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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는 1998년 출판된 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20회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양대 문학상 중, 나오키상은 순수문학작품에 수여되는 아쿠타가와상과는 달리 대중적인 작품에 수여되는 상으로 1년에 상,하반기 두번에 걸쳐 수상작들이 결정된다고 한다.
일단 이 작품은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그리고 무인칭 화자를 등장시켜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인물들을 방사형으로 연결시켜나가면서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살인사건을 기술(記述)토록 하는, 매우 기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미 사회파 추리소설작가로 정평이 나 있는 미유베 미유키는 '초고층아파트의 일가족 살인'이라는 사건을 둘러 싸고 독자와 두뇌게임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독자의 궁금증은 미야베와 함께 한 관련자들 인터뷰에 동행하면서 서서히 사건이 아닌 '사람과 그들의 삶'쪽으로 관심 방향이 바뀐다. 미야베는 지극히 충격적인 일가족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8,90년대 일본 사회를 해부하고 고발한다.
담보대출, 경매, 버티기꾼, 카드깡, 미혼모, 고부갈등, 가장의 가출, 이혼, 노인학대 등등...
미야베 미유키는 <이유>라는 단 한편의 작품을 통해 사회 문제로 언급되는 모든 현상들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녀의 이와같은 실험은 사회 문제와 병리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는 작가정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점에서 볼때, 작품의 타이틀이 '원인'이 아닌 '이유'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유'는 '원인'에 비해 어감상 상당히 '능동적'이다. 즉, 행동이나 결과를 부르는 피할 수 없는 혹은 자연스러운 것을 '원인'이라고 한다면, '이유'는 어떠한 행동이나 결과를 유발시키기 위한 인위적인 것에 더 가깝다.
대단하지 않은가.
작가는 4인 가족 살인이라는 결과를 불러온 것을 자연스러운 '원인'이 아닌 인위적인 '이유'라고 본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후유증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전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끈 일본인의 근면, 성실함은 부동산 신화와 그 거품 속에서 되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더 이상 근면과 성실함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현실은 일본인들에게는 크나큰 상실감이자 배신감을 갖져다 주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실감과 배신감이야말로 일가족 살인 사건의 공범이자 진범이요,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전쟁과 성장을 거친 한국 사회는 지금 놀라울 정도로 일본을 닮아 가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부를 획득한 사람 중, 부동산 열풍의 '혜택'을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뻔한 월급을 알뜰하게 모아 내집을 마련한 가정이 얼마나 될까? 담보대출로 내집을 마련했다고 기뻐하지만 사실 그거 월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집주인이 아닌 은행에 '월세'를 내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