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빛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불과 몇주전에 영화 <해운대>를 봤었다. 국내 최초의 재난 블럭버스터로 알려지면서 개봉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었는데 천만 관객을 훌쩍 넘겼다기에 모처럼 극장 나들이를 했다. 거대한 쓰나미가 해운대를 휩쓸어 버린다는 설정은 외국의 해변에 해일이 닥친다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 무엇보다 재난이 닥치기 전 평화로웠던 분위기와도 대조될 뿐 아니라 제각각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을 때는 이전의 힘든 상황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검은 빛> 이 책은 나오키상 수상작가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제목에서 느껴지는 모순과 아이러니 탓에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읽기 시작했던 책이다. 흔히들 빛은 어둠을 밝혀주는 존재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어둠은 폭력일 수도 있고, 내면의 깊은 상처 혹은 막연한 두려움 일수도 있으나 어두우면 어두울 수록 빛의 존재를 느끼기도 쉬워진다. 그런데 '검은 빛' 이라니... 밝은 빛이 어둠의 깊은 곳까지 비추듯이 검은 빛도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휘감아 버린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간밤에 몰아닥친 쓰나미는 아름다웠던 미하마 섬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섬 주민들 대부분의 목숨을 앗아갔다. 노부유키와 미카는 밀회를 즐기기 위해 섬의 높은 곳에 위치한 신사에 갔다가 화를 면했고 두 사람을 따라왔던 다스쿠와 밤낚시를 하기 위해 섬을 빠져나갔던 몇 명이 목숨을 건졌을 뿐 쓰나미가 안겨준 상처는 너무나 컸다. 섬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노부유키, 미카, 다스쿠 세 사람은 세월이 흘러 평범한 직장인, 유명한 배우, 노동자가 되어 각자의 삶을 꾸려나간다. 하지만 그들의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그날의 폭력은 마침내 그들을 재회하게 만든다.   

 

 책 읽는 동안 머릿속에 계속 의문이 들었다. 과연 자연 재해인 쓰나미가 더 위협적일까 아니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폭력성이 더 무서울까 하는... 사실 인도네시아의 쓰나미도 그렇고 이웃 나라 일본이 지진으로 인해 겪는 공포와 두려움을 생각하면 자연재해 만큼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하지만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은 것에 대해 양심을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어린 시절 학대당한 기억때문에 결국 폭력적인 어른으로 자랄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검은 빛이야 말로 쓰나미 보다 더 위협적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생각들>을 리뷰해주세요.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 - 유가에서 실학, 사회주의까지 지식의 거장들은 세계를 어떻게 설계했을까?
황광우 지음 / 비아북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인류야 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표현한 말이다. 인간은 자신과 주변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의문으로 생각을 발전시켰고, 개개인의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사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생각이라는 것이 개인에 한정될 때는 하나의 의견일 뿐이지만 집단의 생각을 하나로 모았을 때에는 나라를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등 그러한 사상들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며, 상호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가고 있다.
 

 자유주의 사상은 중세 봉건 제도가 막을 내리면서 억눌렸던 생각들이 표출된 결과였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은 신중심의 사고에서 인간 중심을 부르짖으며 종교, 과학 문야를 비롯한 모든 문야에서 두드러진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최소의 국가가 최선의 국가'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고, 애덤 스미스 같은 경제학자들은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롭게 발전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이론과 달리 노동자에게는 희망없는 나날을, 가진 자에게는 넘치는 부를 안겨줌으로써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생겨나게 된 바탕이 된다.   
 

 민족주의는 봉건시대 이후 나라와 나라간의 무역이 활발해 지면서 싹을 틔우게 되었는데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을 계기로 유럽 전역에 확산된다. 민족주의는 국가적 통일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세계대전의 불씨로 이어졌다. 히틀러의 '파시즘'이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1차세계대전의 패전국가라는 상처와 살인적인 인플레가 있었다. 한편,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또한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이상일 뿐이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 사상이 등장하게 된다. 

 
 <위대한 생각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일단 인문학 서적 그것도 사상을 다루는 책 중에서 거부감없이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고 체계적이라는 점이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만큼의 위대한 사상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으며,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하게 되었는지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어느정도 깊이 있는 내용을 원하는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상'에 대해 관심있었던 이들에게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는 지금까지 '사상'에 관한 책이라고하면 외국의 저자들이 쓴 서양중심의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동양의 것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가, 도가, 법가 사상을 비롯하여 동서양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의 경우 그토록 혼란한 분위기에서 제자백가 사상이 꽃피웠던 것은 무력으로 정복할 수는 있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는 것, 다시말해 치국을 위해서는 국가의 기틀이 되는 사상이 필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 서양의 사상을 균형있게 이해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며 우리의 실학과 동학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흐뭇했다.    
 

"인간은 아는 만큼 세계를 이해한다. 정치사상을 통해서만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위해서는 사상에 대한 기초지식이 있어야 한다. (p.300)"
 

 사상이란 것이 그렇다. 아무 생각없이 살 때는 몰랐는데 깊이 생각할 수록 머리가 아파진다. 예를 들어 지금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를 정치 이념으로 하고 있다. 인터넷에 '자유 민주주의' 라고 검색해보라. 자유, 평등, 기본권, 법치주의, 권력분립 등 자유만 해도 보장된 권리가 엄청나며, 다수에 의해 움직이는 듯 하면서도 소수의 권익이 보장된다는 환상적인 문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왜 그럴까. ^^; 어쩜 현재 우리가 선택한 사상도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전단계에 영향을 받아 필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며, 미래에는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아울러 국민적 합의와 정치인들의 실현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위대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던 타임스 - 21세기 코믹 잔혹 일러스트판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하나자와 겐고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아... 그 저... 뭐지? 검색해봐~!" 솔직히 하루에도 이 말을 몇번씩 하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나이가 들수록 내 자신의 기억력을 신뢰할 수 없을 뿐더러 실제로 친구들과 수다좀 떨라치면 전달해야할 이야기에 대한 정보가 가물가물해져서 검색해보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게되는 인터넷으로 인해 잘못된 정보를 얻게 될 수도 있고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당하거나 저작권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사람을 직접적으로 해하는 범죄도 무섭지만 미래에는 인터넷으로 인한 범죄가 가장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모던 타임스>의 사건도 '인터넷 검색'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거래처의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일을 한다. 최근에 회사로부터 다른 팀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받고 업무를 파악하던 중 프로그램을 의뢰한 거래처의 정보가 너무나 추상적이라는 점과 그 팀의 직원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의문을 가지게 된다. 문제는 검색이다. 인터넷에 하리마자키 중학교, 안도상회, 개별 면담이라는 세 단어를 검색하면 특정 싸이트가 뜨게되고 싸이트를 클릭하는 사람에게는 정체불명의 괴한이 나타난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세 단어가 각각 검색되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동시에 검색되면 누군가에게 검색자의 정보가 흘러가고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다. 다시말해 그 단어는 특정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종의 검색시스템인 것이다. 요즘 전화 피싱 사기 사건도 많고, 아무 생각없이 인터넷 메일을 열었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등 낭패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문에 인터넷을 검색하는 동안 누군가에게 역으로 감시당한다는 설정은 꽤 기발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와닿는다.

  

 주인공은 세 단어가 가리키는 사건을 차례로 조사하면서 정치인이자 국민적 영웅 나가시마 조가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난감해 한다. 가령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어느날 원치않게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고 모든 정황이 지목하는 인물은 너무나 거대한 존재라서 함부로 만날수조차 없는 상대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영웅을 만들어낸 과거의 특정 사건이 실은 조직적으로 은폐된 결과이고 진실을 감추기위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면, 거기다 조사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엄청난 일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주어진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그 효과가 거대해지면 인간에게서는 전체를 상상하는 힘이 깡그리 사라져. 가령 그 '거대해진 효과'가 끔찍한 일이라고 치자. 수백만 명을 가스실에서 죽이는 거라 치자고. 그 경우, 세분화된 작업을 맡은 사람에게서 사라지는 것은 '양심'이야. (p.232)"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그냥 한바탕 웃자고 씌여진 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현대사회의 복잡한 시스템과 분업화된 사회에서 부품화 되어가는 인간을 그리고자 했던 것 같다.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무서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설명에 보면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를 21세기 버전으로 새롭게 탄생 시키려 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곳곳에 찰리 채플린의 영화와 대사를 인용한 부분이 눈에 띈다. 가장 먼저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연상시키는 찰리 채플린이 오늘날까지도 위대한 배우이자 감독으로 칭송받는 것은 웃음 속에 감추어진 '알맹이' 때문이리라.  

 

 <모던타임스> 처음엔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 때문에 주목했던 책이다. 그 다음은 두께에 놀라고 곳곳에 삽입된 일러스트 때문에 흥미로웠던 책이기도 하다. 책의 줄거리와 작가의 의도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용이 점점 커졌다가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듯 결말도 좀 흐지부지해서 아쉬운 면도 있다. 첫장면부터 고문하는 장면이 불쑥 나와서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는데, 책 읽는 동안은 다른 생각 할 결흘 없이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속 주인공들처럼 다소 과장된 몸짓의 캐릭터들도 맘에 들었고,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기발한 소재와 독특한 편집은 높이 살만한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어몰입교육, 11세에 끝내라 - 영어교육 전문가 유수경 쌤의 성공 학습 전략
유수경 지음 / 아라크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한 나라의 교육 정책은 최소한 100년은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교육의 현실은 작년과 올해가 다른 경우가 많아 수험생은 물론 학부모들을 긴장시킨다. 현정부가 들어설 무렵 인수위에서 언급했던 '영어몰입교육' 이라는 말이 또 한차례 파장을 불러왔던 것을 기억한다. 중,고등 학교를 비롯해서 대학 교양영어에다 직장생활 하면서 다녔던 영어학원까지 10년도 넘게 영어를 배웠지만 여전히 영어에 자신이 없는 나 자신을 떠올려 보면 내 아이가 영어권의 외국인들처럼 자유롭게,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으로 가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적인 부분이다. 학원에서 진도나가고 학교에서는 잠을 잔다고 할 정도로 공교육이 사교육의 들러리화 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런 부분이 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어몰입교육을 끄집어 내면 결국은 사교육 시장만 키워주는 모양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선에서 근무하는 영어 교사들조차 실현가능성에 부정적이란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넓게, 멀리 보지 못하고 너무 대책없이 밀어부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영어몰입교육, 11세에 끝내라> 이 책은 영어몰입교육으로 고민해본 엄마들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이다. 특히 조기 영어교육을 못해주었더라도, 7세라도 늦지 않았고 4학년이면 충분하다는 문구가 무조건적으로 신뢰가 가지는 않더라도 뭔가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실제로 저자는 오랜 시간을 어린이 영어교육을 연구해 오면서 축적한 정보를 고스란히 담았다.    


 중요한 것은 "엄마 하기 나름이에요!" 하고 한 표현처럼 엄마의 역할이다. 특히 유아기에 처음 영어를 접하는 아이들의 경우, 영어에 적당히 노출시켜주고 알파벳을 마스터하고 학습 환경을 조성해 주는 등의 모든 과정이 엄마한테 달린 것이라는 설명에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자기계발서를 읽고 난 후의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마음 먹고 실천하고자 하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으면서도 결국 독서에 그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기억할 것은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라든지 인성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 영어를 언어로 인식하게 하고 몸으로 배우게 하라는 조언과 함께 영어가 아이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 등이다. 저자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엄마들의 마음과 통하는 부분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런 점이 동기 부여도 되고 용기도 준다. 누구네 처럼 조기 해외 유학이라도 보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미안함을 떨쳐낼 정도의 용기라면 충분히 시도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아프지 않지만 차라리 아픈 게 낫겠다는 사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언니를 위한 결과물일 뿐이라는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 대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의견을 말할 자격이 있는 당사자에게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사실. (중략)  신이 아니에요. 부모님이에요. 내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 p.25 - 안나


 안나는 백혈병에 걸린 언니 케이트의 치료를 위해 완벽하게 유전자를 일치시켜 태어난 아이다. 처음엔 안나가 태어날때의 재대혈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잠시 평온했던 기간이 지나고 케이트의 병이 재발하면서 문제는 심각해졌다. 한번 시도했던 치료법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치료가 진행될수록 부작용이 생기는 상황. 안나는 언니를 위해 혈액뿐만 아니라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차례로 기증해야만 했다. 그것만이 케이트의 생명을 연장시킬 유일한 방법이다. 이번에는 신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안나는 더이상은 안된다고 한다. 열 세살 소녀는 이제 스스로 자신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희생이 숭고한 것은 자신 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생이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강요된 것이라면, 안나의 기증은 희생이 아니라 빼앗기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부모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을까. 어린 소녀는 신문 기사를 통해 알게된 변호사 캠벨을 찾아가고 이 사건이 자신의 명성에 도움이 될 거란 사실을 직감한 변호사는 사건을 맡기로 한다. 캠벨은 변호사로서의 임무에 충실하지만, 안나는 소송이 진행되면서 그제서야 깨닫는다. 소송이란 것이 안나가 원했던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아니라는 사실을. 전직 변호사인 사라는 스스로를 변호하고, 아빠는 안나의 편에 서면서 가족은 또다른 위기를 맞게 된다. 
 

 "난 줄 거야. 난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심장이라도 떼서 줄거야. 당신도, 사랑하는 사람들 일이면 뭐든 하잖아. 안 그래? (중략) 왜 안나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p.231 - 사라(안나의 엄마)
 

 부모라면... 부모는 그런 사람들이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설사 그것이 사회적으로 무리를 일으킬 수 있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누구든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단 한번이라도 죽어가는 아이의 부모가 되어서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안나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하다. 자식을 위해 또 다른 자식이 희생되어야 한다면 글쎄... 뭐라 말하기가 너무 힘들다. 지금껏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살아왔던 아이가 이제 더는 못하겠다고 한다. 부모는 이제 죽어가는 자식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스스로의 주장을 펼치는 아이까지 보듬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등장인물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입장에서 서술해가는 방식이 처음은 아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쌍둥이별' 처럼 민감한 주제에다 양쪽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처음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입장에서 읽어가다가 마침내는 어떤 판단을 내리는데 개입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각각의 입장에서 볼때 가족 모두가 너무나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고뭉치로만 알려진 제시조차 그의 입장을 듣고 보면 안쓰럽기만 하다. 수시로 발생하는 긴급상황에서 안나와 케이트는 병원으로 가지만 자신은 이웃집을 전전하며 방치되다시피 자라왔다. 가족의 관심을 받고 싶어 비행을 저지르지만 실은 케이트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하며 죄책감 속에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안나가 단순한 이기심에서 기증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안나의 소송은 결국 케이트의 '권리' 혹은 '존엄성'과 만난다. 그러고 보니 등장인물이 차례로 등장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동안 케이트는 침묵했었다. 엄마를 위해, 가족을 위해 힘겨운 치료를 견디어야만 했던 케이트... "죽기도 싫지만 이렇게 사는 것은 더더욱 싫다.'는 그녀의 말에 너무나 가슴아팠다. 의학의 발달은 우리에게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안나는 케이트의 존재를 통해서만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고, 케이트는 생명연장과 존엄사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진짜... 어렵다. 당신이 판사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  가슴아픈 문구들... **

 
"엄마아빠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가 누구건 간에, 사람에겐 늘 자기 아닌 딴 사람이길 바라는 반쪽이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찰나일지라도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기적이라는 걸. (p.189)"
 

"나는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언니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언니가 없으면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기 힘들기 때문에 왔다. (p.190)"

 
"안나는 매섭게 쏘아본다. "왜 내가 파티 도중에 나와야 하는데?" / '케이크와 아이스크림보다 네 언니가 더 중요하니까. 엄만 언닐 위해 이걸 해줄 수 없으니까.' (p.235)"

 
"난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예요. 단지 우리가 이긴다 해도 이긴 게 아니라고 말하려는 거예요.(p.398)"

 
"언니가 짐이 되고 있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면, 나는 언니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 때문에 더 죄책감을 느꼈다. (p.5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