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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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나의 전부다. 나 자체가 삶이니까. 그리고 인생은 셀 수 없이 많은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갈리는 까닭은 그 수많은 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큰 비중이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스포츠가 될 수도 있고, 공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러하다. 이 책의 저자, 정혜윤에게는 책 읽기가 바로 삶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으리라. 그녀는 책 속에서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뿌리깊은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적었다. 마찬가지로, 독서가 인생의 핵심이 된 사람들은 모두 그 뜻을 같이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나는 정혜윤 PD의 글을 예스24에 올렸던 칼럼 '어느 날 ~을 알게 되었다'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거미 여인의 키스』에 대한 칼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이후, 나는 그녀의 글을 주목하게 되었으며, 그 맛깔나고 간단명료한 글 안에 삶에 대한 교훈이 담겨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번에 읽은『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책에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삶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연상시켰다. 그 역시 인문고전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책 속에 적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녀는 독서를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슬플 때나 외로울 때 읽는 책은 곧 위안이 되며 벗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정혜윤 PD는 수많은 고전들과 사례를 예로 들며, 그 책들이 누군가의 인생(또는 그녀 자신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생생하게 설명한다. 그녀가 이 책에서 던진 아홉 가지 질문(비밀 질문 포함)에, 과연 나는 답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목차에도 나와 있듯이, 아래와 같다.

 

 1.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2.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3.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4. 책이 정말 위로가 되나요?

 5. 책이 쓸모가 있나요?

 6. 책의 진짜 쓸모는 뭐죠?

 7.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는 법이 있나요?

 8.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비밀 질문: 그렇게 살아도 돼요?

 

 

 장 오노레 프라고라느의 <책 읽는 소녀(그림 왼쪽)>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책 읽는 소녀(그림 오른쪽)>. 그들은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까? 혼자서 책을 읽는 소녀는 실연을 당했을 수도 있고, 정말 기쁜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즉, 그녀에게 책 읽기란 위안의 책 읽기 또는 미래를 위한 책 읽기이다. 반면, 오른쪽 두 소녀들은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정혜윤 PD는 함께 책을 읽으면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두 소녀는 함께 같은 페이지를 읽으며 무언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위의 질문들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독서에 대해 간단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까닭이다. 내가 책을 읽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까닭이다. 저자가 "많은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은 책을 몇 번 되풀이해서 보거나 곱씹어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 정도 규칙적으로 책 읽는 시간이 몇 권을 읽느냐보다 더 중요합니다. 진정한 독해력이란 문자를 정확히 읽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읽건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입니다"라고 적었을 때, 나는 나의 습관적인 독서 습관, 즉 마지막 장을 덮기 위해 읽는 독서 생활을 반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책은 무언가의 형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가 일찍 죽은 어린 아들을 애도하는 형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가 남들 눈에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 말고도 삶에는 다른 것이 있음을 말하는 형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사물들』은 조르주 페렉이, 행복을 추구하는 동안에 잃어버리는 빛나는 시간들에 대해 말하는 형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휴먼 스테인』은 필립 로스가 역사와 정치가 개인에게 묻혀 놓은 더러운 얼룩에 대해서 말하는 형식일 수 있습니다. 우린 포기가 어떻게 표현되었나, 슬픔이 어떻게 표현되었나, 양심은, 두려움은, 좌절감은, 위로는 어떻게 표현되었나를 책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책은 더 이상 종이조각이 아니다. 하얀 종이 위에 새겨진 검은 글자의 모음이 아니라, 텍스트 속에 담긴 또 다른 삶의 형식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책 읽기와 삶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 가치 있는 일이며, 그 책을 통해 변화되는 것은 저자의 마음과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책은 내가 예전에 "어렵다"며 무시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였다. 나는 인류 최초의 고전이라는 타이틀과 찬사에만 따라가다 보니, 본질을 놓친 것이다. 그것은, 호메로스가 말하고자 한 삶의 방식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시인은 서사시 속에서 누구도 엑스트라로 만들지 않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전사들이 주인공(영웅)들에 의해 죽어가는 그 순간, 호메로스는 마치 신처럼 그것을 포착하여 그 자의 삶을 보여주었다. 어떤 사람의 삶도 결코 헛되지 않는다. 그 자가 사악하든, 선하든.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런 점에서 마지막 비밀 질문, "그렇게 살아도 돼요?"는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그래,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 그 질문은 다시 말해,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아요?"라는 질문이 된다. 정혜윤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질문에서 시작되어 질문으로 끝난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응답한다. "아니, 아직 포기할 때는 아니야. 지금에 머무르면 삶을 포기하는 거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심지어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고전 작가들도 대답할 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알아냈다. 그들이 쓴 책에 숨겨져 있는 삶을 본받아 가는 것이다. 쥘리앙처럼 살아도 되는가? 카츄사처럼 살아도 되는가? 보바리 부인처럼 살아도 되는가? 그것보다는, 호메로스처럼, 감춰져 있는 또 하나의 인생을 따라갈 것이다. 평범하지 않는, 상상력 없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 특별한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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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상 끝에서 외박 중 -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 김진만 PD의
김진만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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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마존의 눈물>과 <남극의 눈물>을 비롯한 '지구의 눈물'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 그런 다큐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답지 않은 높은 관심 덕분에 이름은 많이 들어 보았다. 조에족과 남극 이야기는 tv를 보지 않은 나도 많이 접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시청자들은 거기서 관심을 멈추게 된다. 그 뒤에 있을 삶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예능 프로그램 같은 다른 프로그램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 것들은 방송만을 위해 짜여진 내용이다. 반면, 다큐멘터리에서 촬영하는 내용은 촬영 이전의 삶부터 계속되어 왔던 것이며, 촬영이 끝나도 계속된다. 그래, 다큐는 삶의 기록이다.

 

 그런 점에서 PD라는 직업은 참 놀랍다. 프로그램의 기획, 진행 과정,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의 여파를 모두 알고 있으니까. 마치, 작가와 영화 감독이나 다름 없는 직업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작가'와 '감독', 그리고 'PD'는 편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나의 생각을 쥐어잡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세상 끝에서 외박 중』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김진만 PD를 보니, 이 세 직업은 편한 직업이 아니라 힘든 직업인 듯 하다. 문명 사회에 적응되어 있던 한국인들이 문명의 손길에서 벗어난 아마존과 남극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는가. 정말 상상하기도 힘든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물론 김진만 씨에게는 고생만큼의 보답, 즉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이 들어왔으니 만족스러웠으리라 짐작한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며 참 놀라웠다. 책의 구성이 정말 야무졌다. 역시,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PD답게, 어떤 방식으로 책을 전개해야 독자들이 재미있어 하고 감동하는지 알고 있다. 보통 실력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PD가 된 사연은 '의도치 않게'였다. 사실 어떤 사연이 있어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작가와 감독과 PD는 작품으로 말하니까(이제 김진만은 PD이자 작가인 건가?). 예인 최민수와 세진이 모자 이야기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아마존의 눈물>편과 <남극의 눈물>이었다.

 

 다큐멘터리 촬영진 일행은 아마존과 남극에서 다시는 겪지 못할 뜻깊은 체험들을 한다. 아마존 내에 숨겨진 많은 부족들을 만나며 그들의 관습을 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문명에 오염되어 버린 부족을 안타까워하는,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 존재한다. 방송으로는 잘 느껴보지 못했던 여운들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이 책부터 본 사람은 이제 방송을 봐야 하고. 남극에서는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약한 인간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남는 그들의 생존기를 볼 수 있다. 황제펭귄을 찍기 위해 블리자드와 화이트아웃과 엄동설한과 싸우며 취재를 계속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멋지다. 『오늘도 세상 끝에서 외박 중』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깨우침과, PD라는 직업이 어떤 직업인지, 그리고 삶이란 게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었다. 내 앞에 놓일 삶은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것, 그러나 분명히 그 속에는 뜻 밖의 행운이 있으리라는 것,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P.S : 역시 한국 라면은 글로벌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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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기억 속으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어두운 기억 속으로 매드 픽션 클럽
엘리자베스 헤인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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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에서 이런 글을 적었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신기한 사실은,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는 심오한 비밀을 간직한 수수께끼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밤에 대도시를 갈 때면, 어둠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집마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엄숙한 생각이 든다. 그뿐인가. 집안의 방마다 비밀이 있으며, 그 방에 살고 있는 수천 수백 명의 가슴 속에서 고동치는 심장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비밀을 품고 있다.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p. 25)

 이 위대한 대문호가 적었듯이, 모든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은 심오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 비밀의 기억은 대부분 어둡다. 그 비밀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자신의 삶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어두운 기억 속으로' 안내할 수도 있다. 물론 그 후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이 변화되지만. 엘리자베스 헤인스의 『어두운 기억 속으로』는 그 심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는 작품이다.

 

 엘리자베스 헤인스. 『어두운 기억

 으로』는 그녀의 첫 번째 작품이다.

 

 소설의 진행 방식은 샤를로테 링크의 『관찰자』와 유사하다. 날짜와 년도를 모두 기록하지만, 일기가 아닌 서술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만, 이 작품은 주인공 캐서린의 심리와 행동을 1인칭 시점으로 전개하고 있어, 마치 내가 어두운 기억 속을 탐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이한 것은 『어두운 기억 속으로』가 과거와 현재를 평행하게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2003년의 기록에서 2008년의 기록으로 넘어가다가 다시 2003년으로 돌아오는 형식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바로 '리'가 캐서린 옆에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캐서린 베일리는 집안을 점검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많은 사람과 경찰을 두려워하는 '강박장애'를 앓고 있다. 그녀는 상담가이자 이웃친구인 스튜어트라는 남자를 만나 그것을 치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도중, 캐서린과 우연히 만나게 된 경찰 리 브라이트만이 스스로 그녀를 보호해 줄 것을 자처하고, 얼마 안 가 그녀와 연인 관계가 된다. 그러나 프롤로그에서 볼 수 있듯이, 리는 여러 차례 그녀에게 폭력을 일삼다가 유죄 선고를 받는다. 왜 그는 그녀를 폭행하고, 강간했을까? 결과가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알기 위해서 저자는 리의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어두운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것은 자신을 속인 애인 나오미를 죽였다는 아픈 기억이다. 캐서린은 강박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리의 분노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기억은 두 사람 모두의 삶을 망가뜨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이 딜레마는 얼마 전 읽었던 헤르만 코흐의 『디너』의 그것과 유사하다. 노숙자를 폭행하여 전세계가 추적하고 있는 청소년 범죄자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면 신고할 것인가, 묵인할 것인가? 『어두운 기억 속으로』는 질문의 유형이 다양하다. 한 약한 여성을 보호해주면서 그녀의 아픔을 건드리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과연 '보호'인가, 아니면 보호를 빙자한 괴롭힘인가? 한 쪽이 원하지 않는데 폭행하고, 강간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가? 자신의 아픔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결국 문제는 '리'였다. 그 남자와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결국 또 다시 후회의 기억으로 남으리라. 그것이 캐서린의 어두운 기억이 될 것이다. 언젠가 그 기억을 다시 꺼내어, 맞서야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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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테이션]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eBook] 템테이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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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글라스 케네디를 처음 만났다. 『빅 픽처』에 대한 찬사가 너무 대단하여 그 책을 읽고 싶은 유혹에 휩싸였지만, 다른 소설처럼 나를 실망시킬까 봐, 그냥 포기했다. 이번에는 출간된 『템테이션』은 '논스톱 페이지터너', '『빅 픽처』를 능가하는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또 다시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랐다. 나도 그런 말에 혹하여 읽고 싶었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읽지 않다가, 신간평가단이 이달의 소설로 이 책을 선정하여 읽게 되었다. 그런데 '논스톱 페이지터너'라는 찬사가 크게 틀리지 않은 듯 하다. 처음에는 한 장씩 끊어읽었는데, 후반부(2부)는 정말 단번에 읽었다. 이렇게 매혹적인 이야기일 줄 누가 알았는가! 나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이야기 전개 능력에 감탄했다.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그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말해 성공, 실패, 재기다. <셀링 유>라는 시트콤이 대박을 치면서 시나리오를 쓴 무명 작가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한순간에 스타로 부상하고, 거기에 너무 들뜬 나머지 바람을 피다가 아내와 이혼을 하고 만다(1장부터). 그리고 이백억 달러의 부자 필립 플렉이 시나리오의 공동 작업을 제의하고, 데이비드는 필립의 섬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은 다음, 돌아온다. 그러다가 작가에게는 사형 선고와 다름없는 '표절' 의혹이 제시되고, 아미티지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에게 반격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는 재기에 성공한다. 사실 이렇게 놓고 보니, 『템테이션』의 스토리는 그렇게 유혹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일까?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돌아보듯이 이렇게 말한다.

 

 왜 그럴까? 어떤 이야기라도 이야기에는 위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 이야기도,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의 인생 이야기도, 지금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의 맞은편의 앉아 있는 사람의 인생 이야기도, 모든 인생 이야기에는 위기가 있다. 세상 모든 일은 결국 이야기다.

 

 '성공, 실패, 재기'의 공식을 보니 떠오르는 소설이 하나 있다. 얼마 전에 출간된 최민수 작가의 『능력자』이다. 데이비드 아미티지와 남루한은 모두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들은 각자 벽에 부딪힌다. 할리우드의 법칙과 사회의 무관심이라는 벽 말이다. 할리우드의 법칙은 무엇인가? 미국의 극작가인 고어 비달이 말한, "성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실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환영을 받다가도 무시를 받으며 쫓겨나는 곳이다. 사회는 작은 정보에 민감하게 움직여,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특히, 언론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무서운 도구이다. 돈과 명예는 그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유혹과 위기에 어쩔 수 없이 부딪혀야 하며, 거기서 살아남아야 한다. 능력자가 되어야 한다.

 

 시나리오와 할리우드라는 한정된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템테이션』은 사회와 한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마치 로스엔젤레스에 사는 것처럼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돈과 명예를 얻으며, 유혹에 시달린다. 그런 점에서 이 급진적이고 이기적인 인물은 딘 쿤츠의 『살인예언자』의 주인공 오드 토머스를 연상시킨다. 『템테이션』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며, 오드 토머스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사건은 그들 스스로의 판단과 행동에 의해 진행되며, 자신만이 그 책임을 맡아야 한다. 이것이 가혹하지만, 사회의 법칙이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단연코, 실존하는 인물 같다는 것이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한 인간을 창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언젠가 그의 <셀링 유>가 이 사회에 나타나길 바란다.

 

 여담: 어떤 독자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왜 그 잘 나가는 <셀링 유>의 대본을 소설 내에서 공개하지 않은 것인가?"

 나는 대신 대답할 것이다. "초조해 할 필요 없어. 이 소설이 바로 <셀링 유(Selling You)>니까. 이 소설의 상황이야말로 시트콤 같지 않아?"

 

 그리고........ 에밀리 디킨슨을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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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살인예언자 1 (체험판)
딘 쿤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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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람에겐 다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각각의 재능이나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은 영웅적일 수도 있고, 지극히 평범할 수도, 때로는 저주할 만한 능력일 수도 있다. 재능은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주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게 도와준다. 따라서, 재능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은 출생이나 환경이 낮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영웅이 될 수 있다. 딘 쿤츠의 『살인예언자』 시리즈의 주인공인 오드 토머스가 바로 그러한 예이다. 그는 즉석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청년이다. 하지만 그에겐 다른 사람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미리보는, '죽음의 예언'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살인'을 예언하는 사람인 것이다. 형사나 경찰이라면 이 능력이 정말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오드 토머스는 한 여인을 사랑하는 젊은 사나이일 뿐이다. 일반인에게 영웅의 능력이 주어지는데,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오드 토머스는 자신의 운명에 걸맞지 않은 이 가혹한 능력을 저주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스토미'의 죽음을 본다면, 그는 버틸 수가 있을까? 만약에, 그가 그녀의 죽음을 미리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면, 그의 마음에는 얼마나 큰 죄책감이 들까? 다행히 소설은 그렇게 무겁지 않다. 작가 딘 쿤츠는 자칫 호러, 미스터리로 번질 수 있는 소재를 오드 토머스에 대한 소개와 잘 버무려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살인예언자(외국에서는 '오드 토머스'다. 즉, 오드 토머스가 살인예언자라는 것이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만큼, 이 소설을 이끌어 갈 주인공의 특성을 자세히 알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작가는 그것에 성공했고, 세계 소설사상 가장 매력적이고 독특한 인물을 탄생시켰다.

 

 오드 토머스(Odd Thomas).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이름만큼이나 독특한(Odd) 자라고. 사실 이 소설은 그렇게 긴박하지는 않다. 초반부의 추격전과 후반부의 반전 이외에는, 스릴러보다는 멜로물이나 라이트노벨에 가까웠다. 왜 작가는 이렇게 '스릴러'답지 못한 스릴러를 만들어냈을까? 그것은 독자들에게 오드 토머스의 매력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드 토머스의 말과 행동, 가족관계, 사랑, 모험을 그리면서, 자연히 읽는 사람들은 오드 토머스의 현실감을 느끼게 된다. 즉, 토머스가 실존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소설은 더 이상 소설이 아니게 된다. 왜냐하면 『살인예언자』야말로 오드 토머스, 그 자체니까. 독자들은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이 책을 읽기를 갈망해왔기에, 나는 이 책을 매우 즐겁게 읽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그저 '평범한' 스릴러로 여기고 읽는 사람은 실망할 것이다. 오드 토머스라는 인물을 그저 가상의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읽는 독자들은 결코 『살인예언자』 시리즈에 열광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오드 토머스가 바로 나 자신이며, 그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파고들어가는 자에게만 다른 스릴러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독창성과 재미를 맛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마치 꿈 속에 있는 것처럼 피코문도라는 공간에서 오드 토머스와 함께 먹고, 사랑하고, 삶을 즐길 것이다. 살인예언자, 또는 오드 토머스.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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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over 2012-11-04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수로 체험판을 올렸지만, 나는 이 책을 서점에서 직접 구매해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