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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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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음악을 작곡하고 글을 쓰거나 미술 작품을 완성하는 등의 창작활동을 통해 예술가는 내적표현과 자아실현을, 감상하는 이는 삶의 풍요와 가치를 느끼게 된다. 그 중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옷이나 장신구를 고르더라도, 음식을 먹더라도 이왕이면 '예쁜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감정 자체가 결국 마음을 정화시키고 넉넉함을 품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미의식'이란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의식'이 아니다. '무엇을 미라고 하고 무엇을 추라고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의식이다. 자신의 '미의식'을 재검토한다는 것은 자신이 무언가를 '예쁘다'고 느꼈을 때,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렇게 느껴도 좋은 건지 되물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미의식이 실은 역사적.사회적으로 만들어져온 것임을 깨닫게 된다. (p.7)"


 

에밀 놀데의 종교화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독특하다'라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의 '당황스러움' 이었다. 기존의 종교화가 경건함을 강조한 차분한 색채인데 반해 에밀 놀데의 작품은 너무나 강열한 느낌을 준다. 더구나 예수님을 비롯한 등장인물의 모습도 '서양인'이 아닌 왠지 낯선 캐릭터로 보인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원시 유대인'의 모습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당시 나치 정권하에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용기가 대단하다 싶었다. 결과적으로 나치에 의해 '퇴폐'로 규정되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오토 딕스의 그림에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그는 전쟁을 체험하기 위해 군에 자원해서 입대했고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림을 통해 표현된 전쟁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참혹해서 마치 종군기자가 찍은 사진 같은 느낌을 준다. 제대 후에는 상의 군인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림으로써 사회의 냉대를 비판하고 반전 의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일의 우파들에게 맹비난을 받았지만, 전쟁의 어리석음을 고발했던 예술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

 

 고흐는 시대적 상황을 고발한다든지 정치가들과 마찰을 빚은 경우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은 인물이다. 고흐의 굴곡진 인생과 비참했던 생애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기위해 스토커 같은 행동을 하기도 했고 화를 참지 못해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였으니 결코 평범한 삶은 못되었다. 결국은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가기에 이르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동생 테오만이 유일하게 그를 이해해주었다. 강열한 색채와 '독특한 붓터치'는 고흐였기 때문에 가능할 만큼 섬세함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그의 그림은 인간적 고뇌와 갈등, 열정 그 자체인 것이다.          

 

이쯤에서 저자가 지적한 한국 근대미술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의 경우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기도 했고 민주화 과정에서 학살이 자행되기도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미'를 제대로 표현한 작품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제 강점기에 문화말살 정책이 너무 잘 먹힌 탓이라고, 해방 후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군사 정권의 감시가 너무나 완벽했던 이유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예술계에도 분명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단지 한국인의 경우 내적 아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감상하는데 익숙치 않은 국민성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뇌의 원근법>이란 이 책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미의식'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에밀 놀데, 오토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 고흐 등의 작품을 통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닌, '역사적, 사회적인 미의식'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배웠다. 참고할 것은 '서양근대미술 기행'이라는 주제로 서술함에 있어 저자의 주관이 매우 뚜렷하다는 점이다. 인문학적이면서 객관적인 시각보다 개인적인 에세이에 가깝다. 그리고 재일교포 2세로서 겪어야 했던 아픔, 두 형님이 한국에서 옥고를 치른 일 등 저자의 개인적인 아픔도 주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을 '조선'이라고 표현한 것이 내내 걸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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