 놓았다. 오늘 우리 앞에는 그렇게 못된 노새처럼 구는 진짜 이홍장만이 남아 있다. -110쪽

5월29일(금요일)
아름다운 날씨, 모스크바

오전 10시에, 조선왕이 니콜라이 2세 황제의 대관식을 축하하며 보내는 선물을 전하기 위해 파스콤 장군과 함께 크렘린 궁전에 가다. 선물은 자수를 놓은 병풍 2개, 큰 대나무로 만든 창 가리개 발 4개, 수놓은 돗자리 4개, 진주조개로 장식한 장개장 1벌, 백동향로 2개이다.
이 선물은 조선 사람이 사적으로 러시아 사람에게 건네는 선물로는 알맞다. 그러나 조선왕이 러시아 황제에게 주는 선물치고는 너무 빈약하게 느껴진다. 선물을 보관하려고 받아 든 관리들의 옆얼굴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아, 불쌍한 우리 조선 나라여! -122쪽



조선은 그저 경제력만 없는 나라가 아니었다.

고종 황제가 민영환을 통해 러시아 니콜라이 황제에게 부탁하고자 했던 다섯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왕이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없어 자존심 다 내던지고 심지어 나중엔 국토마저 담보로 삼아 차관을 구걸하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6월5일(금요일)
아름다운 날씨, 소낙비 오다. 모스크바

오후 2시에 민영환 공과 나는 외무대신 로바노프 왕자를 만나러 가다. 다음은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다. 

민영환: 신임장을 제출하기 위해 황제 알현을 할 수 있을까요?

로바노프: 민 공의 요청을 황제께 아뢰었습니다. 황제께서 그 조건을 수락하실지 여부는 내가 답변해 드릴 수 없습니다. 황제 폐하의 지침을 받는 대로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민영환: 조선 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감안하셔서 제가 귀하에게 내놓는 다섯 가지 제안을 러시아 정부가 받아들여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1. 조선군대가 믿을 만한 수준으로 단련될 때까지 러시아 군대가 국왕의 경호를 지원해 줄 것.
2. 군대와 경찰의 훈련을 위해 다수의 군사교관을 파견해 줄 것.
3. 궁내부와 내각과 광산과 철도분야를 지도할 고문관을 파견해 줄 것.
4.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직통 전신을 가설할 것.
5. 일본에서 빌린 국채를 갚기 위해 300만 엔을 차관해 줄 것 등입니다. -127쪽


6월7일(주일)
더운 날씨, 모스크바

오전 10시30분에 재무대신 세르게이 비테를 방문하다. 민영환 공은 이미 황제와 로바노프 대신에게 한 말을 거의 되풀이해 말했는데, 무엇보다도 조선 국왕의 호위 문제를 황제가 윤허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비테는 영어를 못하므로 스타인이 내게 재통역을 해야만 했다.
(...)
오후 2시경 숙소로 돌아오다. 스타인이 내게 말하기를 비테가 자기에게 살짝 알려주는데, 조선 국왕이 자기 정적들을 자기 손으로 처단할 힘조차 없다면 어떻게 다른 나라 사람이 그를 보호해줄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맞다, 맞아!) 비테의 말은 매정하고 굴욕적이자만,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므로 알아차려야만 하다. -133쪽



조선사절단이 초조하게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러시아 외상 로바노프와 일본 특사 야마가타 사이에는 조선을 분할 통치하자는 4개항으로 이뤄진 비밀 협정이 체결된다. 이것도 모르고 사절단은 러시아측의 긍정적인 반응을 확신하면서 모스크바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난다. 그리고 이곳에서 5개 조항의 친서에 대한 러시아의 답변서를 받는다.



6월30일(화요일)
더운 날씨에 소낙비 오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외무대신 로바노프가 민 공에게 5개 조항의 친서에 대한 대답을 보내왔다. 그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상감은 원하는 기간만큼 러시아 공사관에 체류할 수 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상감이 환궁할 경우에 러시아 정부는 그의 안전에 대한 답변을 보낸다.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관에 경비병을 한 명 배치한다.

2. 군사 교관에 관해, 러시아 정부는 경험 있는 고위 관리를 서울에 보내어 그 문제에 관해 조선 정부와 협의하도록 한다 이 견해에 있어서 첫째 문제는 조선왕을 경호하기 위한 자체 조직이다. 조선의 경제적인 여건을 조사하고 재정적인 개선 방책을 찾기 위해 경험 있는 전문가를 조선에 파견할 것이다.

3. 서울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 산하에 두 명의 신뢰할 만한 관리를 고문관으로 파견한다.

4. 차관 문제는 조선의 재정 조건과 요구사항을 충분히 파악한 후에 고려해 볼 것이다.

5. 러시아는 조선의 지상 통신선을 연결하는 사안에 동의하며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한 조력할 것이다. -165쪽



사절단의 전권대사인 민영환도 러시아에 갔다 온 후, <해천수범>이라는 책을 남겼다는데 이 책에는 조선이 러시아에 요구한 5개 조항이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고 하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조선 조정에선 계속 전갈을 보내 윤치호 대신 조선말이 서툴러 황제의 모후를 '황제 에미'라고 옮긴 러시아 국적의 김도일만 데리고 니콜라이 황제를 알현하는 등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된다. 윤치호를 견제하려는 세력들이 고종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윤치호를 배제시켰던 것이다. 



불쌍한 이범진! 뭇 여인들과 러시아 통역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감 전하가 이범진을 냉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범진이 이따금 전하께 간언을 드렸기 때문이다. 전쟁 귀신 숭배하는 어리석음을 물리치시코, 감놔라 대추 놔라 하는 점쟁이들에 대해서, 그리고 부도덕한 남자와 여자들과 조정의 각료들을 무시하시도록 말씀드린 것이다.
"중전께서 생존해 계실 때는, 중전이 그 귀신놀이의 장본인이라 생각했었소. 하지만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소. 중전께서는 오직 대전 전하의 기분을 좋게 해드리기 위해서만 여러 가지 해로운 일들을 하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이범진이 눈물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괘씸한 러시아 통역관, 김홍육; 저질의 계교나 부리는 지겨운 간신배, 주석면; 신들린 이자들이 피둥피둥 살만 찌는 궁중 나인들까지 부추겨 나약하고 희망도 없는 왕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상감과 세자의 눈과 귀가 되어 날치고 있는 것이다. 상감 전하는 온순해 보이지만 진실을 감추고 있는 지배자일 뿐이다. 우리 상감의 착한 성격이나 고질적인 나쁜 성질들이 하나같이 영국 역대의 역사에 잘 알려진 어떤 왕을 생각나게 한다. -77쪽  




어쩌면 이때부터 나라와 백성보다는 일신의 안녕에만 집착하면서 간신배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고종에 대한 실망감이 윤치호의 마음에 싹트기 시작했던 건 아닐까.

윤치호는 민영환으로 대표되는 조선 사대부와 특권층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결국 민 공 같은 특권 계층에 있는 조선 고관들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신중하게 자신을 낮추어 행동하는 관리는 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 공은 천성이 예민하고, 합리적이고, 자신을 털어놓을 만큼 소탈한 면도 있다. 그러나 조선의 부패한 조정 안에서 그의 끝없는 성공 가도는 오히려 그를 타산적이고, 이상스럽게 역정을 잘 내게 하고, 오만하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민 공이 외국에서 교육을 받았더라면, 사물을 피상적으로만 관찰하기보다는 사물의 핵심에 들어가서 이치를 규명하는 사람이 되고, 좀 더 진실하고 용기 있는 조선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154쪽

민 공의 사람 다루는 개념: 이중적이고, 위계와 비밀스런 계략으로 일관한다. 
겸손에 대한 개념: 한숨을 몰아쉬면서 온갖 자기비하의 말을 함.
위엄에 대한 개념: 심술꾸러기처럼 입술을 쑥 내밀고 팔자걸음으로 벌릴 수 있는 한 다리를 벌리고 굽신거리며 걷는다. 
권위에 대한 개념: 자기 아랫사람에게 최상의 특권 의식을 보여준다. 
천절하거나 말거나, 공평하거나 말거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기 기분이 내키는 대로 변덕스럽게 대한다.
예절에 대한 개념: 지나치게 칭찬하는가 하면 마음에 없는 친밀감을 늘어놓기도 한다.
분별력에 대한 개념: 소심하고 필요 이상으로 혼자서 속을 끓인다.
조심성에 대한 개념: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원만을 미소로 위장하고 등뒤에서 몰래 자기의 적을 강타하려고 표적을 겨눈다.
궁금에 대한 근검 절약성: 그가 쓸데없이 공금을 한 푼이라도 아낄 때는 한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그러한 그가 조선에 돌아가면 녹슬어 못쓰게 될 풍차와 밀방아 기계를 사는데 1,500루블의 공금을 낭비했다. 
고상한 품위에 대한 개념: 그 신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179쪽



결국, 두 사람은 귀국길을 함께 하지 못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헤어진다. 

민영환 이하 사절단은 모스크바 철도를 이용해서 돌아가는 한편, 윤치호는 불어를 더 배워보겠다는 핑계 혹은 변명을 내세워 파리로 향하기 때문이다. 


파리와 마르세유에  3개월 정도 체류하는 동안 윤치호는 베르사유 궁전,세인트 채플, 판테온과 노트르담 등을 둘러본다. 이때 남긴 일기들에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러시아에 머물 때와는 달리 감상적이고 정감이 넘치며 사색적이다. 


프랑스의 굳은 날씨와 향수에 젖어 그해 말 12월 윤치호는 마르세이유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인도양을 거쳐 상해에 도착해 중국인 아내와 막 태어난 아들과 조우한다.

사실, 윤치호의 러시아 방문과 파리 체류 시기는 그의 인생 행로 중 초창기로 30대 초반의 혈기와 미숙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렇지만 윤치호는 붓 가는대로 써내려간 일기라는 형식을 십분 활용하여 조정의 무능과 관료의 타락 및 미숙함을 지적하고  때론 적나라한 표현도 불사하여 정사보다 오히려 더 사실적이고 실감나게 시대 상황을 담아냈다고 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구한말 조선의 부패상과 국제적인 위상을 절감했다.

그런데 이상했던 건 학창시절 역사 수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TV 역사 프로그램에서조차 이런 이야기들은 접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윤치호는 매국노로만 알고 있었기에 그가 영어로 일기를 썼다는 사실도 그를 비난하는 이유가 되었을 뿐이었지, 그가 왜 영어로 일기를 썼는지에 대한 의문이나 당시 조선에 머물렀던 외국인들이 남긴 기록들을 읽어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더랬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 걸쳐 우리가 정말 배우고 가르쳐야 할 역사는 갑오농민전쟁과 3.1운동만이 아니었다. 


'부끄러운 과거는 애써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 

인류의 역사에서 비극이 자꾸만 되풀이되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가와 민족들이 자국의 역사를 미화시켜 자긍심을 고취시키려고만 할 뿐, 잘못된 과거는 최대한 숨기고 망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에서 두 번 다시 되풀이하면 안 될 끔찍한 일들일수록 자꾸만 반복되어 일어나는 것이다. 


빛나는 영광의 순간만 기억하는 사람보다 뼈아픈 실수를 되새기는 사람이 성장하듯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역사일수록 외면해선 안된다. 역사는 취하거나 망각하는 술(酒)이 아니라, 쓰지만 몸에는 좋은 약(藥)처럼 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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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가난해서
윤준가 지음 / 미래의창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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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우연히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제목에 낚여(?) 목록에 저장해놓았었는데, 어제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읽고 싶었던 <유럽사 산책>이 1권만 있고 2권은 없어서 쉬어간다는 의미에서 교양서 위주로 대출해온 여섯 권 중 이 책이 끼어 있었다. 사이즈가 작아 손에 폭 안기는 게 의심스러웠지만(?) 머리 식힌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제일 먼저 읽기 시작했다. 


언젠가 서촌이며 종로5가 쪽방촌이 급부상하면서 문 열면 바로 골목인 동네가 관광객들로 떠들썩했다. 그때, '가난도 구경거리가 되는구나' 싶었고, 늘 그렇듯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기듯' 지가와 임대료 상승의 혜택은 고스란히 집주인들에게 돌아갔더랬다. 



암튼, 책의 배경에 대해 좀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출간되었다는데, 내가 느낀 소감은 이렇다. 




첫째, 가난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으나 결국은 평범한 외주 출판노동자의 일상 기록이었다.  


저자가 좋은 교육을 받고 출판사 편집자라는 전문직으로 경력을 쌓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이런 책을 쓸 수 있을 만큼 자존감 있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난이라는 덫에 갇히지 않고 어떻게든 자식 세대에겐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부모 세대의 굳은 의지와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부모 세대에게 가난을 당연한 듯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배신에 가깝지 않을까. 소박하다 못해 태평한 평안함 속에서 조금씩 배어 나오는 무책임과 무기력에 살짝 분노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빈곤을 마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개인의 선택으로 둔갑시키고 미화시키는 것 또한 불편했고.



내 삶은 엄마와 다르다. 나는 엄마와 다른 시대를 살아간다.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가질 수 있는 성취는 엄마보다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엄마와 아빠가 열심히 일해 교육시킨 결과다. 미안한 이유는 내가 누리는 것들이 엄마 아빠의 노력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부모의 노력은 자식에게 들어가고, 자식에게 효력을 발휘한다. 정작 부모들은 큰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자식의 인생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198쪽 




둘째, 그럼에도불구하고 몇 가지 상념들과 느낌은 내 가슴 밑바닥을 휘저어 놓았다.


가난에 의한 기억과 경험은 단순히 과거로만 남지 않는다. 말투, 행동, 입맛, 취향, 취미, 분위기 등등...  그 사람이 머물다 떠난 공기 속에도 둥둥 떠다닌다.  

저자는 줄곧 가난했고, 여전히 가난하며, 앞으로도 계속 가난할 것이다.

그래서 부촌까지는 아니어도 중산층이 거주하는 안전한 동네의 중대형 아파트에서 살아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인간의 품위와 예의에 대해선 안타깝지만 영원히 모를 것이다.  


항상 밝고 인사성 바른 아이들...

마트든 음식점이든 재촉하거나 서두르지 않는 여유로움...

교통질서를 지키며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운전자들과 보행자들...  

피아노 연주나 약간의 생활 소음 정도만 아주 가끔 날 뿐,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알고보니, 부모들이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에서 성장한 어른들이라 실내에선 아이들에게도 뒷꿈치를 들고 걷거나 슬라이딩하듯 걷도록 교육을 시켰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 가족이 화목하다는 뜻이다. 확실히 분노조절장애는 지역병이다. 가난한 동네 출신들이 유독 많이 걸리는 것 같다. 


나도 이런 곳에 살게 되면서 더이상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후줄근한 옷차림을 하지 않게 되었고, 목청 높여 고함을 치는 일이 사라졌으며, 주차 라인을 잘 지켜 차를 세우고, 앞사람을 앞질러 지나가거나 마트줄이 길어져도 초조해하지 않게 되었다. 

의지만으론 쉽사리 바뀌지 않던 것들이 그냥 이사 한 번 했을 뿐인데 특별한 노력없이도 바뀌더라.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는 걸...  

좁고 더러운 집에 살면 꿈도 작아지고 속도 좁아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머무는 집과 사는 동네를 닮아가는 것 같다.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좀더 좋은 환경으로 옮겨가려고 스스로 독려하고 노력해야 한다. 자포자기하지 말고...




그때 알게 됐다. 싸구려에다 오래되기까지 한 장판은 아무리 청소를 해도 깨끗하지 않는다는 걸. 가난한 살림이 더러워 보이는 건 꼭 게을러서가 아니라는 걸. 룸메(남편)는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열심히 바닥을 닦았지만 여전히 더러워 보였다. 바닥뿐만이 아니었다. 부엌의 벽과 싱크대 사이에 틈새가 너무 좁아 청소를 전혀 할 수 없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전 세입자 혹은 그 이전 세입자부터 차곡차곡 쌓인 먼지와 때가 잔뜩 낀 그곳은 너무 더러워서 쳐다보기도 싫었다. 나는 그리 깔끔 떠는 타입이 아닌데도 집에 그런 구석이 있다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화장실 문은 계속해서 물기가 닿으니 페인트가 벗겨지고 나무가 썩어갔다. 화장실이 워낙 좁아서 물방울이 튀지 않게 샤워나 청소를 하는 건 불가능했다. 문을 통째로 갈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좁고 더러운 집'. 내 마음속에서 우리 집이 그랬다. -74쪽  




셋째, 일하는 여성으로서 일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비하를 내재화했다.



왜 모든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걸까?

자기 일이 없고 전업주부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과 주장만  '에코 효과'처럼 지속적으로 접하면, 웬지 모를 '피해자 의식'과 결합해서 마치 거대한 사회적 물결이 형성된 것처럼 느껴지면서 또다른 관점과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가부장제는 초부유층과 저소득층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남아 있으며, 중산층에서 가장 덜하다는 걸 실감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착각현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자발적으로 전업주부가 되었거나 되고 싶고, 일하지 않고도 내가 만족하는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다면 그 경제적 바탕이 배우자의 수입이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일하지 않는 혹은 일할 수 없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가치가 없다'라는 논리가 통용될 수 없듯이  '일하지 않는 여성은 가치가 없다'는 식의 사고가 페미니즘의 중심 코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모두들 나보다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다녔고 아이들은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을 받았다. 남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자신의 일을 찾으려면 무척이나 힘든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남편들은 돈 번다는 말을 방패로 삼고, 아내를 '도와준다'며 작은 집안일 하나에도 생색을 냈다. 가능한 만큼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권리라 여기는 것 같았다. 남편의 외벌이로도 온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안정과 행복인 동시에 여성의 발목을 붙잡는 일종의 함정으로 작동했다. 사회는 우리 세대 여성들에게 가부장제에 순응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싸우고 개척하며 자기 자리를 지킬 것인지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130쪽






마지막으로, 브런치라는 SNS의 수준이 이 정도라는 데 조금 실망했다.


일단은 개인 블로그에 올려도 그만인 듯한, 아마추어보다는 조금 낫고 전문가보다는 훨씬 못한 콘텐츠와 글솜씨들은 마치 독서로 성장하고자 하는 독자를 쉽고 편안한 저가 취향의 세계로 인도해 싸구려 소비자로서의 역할에만 머물게 만드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저자가 물질에 대한 저가 취향으로 소비자를 인도한다고 지적한  '다이소 함정'의 출판물 버전은 아닐런지 브런치 운영자들은 고민해봐야 한다. 



조심스럽게 말해보자면 다이소는 취향을 죽이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1,000원, 2,000원짜리 조악한 제품들을 구매하다 보면 그만 다이소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그곳에서 살 수 있는 제품을 굳이 다른 데서 찾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니 세상까지 갈 것도 없다. 한동네에만 해도 다양한 질의 물건이 존재하는데, 가성비라는 미명하에 갇히면 뭐가 더 좋으니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입장할 때부터 어느 정도 체념하고 들어가서는 저렴한 물건, 가성비가 좋아 보이는 물건을 집어 들고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의 질이면 만족해야 한다며 오히려 자기 자신을 설득한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다이소 물건으로 가득한 집에 살고 있다. 그야말로 가성비의 늪이다. 49~50쪽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나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니구나...' 

'너도나도 다같이 궁핍해도 괜찮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위안과 안도를 얻는 대신 분노하고 불편해했으면 좋겠다.

'열심히 일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하지? 혹시 내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닐까?'하고 의심해 보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부자가 될 수 없는 사회는 잘못되었으니 바꿔야 해.'하고 분개해야 한다.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고 다른 삶의 층위가 존재할 수 있음을 가로막는, 다같이 가난해도 괜찮다는 생각은 개인과 사회의 건강한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더 나은 삶에 대한 개개인의 열망과 희망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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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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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을 때, 마침 작가 초청 강연이 시작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타이밍이 절묘하기도 했지만 나름 관심있었던 작가였기에 계획엔 없었지만 2시간을 기꺼이 투자하기로 했다. 강사는 기계적으로 준비된 멘트만을 하는 것 같았다. 태도는 무성의하다고 할 순 없지만 무심했고, 내용은 약간 과장하면 오프라 윈프리쇼나 생방송 아침마당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상처, 트라우마, 고통, 대면, 용서 등등...

지극히 자기연민적 단어들로 가득 채워졌던 강연이 끝나자 다들 재밌었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로선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사실, 남들은 재밌다고 하지만 (나는) 두번 다시 하지 않을 일들을 꼽아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표를 얻는다. 예를 들면, 유명인사 강연 듣기라던지 전통있는 지역 축제에 간다던지 아니면 맛집 방문이나 익스트림 스포츠 하기 등등 말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쓰고 나서야 실은 이 모든 것들이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삽질'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머릿속으론 '도대체 누가 이따위를 두고 재밌다(혹은 맛있다)고 한 거야?'하는 의문이 밀려온다. 바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같은 사람들 덕분이리라. 단, 오해하진 마시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아니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처럼 경제적 댓가를 받고 글을 쓰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요즘에는 굳이 경제적 이득이 없더라도 자발적으로 재밌다(맛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그저 내가 이런 부류로 분류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1995년 3월 11일부터 18일까지, 나는 자발적으로 또한 돈을 받고서, 카리브해 7박 크루즈(7-Night Caribbean) 여행을 경험했다. 내가 탄 배는 4만7,255톤 규모의 동력선 제니스 호로, 현재 남부 플로리다에서 운영되는 20여 개 크루즈 회사 중 하나인 셀리브리티 크루즈가 소유한 배이다. 선박과 시설은, 이제 내가 좀 아는 이 산업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단연코 일급이다. 음식은 훌륭하고, 서비스는 흠잡을 데 없고, 육지 관광과 선상 활동은 사소한 수준까지 최대의 재미를 제공하도록 마련되어 있다. 배는 워낙 깨끗하고 하애서 꼭 삶은 것처럼 보인다. 서카리브해의 파랑은 아기포대기 파랑부터 형광 파랑까지 다채롭다. 하늘도 마찬가지다. 기온은 자궁 속 같다. 태양 자체가 우리에게 알맞게 설정되어 있는 것 같다. 승무원 대 승객 인원 비는 1.2에서 2사이다. 정말 호화 크루즈다. - 25~26쪽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월간지 <하퍼스>로부터 취재 의뢰를 받고 일인당 2,700달러 정도 하는 호화 크루즈 여행권을 받는다. 당연히 원고료는 따로 받기로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초호화 크루즈 여행의 문제점만을 집중 취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순전히 느낀 그대로를 기록해달라고 요구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진짜(!) 느낀 그대로를 기록한다. 그것도 무려 엄청난 각주를 포함하여 170여 쪽에 걸쳐서.



 

투명인간이 해주는 것 같은 신비로운 방 청소가 어떤 면에서는 근사하다는 걸 나도 인정한다. 누군가 짠 나타나서 방을 지저분하지 않게 만든 뒤 도로 짠 사라진다는 것은 모든 진정한 지저분쟁이의 꿈 아닌가. 꼭 죄책감은 쏙 뺀 채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에는 나름대로 스멀스멀 솟는 어떤 죄책감이 있다. 깊은 불안감과 불편함이 차츰 증가하여, 결국에는ㅡ적어도 내 경우에는ㅡ 기이한 형태의 응석받이 편집증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이 근사한 투명인간 방 청소 서비스를 이틀 겪은 뒤 내가 언제 1009호실에 있고 언제 없는지를 페트라가 어떻게 아는지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제야 페트라를 직접 본 일이 거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페트라는 1009호 객실 청소 담당 직원의 이름이다) -85쪽


이전에 나는 미국 밖을 나가본 적이 거의 없고, 이처럼 고소득 무리의 일원으로 나가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지금 항구에서는ㅡ이렇게 멀찍이 떨어진 12층 갑판에서 그냥 내려다보기만 하는데도ㅡ 내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또한 불쾌하게 의식하게 된다.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갑자기 내가 백인이란 사실을 의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저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을 그만둘 수가 없다. 저 무덤덤한 자메이카인들과 멕시코인들에게, 특히 네이디어의 백인이 아닌 하급 직원들에게. (...) 호화 크루즈 여행에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절망은,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나의 본질적이고 새삼 불쾌한 미국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일부 비롯된다. 그리고 이 절망은 항구에서 절정에 달한다. 난간에 서서 내가 어쩔 수 없이 그 안에 속하는 사람들 무리를 내려다볼 때, 이 위에 있든 저 밑에 있든 나는 미국인 관광객이고, 따라서 그 정체성상 크고, 살찌고, 벌겋고, 시끄럽고, 거칠고, 오만하고, 자기 생각뿐이고, 응석꾸러기이고, 외모에 신경 쓰고, 창피해하고, 절망하고, 탐욕스럽다. -104~106쪽


그리고 모든 상층 갑판의 모든 카트에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수건 남자들 특수부대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이 몸 앞뒷면을 웰던으로 잘 익히고 이제 그만 갑판 의자에서 가뿐히 일어날 때 수건을 집어서 방으로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 심지어 카트의 '다 쓴 수건'칸까지 가져갈 필요도 없다. 당신의 궁둥이가 의자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홀연 수건 남자가 나타나서 당신 대신 수건을 카트에 담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 11층 갑판 수영장 옆 윈드서프 카페에서는 언제나 격식 없는 뷔페 형식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여기에는 대부분의 카페테리아를 우울한 경험으로 만드는 길고 느린 줄이 없고, 앙트레 요리만 73가지 종류가 있으며, 엄청나게 맛있는 커피가 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노트를 한 뭉치 들고 있거나 쟁반 위에 음식을 너무 많이 담기만 했어도, 당신이 뷔페에서 떨어져 나오자마자 홀연 웨이터가 나타나서 쟁반을 들어줄 것이다. -78~79쪽

 

 

저임금 유색인종들이 제공하는 황제급 서비스와 무한정 제공되는 고급 음식들에 둘러싸여 저임금 유색인종 직원들보다 더 열악한 삶에 직면하여, 호화 여객선에서 잠깐 하차한 관광객들에게 조잡한 기념품들을 판매하려 애쓰는 현지인들의 슬픈 미소에 익숙해지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지나치게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데이비스 포스터 월리스의 글이 이렇게 길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재밌으면서도 서글프진 않았으리라.  



 

모두 아홉 편이 실려 있는 에세이 중 첫 번째인 <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을 읽고 나서 고민에 빠졌다. 계속 읽자니 그의 글들이 너무 방대하고 난해해서 그가 쳐놓은 선들을 따라가다가 나도 모르게 미궁에  빠져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그만 읽자니,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엄청나게 길고 요란한 문장들을 구사하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작가의 인력(引力)에 저항하려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나는 하루를 쉬어 갔다.  다들 어렵다고 하지만 나는 다시 읽고 싶은 이런 글을 쓴 저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면서...


 


 


 

 

 

알고 보니, 그는 십대 때 우울증을 앓았고 알콜중독에 시달렸으며 카프카와 도스또옙스키를 흠모했고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를 숭배했으며 조너선 사프란 포어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후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상태였다. 

이 말인 즉슨,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글들은 어쩌면 이 단 한 권으로 끝날 소산이 지극히 크다는 뜻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그의 책들이 추가로 번역 소개될 여지는 10% 미만이라는 데에 한표 던진다. 그의 문체는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고 단번에 익숙해지긴 힘들지만 일단 마음을 열고 나면 놀라운 흡입력으로 빠르게 읽힐 뿐만 아니라 뜻밖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우와, 내가 이런 문장을 한번에 읽고 단숨에 이해하다니...'


그만큼 그는 유능한 작문 강사였고, 자타가 공인하는 어법 전문가였다. 브라이언 A 가너가 편찬한 <현대 미국 영어 어법 사전>(글제목: '권위와 미국 영어 어법')에 대한 그의 서평을 읽어 보라! 글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다할지라도 문장의 형식과 관점의 올바름에는 완전히 감동하고 감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덧붙여서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의 이름에도 눈길이 한번 더 갈 것이고, 그 이름 석자를 두고두고 기억하면서 앞으로 읽을 책을 선택할 때 또하나의 기준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부디 그러길 바라마지 않는다.



끝으로, 이런 글들을 쓴 작가도 작가지만 이런 글들을 실어 준ㅡ그것도 원고료까지 주면서ㅡ 미국의 잡지사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다른 한편으론 이점 역시 지극히 미국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나라는, 어느 때 보면 더할나위 없이 야만적이고 어느 때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문명적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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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그림자 - 김혜리 그림산문집
김혜리 지음 / 앨리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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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영화평을 읽기 위해 일주일을 꼬박 견뎠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나는 스스로 좀 덜 망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권의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없듯 한편의 영화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한권의 책이 한사람의 세계를 바꿀 수 있듯 한편의 영화가 전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된 것도 순전히 그녀 덕분이었다.


말하자면, 그녀로 인해 내 삶의 명도가 한 단계 더 밝아졌다고나 할까. 


 

이십 년 전에도 그녀의 글에 감탄했었는데 이십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감탄하게 된다. 다만, 이번엔 영화가 아니라 그림이다.


 


 

    불꽃이 작렬할 때 사람들은 말하기를 멈춘다. 꼬리를 흔들며 솟구치는 불씨의 '피융'하는 비명에 귀 기울인다. 불꽃놀이란 대개 군중 속에 섞여 보게 되지만 개인의 내밀한 기억으로 애장되곤 한다.


    왜일까?

    우선 소중한 사람과 함께 구경하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예고된 불꽃놀이를 부러 탐탁지 않은 사람과 보러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불꽃놀이는 찰나적이다. 그리하여 우리 의식에 지워지지 않는 점을 찍는다. 불은 적극적인 욕망을 상징하는 동시에, 사로잡힌 대상을 태워 무화시키는 이율배반적 원소다. 완성의 순간 곧 수십만 개의 소멸로 흩어진다. 절정은 곧 죽음이다. 흡사 벚꽃의 미학이다.


    불꽃놀이는 색종이 모자이크 기법으로 일가를 이룬 일본 화가 야마시타 기요시(1923~71)의 평생에 걸친 탐닉이었다. 같은 소재를 다룬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 여기 소개한 그림은 불꽃의 활짝 뻗친 살이 유난히 가늘고, 밤하늘 장관을 올려다보는 구경꾼이 남자 한 명뿐이라는 점에서 도드라진다. 흰 윗도리에 검은 바지, 귀가 드러난 머리 모양을 한 그림 속 남자는 화가 본인이다. 그림 속 그는 너무 조그마해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붉고 노랗게 만개한 꽃불들은, 수면의 반영과 다정이 쌍을 이루지만 남자는 혼자다. 그날 밤 야마시타는 정녕 혼자였을 수도 있고, 깊이 고독했던 나머지 혹은 불꽃의 흥취가 도저히 남과 나눌 수 없을 만큼 충만해 사람 무리를 짐짓 생략했는지도 모른다. -63쪽


  

우선 알록달록한 둥근 원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면 맨 아래 사람의 뒷모습같은 건 주의깊게 보지 않았으면 놓치고 말았을 게 분명하다. 그녀의 지적 덕분에 눈길이 머문다. 그리고 다시 보니 지적 장애와 평생 다리를 절었다는 작가의 외로움이 불꽃으로 화하여 형형히 타오르고 있는 게 아닌가.  


소멸함으로써, 존재가 증명되는 불꽃의 이미지는 일말의 오차도 없이 작가의 삶과 겹쳐진다. 기억되지 못하고 불꽃처럼 사라져간 수많은 예술가들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만약 불꽃이 예술 작품이라면 이렇다할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불꽃을 이루는 작은 불씨들일 터. 결국 (나란 존재는) 한송이 꽃도 못되는, 꽃잎에 불과하다는 걸 기어이 깨닫게 만든다. 



 

일간지나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출간한 책들은 어딘지 모르게 현시성(現時性)이 떨어진다. 

김빠진 맥주나 식어버린 튀김같다고나 할까. 아무리 고급진 재료와 수준 높은 솜씨로 만들었다 한들 이미 그 본연의 맛을 잃어버린 셈이다. 이 책 역시 <씨네21>에 실렸던 글을 모았단다. 그렇지만 이 책만큼은 가뿐히 시간을 초월한다. 어디 이 책 한권 뿐이랴. 김혜리의 영화 평론집 『영화를 멈추다』 역시 나온지 벌써 십여 년이 지났건만 다시 읽어봐도 세월의 무상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언급된 영화 작품조차도 마치 최근 개봉한 영화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김혜리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영화는 내가 알고 있던 그 영화가 아니라 전혀 다른 또다른 영화로 탈바꿈한다.


잘 쓰는 줄은 익히 알았지만, 이토록 잘 쓰는 줄은 몰랐다.




 

타인의 몸이 아주 가까워져 마침내 나와 그의 거리가 제로, 나아가 마이너스가 될 때 인간의 육체는 홀연 하나의 장소로 변모한다. 자전거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코를 묻은 아빠의 등은 너른 평원이고, 최적의 자세로 포옹한 연인에게 서로의 품은 경건한 성당이다.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잉글리시 페이션트」는 도입부에서 거대한 사막의 능선을 보여주는데, 잠시 후 변화한 카메라 앵글은 그 풍경이 여인의 벗은 몸이었음을 드러낸다. 사랑하는 상대의 몸을 극접사로 더듬는 이의 시각과 촉각에 감각된 연인의 겨드랑이는 그 어떤 바다보다 완벽한 곡선을 지닌 만이며, 쇄골에 패인 웅덩이는 애틋한 해협이다.

타인의 육체만이 아니다. 심한 통증이 엄습하면 우리는 갑자기 몸을 하나의 공간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자궁은 동굴이 되고 내장은 협곡이 된다. 격심한 감정은 혈관을 달리며 전신에 메아리친다. 영혼과 의식이 거주하는 우리 안의 차원 없는 공간이 불현듯 실루엣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 159쪽




 

달큰시큰한 몸내음과 손끝에 어릴듯 말듯한 솜털들 그리고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의 크레마가 입안에 감도는 것만 같다. 


물론 나도 글을 읽고 감동하고 그림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나 이렇게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녀는 글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이다. 아니, 그냥 단순히 잘 쓰는게 아니라 가장 관능적으로 잘 쓰는 사람이다.  정말 인간적으로 까놓고 말해서, 사랑에 '풍덩' 빠지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글을 써낼 수 있단 말인가. 결코 제정신(?)으로 빚어낼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마치 조물주는 이 세상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똑같이 부여한 건 아니라는 걸 재확인시켜주는 것만 같다. 조물주는 정말 그녀처럼 특별한 심미안을 갖춘 이들에게만 자신을 대신해서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준 게 아닌가 싶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여성학자 정희진 등등 쟁쟁한 문장가들조차 그녀의 글에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건 이처럼 조물주의 편애가 유독 그녀 한사람에게만 향한 건 아닌지 하는 의심도 한몫 했으리라. 


 


   

     프란스시코 데 고야(1746~1828)가 그린 '검은 그림' 연작의 한 작품인「개」는 천진한 무방비함의 초상이다.  14점의 벽화로 이뤄진 검은 그림 연작은 의뢰나 대중에게 공개될 계획 없이 그려졌다.

 

    화가는 광대한 배경에 몹시 조그만 개 한 마리를 떨어뜨려놓았다.

  

    배경인 창백한 황색 허공과 암갈색 바닥은, 형체와 스케일을 헤아릴 수 없어 더욱 위압적이다. 지평선 혹은 수평선으로 나뉜 위아래 공간의 극단적 비율은 배경을 우물이나 벼랑 바닥처럼 보이게 한다. 개의 네 다리를 집어삼킨 어둠은 홍수에 불어난 물 같기도 하고 유사(流沙)같기도 하다.  

 

    공포의 근원이 하늘에서 오는지 땅에서 오는지조차 불분명하고 사방을 둘러봐도 개를 구해줄 지푸라기 하나 없다. 순종의 표시로 귀를 뒤로 젖힌 개가 주시하는 오른쪽 허공에는 어렴풋한 음영이 어른대는데 상상력을 발동하면 인간의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의 눈빛에는 원망도 호소도 없다. 그저 영문을 모른 채 곧 내려질 심판에 한없는 신뢰를 보일 뿐이다. 그것이 자기를 끝장낼지언정.


     돌이켜보건대 우리 모두도 한 번쯤은 이 개처럼 연약하고 맹목적이었다. 고야의「개」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깊은 우물에 빠져 허덕였던 인생의 연약했던 한 철을 상기시킨다. 또한, 신의 뜻과 그 종착점을 알지 못한 채 오늘도 걷고 있는 이 길의 풍경을 멈추어 돌아보게 한다. -189~192쪽 



 

 


 

사실 나는 이 글을 쓰지 말았어야 한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리뷰는 불가능하다는 걸 예감했으니 말이다. 그녀가 온몸으로 통과하며 쓴 글들을 나는 온몸을 내던져 느끼고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그껏해야 벗은 신발을 양손에 움켜쥐고 모래 사막 위를 걷듯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게 고작일 뿐이었다. 행여나 발이 데지는 않을까 물집이 잡히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말이다. 


이렇듯 나는, 나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나를 내던지고 타인을 문학을 예술을 사랑할 여력도 자격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남기는 건,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 말 한마디 때문이다. 



사랑한다면, 그녀처럼

부디, 그녀처럼 세상을 무한히 신뢰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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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파리
목수정 지음 / 꿈의지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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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좋아할 거라면서 누군가로부터 추천받은 책이다.


성격상 여행을 매우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는지라 평소에도 여행 서적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새로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도 아닌, 이미 닳을대로 닳은 프랑스 파리라니...  기껏해야 '파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어느 보보(보헤미안 부르주아)의 하릴없는 '덕질'이겠거니 싶었다. 그저 추천해준 사람과 앞으로 몇 차례의 만남이 더 있을 예정인지라 면전에서의 난처함이나 면해볼 요량이었다.


 

수천 번쯤 사진으로 보았던 어떤 곳에 다다랐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두 가지다. 마침내 동경하던 그곳에 이른 가슴 벅참. 그리고 보자마자 금세 식상해져서, 온몸으로 그것을 감각하기보다, 사진 한 장 박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자주 우린 명소에 가서 실망을 경험한다. 혹은 더 구체적으로 실망할까 봐 실체에 다가서길 외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46쪽



 

순간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어디 명소뿐이겠는가.

사람이나 책 혹은 어떤 사상이나 행위 등등 한때 열렬히 좋아하고 추종했던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결국 실망하고 외면한다. 본질보다는 겉모습(허상)을 좋아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드물긴 하지만 욕망이 제거된 시선으로 본질에 다가서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켜 파리라는 도시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에게 파리는, 우리 각자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존재하듯, 그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이 집에서 뒹굴던 잡동사니가 저 집으로 옮겨져서 다시 뒹굴다가 몇 년 뒤, 다시 태양 아래로 이끌려 나와 새 주인을 기다리고, 그 사이에 1~2유로의 돈이 오가는 이 다락방 비우기('비드 그리니에 Vide Grenier')의 룰. 마음만 먹으면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물물교환에 가까운 사람들 간의 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살이가 자본의 논리에서 조금만 길을 틀어도, 우리 얼굴엔 생존을 위한 고단한 긴장 대신, 느긋한 휴식의 미소가 어른거린다는 사실도. -66쪽



 

재미있는 건, 정류장을 안내하는 방송 목소리가 한국은 낭랑한 20대 여자 목소리인데 반해, 여기는 차분한 중년 여성, 혹은 중년 남성의 목소리라는 사실 (새로 생긴 트랩에서 그것은 종종 5살 짜리 아이의 목소리로 대치되곤 한다). 이는 프랑스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안내 방송 목소리에 해당되는 사실이기도 한데, 20대 여자만이 여자로서의 유용성을 인정받는 듯한 우리 사회의 암묵적 풍경과는 사뭇 다른 대목이다. -75쪽



 

'어...?!'

글쓴이의 사뭇 다른 시선에 한껏 풀어져있던 자세를  나도 모르게 바로 잡았다.

최소한 이 책만큼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베르사이유 궁전과 센느강이 얼마나 화려하고 매혹적인지 혹은 파리가 얼마나 지저분하고 파리지앵들이 불친절한지 등등으로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보통 여행 에세이들은 자아도취(혹은 자기자랑) 아니면 자기발견(혹은 자기개발) 로 적당히 치장되어, 책 한 권 정도에 불과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2~30대 여성 독자들의 환상을 자극하고 만족시키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출판되는 것 같다. 그래서 책을 펼쳤을 때 행복감에 빠져들게 해야지 불편한 감정이나 현실 인식을 불러일으켜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불문율을 교묘하게 깨뜨린다.


그 후, 나는 파리 시내에 있는 가장 큰 공동묘지, 페르 라셰즈를 종종 들렸다. 오자마자 접했던 하나의 인상적인 죽음은 삶의 끝으로부터 이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를 내게 전했고, 나는 그 길을 따랐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도시에서 내가 일방적으로나마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은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들을 만나 차분히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82쪽



글쓴이에 대한 호기심이 존중감으로 바뀌었다.  

단순히 솔직 발랄하다고 하기엔 가닿는 시선들이 너무 넓고 깊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고 훨씬 더 잘 쓸 수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살짝 힘을 빼고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랄까. 

분명 자신만의 '히스토리(history)'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리라.   


니체는 '구걸은, 주는 자도, 받는 자도 친구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나쁜 행위'라고 규정한 바 있다. 거지는 스스로를 불쌍하게 만듦으로써 뭔가를 받고자 하는 자이기 때문이란 거다. 반면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부의 재분배라는 차원에서, 그에게 구걸하는 모든 걸인에게 주머니를 털어주었다. 거지들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내 안에서 니체와 사르트르가 싸우는 걸 느낀다. 대부분은 사르트르가 승리한다. 그들에게 내 동전 몇 닢을 털어주는 것이 교회에 가서 헌금하는 것보단 훨씬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이 최종적으로 나로 하여금 그들에게 돈을 건네게 한다. -257쪽


 

파리의 수많은 거지와 소매치기들을 보면서 이렇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설령 서로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더라도 그 뒷모습만을 보며 따라가도 괜찮을 것 같다. 


 

야트막한 능선으로 이루어진 뷔트 쇼몽(Buttes Chaumont) 공원에서 오전 한때를 보내다가 파리의 먹자골목인 '붉은 아이들의 시장(Marche des Enfants Rouges)'에서 쌀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센느강변을 따라 걷다가 '라탱 구역(Quartier Latin)' 으로 접어들어서 2,30년대 고전영화 한 편을 감상하거나, 입장료가 무료인 '빅토르 위고의 집' 혹은 '기메 박물관'을 찾아가리라.  서서히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아르스날 항구(Port Arsenal) 에서 석양을 바라보면서 와인 한잔으로 하루를 마감해도 좋겠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시 발레스 베네 에스트, 에고 발레오"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되었네요. 저는 잘 지냅니다) 라고 속삭이면서...  



나는 이 책으로 목수정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지만, 한 눈에도 저자의 '대표작'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엔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책들이 셀 수도 없이 많고, 그녀의 눈길이 머물렀던 세계가 넓디 넓으며, 무엇보다도 그녀가 잠 못들고 고민하며 지새웠을 밤들이 너무 길었을 거라는 걸, 그녀의 문장들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여행 안내서라는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느낌과 감상을 내세우지 않는다. 최대한 멋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기록하려고 노력한 흔적들 속에서 오히려 저자의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세상에 영합하지 않으면서도 삶을 즐길 줄 알고,  세상과 대립하지 않으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도전도,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여정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녀의 또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더불어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해준 분에게도 감사 인사를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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