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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스 - 21세기 코믹 잔혹 일러스트판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하나자와 겐고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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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저... 뭐지? 검색해봐~!" 솔직히 하루에도 이 말을 몇번씩 하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나이가 들수록 내 자신의 기억력을 신뢰할 수 없을 뿐더러 실제로 친구들과 수다좀 떨라치면 전달해야할 이야기에 대한 정보가 가물가물해져서 검색해보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게되는 인터넷으로 인해 잘못된 정보를 얻게 될 수도 있고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당하거나 저작권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사람을 직접적으로 해하는 범죄도 무섭지만 미래에는 인터넷으로 인한 범죄가 가장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모던 타임스>의 사건도 '인터넷 검색'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거래처의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일을 한다. 최근에 회사로부터 다른 팀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받고 업무를 파악하던 중 프로그램을 의뢰한 거래처의 정보가 너무나 추상적이라는 점과 그 팀의 직원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의문을 가지게 된다. 문제는 검색이다. 인터넷에 하리마자키 중학교, 안도상회, 개별 면담이라는 세 단어를 검색하면 특정 싸이트가 뜨게되고 싸이트를 클릭하는 사람에게는 정체불명의 괴한이 나타난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세 단어가 각각 검색되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동시에 검색되면 누군가에게 검색자의 정보가 흘러가고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다. 다시말해 그 단어는 특정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종의 검색시스템인 것이다. 요즘 전화 피싱 사기 사건도 많고, 아무 생각없이 인터넷 메일을 열었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등 낭패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문에 인터넷을 검색하는 동안 누군가에게 역으로 감시당한다는 설정은 꽤 기발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와닿는다.
주인공은 세 단어가 가리키는 사건을 차례로 조사하면서 정치인이자 국민적 영웅 나가시마 조가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난감해 한다. 가령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어느날 원치않게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고 모든 정황이 지목하는 인물은 너무나 거대한 존재라서 함부로 만날수조차 없는 상대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영웅을 만들어낸 과거의 특정 사건이 실은 조직적으로 은폐된 결과이고 진실을 감추기위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면, 거기다 조사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엄청난 일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주어진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그 효과가 거대해지면 인간에게서는 전체를 상상하는 힘이 깡그리 사라져. 가령 그 '거대해진 효과'가 끔찍한 일이라고 치자. 수백만 명을 가스실에서 죽이는 거라 치자고. 그 경우, 세분화된 작업을 맡은 사람에게서 사라지는 것은 '양심'이야. (p.232)"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그냥 한바탕 웃자고 씌여진 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현대사회의 복잡한 시스템과 분업화된 사회에서 부품화 되어가는 인간을 그리고자 했던 것 같다.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무서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설명에 보면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를 21세기 버전으로 새롭게 탄생 시키려 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곳곳에 찰리 채플린의 영화와 대사를 인용한 부분이 눈에 띈다. 가장 먼저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연상시키는 찰리 채플린이 오늘날까지도 위대한 배우이자 감독으로 칭송받는 것은 웃음 속에 감추어진 '알맹이' 때문이리라.
<모던타임스> 처음엔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 때문에 주목했던 책이다. 그 다음은 두께에 놀라고 곳곳에 삽입된 일러스트 때문에 흥미로웠던 책이기도 하다. 책의 줄거리와 작가의 의도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용이 점점 커졌다가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듯 결말도 좀 흐지부지해서 아쉬운 면도 있다. 첫장면부터 고문하는 장면이 불쑥 나와서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는데, 책 읽는 동안은 다른 생각 할 결흘 없이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속 주인공들처럼 다소 과장된 몸짓의 캐릭터들도 맘에 들었고,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기발한 소재와 독특한 편집은 높이 살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