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스트 걸 얼라이브
제시카 놀 지음, 김지현 옮김 / 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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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기해자면서 피해자 행세를 오지게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들의 행동은 어처구니없을 정도지만 자신들이 맞는다고 굳게 믿고 있어 그야말로 벽을 보고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져 이렇게 피해의식이 많은 사람은 절로 피하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 중 한 사람 역시 그렇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일의 원흉이 자신들 패거리의 짓이지만 부상을 당했다는 이유로 여론몰이에 나서 동정 표를 얻고 심지어 그걸로 돈까지 버는 파렴치함을 보여 마치 뻑뻑한 고구마를 먹은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여기에 가해자들로부터 그런 행동을 유발했다는 이유를 들어 진짜 피해자는 곤욕을 치렀을 뿐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는 사람들에게서 진정한 피해자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게 이 책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다.

아니 파넬리는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자 이제 곧 결혼을 할 예비신부다.

남편감으로는 대를 이은 부자에다 잘생긴 미남이며 본인 스스로도 잘나가는 금융인이라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없는 한 쌍이지만 아니는 이제 곧 촬영을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워져있다.

십여 년 전 자신이 전학했던 사립학교 브래들리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새로 전학한 학교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게다가 티파니는 남다른 발육으로 인해 눈에 띄는 존재였고 스스로도 학교의 인기인 무리에 끼고 싶어 한 게 그녀에게 엄청난 고난이 될 줄은 미처 몰랐으리라.

처음 술을 마신 날 스스로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했고 그때 생각했던 그 일이 벌어졌다는 건 그녀의 회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봐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한 듯 보였지만 아니는 이름마저 개명하고 성공의 길을 걷는 듯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끊임없이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면서 자신의 몸을 학대한다.

누가 봐도 날씬하지만 스스로는 뚱뚱하다 여기며 절식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자존감이 낮음을 그리고 남자친구의 엄청난 부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로 여긴다는 점에서 그녀에게 뭔가 심각한 이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건 뭘까 왜 남자친구의 사랑이 아닌 돈으로 쌓은 보호가 필요했던 걸까

단순히 어릴 적의 실수와 그 실수로 원치 않던 성폭행을 당한 소녀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지만 책에선 좀처럼 단서를 주지 않는다.

그저 티파니의 걱정과 예민해진 신경 그리고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데서 성폭행 말고 뭔가가 더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누가 봐도 그녀가 피해자인데 그녀는 왜 자신이 스스로 나서서 촬영하지 않으면 누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갈 즈음 드디어 그날의 내막이 밝혀진다.

진도가 좀처럼 나아가지 않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일부만 공개하면서 아니의 심경 변화나 남자친구를 바라보면서 그녀가 느끼는 심정 등 주로 아니의 들쑥날쑥한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진행이 너무 느렸다는 점... 진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촬영팀이 촬영하고자 한 내용이 그때 그 사건이 맞는지에 대한 정보를 너무 꽁꽁 숨겨놔서 긴장감이 유지되기가 싶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진 책이었다.

이 책은 스릴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국 모든 걸 스스로 깨고 나와야 했던 티파니이자 아니의 성장소설에 가깝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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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하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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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제법 소장하고 있는 츠지무라 미즈키... 그녀가 처음 호러 장편소설을 썼다는 것부터 일단 호기심을 불러온다.

일상과 비일상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를 제대로 묘사하는 작가가 그린 호러란 어떨까

소재는 뭘까

호러라고 하면 우선 떠올리는 괴담이나 초현실적인 거? 아니면 잔혹하기 그지없는 살인마의 살인 행각?

하지만 작가는 이런 내 예상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우리 주위의 일상에서 늘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그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극대화한 게 사뭇 공포스러웠다.

무서운 악몽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두렵게 하지만 현실을 무너뜨릴 수 없는 귀신보다 현실에서 나와 매일 마주 보는 평범한 사람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일단 시작은 늘 그렇듯 낯선 전학생이 혹은 낯선 누군가가 내 일상으로 새롭게 들어오면서부터다.

평범했던 일상은 낯선 이방인의 존재에 의해 알게 모르게 흐트러지기 시작하지만 그 변화를 눈치채기엔 너무 교묘하고 은밀하다.

그래서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고 이상하다 생각될 즈음은 벌써 낯선 이방인이 주위의 모든 걸 장악하고 난 뒤...

게다가 그 사람에게 힘을 보태는 건 내가 매일 보는 사람이거나 친구 심지어는 가족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로 사방이 포위되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그들은 그렇게 평범한 얼굴로 내 주위로 다가와 하나둘씩 사람들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생각을... 가치관을 들이밀며 받아들이길 강요하고 끝내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뭐가 문제인지 눈치채지도 알지도 못한다.

그렇게 서서히 오염되었다. 모두가 야미하라에게...

첫 장에서는 평범한 사립 고등학교에 낯선 전학생이 오면서 시작된다.

처음부터 한 소녀에게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거리낌 없이 사적 영역까지 침범해오다 그 여학생에게 집으로 찾아가도 되는지를 묻는 모습은 누가 봐도 공포스럽다.

여학생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꺼린다는 걸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밀어붙이는 걸로 모자라 여학생이 마음속으로 흠모하던 한 학년 위 선배와 가까워지는 걸 두고 협박성 발언까지 거침없이 내뱉는다.

창백한 얼굴에 마른 몸매 어딘지 멍한 듯한 눈에 사회성이라고는 1도 없는 듯한 그의 이름은 시라이시

뾰족뾰족한 이빨에 고르지 않은 치열... 결정적으로 미소라고 짓는 게 아주 사악하게 느껴진다.

누가 봐도 섬뜩한 인상에 하는 짓까지 이 모양이니 여학생이 겁을 먹고 두려워할 만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어둠을 주변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세뇌시키는 야미하라들을 물리치는 사람 즉 또 다른 의미의 야미하라였다는 게 키포인트!!

이렇게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새롭게 리모델링된 후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진 아파트 단지에 연쇄적으로 사건과 사고가 발생한다.

그곳에 이사 온 여자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모인 학부모들 모임에서 이질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두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을 관찰하면서 지켜보는 위치에 있다 어느샌가 그 들 속에 들어가 자신도 모르는 새 감염당한 채 두려움에 쫓기는 모습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아이를 키우고 학부모회 같은 모임 비슷한 걸 해 본 적이 있다면 이런 분위기가 어떤 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른 그야말로 아이라는 공통적인 매개체만 없으면 서로 마주할 일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시기와 질투가 넘치고 사람들끼리 은근히 편을 갈라 서로 흉을 보기도 하는 등 피곤한 일의 연속이다.

그런 점을 작가는 캐치해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악의로 물들여가는 야미하라로 인해 공포스럽게 변해가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책에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이웃에서 사람들의 악의가 빚어내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데 그 모습이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더 긴장감 넘치고 공포스러웠다.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화자 역시 달라서 단편처럼 느껴지지만 마지막에는 그 이야기들을 한 데 묶는 비밀이 밝혀지면서 또 다른 반전을 보여주는 야미하라

역시 호러 소설도 츠지무라 미즈키다운...그녀만의 느낌으로 가득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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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대여점 - 무엇이든 빌려드립니다
이시카와 히로치카 지음, 양지윤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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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통계에도 나와있다.

잘 생긴 미남 미녀들이 사회생활에서도 그 외모 덕을 본다는...

월급도 좀 더 받고 승진도 좀 더 빠르다는 그 뉴스를 보고 확실히 인생은 불공평하구나 하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같은 조건이면 잘생긴 사람을 선호한다는 것 역시 사실이기에 세상에는 그렇게나 많은 성형외과가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물리적인 힘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외모를 누군가로부터 빌릴 수 있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원하는 외모를 빌려준다는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롭기도 하고 발상이 신선해서 더 눈길이 간다.

할아버지로부터 여우를 부릴 수 있는 능력을 물려받은 아즈마 안지

그의 밑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외모를 변신해 주는 일을 하는 변신 여우 넷을 거느리고 외딴 마을에서 외모 대여점을 연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아 사람들에게 외모를 빌려주는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각가지 사연을 풀어놓는다.

사실 이런 포맷은 다양한 걸 소재로 나와있어 익숙하다 할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펼쳐놓고 어떤 물건이나 음식 혹은 어떤 장소를 통해 위안과 위로를 받는다는 힐링 소설이 한동안 대세였던 만큼 다양한 종류로 나와있어 이 책 역시 익숙하다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데에는 사람의 외모를 대여한다는 신선한 발상에 누구나 원하는 잘생기고 이쁜 외모를 가진다 해서 원하는 걸 쉽게 얻을 수 있다기보다 사람은 외모가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자신만의 장점을 찾아 발전시키고 자신의 개성을 살리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다소 진부하지만 진리인 내용을 좀 더 흥미롭게 그려낸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장점이라 할 수 있을 듯...

여기에다 남자로 태어나 남자로 살면서 여장을 하고 싶어 하는 동생을 위해 외모를 대여해 잠시라도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겪어보며 힘든 길을 걸어갈 동생을 걱정하는 형의 이야기나 자신의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섭식장애로 고통받는 소년을 설득하기 위해 외모를 대여한 남자의 이야기 같은... 흔하지 않은 에피소드를 통해 다양한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게다가 짧은 글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에겐 무엇보다 각각의 에피소드의 길이가 순식간에 읽을 만큼 짧다는 점도 어쩌면 이 책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뻔한 내용을 약간이라도 뻔하지 않게 그리는 것...그리고 거기에 사람들이 흥미 있어 하는 부분을 양념처럼 섞는 것 이를테면 안지의 할아버지가 죽을뻔했던 사연과 여우의 복수 이야기, 아빠의 죽음과 안지의 출생에 얽힌 사연 같은 걸 섞어놓은 것처럼...

이 두 가지 요소를 잘 섞는다면 뻔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할지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각자 개성이 있어 이런 부분을 잘 살려서 드라마로 만든다면 훨씬 더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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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사 1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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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범죄수사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크라임 스릴러소설뿐만 아니라 그것이 알고 싶다 와 같은 TV 프로도 즐겨보는 편이다.

특히 미제 사건에 대한 관심이 많은 데 보면서 매번 느낀 건 범죄 사건이 벌어진 후 초등수사의 중요성이었다.

범죄현장을 보고 단번에 수사 방향을 정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선입견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기에 그 잠깐의 선입견으로 인해 수사 방향이 틀어지면 어떤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 책에 더 관심이 갔다.

과연 TV에서나 보던 미제 사건을 장강명이라는 작가는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서 아무도 몰랐던 범인의 실체에 닿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컸다,

강력수사 1계의 강력 1팀 1반에 소속되어 있는 연지혜 형사는 22년 전 신촌에서 벌어진 미제 사건인 여대생 살인사건의 재수사를 맡게 된다.

당시 미모의 여대생이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누군가에 의해 칼에 찔려 죽은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많은 수사인력이 총동원되어 샅샅이 뒤졌지만 범인 검거에 실패한 사건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증인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재수사는 당연하게도 쉽지 않았고 그때 당시 참고인을 중심으로 다시 증언을 들었지만 여전히 단서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였을까 그때 당시 증언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죽은 피해자 민소림에 대해 알아가는 연지혜 형사는 누구보다 이쁘고 똑똑해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민소림이 사실은 인기는 있었을지 몰라도 친한 친구 한 명 제대로 없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성격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존재감을 드러낸 독서클럽...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고 토론하던 클럽의 존재를 알게 된다.

당시에는 누구도 제대로 몰랐던 또 하나의 단서였다.

게다가 사건 당시 CCTV에 잡힌 용의자의 모습을 통해 키와 체격을 특정하고 유전자감식 결과를 근거로 특정 혈액형을 가지고 기존의 전과자를 대상으로 하나둘씩 소거해가는 지루한 과정이 펼쳐지지만 아직까지는 특정 지을 만한 용의자는 나오지 않는다.

한편 그날 민소림을 살해했던 범인의 시점도 나오지만 그의 고백 같은 글은 우리가 흔히 크라임 스릴러에서 본 범인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그는 처음에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것 역시 누군가를 살해했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 아니라 그저 경찰에게 잡힐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는 온갖 지식을 끌어다 자신에 대한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기보다 그저 작가가 생각하는 도스토옙스키에 나오는 주인공들에 대한 생각이 나 살인에 대한 생각 등을 비롯해 여러 가지 지식을 곁들여 사유하는 걸로 페이지를 채워서 독자로 하여금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는 1도 주지 않고 그저 그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만 알 수 있게 했다.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다 보면 나오는 책 속의 한 코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백과사전 같은 것처럼

이야기와 전혀 연관이 없는 건 아니지만 흐름과는 큰 상관이 없는... 그런 느낌으로 혼자서 회자하고 있는 부분이 사실은 좀 거슬렸다. 전체적인 집중력을 흩트려놓는 달지...

책 전체에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데 그중에서도 죄와 벌과 백치에 대한 해석이 흥미로웠고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방향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하나의 미제 사건을 수사한다는 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미제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과 달리 많은 사람들의 지난한 노력과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라는 걸 연지혜를 비롯한 강력 1팀의 수사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재수사는 1편에서는 범인의 윤곽을 좀처럼 특정할 수 없었다.

그저 민소림이라는 죽은 피해자가 가진 성격이나 당시의 분위기만 스케치했을 뿐...

하지만 녹록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피해자가 왜 죽음에 이르렀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결과는...

역시 2편을 읽어봐야 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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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것들
제스 루리 지음, 안현주 옮김 / 네버모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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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도 그렇고 이 사건으로 인해 성범죄자 등록 법을 시행하게 되었다는 문구만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성범죄가 발생하고 그 범인을 쫓는 과정도 물론 있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오히려 주인공이 왜 누구에게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일을 말할 수 없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긴장감이 떨어지거나 몰입감이 떨어지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언제 드러날지에 대한 궁금증만으로도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영리하고 모범생인 열두 살 소녀 캐시는 겉으로는 별문제 없어 보이는 평범한 집안의 막내딸이지만 예술을 한다는 이유로 직장을 다니기는커녕 언제나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꾸미는 엄마 그리고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캐시가 보이는 태도는 단순히 집에 돈이 없고 아빠가 늘 술을 마신다는 이유로 보기엔 어딘지 석연치 않다.

그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침대가 아닌 옷장이나 바닥에서 잠들고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도 절대로 화장실을 가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아빠의 기분을 살피고 학교에서도 절대로 눈에 띄는 행동을 하려 하지 않는다.

분명 그 집안에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 존재하고 있고 아이들은 그걸 입 밖에 내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이런 태도는 인근에 사는 남자아이들이 가면을 쓴 누군가에게 연쇄적으로 끌려갔다 풀려나고 그 아이들이 성적 공격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공격을 당했다는 소식에 대해서도 대수럽지 않은 듯한 태도를 보이는 데다 부모라면 자식들 걱정을 하는 게 당연한데도 전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마치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고 자신들은 절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게다가 일 년에 두어 번 여는 그 수상하기 짝이 없는 파티는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다 중간에 하나둘씩 모두들 헛간으로 몰려간다.

영리한 소녀 캐시가 자신의 아빠와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의심스러운 눈길을 돌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캐시의 아빠와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의심은 커지지만 결정적인 증거나 단서는 없다.

단지 캐시의 두려움이 점점 커질수록 책을 읽는 사람 역시 그 기분에 동조되어 긴장감이 고조되어갈 뿐...

그러다 마침내 기다렸던 결정적 사건이 벌어진다.

이제까지와 달리 이번에 공격당한 소년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아이는 캐시가 마음에 담아 둔 친절한 가브리엘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범인이라 짐작되는 사람을 알면서도 그리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소녀는 스스로 범인을 찾아 나서고 끝내 범인과 마주친다.

사실 사건 자체는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하지만 누구도 남자아이가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짐작조차 쉽지 않았던 시기였고 일단 시대적 배경이 현재가 아닌 1989년을 배경이라는 점만 기억해두면 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범인을 쉽게 검거할 수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운 나쁘게 끌려갔다 돌아온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서 불량하다 낙인찍히거나 집안 환경상 누구에게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된 상태의 아이들이었다는 것도 사건이 커지게 된 데 한몫했다.

전체적으로 뭔가 잔인하고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거나 하지 않지만 읽는 내내 언제 터질지 모를 것 같은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뒤로 갈수록 점점 빨라지는 속도감이 엄청나게 몰입하게 한다.

번역상의 문제인지 아니면 작가 특유의 문체인지 다소 모호한듯한 표현이나 이질감 느껴지는 문구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소녀 캐시가 느끼는 불안감과 불안정한 심리를 제대로 표현해 내고 있다.

역시 믿고 보는 네버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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