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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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귀향을 보면서 아쉬웠던 것들이 소설 <한 명>으로 숨통이 트이는 기분.
근본적인 해결. 가해국의 잘못 인정과 진정한 사과가 없는 상황에.. 당국의 진실규명과 사과를 받아내려는 의지가 없는데 단순히 그들의 아픔을 굿으로 한풀이 해내려는 것이 아쉽고 또 아쉬웠었고.
그들의 모습을 너무 세게 표현하는것을 보고 과연 이렇게 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인지 보면서도 보고나와서도 불편했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많은 것들을 구구절절히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어 개인적으로 고마운 소설이 되었다.

한명이지만 한명이 아니고
한 명의 이야기지만 그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님을..
작가의 상상력과 실제 그 분들의 실화가 대화속으로 서사속으로 녹아들어가 한 명이 됨을 보여주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있을법한 모습이
담담해서 건조해서 간결해서
이것이 소설이 아니라 다큐였었나 할 정도로 일상적이어서 더 먹먹해진다.

L의 운동화. 한 명.
작가 김숨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기억의 본질.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까지..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의 나온 글들중 가장 공감하면서 읽었다.
이름없이 살던 한 명이 마지막 남은 한 명을 찾아 가면서 풍길이라는 자신을 이름을 찾아 한명을 찾아가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나비로 훨훨 날아가는 것 보다 두 발로.
이름을 가지고 스스로 찾아가는 그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걸음이다.

김 숨이라는 작가에 나의 개인적인 편애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연달아 김숨의 사회참여적인 소설 두권을 읽으면서
기억이라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세월호를 겪으면서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부분이 잊혀진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세월호 슬로건이 기억하자 0146 이었다. 잊지말자가 아니라 기억하자로..
욕하는것 보다 잊혀지는 것이 더 두렵다는 말이 생각난다.
어떤 일이든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잊지 않으려고 아니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는 기억시키기 위해.. 또는 스스로 기억하기 위해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동안 계속 순례를 할것이고
또는 그들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할 일을 하면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기억해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언젠가 이 기억해야만 하는 일들이 기념하는 일들이 되는 날이 올거라 희망한다.
그리고 기대한다.



- 그녀의 집이 아니지만, 그녀가 사는 집이다. 그녀가 태어난 집이 아니지만, 그녀가 죽음을 맞을 수도 있는 집이다.
그녀는 아침 저녁으로 양옥집을 제 몸뚱이처럼 쓸고 닦고 돌보지만, 자신이 살았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각별히 조심한다
그녀는 벽에 못 하나 박지 않는다 (196p)

그녀에게 바람이 있다면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남에게 아무 폐도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다가 죽는 것이다 (197p)

- 신에게 소원을 빈다면 그녀는 하나만 빌것이다. 고향 마을 강가로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열 세살 그때로.
인간이 마침내 달나라에 가게 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그녀는 속으로 비웃었다. 과학이 발달해 인간을 달나라에까지 보내게 되었을지는 몰라도, 그녀를 고향 마을 강가에 도로 데려다 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녀의 고향 마을 강은 달보다 더 먼곳에서 흐르고 있었다 (210p)

- 그녀는 평택 조카가 `원망스럽지만 원망하고 싶지 않다.` `세상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증오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용서할 수 없다. `

그 한 마디를 들으면 용서가 되려나?
신도 대신해줄 수 없는 그 한마디를. (248p)


- 그녀는 그이를 만나러 가는 것이 금복언니를 만나러 가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금을. 동숙언니를. 한옥 언니를, 후남 언니를. 기숙 언니를...
그녀는 마침내 그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이를 만나는 게 평생을 벼르던 일 같다.... 그녀는 그 이가 자신과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 이가 입원한 병원 또한 다른 도시에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가까이에 그이가 살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던 탓에 허탈감마저 들었다. 그렇게나 만나고 싶어 했으면서도 막상 그이를 만날 생각을 하자 그녀는 두렵고 떨린다...

세상으로 눈길을 주면서 그녀는 새삼스레 깨닫는다.
`여전히 무섭다`는 걸.

`열 세살의 자신이 아직 만주 막사에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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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5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글을 보고 난 후에 도서관에 들렀는데 마침 이 책을 발견했어요. ^^

지금행복하자 2016-09-05 20:57   좋아요 0 | URL
읽어보라는 계시일까요? ㅎㅎ

커피한잔 2016-09-0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맘이 아플거같아 읽을 용기가 안났는데 읽어봐야 겠어요 그래야할꺼같네요..

지금행복하자 2016-09-06 14:0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마음이 아플것 같아 이런 류의 채ㅣ 잘 안 읽는데.. 읽기를 잘 했다 싶었어요.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기는 소위 민주화운동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수업하고 있는 학교 안까지 최루탄과 소위 지랄탄이 돌아다니고 간간히 검문을 당하면서 학교를 다녔었던 기억이 있다. 수업교재였던 프린트물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 프린트가 불법유인물인지 누가 아냐고- 경찰서에 끌려간 친구도 있었고 검문을 피해 모르는 남학생을 데리고 학교로 들어가던 시기였었다.

심지어는 시위하다가 쫒기는데 골목골목을 다니고 담을 넘고 모르는 집에 들어가기도 하는 그런 꿈을 꾼적도 있었다. 열혈 운동권도 아니었는데.. 왜 그런 꿈들을 꿨는지...

 

L의 일이 있었던 87년은 고2였던 것 같다.

솔직히 학교 다니느라 바쁘고 사회에 관심도 없었던 고등학생이었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는데 사회보다는 나 자신에 더 열심이었던것 같다

그래도 야자시간에 밖에 나가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은 기억이 난다.

특히 시내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간간히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 시위현장에 다녀온 친구들이 있었다.

몸 가득히 최루탄 냄새를 풍기면서 두 눈이 빨개져 야자가 끝나기 전에 들어온 친구들이었다.

그냥 그려러니.. 하고 저런 학생도 있구나 했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건 대학가서였다.

책읽고 토론하고 그러면서 대학시절을 보내고 시위현장에 나갔던 적도 있다.

그러나.. 과연 내가 뭘 알고 했던 일일까 하는 것에는 지금도 의심스럽다.

그 당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을까?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할 수 밖에 없는 현상...

과연 그 행동을 이끌어낸 의식이 자발적인지는 과연...

물론 그 때의 소위 학습과 토론으로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조금은 영향을 줬을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의식을 만드는 것은 개인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집단의식이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만약 내가 그때 그 시대를 아니 그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면 그런 책을 접했을 까 싶기도 하고 그런 행동을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

 

현재 그 때 그 사람들을 만나면서 - 물론 의식적으로 만나지는 않는다. 나는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 과거이야기를 하는 것이 별로 안 좋아한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과거가 소환되고 추억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과장되고 미화되고.. 그런 느낌이 든다.

그때는 그 분위기 안에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것도 있었다고 생각드는데..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서도 과장되게 기억하고 있는 것도 불편하고..

일일히 나는 그런 사람 아니었거든요... 라고 말하고 다닐 수도 없고~

그때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같이 하게 된 것일 뿐이에요.

그정도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과거를 불러오지 마세요..

잊고 있었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기를 바라지 말라구요. ㅎㅎㅎ

기억도 안나고 굳이 기억하고 있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학교 학생이었다는 것을 정말 많이 느끼게 해준 것은 학교를 다닐 때가 아니라 지금 현재이다. 아~~~ 내가 그 학교를 다녔었구나.. 그런데 왜 나는 그들이 말하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 ㅎㅎㅎㅎㅎ  왜 저 사람들은 내가 그 사람들을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지? ㅎㅎㅎㅎㅎㅎ  출신학교에 대한 오해이고 나에 대한 오해이다 ㅋㅋㅋㅋㅋ

 

물론 이후 그 세대들이 보여주는 실망스러운 모습이 더 그렇게 느끼게 했었을 수도 있고..

실제 그 떄 학교를 다닌던 선배들.. 정계에 진출을 많이 했다.

프로필을 보면 **대학 학생회장 출신. 이라는 어구를 보면 좀.. 그렇다.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게 자랑스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어른이 된 이 사회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본인은 그런 어른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 길어졌다..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과거는 미화될 수 밖에 없고 사람은 영웅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당시의 이슈를 몰고 왔던 사람들에 이야기는 더욱더 그렇다.

가끔 그들의 평전을 읽어볼 기회가 있어 읽어 보는데.. 대부분이 그렇다.

어느면에서는 영웅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수가 없다.

 

이 책을 선택하면서 여러 번 갈등을 겪었다.

이전의 그런 책들과 별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김숨작가니까 좀 다를거야. 하다가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싶기도 하고..

실제 L이 살아있다면 지금의 그 세대들과 달랐을까? 스스로 변질되었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하고.. 여러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책 한권 고르면서 이렇게 까지 고민해본적이 최근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작가에 대해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 이런 류의 책에 대해 신뢰가 없어서이기도 했었던 것 같다.

정말 작가가 김숨이 아니었다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반신반의하면서 작가 믿고 가보자 하고 고르고

정말 숨 골라 가면서  읽었다.

 

역시 김숨이었다.

김숨은 영리했다.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과거가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L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 아니 그가 남긴 아니 누군가에 의해 남겨진 운동화에 그의 가치를 담아가고 있다. 잊고 있었고 완성되었다고 착각했던 우리들의 오만을 불러일으키고 그러는 도중에 지워졌던 진정한 가치를 운동화를 통해. 그의 운동화의 복원을 통해 우리의 의식속에서 바스라져가던 그 기억과 그것에 대한 가치들을 복원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복원 현실에 대해 알고 있다면 소설속의 복원과정이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복원에는 시간이 들수 밖에 없고 시간을 충분히 들인다면 이성은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감정적으로 독자들에게 가치를 들여미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 매개로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지금쯤은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었다. 내가 <L의 운동화>를 통해 읽은 것은 운동화의 복원이 아니라 김숨이라는 작가의 기억에 대한 복원이었고 이는 결국 그 시대를 거쳐 성장했던 우리들의 기억을 복원하는 것이었고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새로울 수 있는 그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느끼는 과거에 대한 불편함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서 그것들을 정리하고 다시 복원시켰어야하는데 그대로 묻어버리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들을 기억하는 후대들의 모습때문에 그들의 지정한 의의마저 눈감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들도 저들과 다르지 않았을 거야. 지금 이곳에 없기 때문에 저런 평가를 받을 수 있어라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지금의 감정을 이입해 그들을 폄하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 기억의 가치. 복원의 가치. 잊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책이다.  

낮지만, 작지만, 차갑지만, 담담한 목소리가 더 뜨겁고 더 크게 울리는 책이다.

 

 

 

 

-속삭임은 물질이 아니라 비물질이다. 실재하지 않은 데다 구체적인 형상을 띠지 않은 비물질은 인간의 의식과 오감을 자극한다. ( 34p)

 

-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L의 운동화를 제대로 보았다고 말 할 수 없었다. 내가 본 것은 L의 운동화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이다. 굽이 절단 난 밑창, 굽에서 떨어진 조각들, 부스러기들이 내가 본 전부다. (79p)

 

-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은 그 개인의 기록물이기도 하다는 걸. (81p)

 

- " 저 운동화가, 우리 아들이 신었던 운동화라고 하니까, 우리 아들의 운동화인가 보다 해요.... 우리 아들의 운동화 인가 보다.... 나는 솔직히 저 운동화가 우리 아들이 신었던 운동화인지 잘 모르겠어요..... 해야 할 말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침묵하는 것보다 침묵하지 않은 것이 때로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를,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말을 하듯, 모두에게 말하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으면서 크고, 낮지 않으면서 낮고, 느리지 않으면서 느리다. (125p)

 

- 그런데 신기하게도, 완전히 다른 기억들의 경우 오히려 일치를 보는 것이 쉬웠어요. 어느 한 쪽이 자신의 기억이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고 지레 포기를 하거나, 어느 한 쪽이 강력하게 자신의 기억이 맞다고 우기거나 했으니까요. 문제는 아주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기억들이었어요. 그런 경우는 어긋난 부분들을 맞추기가 어려웠어요. (132P)

 

- L의 운동화는 그러나 L이 아니다. L의 운동화가 신화화 되어서는 안된다. L이 그의 유품인 운동화에 집어삼켜져서는. (145P)

 

-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고 결정짓는 것은 시차를 두고 일어나는 여러 우연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조화가 아닐까. 그 조화에 달려 있는게.  ( 156P)

 

- "많은 이들이 이 사진때문에 나를 비난하리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것이 뭐 어떤가요. 학살이 벌어진 지 70년이 흘러 만난 두 인간일 뿐이에요. 선의의 행위를 어째서 분노 때문에 거부해야만 하는지, 나는 살아 오는 동안 이해 할 수 없었어요."

생존자는 그러면서도 그를 거대한 살인 기계의 작은 나사로 보았고, 기계는 작은 나사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헀다. 나치 전범인 그가 홀로 코스트에서 벌인 짓들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로닝은 그동안 아우슈비츠에 근무하면서 유대한 학살을 목격했다고 여러 차례 증언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이들에게 내가 목격한 가스시리과 소각장을 증언 하는 게 내 책임"이 라고 밝히기도 했다....

 

죗값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 같아.... 치러야할 죄값이 100그램인 경우, 100그램에서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말이야. 단지 죗값을 치러야 하는 기간이 연장되는 것 뿐이지,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거든..... 당장은 아니더라도 죗값을 치러야 하는 때가 언젠가는 오는 것 같아. 죗값이 100그램일 경우 20그램밖에 치르지 않았다면 언제가 80그램을 치러야 하는 때가 반드시 오는 게 아닌가 싶어. (166~167P)

 

-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뭔가를 할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197P)

 

- L의 운동화는 저의 운동화이기도 하면서 M과 J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 시절 L의 운동화와 똑같은 운동화가 몇켤레나 만들어지고 팔려 나갔을까요? 얼마나 많은 이들이 L의 운동화를 신고 다녔을까요? 그 운동화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요?   (216~217P)

 

- 제가 신발을 버린것은, 신발장에 빈자리를 마련해 좋기 위해서엿습니다. 28년 만에 복원되는 운동화를, L의 운동화이자 저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운동화를 놓아 둘 빈자리를요. (220P)

 

- 기억은 신발에서 시작된다. (223P)

 

- 밑창 굽 부분에서 탈락한 조각들을 맞추는 것은, 상실된 조각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성해야만 하는 퍼즐 맞추기기와 같다. 설사 모든 조각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 조각들을 완벽하게 맞춘다 하더라도, L의 운동화 밑창에는 복원이 불가능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모세혈관처럼 미세한 금들뿐 아니라 땀 구멍처럼 미미한 구멍들이 규칙없이, 마치 망각의 지점들처럼. (256P)

 

 - L의 운동화 밑창에 존재하는 구멍들이, 떨어져 나간 시선들 같다. 떨어져 나간 목소리들 같다. (258P)

 

- 사진은 내게 잊고 있던 신발들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산더미처럼 쌓인 신발들 중에 똑같은 신발은 없었다. 원래는 똑같았던 신발들은, 똑같은 신발이 아니었다. 그것을 신었던 사람들에 의해 전혀 다른 신발이 되어 있었다. 신발들은 다 다른데도, 3톤 분량은 족히 될 것 같은 신발들은 한점의 신발처럼 보였다. 거대한 한 점의 신발처럼 (269P)

 

- 하루종일 나는 L의 운동화 곁에 머문다. 머물기만 할 뿐 L의 운동화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지켜볼 뿐이다. 

여전히 작업하는 시간보다 지켜보는 시간이,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다.

그리고 여전히 L의 운동화는 내게 말을 걸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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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 앤드 버터 3
아시하라 히나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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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을까.
날씨가 선선해지면 책 읽기 딱 좋은 날씨라고 하지만 바람이 불고 걸어다닐만 하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높아진 하늘 뿐이다.
책을 펴고 있으되 펼쳐진 채로 있고
눈은 책을 보고 있지만 글자라도 읽고 있으면 다행이고
허공을 헤매고 있다.
오늘은 비가 와 흐릿한 하늘에 맘 잡고 읽던 책 마무리나 해볼까 하고 책을 펴지만... 손은 티비 리모콘을 잡고 있다.
본 드라마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옆에서 징그럽다고 눈총을 줘도 보고 또 보고..

이게 뭐야..
역시 책읽기 딱 좋은 계절은 여름이랑. 겨울이다.
밖으로 나가자고 유혹하지 않으니까..

서너달... 열심히 돌아다녀볼까....

이 세상에 가장 좋은 냄새중 하나가 빵굽는 냄새가 아닐까.. 고소하고 포근한 듯한 냄새. 밥 익는 냄새와는 좀 다른 냄새. 가끔 밥 익는 냄새에서는 비릿한 쌀 비린내갇은 이물적인 냄새를 맡기도 한다.
아직은 빵 굽는 냄새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는 듯하다.
물론 야채빵같은 내용물이 들어간 빵 냄새는 싫다.. 반찬냄새같다.. 순수한 빵. 오로지 밀가루와 이스트로만 발효시킨 빵..

문득... 밥 냄새보다 빵 냄새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빵은 내가 직접 굽지 않아서??



- 유즈키 선생님한테 빵을 왜 굽는 거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어. `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고. 열심히 고민하고 시험해 보고 최선을 다한 후에 그저 빵이 `자라나는 것`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 시간이 좋다고.

- ˝으음.. 기대하는 것과 믿는 건 조금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다가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당연히 실망하게 되잖아. ˝
`˝자신과는 다른 생물 인걸. 컨트롤 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
˝열심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다음은 어떻게 자라는지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거야. ˝
˝그게 지금 나의 최선이야.
담담하게 그걸 되풀이 하는 거야. ˝
˝괜찮아.˝
˝좋건 싫건 변하지 않은 건 없으니까
그 변화가 즐거워˝


이 책을 사 놓고 읽은 줄 알았는데..
심심해 다시 읽으려고 했더니...안 읽었다.
책이 하도 굴러다녀서 읽은 줄 알았다..
근데 4권이 나왔다. 언제 나왔지? 이제는 만화책 챙겨보는 것도 일이다.. 자꾸 까 먹는다.


진짜 정신 놓고 살고 있나보다 ㅎㅎ
다른 곳에서 역시나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다
책들 틈에서.. 또 살 뻔했다..
4권만 보고 3권은 안 본듯..

챙겨!!!!!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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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9-0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전 날 추워지면... 가을인데 비가 와서 비 쫄딱 맞고 집에 가서 뜨듯한 아랫목에 이불 뒤집어쓰고 만화책 읽던 때가 기억납니다. 이 기억 참.. 오랫동안 행복하면 떠오르는 기억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9-02 23:05   좋아요 0 | URL
추워졌다 더워졌어요.. 귤 먹고 싶은데...귤은 추운 날 먹어야 제맛이에요. 아랫목에 앉아서 귤까먹으면서 만화책 보는 그 맛을 곰발님도 아시는 군요..
아파트는 아랫목이 없어요.. 그래서 싫어요.

나와같다면 2016-09-02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믿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지금행복하자 2016-09-02 23:03   좋아요 0 | URL
믿는다고 하면서 실상 얼마나 믿을까요? 정말 믿는다면 기다린다는 말도 의미없을 것 같아요. 그냥 그게 사는것이니까요.. 각자의 일생 잘 살겠지 하면서요..

cyrus 2016-09-02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여름은 너무 더워서 책에 집중하기 어려웠어요. 주말에는 일부러 에어컨 돌아가는 도서관에서 책 읽었어요. 집 전기세 아낄려고요.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6-09-02 23:01   좋아요 0 | URL
휴가 안 가고 전기세 내자고 했어요.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살았죠 머.. 고등학생들이 있어서 안 틀어줄수도 없었구요~~ 이번달 전기고지서가 무서워요 ㅎㅎ
 

혹시나 해서 그래도 혹시나 해서..
보러갔다.
같이 간 사람들 아니면 보지 않았을 텐데

덕혜옹주

소설은 신파.
영화는 판타지.

요즘 유행하는 말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가 개연성이라는 말.
연출이나 내용은 별로 인데 연기발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다.
덕혜옹주는 손예진이 개연성이었다.
손예진이 아니었다면 이정도의 설득력을 가지고 왔을까 싶다. . 다른 배우들이야 익숙한 역할들이어서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극에서 신뢰감을 주는 배우의 역할을 다시 제대로 느낌..

독립운동씬 -솔직히 독립운동도 아니지만 관계되어있으니까 그런다고 하고 -은 여러번 들어서 그려러니 하고 봐서인지 안타까울뿐이었는데..
제대로 뒤통수를 친것은 내게는 마지막 엔딩이었다.
장한과 덕수궁에 앉아 사이다를 마시면서 자신은 옹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 국민의 희망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회한의 말..
잠깐만... 잠깐만...
독립운동씬보다 더 기분이 쎄해지는 대사..
과연 그들이 왕족으로써 저런 생각을 하기는 했을까?
물론 나도 그들에 대해 아는것이 많지는 않지만..
소위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가지고 있었을까?
의문이다.
어지간하면 그들의 비참한 최후에 동정심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왜 그정도의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동정심. 연민마저 없애려고 하지?
울컥하다가 그 대사듣고 팍 깨져버렸다.
나오면서 정말 엔딩은 아니야.. 진짜 아니야...

영화를 시작할때 덧붙여 줬음 좋을뻔했다.
이 영화는 감독의 희망사항을 영상화한 작품입니다라고... 그때 조선의 왕족들이 저정도는 저정도 역사의식은 가져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고
허진호감독는 생각한걸까?
궁금해지더라는...
그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조금만 조사해도 나오는 것인데..

음.....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고 하지만 그들이 저정도만 해 줬어도.. 우리의 현재가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드라마 구르미 그리는 달빛을 보면서 효명세자를 알게 되고서 실제 순조보다 효명세자가 조금만 오래 살았다면 이후의 조선이조금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조. 정조..효명세자...






하지만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
그렇다.
지금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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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3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실이 그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민중들과는 철저히 괴리된 별개의 삶이었고..나라가 망해도(정확히는 일본제국과 합병)되었으니 왕실의 권한은 사라져도 신분상의 왕가로 일제의 관리하에 들어갔으니까요.특히 왕가라는 상징성 때문에 신분상의 권한없는 이미지는 이어졌던 역학적 관계에 놓였을 겁니다. 예를들어 러시아경우는 짜르왕가체제가 국민들로 부터 혁명의 숙청대상이 직접되었으니 집안자체가 전부 몰살의 역사를 걸었던 것과는 상당한 대비가 되는 부분입니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가 볼세비키 혁명으로 막을 내리죠..그게 1917년인가 1918년인가 그랬을 겁니다.... 역사 판타지는 역사가들에게는 상당히 짜증났을 겁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8-30 12:16   좋아요 0 | URL
왕조에 환상이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완용측에 모든 책임을 몰아주고 왕족들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려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어요. 조선의 왕조몰락은 서양하고는 많이 다른데.. 차라리 우리손으로 왕조를 끌어내리는것이 낫지.. 뭘 기대한건지 모르겠습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저런 영화가 나와야하는지.. 그분께서 이씨왕족들 국내입국을 허용한 씬이 나온던데.. 그래서인가? 하고 잠깐 생각했었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30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라 파는 조건으로 고종이 원한 것은 월급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금사금인가 뭔가 해서 연봉으로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았던 것으로..

지금행복하자 2016-08-30 12:19   좋아요 0 | URL
절대 백성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한 군주는 아니었던거죠.. 명성왕후도 그렇고..... 특히 우리나라처럼 극에 몰입도가 높은 나라는 정말 조심해야할듯 합니다. 관객수 느는것 보고 더 놀라고 있습니다. 더이상 역사미화 이런 기사도 안 보이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30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다 자기 살 구석 욕심내서 그러다가.... 그리 된 거지, 무슨 애국 따위 그런 것은 쌀 한톨의 크기도 되지 않을겁니다. 전 구한말 왕조를 측은한 마음으로 보는 것에 대해 반대입니다..ㅎㅎ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6-08-30 12:32   좋아요 0 | URL
ㅎ 단호하시군요. 저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책임을 묻는것이 먼저인데.. 동정심부터 유발시키고 이제는 미화까지..
역사공부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멘탈 단디 챙기려면.. ㅎㅎ

yureka01 2016-08-3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위 답글에 보니 명성왕후가 잠깐 보여서,,제가 알기로는 사치가 상당히 심했던 걸로,,,국고 탕진도...그런데 내가 조선의 국모다? 라는 이미지는 덧칠되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나라가 망하는데 일신의 부귀영화는 조선의 기득권 세력이라면 일부를 제외한 모든 권력자들의 한결같은 모습이었죠.. 어느 역사가이던가요.. 국가의 패망은 내부적으로 망하는 길을 스스로가 제촉되기도 하였다고 서술했거든요. 백성들의 삶이야 뭐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결국 국가의 부강은 국민들의 부와 직결되는 스위치라서요....

지금행복하자 2016-08-30 12:5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미연이 잘못한거죠 ㅎㅎ 여기에서도 배우가 개연성을 가져버린겁니다... 일본인의 칼에 맞았다는 사실하나로 모든 패악들이 묻혀버렸고 거기에 한 몫 한것이 드라마이고 뮤지컬인듯 합니다. 냉정해져야 하는데 자꾸 감정적인 부분들만 부추키는것 같아 좀 화가 나는군요~

기억의집 2016-08-30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만이나 고종이나 도찐개찐이네요. 영화는 소설을 그대로 재현한 건 아닌가봐요?

지금행복하자 2016-08-30 21:07   좋아요 0 | URL
더 안좋은 각색인듯해요. 제기준으로 , 소설은 통속소설로 대중소설로 정말 소설처럼 읽히는데.. 영화는 담담하고 나름 진중한 맛을 주고 있어 진실처럼 보여요. 연출의 힘. 연기력이 만나 설득력을 가져버린거죠~~
아마 소설 그대로 하면 kbs1 에서 하는 아침드라마 느낌이 들었을 것 같은데.. 영화는 너무 잘 만들었어요.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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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향해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에서 차가움이 느껴진다
여름내내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던 폭염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슬슬 들어가려는 듯 하다
비 소식도 있고 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는 공기에 찬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이제 슬슬 몸이 간질간질 해질 때가 오겠지.
놀러다니기 딱 좋은 시기.
가을.
어서 오시게 가을.
올해처럼 그대를 기다려본적이 없는듯 하네...






쏘주 한 병을 옆에 끼고 읽어야 할 소설.
쏘주의 알싸한 향이 그대로 맡아지는 소설.
안녕 주정뱅이.
이 안녕은 어떤 안녕일까?
반가워서 인사하는 걸까? 아님 작별인사?
내가 읽은 안녕은 포차에서 서로 다른 테이블에 앉아 모르는 사이인데도 같은 종류의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평소라면 절대하지 않을
허 안녕~ 당신도 한잔 하러 왔군요 하고 인사를 건넬때의 그때의 안녕이다.
당신도? 네네 저도요?
그럼 건배~

이런 소설을 벌건 대 낮에 그것도 왠지 건전해야할 도서관에서 읽다니.. 이건 왠지 이 소설에 대한 예의가 아닌듯 하다.
인생의 맛을 알게 되면 소주가 맛있어 진다는데
음... 난 아직 인생을 모르는걸까?
화학증류주가 식도를 타고 들어갈 때의 그 싸함을 아직은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니 말이다.
쓰디쓴 쏘주보다는 달콤한 과일소주가 더 좋고 톡 쏘는 탄산이 들어간 술들이 좋으면서 쏘주 운운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소설에 대한 모욕일수도...

술도 못 마시는 것이 ㅋㅋ

보통 단편들은 읽다보면 띄엄띄엄 읽다가 한 두편씩 빼 먹기 마련인데 이 소설집은 처음부터 다 읽었다.
이런 일은 드문데.

봄밤.
삼인행
이모
카메라
역광
실내화 한켤레


한편한편 그 내용이 떠오르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소설들이다.
아름답지않은 녹녹치 않은 삶의 고단함. 거짓말. 혼자서는 도저히 버티지 못할때 친구처럼 그 옆을 지켜주는 술. 벗 삼아 애인삼아 한잔 한잔 목구멍을 넘길 때마다 버석거리는 삶의 조각들도 억지로 삼키는 그래야 살아낼 수 있는 사회의 모습들이다.
이 술을 이해해야만 하는 그 씁쓸함.
삶이 아름답지만은 않고 실제로 그 삶을 버텨주는 것은 사랑같은 순수하고 맑은 것이 아니라
증오나 미움. 욕망같은 감정일 때가 더 많은 경우를 실제로 종종 본다.

다 놓고 싶다가도 그 삶을 끌어올려주는 것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순진한 사랑이나 희생보다는 누군가에 대한 끈질긴 증오나 미움일지도 모른다.
두고보자..

삶이 10이라고 했을때 사랑 행복 이런 긍정적인 밝음은 1 이나 2 정도가 아닐까
5 정도면 무난하게 잘 살아온 삶이 아닐까
소주를 친구삼지 않아도 유행하는 사케한잔을 마실 수 있는 정도..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유연실의 목로주점의 유쾌함을 떠올릴 정도면 그래도 트렌드에 뒤떨어지지 않게 사는 그럭저럭한 삶일듯하다.

포차에 혼자 앉아 나 한잔 나 두잔.. 그렇게 잔수를 채워가다 취해 테이블에 엎드려 그래.. 그래도 이렇게 라도 사는 것이 또 인생 아니겠어~ 라고 합리화 시킬수 있는 삶에도
취해 테이블에 엎어져 18. 이런것도 사는 거라고 욕설을 내뱉는 삶에도 1 이나 2 정도의 희망과 행복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 가지고 싶어한다.
그러니 죽지 않고 살것이다.

안녕. 주정뱅이 라는 소설에서 내가 읽은 삶은 혼자 자작하다가 취해 그래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지는 게 삶이지.. 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마른 세수를 하면서 아니지... 살아봐야지.. 라고 다시 스스로를 다지기도 하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더라면서 거짓말도 하고 나 살게 해달라고 매달리기도 하고 나 살자고 두 눈 질끈 감아버리는 질근 삶의 끈도 느껴지는... 구차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라도 살고픈 그 삶의 끈길짐... 그런... 그런... 삶의 냄새가 난다..
그 곁에는 쌉싸름한 소주가 알코올향 찐하고 뿜어내고 있고...
혼자 마시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때 보고싶어 했던 그 사람이 옆에 서 있기를 기대도 하면서 실실 웃기도 하는 삶의 냄새...

바로 내 삶의 냄새...

오늘밤..
비도 오고...
삼겹살에 소주한잔 정말 해야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ㅎㅎㅎ



- 그런식으로 맥주 두캔과 소주 한병을 비우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몸은 으슬으슬 떨렸지만 속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꽉 조였던 나사가 돌돌 풀리면서 유쾌하고 나른한 생명감이 충만해졌다. 이게 모두 중독된 몸이 일으키는 거짓된 반응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까짓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젖을 빠는 허기진 아이처럼 그녀의 몸은 알코올을 쭉쭉 흡수하기를 원했다 ( 봄밤. 33p)




- 아무튼 언니 편지를 읽는데 문체인지 뭣지에 들어있는 마음이나 기운같은게 으스스 느껴지는데, 못된 말을 쓴 것도 아니고 다 평범한 말뿐이었는데, 이상하게 무섭고 서럽더라 (이모. 79p)

- 당장이라도 과도를 움켜쥐고 무엇을 찌를 듯이, 장갑 속의 언 손가락들을 바르르 떨게 만드는 이 붉고 어두컴컴한 증오는 무엇인가. 그걸 알 수 없어 그녀는 오른속으로 왼손으로 쥐었다 놓고 왼손으로 오른손으로 쥐었다놓았다 (이모. 94p)

- 그 애를 지진 이유는 단순했어. 성가시고 귀찮았던 거지. 단지 그뿐이었어 (이모. 105p)

- 나도 애초에, 이렇게 생겨먹지는 않았겠지. 불가촉천민처럼.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하게, 내 탓도 아니고, 세상탓도 아니다. 그래도 내가, 성가시고 귀찮다고, 누굴 죽이지 않은 게 어디냐? 그냥 좀, 지진거야. 손바닥이라, 금세 아물었지. 그게 나를, 살게 한거고. (이모. 106p)




- 누나는 나쁜 사람이 될 능력도 없는 사람이야. 하고. 꼭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악에 대해서 무능한 사람이야. . (카메라. 133p)

- 그렇게 꽉 쥐지 말아요. 문정씨. 그래야 살 수 있어요 (카메라. 135p)


- 그것은 어쩌면 10년전에 지자체에서 그 길을 다시 포장하면서 돌길을 깔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1년 9개월 3일전에 문정이 지나가는 말로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삶에서 취소할 수 있는건 단 한가지도 없딘. 지나가는 말이든 무심코 한 행동이든, 일단 튀어나온 이상 돌처럼 단단한 필연이 된다 (카메라. 136p)



- 나는 점점 비인칭이 되어가고 있어요. 내가 보지 못한다고 아무도 나를 주체로 여기지 않아요. 그걸 받아들이는 게 아직도 때로는 분하고 힘이 들어요. 하지만 가끔은 여전히 명랑한 주체 인 양 거울을 보고 명령합니다. 내 안의 장님이여, 시체여, 진군하라! (역광. 172p)


제일 좋았고 읽으면서 울컥했던 작품은 이모.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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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6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 낮술 한잔 땡깁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8-26 16:58   좋아요 1 | URL
ㅋ 이제 날이 좀 선선해 지면 낮술 마셔도 좋을 것 같아요. 너무 더워서 확 가버릴까봐 못 마시고 있었는데... ㅋ
가을은 낮술의 계절이 아니겠어요? ^^

후애(厚愛) 2016-08-2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시원해서 참 좋아요~
행복한 한 주 되세요.^^

지금행복하자 2016-08-29 15:10   좋아요 0 | URL
많이 시원해졌어요~ 좋은 한 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