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고기 쉽게 찾기 호주머니 속의 자연
노세윤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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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 바야흐로 휴가철이 다가왔다. 집나가면 고생이라지만 아무렴 집에만 있을 수 있나. 초록 수풀 우거진 개울가에 그늘막 쳐놓고 냠냠냠 수박 썰어 먹는 재미를 어찌 놓칠쏘냐~ 거기에다 바위틈 뒤져서 작은 물고기라도 한 마리 잡아주면 아들 녀석 신이나서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물고기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 괜시리 난감해 진다. 글쎄... 손바닥만한 것이 넓적하게 생겼으면 붕어, 비늘이 반짝거리고 덩치가 크면 잉어, 수염 달린 것은 메기, 뱀장어는 뚱보 뱀처럼 생겼을 것이고, 가운뎃 손가락 크기만하거나 그보다 작은 것은 모두 다 파라미~!! 라고 우겨보지만 미심쩍은 눈초리를 피하지는 못한다. 이럴땐 외치고 싶다. 수퍼맨? 수다맨? 아무라도 좋으니 누가 나 좀 도와줘엇~!! 

 

 영화 제목으로 일약 스타가 되버린 쉬리는 전 세계적으로 1속 1종이며, 그 유일한 분포지가 우리 나라다. 알려진대로 깨끗하고 바닥에 자갈이 많은 중,상류에 살며 날렵하고 아름다운 생김새까지 갖추었다. 누군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토종 물고기를 꼽으라면 단연코 1등을 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참붕어는 전국에 분포하며 조금 오염된 물에서도 살 정도로 생명력이 있다. 민물고기 중에서도 간디스토마 피낭유충을 많이 지녔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누가 민물고기를 함부로 먹냐고 하겠지만, 하지 말라는 것 하는 사람 꼭 있더라. 그래서 문제다. ;; 꾸구리는 우리나라 민물고기 중 유일하게 빛의 밝기에 따라 눈꺼풀을 열고 닫는다. 물고기는 눈뜨고 잔다는 기존의 사고에 반기를 들며 어쭈구리 하다가 꾸구리가 된 것은 아닐까. ㅋㅋ

 

버들치는 '1급수 지표 어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상류에서부터 하류, 더러는 댐과 저수지에서도 환경에 적응하여 산다고 한다. 이런 걸 배신감이라고 해야하나. ㅠ.ㅜ;; 하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강한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오히려 멸종위기에 처하는 것보다는 독하게 마음먹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연어의 신비스러운 회귀에 대해서는 "태양 위치나 지구 자기장을 파악한다는 설과 태어난 하천의 냄새를 기억한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방류된 어린 연어들은 동해안을 출발해서 태평양을 지나 베링해, 알래스카만까지 여행을 한다. 철새들이 길을 잃지 않고 먼 길을 여행하는 것 처럼, 갓 태어난 새끼 거북이 바다를 향해 가는 것 처럼 자연의 신비란 너무나 오묘하고도 경이롭다.

 

블루길, 배스는 '생태계교란야생동.식물'로 지정된 물고기다. 북아메리카가 원서식지인 이들을 1970년대 당시 수산청에서 자원조성용이라는 목적으로 일본, 미국을 통해 들여와서 방류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 반대로 우리의 가물치가 미국에 유입되어 현지 생태계에 피해를 주고 있단다. 예로부터 가물치는 약용, 식용으로 사랑받았으며 난폭함과 탐식성으로 유명한 어종이다. 물에서 움직이는 것은 모조리 먹어치우며, 먹이가 부족하면 동족까지도 잡아먹을 정도란다. 솔직히 말해서 블루길, 배스, 가물치(황소개구리, 붉은귀거북도 스리슬쩍 끼워서~)가 무슨 죄가 있나? 잘 먹고 잘 사는 애들을 맘대로 옮겨놓은 인간이 그르지. 휴~;; 

 

<민물고기 쉽게 찾기> 솔직히 처음엔 '민물고기 도감'인 만큼 판형이 큼직할 줄 알았다. 그런데 두께감에 비해 의외로 사이즈는 작다. 그제서야 '호주머니 속의 자연' 이라는 시리즈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책에는 우리나라의 민물고기 130여종이 수록되어 있는데 다양한 컷의 사진과 함께 물고기의 생김새, 서식지, 먹이, 생활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토종물고기의 경우 감돌고기, 흰수마자, 얼룩새코미꾸리, 이호종개, 꼬치동자개, 다묵장어 등 독특한 이름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록에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로 지정된 종과 '천연기념물'을 따로 분류해서 소개하고 있으며, 모양에 따라 민물고기를 쉽게 구분하는 방법 등 유익한 정보들로 채워져 있다.

 

 "민물고기? 이제 나한테 물어봐~!!" 책 한권 옆구리에 끼고 있으니 자신감이 불끈 생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을 하며 자연과는 별로 친하지 않다는 변명은 이제 그만~ 뿌듯뿌듯~ ^^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이나 하천에서 장난삼아 물고기를 잡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래봤자 서너 마리 정도겠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보호종을 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도감이란 것이 그렇다. 이런 책 몇권 쯤 집에 있으면 장식용 백과사전 처럼 전시효과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 ^^;; 하지만 이 책은 생명이 느껴지는 책, 여행 본능을 가진 책이다. 올 여름 강이나 하천, 계곡 등 민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기꺼이 배낭 한 켠을 내어주어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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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의 루앙프라방 - 산책과 낮잠과 위로에 대하여
최갑수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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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 프라방, 어감이 참 좋다. 처음 들었을 때는 프랑스의 도시 이름인 줄 알았는데 라오스의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란다. 메콩강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이 곳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이국적인 건축물과 동남아 특유의 전통이 공존하는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특히 불교와 관련된 사원으로 유명하며 '루앙 프라방'이란 이름도 도시의 명물인 '큰 황금 불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책을 펼치면서 기대했던 몇 가지가 있다. 아, 과연 저자는 무엇부터 보여줄 것인가? 하는 기대, 불교 사원이 유명한 곳이니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같은 유서깊은 유적지를 먼저 보여 줄려나, 아니면 메콩강을 배경으로 한 풍경도 좋고,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빠질 수는 없겠지. 그리고 '포토 에세이'인 만큼 가슴 깊이 새기고픈 '아포리즘'이 넘쳐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초반부터 적잖이 당황했다. ^^;; 루앙 프라방에 짐을 풀자마자 뜻한 바를 모두 이루기라도 했다는 듯 느긋해 하는 모습이 여느 여행자와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해외여행 한번 할려면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한데 빡빡하게 스케줄짜서 단 1초도 허비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말이다. 저자는 한마디로 자유를 선언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시간을 흘려보낼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선언을 말이다. 그곳에서 만난 또 다른 여행자는 이렇게 말한다. "루앙 프라방에서의 생활은 시간 앞에서 옹졸했고, 급했고, 불안했고, 고독했던 시간의 실체를 마주하게 해준다. " 라고. 이것이 바로 루앙 프라방이 여행객을 사로잡는 매력이다.    

 
루앙 프라방에서의 하루 하루는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의 생활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마치 시간적 개념이 다른 곳인 것 처럼. 신기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 일상이야말로 지친 삶으로부터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현대인들의 고질병인 외로움과 고독은 부족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과부하'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나쳐서 넘쳐버리는 것, 그로인한 상실감에서 오는 공허함인 것이다. 
 

예전에는 여행을 떠나면서 관광지가 아닌 휴양지로 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편하게 쉴 거면 그냥 집에서 보내면 될 것을 굳이 멀~리까지 돈 쓰면서 시간을 죽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 편히 쉴 수 있는 곳, 사람들로 인해 붐비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거기에다 하나 더 보태고 싶다. 저자가 루앙 프라방에서 보낸 시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선언하리라~  
 

 내 몸이 떠나지 않는 한 완전한  자유란 없다는 것을, '여행자의 마음'은 '여행자'가 되어야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말이다.

 

 

밑줄을 긋다

 
"당신에겐 길을 잃을 권리가 있어요. 당신은 여행자니까요. (p.47)"

"가끔 여행자의 시선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행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니까요. 그들처럼 욕심 없이, 매순간 주어지는 것들에 만족하고 고마워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p.121)"
 

"우리 허들 선수야. 결승점에 닿기 위해서는 허들을 넘어야 해. 하지만 친구, 허들을 방해물이라 생각해서는 안 돼. 허들은 너를 결승점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이기도 하지. 허들을 열심히 넘다 보면 어느새 결승점이 네 앞에 있을 거야. 삶도 마찬가지야. 힘내라고!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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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홍동원 지음 / 동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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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뭐고 독서란 무엇이냐?" 라는 질문 많이 받는다. 가족, 친구, 동료, 후배들 할 것없이 책 때문에 무거워보이는 가방을 볼 때마다 혹은 시끄러운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 읽는 모습을 보면 황당함과 경외감을 동시에 담은 눈으로 쳐다본다는 것 잘 안다. 내가 무슨 칼럼니스트도 아니고 작가도 아닌데... 사실 질문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수백 번 아니 수천 번도 넘게 고민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독서는 힘이고 에너지'라는 설명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이 되지만 그들이 바라는 뭔가 근사한 대답은 못된다는 것을 아는 이상 늘 같은 대답을 해줄수 밖에. "뭐긴 뭐야? 책은 책이고, 독서는 책을 읽는 것이지~!! " 라고 말이다.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다소 민망한 제목을 달고 내 품에 날아온 한 권의 책, 제목만 보고는 도대체 어떤 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저자는 출판디자인을 전문으로하는 아트디렉터다. "디자인이 뭐냐?" 라고 묻는 지인의 질문에 설명을 해주다가 쉽게 더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디자인 [design] [명사]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 혹은 의상, 공업 제품, 건축 따위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조형 작품의 설계나 도안. " 이라는 식의 사전적 의미는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저자는 설명을 해야하는 '전문가' 입장과 듣는 입장인 '비전문가' 사이의 틈을 최소화 해주는 방식을 찾아냈다. 바로 디자인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 디자인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일상이나 업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통해서 디자인을 쉽게 이해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자료수집을 위한 피튀기는 현장, 프레젠테이션 관행의 부당함, 디자이너 물먹이는 막가파 클라이언트, 우리만의(한국적인) 캐릭터에 대한 절실함, '명품 디자인'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 등 디자이너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현장감 있게 그리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I ♥ NY’ 라는 로고에 관한 이야기다. 오늘날 뉴욕의 상징이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패러디되고 복제된 이 로고가 '개똥' 때문에 만들어 졌다는 사실. 1970년대 중반 뉴욕의 거리는 개똥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아무리 홍보하고 벌금을 물려도 해결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 때 디자이너인 밀튼과 지인들이 캠페인을 구상하면서 디자인한 로고가 바로  ‘I ♥ NY’ 이다. 그것도 '공짜'로~!!  911 이후 밀튼은 하트의 한쪽 부분을 검게 그을려 '뉴욕에 대한 변치않는 사랑'을 담아냄으로써 찬사를 받았고, 이슬람 권에서는 NY don't ♥ U’로 패러디되어 사용된다니 디자인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또 한가지는 지하철 노선도에 관한 것이다. 헤리 벡은 런던의 지하철에 필요한 배선을 설계하는 사람이었는데 전기 회로도를 설계하듯이 지하철 노선도를 그렸다. 실제 레일과는 상관없이 최대한 단순화 시키고, 역은 점으로 표시했지만 사람들은 단번에 노선을 파악하게 되었고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하는 동안 막연한 공포와 불안감에서 해소될 수 있었다고 한다. 문득, 엘리베이터를 처음 탔던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느리다면서 불평을 하자 거울을 설치했더니 해결되었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났으니 이 또한 디자인의 위대한 힘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디자인의 역사가 너무 짧은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은 먹고 살기 바빠서 디자인까지 따질 여유가 없었지만 이젠 세계속의 한국인 만큼 달라져야 한다. 아직은 시행착오를 겪는 단계이고, 때문에 어려움도 좌절도 끝이라고 하기엔 아직 길이 멀다. 대신 발전 가능성이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에 보면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있는데 디자인에 있어서도 '한국적인 것'을 살리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뉴욕 같은 서울'이 아닌 '서울만의 서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둘기 똥구멍' 운운하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책은 기존의 생각, '디자인은 전문분야이고, 전문분야는 어렵다. 그래서 디자인은 어렵다.' 라는 사고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으면서 전문지식은 쉽게, 거기다 직장인으로서의 애환이 적절히 섞여 있어 인간적인 냄새 물씬 풍기는 '재미있는 설명'이 된 것이다. 읽을 거리가 참 많은 책이지만, 새삼스레 가장 놀란 것은 저자인 홍동원 님이 지천명의 나이라는 사실이다. 미술이나 디자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조차도 디자인에 대해 조금은 감이 잡힌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런 것이 바로 연륜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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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을 리뷰해주세요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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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음악을 작곡하고 글을 쓰거나 미술 작품을 완성하는 등의 창작활동을 통해 예술가는 내적표현과 자아실현을, 감상하는 이는 삶의 풍요와 가치를 느끼게 된다. 그 중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옷이나 장신구를 고르더라도, 음식을 먹더라도 이왕이면 '예쁜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감정 자체가 결국 마음을 정화시키고 넉넉함을 품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미의식'이란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의식'이 아니다. '무엇을 미라고 하고 무엇을 추라고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의식이다. 자신의 '미의식'을 재검토한다는 것은 자신이 무언가를 '예쁘다'고 느꼈을 때,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렇게 느껴도 좋은 건지 되물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미의식이 실은 역사적.사회적으로 만들어져온 것임을 깨닫게 된다. (p.7)"


 

에밀 놀데의 종교화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독특하다'라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의 '당황스러움' 이었다. 기존의 종교화가 경건함을 강조한 차분한 색채인데 반해 에밀 놀데의 작품은 너무나 강열한 느낌을 준다. 더구나 예수님을 비롯한 등장인물의 모습도 '서양인'이 아닌 왠지 낯선 캐릭터로 보인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원시 유대인'의 모습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당시 나치 정권하에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용기가 대단하다 싶었다. 결과적으로 나치에 의해 '퇴폐'로 규정되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오토 딕스의 그림에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그는 전쟁을 체험하기 위해 군에 자원해서 입대했고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림을 통해 표현된 전쟁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참혹해서 마치 종군기자가 찍은 사진 같은 느낌을 준다. 제대 후에는 상의 군인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림으로써 사회의 냉대를 비판하고 반전 의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일의 우파들에게 맹비난을 받았지만, 전쟁의 어리석음을 고발했던 예술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

 

 고흐는 시대적 상황을 고발한다든지 정치가들과 마찰을 빚은 경우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은 인물이다. 고흐의 굴곡진 인생과 비참했던 생애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기위해 스토커 같은 행동을 하기도 했고 화를 참지 못해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였으니 결코 평범한 삶은 못되었다. 결국은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가기에 이르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동생 테오만이 유일하게 그를 이해해주었다. 강열한 색채와 '독특한 붓터치'는 고흐였기 때문에 가능할 만큼 섬세함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그의 그림은 인간적 고뇌와 갈등, 열정 그 자체인 것이다.          

 

이쯤에서 저자가 지적한 한국 근대미술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의 경우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기도 했고 민주화 과정에서 학살이 자행되기도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미'를 제대로 표현한 작품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제 강점기에 문화말살 정책이 너무 잘 먹힌 탓이라고, 해방 후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군사 정권의 감시가 너무나 완벽했던 이유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예술계에도 분명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단지 한국인의 경우 내적 아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감상하는데 익숙치 않은 국민성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뇌의 원근법>이란 이 책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미의식'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에밀 놀데, 오토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 고흐 등의 작품을 통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닌, '역사적, 사회적인 미의식'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배웠다. 참고할 것은 '서양근대미술 기행'이라는 주제로 서술함에 있어 저자의 주관이 매우 뚜렷하다는 점이다. 인문학적이면서 객관적인 시각보다 개인적인 에세이에 가깝다. 그리고 재일교포 2세로서 겪어야 했던 아픔, 두 형님이 한국에서 옥고를 치른 일 등 저자의 개인적인 아픔도 주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을 '조선'이라고 표현한 것이 내내 걸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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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리뷰해주세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 - 21세기 노예제, 그 현장을 가다
E. 벤저민 스키너 지음, 유강은 옮김 / 난장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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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연예인들의 입을 통해 '노예계약'이라는 말을 간혹 들어는 봤어도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 만인이 평등하다고 믿고사는 오늘날 대명천지에 불쑥 노예제를 끄집어내다니 무슨 영문인가 싶었다. 노예제와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나 우리 나라의 경우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던 때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실제로 노비제도와 같은 노예제가 있었다고 봐야한다. 미국의 경우도 19세기 중반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아프리카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노예무역이 성행했었고, 해상무역이 활발하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포르투칼,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등 유럽인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에 관한 역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계속해서 거꾸로 올라가다보면... 고대에는 말할 것도 없겠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인 벤저민 스키너는 역사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노예제'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강요나 사기를 통해, 생존을 넘어선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강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 (p.16)' 이 세가지 조건 모두를 충족 하는 이들을 노예라고 규정짓고 세계 곳곳을 직접 뛰어다니면서 경험하고 조사한 내용들을 알리고자 하였다. 가장 먼저 아이티에서 노예 한 명을 사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가를 직접 보여주었고 수단에서는 내전으로 고통받는 것도 모자라 민병대에 의해 노예가 된 사람들을 인터뷰 했다. 몰디브와 루마니아, 러시아에서는 인신매매를 통해 성노예가 된 여인들을 만났고 인도에서는 대를 이은 채무관계로 인해 노예신분까지 대물림 되고 있는 상황을 고발하는 등 노예제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노예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노예들의 삶은 슬픔과 불의로 가득 차 있다 - 그러나 또한, 스키너가 보여주듯이, 유머와 기쁨의 색조를 띠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과 똑같다. 자유인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p.11)"  

 

2005년 국제노동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아시아에만 1,000만명의 강제 노역자가 존재한다고 하니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현대판 노예들은 하루 18시간 이상 강제 노동에 시달리며,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거기에다 끊임없이 고문당하고 학대를 받는다. 특히 물리적 폭력에 무방비 상태인 어린이와 여성의 경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처해있다. 노예들도 인간이다. 우리와 똑같은 피가 흐르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너무나 단순한 사실인데 어쩌면 인간이 인간에게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의문,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그 나라의 관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으며 노예들은 왜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은 노예제가 심각한 나라일수록 경제가 어렵다는 사실, 주로 제 3세계인 경우가 많다. 오랜 내전으로 빈곤하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국제적인 원조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해당 나라의 관료들은 노예제가 있어서도 안되며 절대 존재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현장을 목격하고 사람들을 인터뷰한 자료를 내밀어도 무조건 아니라고 우겨댄다. 국민들도 교육 수준이 낮아 자신들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노예 상태에 처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기위해 노예제를 정당화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일부 노예들은 비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유가 예속보다 더 두렵다고까지 말한다.     

 

 솔직히 책을 읽은 후에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다만 '노예제'에 대해 '인권문제'로 접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저자의 경험상 '노예 되사기'는 결과적인 면에서 회의적인 사실이고,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국가들을 압박해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국가 대 국가의 정치적인 문제와 뒤얽히면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어느 나라든지 '구호'나 '원조'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보다 자국의 이익이 예상될 때만 움직이려 하고있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외면받고 있다.  

 

 인권 문제로 넘어왔으니 말인데 사실상 이 책에서는 아프리카의 조혼풍습이나 아랍의 강제결혼, 인도의 살인적인 지참금이 가져오는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도 한때 인신매매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떠올랐었고, 정신지체 장애자들에게 행해졌던 가혹행위 때문에 전국민이 충격을 받은 것도 최근 일이다. 성매매 금지법 통과 때 관련 여성들이 오히려 반대 집회를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다. '노예제' 라고 해서 상당히 불편한 마음이었는데 이미 알고 있었던 부분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당황스럽다. 

 

 문득 앞에서 던졌던 질문을 다시금 떠올린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그 나라의 관료들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노예들은 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가?' 관료들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도움을 구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음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벽'과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 지금껏 진실을 외면하면서 '무관심'을 '무지'로 포장하려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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