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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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대표라고 하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데뷔작인 이 책은 사실 두 번째 작품이란다.
이 책보다 미국에서 송어낚시가 먼저 쓰였지만 발표는 이 책이 먼저였다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송어낚시보다는 읽기가 좀 더 편했달까
사실 그의 문체가 어렵거나 엄청 난해한 건 아니지만 오히려 축약된 문체로 인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걸 완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의 책은 내겐 좀 어렵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의 작품이 나온 시대적 배경이나 문화적 배경 같은 걸 알고 본다면 그 느낌은 좀 더 다르겠지만 그런 걸 다 무시하고 오로지 글로서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리라
이 책에 주요 인물인 리 멜론은 남북전쟁 때 남부 군 장군이었다던 오거스터스 멜론 장군 즉 자신의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늘 제멋대로 살고 제대로 된 직장 따윈 가진 적도 없으며 그저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그에게 남부 군 장군이었던 오거스터스 멜론 장군은 그가 가진 유일한 명예인지도 모른다.
비어있는 집에 들어가 몇 달이고 살아가고 술에 취하고 약에도 손을 대면서 그냥 살아가는 삶을 택한 그를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공감이 어렵고 그러다 보니 몰입 또한 쉽지 않다.
또한 그의 친구이자 이 책의 화자인 제시 또한 리와 별다를 것 없는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굶는 것도 마다않고 작은 도둑질 역시 거리낌 없이 하며 섹스 또한 내키는 대로... 이러한 삶의 방식은 1960년대 당시 미국 전반에서 흘렀던 히피 문화와도 관계가 있으며 어쩌면 베트남전에 대한 피로로 현실도피를 택한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삶의 방식은 어딘가 비슷하다.
그저 물 흘러가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물질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고도 목가적이기까지 한 삶은 늘 일에 찌들어 있고 피곤에 눌려 살아가는 요즘의 시선으로 보면 충분히 엉뚱하지만 여유롭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라는 남부 장군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는 게 아이러니다.
어쩌면 그런 장군 따윈 없는지도 모르겠다. 리의 자긍심과는 별도로...
리 역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장군 할아버지는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존재일 수도 있고... 그토록 갖고 싶었던 로이 얼의 트럭도 그렇고  모터사이클 역시 그에게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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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제션 - 그녀의 립스틱
사라 플래너리 머피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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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섹시한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부각되는 표지가 왠지 에로틱하게 느껴졌던 포제션은 그러나 생각했던 거랑 다른 분위기의 책이었다.
죽은 아내가 되고 싶었다는 띠지의 문구를 봐서 어느 정도 내용을 유추할 수 있겠지만 주인공 에디는 이미 죽은 사람을 못 잊어 그리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육체를 통해 망자의 영혼과 만나게 해주는 일을 한다.
이런 일을 채널링이라 하는 데 그녀가 속해있는 엘리시움 소사이어티는 개별적으로 혹은 비밀스럽게 음지에서 이런 일을 하고 이런 사람을 찾던 수요를 양지로 끌어올려 사업화한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그녀처럼 혼에게 몸을 빌려주는 사람을 바디라고 하고 그들이 좀 더 쉽게 육체와 이탈될 수 있도록 약물을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의 특성상 바디들은 좀체 이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데 에디는 이곳에서 5년을 일한 베테랑이지만 그녀가 이 일을 잘 해내는 데에는 그녀만의 비밀이 있다.
뭔가 비밀스럽고 남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는 그녀 에디에게 새로운 고객이 찾아왔다.
그의 이름은 패트릭
그가 불러내고자 하는 이는 몇 년 전에 죽은 실비아라는 아내였고 그가 에디에게 아내의 물건이라고 보내준 것에는 립스틱이 있었다.
아무에게나 어울리지 않는 그 립스틱을 바르고 패트릭을 만난 순간부터 에디는 뭔가를 느꼈다.
그에게 강하게 끌리는 자신을 느낄 뿐만 아니라 이제껏 그녀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게 해줬던 마음을 비우고 상담자와 거리두기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거기다 약에서 깨어났음에도 자신 속에는 그의 아내였던 실비아의 흔적이 남아있어 계속 그녀를 부추기고 있다.
이제 에디는 자신을 충동질해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스스로의 의지인지 아니면 실비아의 뜻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녀의 죽음에 뭔가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용 자체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죽은 아내를 못 잊어 그리워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에게 끌린 여자가 아내와 남편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혀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에디가 느끼는 혼란과 그녀가 보는 환상이 뒤섞이고 누군가의 귀띔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두 부부 사이의 비밀이 있었다는... 이런 종류의 책을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다소 평범한 소재를 죽은 사람에게 자신의 육체를 빌려준다는 채널링이라는 특수함을 넣었지만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조금 늘어져 초반의 그 은밀함이나 비밀스러운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게 아쉬웠고 엄청난 비밀을 숨긴듯한 에디의 비밀이란 것도 생각보다 밋밋해서 결정적인 한 방을 못해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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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롭 - 위기의 남자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5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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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 사건 전담반에서 콜드 히트가 나왔다.
오래전 미제 사건의 증거를 현대적인 수사기법인 DNA 분석을 통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DNA와 일치하는 걸 콜드 히트라고 하는데 이번에 나온 콜드 히트는 자그마치 22년 전 사건이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게 의심스러운 점이 드러났고 수사팀 반장은 이 사건을 해리에게 맡긴다.
여대생을 목졸라 잔혹하게 살해한 이 사건 당시 그녀의 목 주변에 이 혈흔이 묻어있었는데 그게 이번에 누구의 피인지 드러났지만 용의자는 당시 8살이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조사 중 여러 사건 증거물이 섞였는지 혹은 누군가의 실수였는지 그걸 알아보라는 지시였다.
이런 때 경찰 수뇌부의 관심을 사고 정치적 압력이 들어오는 정치적인 사건인 이른바 하이 징고 사건이 역시 해리에게 배당되었다.
그 사건의 피해자는 뜻밖에도 해리와 천적관계에 있다 경찰에서 쫓겨나다시피한 후 시의원이 되어 돌아와 경찰 조직 모두에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밀고 있는 어빈 어빙의 아들이었고 그는 늦은 밤 홀로 호텔에 투숙한 후 그 호텔 앞에서 떨어진 채 죽어있었다.
얼핏 보면 명백히 자살 사건임에도 어빙은 이 사건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고 경찰국장은 그의 손을 들어줘 어빙의 요구대로 해리에게 이 사건을 맡긴 것이다.
누구보다 정치적인 사건을 싫어하는 그지만 어쩔 수 없이 사건을 맡은 해리는 사건을 수사하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죽은 사람의 등에서 특이한 모양의 멍을 발견한 해리는 단박에 그 멍이 어떻게 생긴 건지 파악하고 증거를 쫓다가 이 모든 게 결국 시의원인 어빙의 부정과 연결되어있음을 밝혀낸다.
한편 성범죄자들의 사회복귀를 준비시키는 곳인 사회적응훈련원에 들어가 있는 콜드 히트 사건 용의자인 펠을 만나러 갔다 그곳에서 그들의 재활을 돕는 정신과 의사 해나를 만나고 해리는 그녀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하지만 늘 성범죄자들에 대해 약간의 동정심도 없을 뿐 아니라 여러 사건의 경우를 통해 그들은 절대로 교화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해리에 반해 해나는 그들을 동정하고 그들에게 꾸준한 치료와 상담을 하면 다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데다 그녀의 아들 문제도 있어 둘은 서로 강하게 끌리지만 그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
늘 자신 스스로도 말했듯이 어딘가 깊은 슬픔이나 비밀을 간직한 여자에게 끌리는 해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여자와 관계를 맺었고 거기에다 이번엔 그가 신청했던 드롭 연장 즉 퇴직을 유예하는 일에 그가 원했던 5년이 아닌 불소급 4년이라는 다소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등 일과 사랑 모두에서 어느 때와 달리 흔들리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에게는 경찰이라는 직업이 가장 어울리는 일일뿐 아니라 사랑하는 딸이 고교 졸업과 동시에 일자릴 잃는 일은 가장 원하지 않는 결과이기에 드롭의 결과는 그를 좌절시키기 충분했다.
이렇게 이번 편에선 늘 범죄자를 잡는 일에 사명을 가지고 강한 신념으로 처리하던 해리가 실직의 두려움에 고민하는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딸아이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의 일자릴 잃을까 봐 걱정하는 여느 평범한 가장의 모습은 낯설듯 익숙하게 다가오고 그래서 더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이 징고 사건에 발을 깊숙이 들인 한편 미해결 사건에서 진전을 보인 해리 앞에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엄청난 악의의 발견은 그로 하여금 인간의 악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지 근원적인 회의를 느끼게 했을 뿐 아니라 끝없는 범죄와의 전쟁에다 정치적인 계산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형태에 피곤함은 느끼게 하지만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있는 거라던 전직 파트너 라이더의 격려는 그에게 큰 힘이 된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해리 그에게는 형사의 임무가 사명이었고 라이더의 말은 그의 사명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지만 믿었던 사람의 변절이라는 또 다른 슬픔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늘 사건 앞에 정치적인 판단이나 계산 같은 그 어떤 터부도 용납하지 않았던 해리
이번에도 결국 홀로 남는다. 마치 홀로 남아 혼자 떠돌던 코요테의 모습처럼 고독하지만 정의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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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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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인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빼어난 작품 단 한 권으로 깊이 각인되게 한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간이 나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어딘지 우아한 듯 수려한 필체로 중년의 남자가 홀로 서기하는 일상을 그리고 있는데 사건사고가 있거나 뭔가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해서 읽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이혼으로 인해 원하지 않던 홀로서기를 하게 된 이 남자 오카다 다다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흔한 이혼남의 모습을 하지 않고 왠지 생활감이 묻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은 그를 우아하다고 평한다.
편리한 시설이 완비된 아파트 같은 건 마다하고 공원이 낀 오래된 주택을 세 얻고는 잘 아는 건축가에게 부탁해 집을 편리하게 리모델링 하며 느긋하게 솔로생활을 하는 것부터 일반적이지 않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도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나름의 고집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런 점들이 매사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소비하는 전처와 맞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늘 계획한 대로 밀고 나가고 모든 일에 거침이 없었던 전처와의 생활에 익숙했던 다다시는 홀로되면서 모든 일에 서툴고 속도도 느리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솔로 생활에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요즘 말로 아날로그형 인간에 가까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직장 경력이 오래되어 풍족하진 않아도 여유롭게 생활할 정도의 자금력이 있는 것과는 별도로 자신이 사는 곳의 안락함과 적당한 문화생활을 즐기기를 원할뿐 별다른 물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느긋하게 솔로생활을 즐기는 게 가능했던 것인데 이런 여유로움도 잠시, 우연히 들른 곳에서 얼마 전 헤어진 불륜 상대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스가와라 가나와 조우하면서 달라진다.
그녀와의 첫 만남부터 두근거림을 느꼈고 만나는 동안 자신과 너무나 달랐던 아내와의 성향과 달리 자신과 무척이나 비슷한  취향과 성향의 그녀와는 이별조차 자신이 원하던 바가 아닌 오랜 기다림에 지친 그녀가 떠나간 것이어서 어느 정도 미련이 남아있던 상태였기에 그녀와의 우연한 만남이 계속 이어지길 은밀하게 바라지만 그녀는 그런 기미조차 없이 그저 반가운 친구처럼 대할 뿐이었다.
이 남자는 이런 때조차 적극적으로 대시하거나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주변에서 원할 때 도움을 줄 뿐...
모든 것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이렇게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관조적인 성향이 강한 이 남자를 주변에서는 우아하다고 평가한다.
스스로도 생각보다 솔로생활이 즐겁기만 한 남자는 옛 연인과 다시 예전의 연애 감정을 되살리면서 하루하루 여유롭게 보내던 생활이 생각보다 만족스러워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셋이서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그녀에게 같이 살기를 권유하지만 그녀는 선뜻 승낙하지 않는다.
여자의 몸으로 혼자 아픈 아버지를 간호하며 사는 거보다 자신과 함께하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남자는 의아해진다.
왜 승낙하지 않는 걸까? 그녀는 자신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할 즈음 그녀의 홀로된 아버지와 뜻하지 않은 동거를 하게 되는 상황이 닥치게 되고 타인과 공간을 함께한다는 게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떨어져서 가끔 만날 때보다 애틋한 마음이 줄어든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그녀와의 생활이 생각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이미 이 모든 일을 예견했던 걸까?
그때야 비로소 그녀와 함께한다는 건 이 모든 걸 감수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남자는 불혹이 훨씬 넘은 나이에서야 타인과 생활하는 것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우아한 생활을 버리고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함께할 수 있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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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7번째 기능
로랑 비네 지음, 이선화 옮김 / 영림카디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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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당시의 나치 암살작전을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책 HHhH를 읽었을 때도 느낀 점이지만 저자는 엄청난 양의 정보와 취재를 바탕으로 상당히 역사적 사실에 근접하게 묘사하는데 있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전작도 물론 놀라웠지만 이번에 나온 책 언어의 7번째 기능 역시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사람이거나 실화를 바탕으로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이나 지식인들 사이에서의 견제와 질투를 섞어놓은데다 살인사건이라는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있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 구성을 탄탄하게 조여주고 있다.
당대 지식인의 대표이자 평론가이며 사회학, 언어학을 이용한 대담한 이론을 전개했던 걸로 유명한 인물인 롤랑 바르트가 다음 대선주자인 미테랑과의 점심 식사 후 돌아오는 길에 트럭에 치여 사고를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얼핏 보면 우연한 사고로 보이지만 그의 사고를 심상치 않게 생각한 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로 인해 그의 사고를 조사하게 된 바야르 형사는 바르트 주변을 탐문하지만 그의 주변은 온통 언어학과 기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어 평범한 경찰인 바야르에게는 도대체 그들이 하는 대화를 이해하기 어렵고 그들의 상대를 향한 질투와 질시 어린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런 그에게 젊은 교수이자 역시 기호학을 공부하는 시몽이 도움을 주게 되고 이때부터 둘은 파트너가 되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여기저기 여러 사람을 만나러 다니게 된다.
웬만한 지식인들에게도 기호학이 도대체 뭘 연구하는 학문인가라고 물으면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호학이란 학문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둘은 바르트 주변을 탐문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토론 클럽 로고스 클럽에 대해 알게 되고 알려진 언어학의 여섯 번째 기능 외에 또 하나의 기능 즉, 7번째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을 이용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신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바르트가 바로 그 언어의 7번째 기능에 대해 알게 되고 그 텍스트가 그의 사고와 동시에 사라졌음을 알게 되는 바야르와 시몽
단순한 사건으로 보였던 바르트의 사건 이면에 엄청난 힘을 가진 누군가가 7번째 기능을 손에 넣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두 사람
과연 그들이 찾고자 하는 무한한 힘을 가진 언어의 7번째 기능을 뭘 말하는 건지 그리고 과연 누가 그 걸 손에 넣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도 불사하는지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두 사람을 따라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당대의 학자와 이론가들에 섞여 일반인들 중에서도 토론과 자신의 논리를 이용해 다른 사람과 대결을 하는 로고스 클럽에서 벌어지는 설전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과 논리를 다 이해하는 건 아니었지만 상당히 방대한 지식과 폭넓은 사고로 상대방을 논리로 무릎 끓이고 경청하는 사람 역시 그들이 펼치는 주장을 듣고 승패를 결정하며 심지어 자신의 손가락을 걸면서 승부에 임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느 경기장이나 다름없이 열기에 차있었다.
화려한 말들의 향연이고 엄청난 지식의 대결이어서 그 싸움이나 진배없는 토론을 지켜보는 게 바르트를 죽이고 텍스트를 손에 넣은 범을 찾는 재미와 별도로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밋거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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