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을 책들을 선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 또 절감하고 있다.

세상은 넓고 읽을 것들은 부지기수로 쌓여 있는지라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 중독되어 '읽는 이유'를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생각없이 살면, 습관대로 산다'는 말이 있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말이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생각없이 읽다가 생각없이 사는 건 아닐까...'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읽는다는 행위에서 오는 즐거움에만 안주하지않기 위해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것도 오래되니 패턴이 생기더라...

솔직한 느낌보다는 평가를 하게 되고 줄거리 요약에만 집중하는, 한마디로 영혼 없는 글쓰기가 될 따름이었다.

 

그래서 일단 책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도 책읽기의 습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들을 나누고 비율을 정해 지켜나가기로 했다. 현재 나는 4:1에서 3:2 비율 사이를 오고가고 있다. 

 

그 다음 문제는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을 어떻게 선정하고 그 기준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다.

읽고 싶은 책은 사실 특별한 선정 기준이 필요 없다. 그냥 그저 눈길 가는대로 손길 가는대로 읽으면 되니 말이다. 진짜 중요한 건, 소위 '읽어야 할 책들'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이번 글에서는 주로 '읽고 싶은 책'이 아닌, '읽어야 하는 책'을 선정하는 방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할까 한다. 

 

일단, '읽어야 하는 책'의 선정에 앞서, ''읽어야 한다'라는 것은 누구의 혹은 어떤 관점에서 정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자신의 관점에서 '읽어야 하는 책'들을 결정해야 한다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음의 둘 중 하나다. 이미 시대를 선도하는 지성을 갖추고 있어 독서의 도움이 필요없거나 아니면 절대무지와 절대오만의 늪에 빠진 불쌍한 영혼이거나...

 

'읽어야 할 책'들을 선정하는 나의 방법 첫번째는 타인의 판단이나 생각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보다 훨씬 나은 지성을 갖춘 사람들의 객관적인 판단을 믿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필독도서목록이요 소위 세계문학전집이리라. 특별한(?)단체나 기관에서 선정한 필독도서목록, 예를 들면 서울대교수들이 추천하는 필독도서 등등도 참고할만하겠지만, 나는 주로 국내외 문학상 수상작품들과 명망있는 출판사들이 회사의 명예를 걸고 출판하는 문학전집을 선호하는 편이다.

 

민음사와 문학동네 그리고 열린책들이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고 있는데, 이 세곳의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문학전집 목록에 겹치는 작품들이야말로 '1순위'다. 그런데 여기에 해당되는 작품들은 주로 너무 유명한 작품들이라서 이미 읽었거나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이때야말로 '다시 읽는 나만의 명작' 목록을 만들 때이다. 나는 십대 시절에 읽었던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도 다시 읽고 싶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물론, 뒤마의 <몽테크리스토프백작>과 톨스토이의 <부활>도 '죽기 전에 꼭 다시 읽고 싶은 책들' 이다.

 

특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지난 연말 눈내리는 날, 내가 좋아하는 극장(이곳은 내가 젊은 날부터 너무너무 사랑하는 곳인지라 주로 혼자만 간다. 물론 영화 좀 좋아하시는 분들이야 어디를 말하는지 금방 눈치채겠지만...^^;)에서 본 영화 <올 이즈 로스트>을 보는 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작품이었다. 영화작품 속 주인공인 로버트 레드포드(작품 속에서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가 곧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였고 또한 헤밍웨이였으며, 헤밍웨이가 곧 산티아고이자 영화 속 주인공이었으며 또한 로버트 레드포드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헤밍웨이와 그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을 위한 '오마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새긴 하지만,  <스팅>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으로 유명한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영화배우가 세계 최대규모이자 유일한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를 후원하고 있다는 걸 아는가? 그리고 <올 이즈 로스트>의 영화감독인 J.C 챈더 역시 자신의 첫작품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함으로써 감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가 자신의 첫 장편 대작이자 다른 등장인물들은 전혀 나오지 않는 1인 재난극 <올 이즈 로스트>에 로버트 레드포드를 캐스팅했다. 자신을 감독으로 만들어준 선댄스영화제와 그 영화제를 후원하는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오마주'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선댄스 영화제는 미국 솔크레이크시티의 작은 지역 영화제에서 출발했으나 운영난으로 폐지 위기에 몰리자 로버트 레드포드가 그 소식을 듣고는 후원에 나서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후 세계적인 영화제로 급부상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제 이름 역시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 이름인 '선댄스'로 바뀌었단다. (외모가 멋있다고 연기를 잘한다고 좋은 영화배우가 되는 건 절대 아니다. 송강호를 봐라! 송강호 외모만 따지면 평균 이하일게다. 그렇다고 연기만 잘 하는 배우도 아니더라.그는 영화 <변호인>을 찍은 배우다. 설마했는데 진짜 섭외가 확~ 줄어들었단다. 그래도 걱정은 안 한단다. 어느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이야기다.)

참! 

그리고 이 老배우 바다를 참 좋아하나 보다. 특히, 제주도의 푸른 앞바다...

(이 사람, 미국 환경잡지에 제주도의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올린 바 있단다. 나도,,, 너도,,, 하지 못한 걸 그가 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내정간섭이라고 하더라마는...)


너무 옆길로 많이 샜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와 그 다음 2순위는 세계 3대 문학상(노벨문학상, 맨부커상, 공쿠르상) 수상작이나 수상 작가의 작품들이다. 이 과정을 거쳐 읽게 된 책들이 주제 사라마구 작품들과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와 애니타 브루크너의 <호텔 뒤락> 등이다. 참고로, 이렇게 선택된 작품들을 읽기 전에는 반드시 '준비단계'라는 걸 거쳐야 한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지 못하거나 작품의 주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난, 이런 책도 봤다!' 정도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 읽은 후에는 독후감이란 걸 쓰면 좋겠지만(사실 이런 책들을 읽고 독후감을 쓸 수 있다면 이미 '굿리더'의 반열에 올랐다고 봐야하지만) 그러나 뭐 굳이 독후감이 아니더라도 인터넷 검색등을 통해 괜찮은 서평 등을 몇 편 찾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놓쳤던' 혹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을 알 수 있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서토론회 활동 등을 하면 금상첨화겠지만 나 역시 이런 건 대학 졸업 후 해본 적 없으니 언외로 하기로 하자.)

 

세번째 선정(?) 기준은 내가 즐겨 찾는 관련 사이트나 신뢰하는 블로거들의 서평들을 참고하는 것이다.

이게 참 어려우면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참고로, 이런 사이트나 블로거들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하는 문제는 두번째 선정 기준에서 언급했듯 문학상 작품들을 읽은 후 서평등을 검색하다보면 좋은 서평과 그렇지 않은 서평들을 가려낼 수 있는 소위 '안목'이라는 게 생긴다.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 블로거는 일단 글 참 잘 쓴다. 장소와 작품 혹은 영화와 작품 등을 연결지어 소개하는 솜씨 또한 탁월하다. 이 사람, 아무래도 문학비평이나 미학 계통을 전공했거나 심도 있게 공부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나처럼 비전문가의 흔해빠진 서평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수준있는 문학비평의 세계로 인도하지만 너무 어려워 일반인의 접근조차 차단하는 논문급 단계에서 멈출 줄 안다. 그의 미덕은 '딱' 거기까지의 '딱' 거기가 어딘지 잘 안다는 것이고, 그의 단점은 업데이트를 너무 늦게 한다는 점이다.  (나와는 비할바가 안될만큼 훨씬 훨씬 늦게 한다. 그래도 나를 비롯해서 그의 팬들은 보채지도 않은 채 느긋이 기다린다. 원래 맛있는 음식은 천천히 뜸을 들여 음미해야한다는 걸 실천에 옮기기라도 하듯...)

 

이렇게 읽게 된 책들은 주로 신간이 많다.  

여기서의 '신간'이라 함은 진작 출간되었으나 당시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명작에서부터 비교적 최근(2000년대 이후)에 출간되었으나 대대적인 홍보가 아닌 입소문에 의해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다. 이 '입소문'에는 영화로의 제작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1~2년 정도로는 '제대로' 된 입소문을 확인할 수 없고, 최소한 3년 이상은 되어야 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작품들이 슐링크의 <책 읽어 주는 남자>와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그리고 최근에 읽은 다이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등을 꼽을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역자를 보는 방법을 소개할까 한다. 

흔히 '볼' 만한 영화를 고를 때 감독뿐만 아니라 출연 배우의 성향과 전작(필모그래피)를 확인하듯, 책 역시 역자를 보고 고르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생각보다 적중률이 상당히 높은데 생각보다 많이 알려진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일단, 대학교 문학 전공 교수들이나 교수가 되어야 마땅하나 운이 안닿아 전문 번역가의 길을 가는 이들이 적극 나서서 번역한 작품들이다. 주로 영미권 번역서들을 고를때 써먹으면 좋다. 이렇게 알게 되고 읽게 된 작가나 작품으로는 하진과 <핑거스미스> 및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번역한 최용준의 역서 등이다. 


참!

그리고 역자의 이름 못지 않게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는 게, 바로 책의 맨 끝에 실려있는 '옮긴이의 말'이다. 이 글을 잘 살펴 보면, 역자의 문장력을 가늠할 수 있고 해당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과 역자의 이해 정도를 엿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을 번역할 때 역자가 얼마나 몰입하며 즐기면서 번역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도착어 언어권에서 첫번째 독자라 할 수 있는 역자의 소감 혹은 느낌이야말로 내가 그 책을 다 읽은 후 느끼게 될 감정의 기본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괜찮은 배우가 좋은 작품을 선정하듯 괜찮은 번역가 역시 좋은 작품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개인적으로 '역자의 말'이 실려 있지 않은 번역서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절대로 읽지 않는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 중에는 전문 번역가를 꿈꾸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좋은 번역가는 많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 아니 좋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 부디, 여러분들이 좋은 독자에서 출발하여 좋은 번역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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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헐랭이 2014-02-12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책 고르는 방법을 이리도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주시다니요. 저도 그 동안 읽고 싶은 책만 읽어왔는데, 읽어야 하는 책도 보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히 참고하겠습니다 ^^

빨강감자 2014-02-28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이 늦었네요. ^^; 제 나름대로 깨달은 것들을 운영하는 카페에 올렸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아서 이곳 알라딘 서재에도 올렸는데... 뜻밖에 공감도 많이 해주고 댓글도 달아주시고... 마니 마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