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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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어든 건, 순전히 개인적 취향(?)때문이었다.

사람이 너무 볼살이 없으면 왠지 저렴해 보인다. 특히, 남자 그것도 중년에 접어든 경우엔 더더욱...

그런데 이 남자는 왠지 한눈에 빠져들게 만드는 옆모습을 갖고 있다.

 

나의 취향을 제대로 자극한 이 사람은, 덴마크인으로 전직 무용수이자 배우였으며 노련한 선원이자 펜싱선수였다고 한다.

경험상 이처럼 다재다능한 사람이 쓴 작품은 성공 확률이 높은 편인데, 1992년도에 나온 이 책 역시 출간되자마자 타임지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서구사회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고 시리다. 마치 그린란드를 뒤덮고 있는 눈과 얼음처럼...

 

 

스밀라 야스페르센.

그녀는 눈(雪)을 닮았다. 아니, 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덴마크인 아버지와 그린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눈처럼 차고 희다. 그리고 뜨겁다. 마치 감각을 마비시키는 얼음처럼....


 

슬픔을 표출하는 그녀의 방식은 눈(眼)이 아닌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마치 바이올린 선율처럼... 

 

나는 소파에 앉았다. 먼저 그날의 영상이 몰려온다.

나는 그냥 흘려 보낸다.

그 다음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몰려와 미묘한 우울과 가벼운 의기양양함 사이에서 진동한다.

나는 그도 역시 흘려보낸다. 그 다음에 평화가 온다.

내가 레코드를 올려놓았을 때 찾아온 것이다.

그 다음 나는 자리에 앉아서 운다.

어떤 특정한 물건이나 사람 때문에 우는 게 아니다.

내가 살아온 삶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창조해낸 것이었고 나는 내 인생이 달라지기를 원치 않는다.

기돈 크레머가 연주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나는 운다.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p83 中-

 

 

이 책을 힘겹게(?) 다 읽은 후, 이 글을 쓰기 전 검색을 해봤더랬다. 그만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윗 문장이 가장  많이 인용되어 있었다.

낯설었지만(?), 이 문장만큼 스밀라라는 인물을 잘 표현한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인용한 문장들을 확인하기 위해 책을 펼쳐들었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첫번째로 붙여 놓은 스티커 역시 정확하게 이 문장을 가리키고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다음 단락을 통해서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이사야는 외로운 아이였고... 아이의 엄마는 무기력한 알콜중독자이며...

스밀라는 현대문명으로 상징되는 덴마크를 혐오하는, 딱 그만큼 그린란드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나는 베냐를 이해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은 이전보다 더.

언제나 이런 식은 아니었다. 내가 언제나 사물을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언제나 이런 식은 아니라고 나는 혼잣말했다. 처음으로 덴마크에 왔을 때, 여러 현상을 경험했다. 덴마크인들의 소름끼치는 끔찍함이나 아름다움, 혹은 회색의 칙칙함 속에서. 그러나 그것들에 대해 설명해야 할 크나큰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다.


이사야가 집에 올 때는, 때때로 자기 집에 먹을 것이 없을 때였다. 율리아네는 친구들과 식탁에 앉아 있었고, 담배와 웃음과 눈물과 무지막지하게 마셔대는 알코올은 있었지만 밖에 나가서 프렌치 프라이를 사올 5크로네는 없었다. 이사야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 애는 자기 엄마에게 소리친 적도 없었다. 삐친 적도 한번 없었다. 참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심하면서 내뻗은 손을 뿌리치고 자기 길을 갔다. 가능하면 다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때때로 수리공이 집에 있었고, 때로는 내가 있었다. 그 애는 나한테 배고프다는 말을 하지 않고서 한 시간 이상 거실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거의 어리석음에 가까울 정도로, 그린란드인다운 극단적인 예의를 유지하면서.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p329 中-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는 그린란드인 꼬마 남자 아이가 눈 덮힌 옥상에서 떨어져 추락사한다. 스밀라의 이웃이자 친구인, 이사야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시작된다.

 

이 모든 일은 한 아이가 지붕에서 떨어진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사건이 해결되기 이전에 절대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련의 사건들이 연관되어 있었다. 야켈센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재확인을 받는 것이었다. 유럽인에게는 쉬운 설명이 필요하다. 그들은 언제나 모순적인 진실보다는 간단한 거짓말을 선호한다. -p455

 

나는 영웅이 아니다. 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아이의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손에 내 집념을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p493

 

죽고 사는 문제가 갑자기 중요해지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제 문제가 내 손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이상 이사야하고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아니, 나하고만 관련된 일도 아니다. 아니 수리공과 관련된 것도 아니다. 아니, 심지어 우리 사이에 있는 문제도 아니다. 뭔가 더 큰 것이다. 아마도 그건 사랑일지도 모른다. -p498

 

 


'아...!'

스밀라가 아이의 석연찮은 죽음의 이유를 찾아 나선 까닭은 다름 아닌 사랑때문이었구나...

 

분노도... 슬픔도...호기심도... 의무감도... 아닌, 순전히  사랑때문에... 인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그 사랑때문에...


 

이 문장을 읽고 나서, 독자인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작가 김연수의 '부탁'은 결코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더 많이 더 자주 입 맞춰달라는 그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따위는 더 이상 찾을 필요가 없었다.  

 


 

 

추리소설인 이 책의 미덕은...

사건 추리에 있다기보다는 인물에 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대단히 과장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45퍼센트와 이번에는 그 두려움이 무색하게 되리라는 광적인 희망 45퍼센트, 거기에 소박하게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여린 감각 10퍼센트를 더하여 이루어진다.


나는 더이상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내가 더이상 볼거리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그렇지만 물론, 누구나 사랑에 압도될 수는 있다. 지난 몆 주간 나는 매일 밤 몇 분씩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나 자신에게 허락해주었다. (...)

나는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명확하게 사물을 바라본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광기의 한 형태다. 증오, 냉담, 분노, 중독, 자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간혹, 자주는 아니지만 때때로 나는 인생에서 사랑에 빠졌던 때를 떠올린다. 그 일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퇴어크라고 부르는 남자가 고급 선원 식당의 식탁 건너편에 앉아 있다. 이 만남이 10년 전에 이루어졌더라면 나는 그와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한 사람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렬하여 우리의 허울을 뚫고, 본질적인 편견과 억압을 뚫고, 내장에 곧바로 파고들 때가 있다. 5분 전, 내 심장 주위에 조임쇠가 걸리더니 이제 점점 더 죄어오고 있다. 이런 감정의 동요는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내몸의 반응으로 열이 오르고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으며, 찌르는 듯한 두통을 유발하고 있다.

10년 전이라면 이런 두통은 내 입을 그의 입에 갖다 누르고 그가 자기 통제력을 잃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그 현상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 찬 채로 바라보지만 이것은 단지 수명이 짧고 치명적인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p441~442 中-

 


나는, 우리는 지금 인간이 사랑에 대해 써내려갈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문장을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이처럼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문장 속을 지나왔는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른다.'라는 말처럼, 나는 가장 멋진 여성을 만나고 왔으면서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저 어서 빨리 이사야가 죽은 이유만 알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어리석게도...

 

 

이 단락을 인용하면서, 왠지 이 책만큼은 언젠가 꼭 다시 읽게 될 것만 같은 깊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퇴어크의 냉정함은 표면뿐이었다. 그 뒤에는 열정이 있었다. 갑자기 돌이 살아 있는지 아닌지는 내게도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갑자기 운석은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세계를 향한 서구 과학의 태도의 결정체가 되었다. 계산, 증오, 희망, 공포, 모든 것을 측정하려는 시도. 그리고 살아 있는 생물에 대한 어떤 공감보다도 더 강렬한 것. 바로 돈에 대한 욕망.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p609 中-

 

 

한 아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이어진다.

이사야는 진실때문에 죽었다. 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 진실을 알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진실과 대면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도 그냥 적당한 수준의 용기가 아니라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인간이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용기를 갖출 수 있을까? 

도대체 용기란 뭘까?

사랑보다 강한 걸까? 

아니, 어쩌면 사랑 그 자체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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