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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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향해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에서 차가움이 느껴진다
여름내내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던 폭염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슬슬 들어가려는 듯 하다
비 소식도 있고 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는 공기에 찬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이제 슬슬 몸이 간질간질 해질 때가 오겠지.
놀러다니기 딱 좋은 시기.
가을.
어서 오시게 가을.
올해처럼 그대를 기다려본적이 없는듯 하네...






쏘주 한 병을 옆에 끼고 읽어야 할 소설.
쏘주의 알싸한 향이 그대로 맡아지는 소설.
안녕 주정뱅이.
이 안녕은 어떤 안녕일까?
반가워서 인사하는 걸까? 아님 작별인사?
내가 읽은 안녕은 포차에서 서로 다른 테이블에 앉아 모르는 사이인데도 같은 종류의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평소라면 절대하지 않을
허 안녕~ 당신도 한잔 하러 왔군요 하고 인사를 건넬때의 그때의 안녕이다.
당신도? 네네 저도요?
그럼 건배~

이런 소설을 벌건 대 낮에 그것도 왠지 건전해야할 도서관에서 읽다니.. 이건 왠지 이 소설에 대한 예의가 아닌듯 하다.
인생의 맛을 알게 되면 소주가 맛있어 진다는데
음... 난 아직 인생을 모르는걸까?
화학증류주가 식도를 타고 들어갈 때의 그 싸함을 아직은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니 말이다.
쓰디쓴 쏘주보다는 달콤한 과일소주가 더 좋고 톡 쏘는 탄산이 들어간 술들이 좋으면서 쏘주 운운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소설에 대한 모욕일수도...

술도 못 마시는 것이 ㅋㅋ

보통 단편들은 읽다보면 띄엄띄엄 읽다가 한 두편씩 빼 먹기 마련인데 이 소설집은 처음부터 다 읽었다.
이런 일은 드문데.

봄밤.
삼인행
이모
카메라
역광
실내화 한켤레


한편한편 그 내용이 떠오르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소설들이다.
아름답지않은 녹녹치 않은 삶의 고단함. 거짓말. 혼자서는 도저히 버티지 못할때 친구처럼 그 옆을 지켜주는 술. 벗 삼아 애인삼아 한잔 한잔 목구멍을 넘길 때마다 버석거리는 삶의 조각들도 억지로 삼키는 그래야 살아낼 수 있는 사회의 모습들이다.
이 술을 이해해야만 하는 그 씁쓸함.
삶이 아름답지만은 않고 실제로 그 삶을 버텨주는 것은 사랑같은 순수하고 맑은 것이 아니라
증오나 미움. 욕망같은 감정일 때가 더 많은 경우를 실제로 종종 본다.

다 놓고 싶다가도 그 삶을 끌어올려주는 것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순진한 사랑이나 희생보다는 누군가에 대한 끈질긴 증오나 미움일지도 모른다.
두고보자..

삶이 10이라고 했을때 사랑 행복 이런 긍정적인 밝음은 1 이나 2 정도가 아닐까
5 정도면 무난하게 잘 살아온 삶이 아닐까
소주를 친구삼지 않아도 유행하는 사케한잔을 마실 수 있는 정도..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유연실의 목로주점의 유쾌함을 떠올릴 정도면 그래도 트렌드에 뒤떨어지지 않게 사는 그럭저럭한 삶일듯하다.

포차에 혼자 앉아 나 한잔 나 두잔.. 그렇게 잔수를 채워가다 취해 테이블에 엎드려 그래.. 그래도 이렇게 라도 사는 것이 또 인생 아니겠어~ 라고 합리화 시킬수 있는 삶에도
취해 테이블에 엎어져 18. 이런것도 사는 거라고 욕설을 내뱉는 삶에도 1 이나 2 정도의 희망과 행복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 가지고 싶어한다.
그러니 죽지 않고 살것이다.

안녕. 주정뱅이 라는 소설에서 내가 읽은 삶은 혼자 자작하다가 취해 그래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지는 게 삶이지.. 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마른 세수를 하면서 아니지... 살아봐야지.. 라고 다시 스스로를 다지기도 하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더라면서 거짓말도 하고 나 살게 해달라고 매달리기도 하고 나 살자고 두 눈 질끈 감아버리는 질근 삶의 끈도 느껴지는... 구차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라도 살고픈 그 삶의 끈길짐... 그런... 그런... 삶의 냄새가 난다..
그 곁에는 쌉싸름한 소주가 알코올향 찐하고 뿜어내고 있고...
혼자 마시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때 보고싶어 했던 그 사람이 옆에 서 있기를 기대도 하면서 실실 웃기도 하는 삶의 냄새...

바로 내 삶의 냄새...

오늘밤..
비도 오고...
삼겹살에 소주한잔 정말 해야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ㅎㅎㅎ



- 그런식으로 맥주 두캔과 소주 한병을 비우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몸은 으슬으슬 떨렸지만 속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꽉 조였던 나사가 돌돌 풀리면서 유쾌하고 나른한 생명감이 충만해졌다. 이게 모두 중독된 몸이 일으키는 거짓된 반응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까짓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젖을 빠는 허기진 아이처럼 그녀의 몸은 알코올을 쭉쭉 흡수하기를 원했다 ( 봄밤. 33p)




- 아무튼 언니 편지를 읽는데 문체인지 뭣지에 들어있는 마음이나 기운같은게 으스스 느껴지는데, 못된 말을 쓴 것도 아니고 다 평범한 말뿐이었는데, 이상하게 무섭고 서럽더라 (이모. 79p)

- 당장이라도 과도를 움켜쥐고 무엇을 찌를 듯이, 장갑 속의 언 손가락들을 바르르 떨게 만드는 이 붉고 어두컴컴한 증오는 무엇인가. 그걸 알 수 없어 그녀는 오른속으로 왼손으로 쥐었다 놓고 왼손으로 오른손으로 쥐었다놓았다 (이모. 94p)

- 그 애를 지진 이유는 단순했어. 성가시고 귀찮았던 거지. 단지 그뿐이었어 (이모. 105p)

- 나도 애초에, 이렇게 생겨먹지는 않았겠지. 불가촉천민처럼.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하게, 내 탓도 아니고, 세상탓도 아니다. 그래도 내가, 성가시고 귀찮다고, 누굴 죽이지 않은 게 어디냐? 그냥 좀, 지진거야. 손바닥이라, 금세 아물었지. 그게 나를, 살게 한거고. (이모. 106p)




- 누나는 나쁜 사람이 될 능력도 없는 사람이야. 하고. 꼭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악에 대해서 무능한 사람이야. . (카메라. 133p)

- 그렇게 꽉 쥐지 말아요. 문정씨. 그래야 살 수 있어요 (카메라. 135p)


- 그것은 어쩌면 10년전에 지자체에서 그 길을 다시 포장하면서 돌길을 깔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1년 9개월 3일전에 문정이 지나가는 말로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삶에서 취소할 수 있는건 단 한가지도 없딘. 지나가는 말이든 무심코 한 행동이든, 일단 튀어나온 이상 돌처럼 단단한 필연이 된다 (카메라. 136p)



- 나는 점점 비인칭이 되어가고 있어요. 내가 보지 못한다고 아무도 나를 주체로 여기지 않아요. 그걸 받아들이는 게 아직도 때로는 분하고 힘이 들어요. 하지만 가끔은 여전히 명랑한 주체 인 양 거울을 보고 명령합니다. 내 안의 장님이여, 시체여, 진군하라! (역광. 172p)


제일 좋았고 읽으면서 울컥했던 작품은 이모.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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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6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 낮술 한잔 땡깁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8-26 16:58   좋아요 1 | URL
ㅋ 이제 날이 좀 선선해 지면 낮술 마셔도 좋을 것 같아요. 너무 더워서 확 가버릴까봐 못 마시고 있었는데... ㅋ
가을은 낮술의 계절이 아니겠어요? ^^

후애(厚愛) 2016-08-2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시원해서 참 좋아요~
행복한 한 주 되세요.^^

지금행복하자 2016-08-29 15:10   좋아요 0 | URL
많이 시원해졌어요~ 좋은 한 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