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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것들
제스 루리 지음, 안현주 옮김 / 네버모어 / 2022년 7월
평점 :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도 그렇고 이 사건으로 인해 성범죄자 등록 법을 시행하게 되었다는 문구만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성범죄가 발생하고 그 범인을 쫓는 과정도 물론 있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오히려 주인공이 왜 누구에게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일을 말할 수 없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긴장감이 떨어지거나 몰입감이 떨어지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언제 드러날지에 대한 궁금증만으로도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영리하고 모범생인 열두 살 소녀 캐시는 겉으로는 별문제 없어 보이는 평범한 집안의 막내딸이지만 예술을 한다는 이유로 직장을 다니기는커녕 언제나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꾸미는 엄마 그리고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캐시가 보이는 태도는 단순히 집에 돈이 없고 아빠가 늘 술을 마신다는 이유로 보기엔 어딘지 석연치 않다.
그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침대가 아닌 옷장이나 바닥에서 잠들고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도 절대로 화장실을 가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아빠의 기분을 살피고 학교에서도 절대로 눈에 띄는 행동을 하려 하지 않는다.
분명 그 집안에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 존재하고 있고 아이들은 그걸 입 밖에 내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이런 태도는 인근에 사는 남자아이들이 가면을 쓴 누군가에게 연쇄적으로 끌려갔다 풀려나고 그 아이들이 성적 공격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공격을 당했다는 소식에 대해서도 대수럽지 않은 듯한 태도를 보이는 데다 부모라면 자식들 걱정을 하는 게 당연한데도 전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마치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고 자신들은 절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게다가 일 년에 두어 번 여는 그 수상하기 짝이 없는 파티는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다 중간에 하나둘씩 모두들 헛간으로 몰려간다.
영리한 소녀 캐시가 자신의 아빠와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의심스러운 눈길을 돌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캐시의 아빠와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의심은 커지지만 결정적인 증거나 단서는 없다.
단지 캐시의 두려움이 점점 커질수록 책을 읽는 사람 역시 그 기분에 동조되어 긴장감이 고조되어갈 뿐...
그러다 마침내 기다렸던 결정적 사건이 벌어진다.
이제까지와 달리 이번에 공격당한 소년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아이는 캐시가 마음에 담아 둔 친절한 가브리엘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범인이라 짐작되는 사람을 알면서도 그리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소녀는 스스로 범인을 찾아 나서고 끝내 범인과 마주친다.
사실 사건 자체는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하지만 누구도 남자아이가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짐작조차 쉽지 않았던 시기였고 일단 시대적 배경이 현재가 아닌 1989년을 배경이라는 점만 기억해두면 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범인을 쉽게 검거할 수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운 나쁘게 끌려갔다 돌아온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서 불량하다 낙인찍히거나 집안 환경상 누구에게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된 상태의 아이들이었다는 것도 사건이 커지게 된 데 한몫했다.
전체적으로 뭔가 잔인하고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거나 하지 않지만 읽는 내내 언제 터질지 모를 것 같은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뒤로 갈수록 점점 빨라지는 속도감이 엄청나게 몰입하게 한다.
번역상의 문제인지 아니면 작가 특유의 문체인지 다소 모호한듯한 표현이나 이질감 느껴지는 문구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소녀 캐시가 느끼는 불안감과 불안정한 심리를 제대로 표현해 내고 있다.
역시 믿고 보는 네버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