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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6월
평점 :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결국 이 세상을 일종의 동굴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제 사라마구의 『동굴』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의 주요한 소재로 사용되고, 그 안의 진실이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세상이라는 동굴 속에서 문학이라는 빛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내가 이 소설에 매료된 것은 센터에 순응할지 반항할지 결정해야 했던 세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 자체보다는 시시각각 독자에게 말을 거는 서술자 때문이었다. '볼 수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주제이다. 내가 문학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했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도 마찬가지의 주제를 다루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눈먼 자들의 도시』의 정신적 후속작이라고 볼 수 있다.
『동굴』에서 독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소재는 바로 유기견 '파운드'이다. 시프리아노 알고르가 개를 받아들였을 때, 그는 개의 이름을 '로스트(잃어버린)'로 지을지 '파운드(발견된)'으로 지을지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한다. 이는 버려진 과거가 아닌, 발견된 현재를 중요시하는 알고르와 그의 딸 마르타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알고르에게 아내의 죽음은 분명한 상처이고 그를 좌절하게 하는 요소지만, 마르타의 임신이 그 노인을 계속 살아가게 만든다. 마치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빛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인간은 얼마든지 과거의 어둠, 무지의 시대 속에 갇혀 있을 수 있다. 현재의 빛, 인식의 시대로 전환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선택이다. 그것을 위해 따가운 햇살과 수고를 견뎌야 하지만, 새로운 삶이 줄 진정한 자유에 비하면 아주 값싼 것이다.
작가가 종교적 모티브를 항상 사용한다는 점을 보았을 때, 시프리아노 알고르가 도공인 것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인간이 흙에서 빚어졌다는 성경 구절을 이용해, 찰흙 인형을 만드는 알고르와 마르타의 모습은 인간의 창조와 연결된다. 센터의 의뢰를 받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인형을 굽다가, 필요 없어지자 빗물에 녹아 없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그들의 행동은, 어쩌면 동굴 속의 시체들과 마찬가지로 창조된 세계에 무관심한 신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역시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성상의 눈을 가린 상징적인 장면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는 부조리한 세상의 모습을 고발하면서 신의 부재를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신은 왜 세상을 이 따위로 만들고 침묵하느냐고 말이다.
대신에 주제 사라마구는 소설 속의 세계의 창조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이 세 사람의 알레고리가 현실과 무관한 우화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듯이, 그는 이렇게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우리는 이 소설의 정연한 논리와 규칙을 어길 수 있고 반드시 어겨야 하지만, 한 사람의 배타적이고 본질적인 특징, 즉 그의 성격, 그의 존재 양식, 그만의 뚜렷한 본성을 구성하는 요소만은 결코 망가뜨릴 수 없다. 사람의 성격이 모순으로 가득 찰 수는 있지만, 앞뒤가 맞지 않아서는 안 된다. (p.291)
시프리아노 알고르는 부정적인 뜻을 분명히 선언하기 위해 부정을 뜻하는 단어를 두 개나 품고 있는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전문적인 문법학자들에 따르면, 그런 문장은 오히려 강한 긍정을 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즉 We can't do nothing이라는 문장이 결국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다(We can do something)는 뜻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p.401)
그는 이야기 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동굴의 비유를 글라우콘에게 상세하게 설명하는 소크라테스 역할을 자처한다. 마치 그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그러나 그 역시 센터를 떠나 새로운 길을 걷는 세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나머지는 독자가 써 내려가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문학은 동굴 안을 밝히는 빛이기 때문에 존재할 가치가 분명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당연히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 빛을 보고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문학은 실로 무용한 것이리라. 그 불안하고 위태로운 길을 기꺼이 걸어갔던 자들이 있었다. 나는 단지 동굴 안에 있는 자들에게 또 다른 길이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꼭 변화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 어둠이 익숙하다면, 머물러도 된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빛이 있는 곳이다. 나는 어떤 것도 강요할 힘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어둠을 헤쳐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냐, 그가 물었다. 항상 시작하는 지점부터요, 첫걸음부터, 마르타가 대답했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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