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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등산일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평점 :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 알려진 미나토 가나에 가 아무도 죽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서 낸 소설이 등산을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 `여자들의 등산 일기`이다.
제목에서부터 등산에 대한 걸 다룬 소설임을 나타내듯이 이 책은 여러 파트로 나눠 각각의 소설 속 화자가 왜 산을 오르는지 그 사연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가 안고 있는 문제나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단순히 그 사람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나 고민에 대한 이유 같은 것만 다루고 등산은 그저 단순히 배경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한데 그 사람이 등반하는 산이 가진 배경이나 위치 그리고 등반하는 코스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도 담겨 있어 그야말로 등산 일지나 등산 일기와 같다.
오늘은 몇 시에 일어나 어떤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도중에 어떤 꽃을 봤으며 동행하게 된 사람 이야기나 날씨이야기에 바라본 풍경에 대한 감상 등등 산을 오르는 사람이 쓴 일지 같은 내용에다 그 사람이 등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와 그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를 곁들여 다큐적인 부분에다 소설적인 재미를 더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단 백화점에 근무하며 곧 결혼을 앞둔 여자 리쓰코의 이야기는 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생각조차 하지 않은 시부모와의 합가 이야기가 결혼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될 즈음 툭 튀어나오고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한 고민을 하다 우연히 맘에 드는 등산화를 손에 든 김에 등산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이것조차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같이 가기로 했던 일행 중 한 사람은 빠지고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동료와 함께 산을 올라야 하는 처지가 된 데다 그 동료는 처음부터 산을 오르는 게 어떤 거라는 자각조차 없는 차림으로 나타나 스트레스를 줘 결국은 폭발하듯 불만이 표출되어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하지만 이런 불만도 산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경관의 감동에 묻혀버린다.
사실은 평소 그 동료에 대한 불만이 제법 있었던 데다 자신이 평소에 존경하던 상사와의 불륜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자신의 결혼에 회의가 더욱 회의가 든 이유도 있었던 것인데 산에서 대화를 통해 동료의 또 다른 모습과 직장 상사 부부의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면서 미워했던 마음이 스르르~
또 다른 에피소드는 자매가 있는 집이라면 더욱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다.
평소부터 늘 모범적이고 공부도 잘하는 언니와 비교를 당하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던 동생
게다가 언니는 의사 형부를 만나 줄곧 평탄하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데 반해 자신은 대학을 나와서도 뚜렷한 직장이 아닌 프리랜서 번역 일을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하는 양파 밭일을 돕고 있는 데 그런 모습을 언니와 형부가 한심하게 보면서 늘 깔보고 있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자신은 혼자 남은 아버지가 걱정되어 고향으로 내려왔고 남들이 볼 땐 한심할지 몰라도 아버지를 돕고 간간이 번역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현재의 자신이 누가 뭐래도 좋다. 하지만 자신 몰래 아버지와 언니가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그녀 역시 고민이 많아졌는데 이럴 때 언니가 자신과 등산 여행을 계획해 등산을 하던 중 비는 쏟아지고 대화를 하다 다툼이 이어지던 과정에서 언니의 충격 발언을 듣게 된다.
평소에 작은 것 가지고도 다투고 서로 짜증을 내는 자매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너무나 빨리 단결하고 단합하는 게 또 자매들 간의 의리... 이 들의 문제도 역시 큰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라는 건 부모형제 아니 그 누구라도 해결해줄 수 없고 오롯이 혼자서 감당하고 이고 짊어져야 할 짐과 같은 것이기에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힘든 등산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다. 인생이란 산을 오르듯 혼자서 묵묵히 견디고 올라야 한다는 걸...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만은 않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통해 객관적으로 비쳐주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공감 가는 부분도 많고 덕분에 등산에 대해 궁금증도 많이 생겼다.
정말 이렇게나 좋을까 하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역시 십수 년이 흐른 후 헤어진 연인과 함께했던 그 장소를 다시 들러 과거의 자신을 다시 보고 그때 둘이서 느꼈던 감동을 새삼 확인하며 다시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하는 뉴질랜드 통가리로 편인데 과거와 현재를 교차편집해서 그때 함께여서 모든 것이 빛나고 행복했던 모습도 혼자서 자신이 원하던 길을 찾아 과거의 한때를 회상하는 지금의 모습도 다 좋았다.
그녀처럼 행복했던 순간의 추억의 장소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 정도로...
전체적으로 따듯하면서도 인위적인 느낌이 아닌 현실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와 갈등을 섞어놓아 공감이 많이 갔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