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기는 소위 민주화운동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수업하고 있는 학교 안까지 최루탄과 소위 지랄탄이 돌아다니고 간간히 검문을 당하면서 학교를 다녔었던 기억이 있다. 수업교재였던 프린트물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 프린트가 불법유인물인지 누가 아냐고- 경찰서에 끌려간 친구도 있었고 검문을 피해 모르는 남학생을 데리고 학교로 들어가던 시기였었다.

심지어는 시위하다가 쫒기는데 골목골목을 다니고 담을 넘고 모르는 집에 들어가기도 하는 그런 꿈을 꾼적도 있었다. 열혈 운동권도 아니었는데.. 왜 그런 꿈들을 꿨는지...

 

L의 일이 있었던 87년은 고2였던 것 같다.

솔직히 학교 다니느라 바쁘고 사회에 관심도 없었던 고등학생이었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는데 사회보다는 나 자신에 더 열심이었던것 같다

그래도 야자시간에 밖에 나가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은 기억이 난다.

특히 시내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간간히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 시위현장에 다녀온 친구들이 있었다.

몸 가득히 최루탄 냄새를 풍기면서 두 눈이 빨개져 야자가 끝나기 전에 들어온 친구들이었다.

그냥 그려러니.. 하고 저런 학생도 있구나 했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건 대학가서였다.

책읽고 토론하고 그러면서 대학시절을 보내고 시위현장에 나갔던 적도 있다.

그러나.. 과연 내가 뭘 알고 했던 일일까 하는 것에는 지금도 의심스럽다.

그 당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을까?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할 수 밖에 없는 현상...

과연 그 행동을 이끌어낸 의식이 자발적인지는 과연...

물론 그 때의 소위 학습과 토론으로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조금은 영향을 줬을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의식을 만드는 것은 개인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집단의식이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만약 내가 그때 그 시대를 아니 그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면 그런 책을 접했을 까 싶기도 하고 그런 행동을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

 

현재 그 때 그 사람들을 만나면서 - 물론 의식적으로 만나지는 않는다. 나는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 과거이야기를 하는 것이 별로 안 좋아한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과거가 소환되고 추억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과장되고 미화되고.. 그런 느낌이 든다.

그때는 그 분위기 안에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것도 있었다고 생각드는데..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서도 과장되게 기억하고 있는 것도 불편하고..

일일히 나는 그런 사람 아니었거든요... 라고 말하고 다닐 수도 없고~

그때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같이 하게 된 것일 뿐이에요.

그정도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과거를 불러오지 마세요..

잊고 있었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기를 바라지 말라구요. ㅎㅎㅎ

기억도 안나고 굳이 기억하고 있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학교 학생이었다는 것을 정말 많이 느끼게 해준 것은 학교를 다닐 때가 아니라 지금 현재이다. 아~~~ 내가 그 학교를 다녔었구나.. 그런데 왜 나는 그들이 말하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 ㅎㅎㅎㅎㅎ  왜 저 사람들은 내가 그 사람들을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지? ㅎㅎㅎㅎㅎㅎ  출신학교에 대한 오해이고 나에 대한 오해이다 ㅋㅋㅋㅋㅋ

 

물론 이후 그 세대들이 보여주는 실망스러운 모습이 더 그렇게 느끼게 했었을 수도 있고..

실제 그 떄 학교를 다닌던 선배들.. 정계에 진출을 많이 했다.

프로필을 보면 **대학 학생회장 출신. 이라는 어구를 보면 좀.. 그렇다.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게 자랑스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어른이 된 이 사회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본인은 그런 어른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 길어졌다..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과거는 미화될 수 밖에 없고 사람은 영웅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당시의 이슈를 몰고 왔던 사람들에 이야기는 더욱더 그렇다.

가끔 그들의 평전을 읽어볼 기회가 있어 읽어 보는데.. 대부분이 그렇다.

어느면에서는 영웅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수가 없다.

 

이 책을 선택하면서 여러 번 갈등을 겪었다.

이전의 그런 책들과 별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김숨작가니까 좀 다를거야. 하다가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싶기도 하고..

실제 L이 살아있다면 지금의 그 세대들과 달랐을까? 스스로 변질되었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하고.. 여러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책 한권 고르면서 이렇게 까지 고민해본적이 최근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작가에 대해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 이런 류의 책에 대해 신뢰가 없어서이기도 했었던 것 같다.

정말 작가가 김숨이 아니었다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반신반의하면서 작가 믿고 가보자 하고 고르고

정말 숨 골라 가면서  읽었다.

 

역시 김숨이었다.

김숨은 영리했다.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과거가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L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 아니 그가 남긴 아니 누군가에 의해 남겨진 운동화에 그의 가치를 담아가고 있다. 잊고 있었고 완성되었다고 착각했던 우리들의 오만을 불러일으키고 그러는 도중에 지워졌던 진정한 가치를 운동화를 통해. 그의 운동화의 복원을 통해 우리의 의식속에서 바스라져가던 그 기억과 그것에 대한 가치들을 복원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복원 현실에 대해 알고 있다면 소설속의 복원과정이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복원에는 시간이 들수 밖에 없고 시간을 충분히 들인다면 이성은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감정적으로 독자들에게 가치를 들여미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 매개로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지금쯤은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었다. 내가 <L의 운동화>를 통해 읽은 것은 운동화의 복원이 아니라 김숨이라는 작가의 기억에 대한 복원이었고 이는 결국 그 시대를 거쳐 성장했던 우리들의 기억을 복원하는 것이었고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새로울 수 있는 그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느끼는 과거에 대한 불편함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서 그것들을 정리하고 다시 복원시켰어야하는데 그대로 묻어버리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들을 기억하는 후대들의 모습때문에 그들의 지정한 의의마저 눈감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들도 저들과 다르지 않았을 거야. 지금 이곳에 없기 때문에 저런 평가를 받을 수 있어라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지금의 감정을 이입해 그들을 폄하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 기억의 가치. 복원의 가치. 잊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책이다.  

낮지만, 작지만, 차갑지만, 담담한 목소리가 더 뜨겁고 더 크게 울리는 책이다.

 

 

 

 

-속삭임은 물질이 아니라 비물질이다. 실재하지 않은 데다 구체적인 형상을 띠지 않은 비물질은 인간의 의식과 오감을 자극한다. ( 34p)

 

-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L의 운동화를 제대로 보았다고 말 할 수 없었다. 내가 본 것은 L의 운동화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이다. 굽이 절단 난 밑창, 굽에서 떨어진 조각들, 부스러기들이 내가 본 전부다. (79p)

 

-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은 그 개인의 기록물이기도 하다는 걸. (81p)

 

- " 저 운동화가, 우리 아들이 신었던 운동화라고 하니까, 우리 아들의 운동화인가 보다 해요.... 우리 아들의 운동화 인가 보다.... 나는 솔직히 저 운동화가 우리 아들이 신었던 운동화인지 잘 모르겠어요..... 해야 할 말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침묵하는 것보다 침묵하지 않은 것이 때로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를,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말을 하듯, 모두에게 말하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으면서 크고, 낮지 않으면서 낮고, 느리지 않으면서 느리다. (125p)

 

- 그런데 신기하게도, 완전히 다른 기억들의 경우 오히려 일치를 보는 것이 쉬웠어요. 어느 한 쪽이 자신의 기억이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고 지레 포기를 하거나, 어느 한 쪽이 강력하게 자신의 기억이 맞다고 우기거나 했으니까요. 문제는 아주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기억들이었어요. 그런 경우는 어긋난 부분들을 맞추기가 어려웠어요. (132P)

 

- L의 운동화는 그러나 L이 아니다. L의 운동화가 신화화 되어서는 안된다. L이 그의 유품인 운동화에 집어삼켜져서는. (145P)

 

-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고 결정짓는 것은 시차를 두고 일어나는 여러 우연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조화가 아닐까. 그 조화에 달려 있는게.  ( 156P)

 

- "많은 이들이 이 사진때문에 나를 비난하리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것이 뭐 어떤가요. 학살이 벌어진 지 70년이 흘러 만난 두 인간일 뿐이에요. 선의의 행위를 어째서 분노 때문에 거부해야만 하는지, 나는 살아 오는 동안 이해 할 수 없었어요."

생존자는 그러면서도 그를 거대한 살인 기계의 작은 나사로 보았고, 기계는 작은 나사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헀다. 나치 전범인 그가 홀로 코스트에서 벌인 짓들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로닝은 그동안 아우슈비츠에 근무하면서 유대한 학살을 목격했다고 여러 차례 증언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이들에게 내가 목격한 가스시리과 소각장을 증언 하는 게 내 책임"이 라고 밝히기도 했다....

 

죗값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 같아.... 치러야할 죄값이 100그램인 경우, 100그램에서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말이야. 단지 죗값을 치러야 하는 기간이 연장되는 것 뿐이지,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거든..... 당장은 아니더라도 죗값을 치러야 하는 때가 언젠가는 오는 것 같아. 죗값이 100그램일 경우 20그램밖에 치르지 않았다면 언제가 80그램을 치러야 하는 때가 반드시 오는 게 아닌가 싶어. (166~167P)

 

-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뭔가를 할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197P)

 

- L의 운동화는 저의 운동화이기도 하면서 M과 J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 시절 L의 운동화와 똑같은 운동화가 몇켤레나 만들어지고 팔려 나갔을까요? 얼마나 많은 이들이 L의 운동화를 신고 다녔을까요? 그 운동화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요?   (216~217P)

 

- 제가 신발을 버린것은, 신발장에 빈자리를 마련해 좋기 위해서엿습니다. 28년 만에 복원되는 운동화를, L의 운동화이자 저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운동화를 놓아 둘 빈자리를요. (220P)

 

- 기억은 신발에서 시작된다. (223P)

 

- 밑창 굽 부분에서 탈락한 조각들을 맞추는 것은, 상실된 조각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성해야만 하는 퍼즐 맞추기기와 같다. 설사 모든 조각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 조각들을 완벽하게 맞춘다 하더라도, L의 운동화 밑창에는 복원이 불가능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모세혈관처럼 미세한 금들뿐 아니라 땀 구멍처럼 미미한 구멍들이 규칙없이, 마치 망각의 지점들처럼. (256P)

 

 - L의 운동화 밑창에 존재하는 구멍들이, 떨어져 나간 시선들 같다. 떨어져 나간 목소리들 같다. (258P)

 

- 사진은 내게 잊고 있던 신발들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산더미처럼 쌓인 신발들 중에 똑같은 신발은 없었다. 원래는 똑같았던 신발들은, 똑같은 신발이 아니었다. 그것을 신었던 사람들에 의해 전혀 다른 신발이 되어 있었다. 신발들은 다 다른데도, 3톤 분량은 족히 될 것 같은 신발들은 한점의 신발처럼 보였다. 거대한 한 점의 신발처럼 (269P)

 

- 하루종일 나는 L의 운동화 곁에 머문다. 머물기만 할 뿐 L의 운동화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지켜볼 뿐이다. 

여전히 작업하는 시간보다 지켜보는 시간이,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다.

그리고 여전히 L의 운동화는 내게 말을 걸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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