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내가 읽고 싶고 또 쓰고 싶은 작품을 발견했다. 

미야베 미유키. 그녀는 90년대 초반부터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회파 시대 미스터리작가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그녀를 그녀의 작품을 너무 늦게 만났다. 등단과 동시에 일본의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마니아층까지 있는 그녀의 작품들이 어째서 국내에는 2008년도에서야 번역 소개되기 시작한 것일까.   


미야베 미유키의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는 작가가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한, 혼조 후카가와 지역에 전해내려오는 일곱가지 전설을 모티브로 그린 작품이다. 한쪽으로만 잎이 나는 갈대, 한밤중 나그네의 뒤를 쫓는 등롱, 낚시꾼을 홀리는 해자, 잎이 지지 않는 모밀밤잣나무, 깊은 밤 알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축제음악, 천장을 부수며 내려오는 거대한 발 그리고 꺼지는 법이 없는 사방 등등...


미스터리물이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시종일관 인간애를 잃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은 인간 본연의 심성인 '공포'를 자극하지만 기이함과 두려움보다는 연민과 애잔함이 잔뜩 묻어난다. 그래서 좋다.


사무라이의 시대였던 에도시대에는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취급받았던 만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회 전반에 짙게 드리워졌을 터이고, 이런 공포스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종류의 괴담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사람들을 좌절과 두려움으로 몰아넣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도시괴담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도시를 떠다니는 괴담들은 단순히 허무맹랑한 소문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사회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평범한 추리소설처럼 독자에게 한껏 공포감만을 전해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은 미스터리한 인간의 심리를 논리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시선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대단히(?) 교훈적이고, 그래서 어쩌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냉혹한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따스한 한잔의 차와도 같은 위로가 되기에 충분하다. 나 역시 히코지로부터 오랜만에 위로를 받지 않았던가.


어린아이의 약속이다......

히코지는 생각했다. 이미 잊었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히코지는 쓸쓸함을 억누르며 자신을 타일렀다.

                                                                                                   -외잎 갈대 中-


맞다. 중요한 건 약속의 이행 여부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잊혀진 그 약속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배웅하는 등롱>의 오린 역시 매일밤 주인 아가씨의 사랑 기원을 위해 절까지 가서 경내의 자갈을 주워와야 한다. 칠흙같이 깊은 밤. 어린 소녀의 뒤를 소리없이 따르는 등롱...등롱을 든 사람의 모습은 알아볼 수 없지만 분명 소녀의 안전을 지켜주려는 것이리라. 한편, 이기심으로 가득찬 주인 아가씨는 결국 짝사랑의 대상이 자신의 집안을 노린 도적떼의 끄나풀이라는 걸 알고 애꿎게도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세이스케를 쫓아내고 만다.


오린은 그날 밤. 다시 한번 에코인을 향해 걸었다. 오늘 밤에 배웅하는 등롱이 따라온다면 그게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라도 확인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오린을 얼어붙게 할 만큼 차가웠고, 발소리는 철로 만들어진 물건을 두드리듯 날카로운 소리가 되었다. 한동안 걷다가 돌아본다. 오린을 따라오는 것은 흐릿한 달뿐이었다. 긴장된 밤공기 너머로도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ㅡ오린을 좋아하는 누군가. 많이 좋아하는 누군가.

오린은 그저 어둠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배웅하는 등롱 中-


인간은 한없이 연약하고 순수한 존재이면서 또한 한없이 이기적이고 악하기 그지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역시 인간이야말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의 일곱편 작품 모두에는 후카가와를 지키는 오캇피키(경찰)인 에코인의 모시치 대장이 등장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코난 도일이 샤록홈즈를 애거스크리스티가 포아로와 미스 마플을 창조했듯, 모시치 대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포아로나 미스 마플 그리고 모시치 대장 등은 혼란과 공포속에서 신출귀몰한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억울함을 풀어준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난세에 대중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기다리는 영웅 즉 '메시아'로도 비춰진다. 


끔찍한 사건 사고와 흉흉한 각종 괴담들이 끊이지 않은 요즘, 사람들은 어쩌면 모시치 대장과 같은 인물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는 1998년 출판된 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20회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양대 문학상 중, 나오키상은 순수문학작품에 수여되는 아쿠타가와상과는 달리 대중적인 작품에 수여되는 상으로 1년에 상,하반기 두번에 걸쳐 수상작들이 결정된다고 한다.

 

일단 이 작품은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그리고 무인칭 화자를 등장시켜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인물들을 방사형으로 연결시켜나가면서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살인사건을 기술(記述)토록 하는, 매우 기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미 사회파 추리소설작가로 정평이 나 있는 미유베 미유키는 '초고층아파트의 일가족 살인'이라는 사건을 둘러 싸고 독자와 두뇌게임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독자의 궁금증은 미야베와 함께 한 관련자들 인터뷰에 동행하면서 서서히 사건이 아닌 '사람과 그들의 삶'쪽으로 관심 방향이 바뀐다.  미야베는 지극히 충격적인 일가족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8,90년대 일본 사회를 해부하고 고발한다. 

 

담보대출, 경매, 버티기꾼, 카드깡, 미혼모, 고부갈등, 가장의 가출, 이혼, 노인학대 등등...

미야베 미유키는 <이유>라는 단 한편의 작품을 통해 사회 문제로 언급되는 모든 현상들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녀의 이와같은 실험은 사회 문제와 병리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는 작가정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점에서 볼때, 작품의 타이틀이 '원인'이 아닌 '이유'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유'는 '원인'에 비해 어감상 상당히 '능동적'이다. 즉, 행동이나 결과를 부르는 피할 수 없는 혹은 자연스러운 것을 '원인'이라고 한다면, '이유'는 어떠한 행동이나 결과를 유발시키기 위한 인위적인 것에 더 가깝다. 

 

대단하지 않은가.

작가는 4인 가족 살인이라는 결과를 불러온 것을 자연스러운 '원인'이 아닌 인위적인 '이유'라고 본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후유증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전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끈 일본인의 근면, 성실함은 부동산 신화와 그 거품 속에서 되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더 이상 근면과 성실함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현실은 일본인들에게는 크나큰 상실감이자 배신감을 갖져다 주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실감과 배신감이야말로 일가족 살인 사건의 공범이자 진범이요,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전쟁과 성장을 거친 한국 사회는 지금 놀라울 정도로 일본을 닮아 가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부를 획득한 사람 중, 부동산 열풍의 '혜택'을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뻔한 월급을 알뜰하게 모아 내집을 마련한 가정이 얼마나 될까? 담보대출로 내집을 마련했다고 기뻐하지만 사실 그거 월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집주인이 아닌 은행에 '월세'를 내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태동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나의 독서목록은 온통 추리소설 뿐이다. 주로 일본 추리소설들을 읽고 있는데 일본의 숨은 '저력'을 뒤늦게 느끼게 된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1909년생으로 1992년 타계할 때까지 <얼굴> <검은 화집> <제로의 초점> <모래 그릇> <일본의 검은 안개> 등등으로 일본 추리 소설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958년도에 쓰여진 세이초의 <점과 선>은 정통 추리 소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세이초가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파 추리소설작가로 알려져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은 가장 세이초답지 않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란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점보다는 '왜 저질렀는가?'라는 질문에 무게중심을 두고 범인의 심리와 범행 동기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므로써 사회병리현상을 고발하는 작품을 일컫는다.


<점과 선>은 이와 같은 사회파 추리소설에서는 다소 벗어난 듯 하지만 일본 전역을 종횡무진하는 열차와 비행기의 발착시간을 범죄 알리바이로 이용한 점 등은 감탄을 자아내며 이 점만으로도 세이초의 비범함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세이초는 우연히 열차 시간표를 들여다보다가 일본 전역이 점과 선으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직감적으로 대중교통의 출발/도착 시간을 이용한 작품을 구상하지는 않았을까.


<점과 선>이라는 제목 역시 이런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대중교통의 발착 시간으로 위장되어 있는 야스다의 알리바이를 마하라 경사가 하나하나 증명해 나가는 데에 지면의 대부분이 할애된 점 역시 세이초가 이와같은 자신의 착상에 얼마나 열중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일본 정부 기관에 물건을 납품하는 야스다 다스오는 수뢰 의혹을 받고 있는 이시다 부장을 위해 사건의 전말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야마 겐이치 과장대리를 없애버리면서, 남여간의 정사(情死)로 위장하기 위해 요정 여종업원이자 자신의 내연 상대였던 오토끼를 함께 죽인다. 야스다는 열차와 여객기 사이의 시간차를 이용하여 알리바이를 만들고 이 과정에서 그녀의 병든 아내인 료코가 '브레인' 역할을 한다. 포위망이 좁혀오자 료코는 야스다와 함께 자살하는 것으로 끝난다.


<점과 선>은 범인의 윤곽이 들어난 상태에서 그가 어떻게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들을 오고 가며 범죄를 저질렸는지를 풀어내는 퍼즐 게임이다. 그러므로 이미 도입부분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진 상태에서 범인이 쳐놓은 알리바이를 깨는데에만 집중한 나머지 범행 동기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다.

 

즉, 야스타는 병든 아내와 함께 사야마 겐치를 죽일 수 밖에 없었을 만큼 이시다 부장과의 검은 커넥션이 치명적인 것이었을까? 뇌물공여죄보다 살인죄의 죄질이 더 무거운 법인데 어째서 그는 작은 죄를 감추기 위해 더 큰 죄를 저질러야만 했던 것일까? 세이초는 이 점을 지나치게 간과해버렸다.

 

병든 부인이 질투로 남편의 애인인 오토키를 죽음의 길동무로 선택했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 결론도 야스다와 료코가 '자살'함으로써 마무리되는 것 역시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밖에도 전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보를 이용했다는 점 역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야스다는 가와니시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왜 불편하게 전보를 쳤을까? 그리고 마하라 경사 역시 수사과정에서 타지역의 경시청에 업무협조를 구할 때 어째서 전화대신 전보를 이용했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한 료코를 사건에 끌어들이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1950년 대 후반에 나온 작품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작가의 명성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이와 같은 '빈틈'에 고개가 가웃거려지지만,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일본 추리소설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일독(一讀)의 가치'는 충분하다.


 

명성있는 작가의 '졸작'을 맨 처음 접하게 되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도 흥미를 잃어버리기가 쉽다. 나에게는 하진이라는 작가가 그랬다. <기다림>이라는 대표작을 아직 보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작품들을 먼저 읽으므로써 본의 아니게 실망을 했으니 말이다. 마쓰모토 세이초 역시 그의 탁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을 먼저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