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의 죄 - 범죄적 예술과 살인의 동기들
리처드 바인 지음, 박지선 옮김 / 서울셀렉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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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소호라 하면 예술가들이 모인 예술가들의 거리라는 인식이 강한데 그런 곳이었던 소호도 어느샌가 자본이 흘러들어 임대료는 폭등하고 명품이 조금씩 늘어가는... 여느 도시의 힙한 곳과 다를 바가 없어지고 있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하기야 요즘은 어디든 색다른 곳으로 유명세를 타다 보면 자본이 흘러들고 그 자본의 논리에 따라 모든 것의 가격이 인상되면서 원래 있던 주민들은 하나둘 내몰리고 온갖 프랜차이즈나 명품점이 자리를 차지해 처음 그곳이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라지고 그저 그렇고 그런 곳으로 전락해버리는 일이 악순환되고 있는듯하다.

이 책 소호의 죄는 그들이 어떻게 타락해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소호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미술 중개인으로 살아가던 잭슨의 오랜 친구 부부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시작되는 소호의 죄는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그곳과 예술가라 칭하는 사람들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름난 미술작품 컬렉터인 어맨다 올리버가 자신의 집에서 총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남편이자 억만장자인 필립이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고 경찰서에 가서 자백하면서 이 비극적인 사건은 쉽게 풀리는듯했지만 필립의 변호사가 개입해 그가 사건 발생 당시 다른 곳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제시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경찰이 범행을 자백한 범죄자를 쉽게 놓아줄 리 없고 필립의 회사에서는 사립탐정을 고용해 그의 무죄를 증명하고자 하는데 그 사립탐정은 이 들 부부의 오랜 절친이자 필립의 딸 멜리사의 대부이기도 한 잭슨의 또 다른 친구인 호건이었고 필립의 무죄를 믿고 싶은 만큼 어맨다를 죽인 범인을 꼭 찾고 싶은 마음에 호건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도움을 준다.

잭슨의 소개로 어맨다에게 앙심을 가질만한 용의자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그들의 알리바이를 추적하는 호건은 지금은 사립탐정이지만 경찰 출신이 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충실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보통의 평범한 남자였고 그런 그의 눈에 소호에 사는 자칭 예술가라는 사람들의 행태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특히 필립은 아내를 두고서도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곁눈질하고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걸로 유명한데 그 문제가 두 사람의 다툼의 원인이었기에 어맨다의 죽음에서 책임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두 번째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필립의 전처인 앤젤라

그녀는 필립의 아이를 낳은 후 그의 바람 상대였던 어맨다 때문에 버림받았고 이혼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필립에 대한 미련과 원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용의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세 사람의 처음과 끝 그리고 애증관계를 모두 알고 있는 잭슨은 그래서 그들이 사건 당시 내세운 그들의 알리바이가 분명함에도 그들을 완전하게 믿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혹은 호건을 내세워 그들을 조사하고 그들의 행적을 뒤쫓는 과정에서 어맨다와 필립의 어린 딸인 멜리사 주변을 맴돌고 있던 젊은 예술가 폴의 수상함을 눈여겨보게 된다.

소호 주변을 맴돌면서 자칭 예술가라 칭하며 그가 하는 예술 활동이란 게 유명한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는 그렇고 그런 행위이지만 그가 소호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이유 중 하나가 잘생긴 그의 외모 덕분이란 걸 간파한 호건과 잭슨은 그에게서 비밀스러운 냄새를 맡고 집요하게 그의 뒤를 쫓다 그의 비밀스러운 작업에 대해 알게 된다.

평범한 호건의 눈에 그들 소호 사람들은 예술을 핑계로 난잡하게 놀아나고 끊임없이 배우자 몰래 바람이나 피우면서도 외부의 사람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만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있는 쓰레기 집단이나 다름없었고 그림이나 조각 혹은 사진 한 장에 거래되는 가격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부풀려져 부자들의 배를 채우는지 그 과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기야 평범한 사람 누군들 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평범한 예술가들이 모여살던 소호가 넘쳐나는 자본에 의해 예술에 가치가 메겨지고 또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갤러리에 전시를 해서 서로 사고파는 과정을 통해 또다시 가격이 올라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드는 데 이용되는 것 그 이상이 아닌 오로지 그들만의 리그나 다름없었다는 씁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현대 미술이 어떻게 어린 예술가들로부터 쉽게 작품을 손에 넣고 그 작품을 홍보를 통해 가격 형성을 해 부를 창출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예술이라 하는 것과 외설의 그 모호한 경계를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지 그 이중성과 그들만의 논리를 꼬집고 있는 소호의 죄는 범인을 찾아가는 스릴러와 예술세계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고발이 적절하게 잘 섞여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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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 스토리콜렉터 75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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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어 자신이 행복했다는 걸 그 행복을 놓친 다음에서야 알 수 있다.

잘 나가는 남편과 사랑하는 아들딸을 두고 이제 곧 셋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는 메그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이 얼마나 선택받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깨달은 건 자신이 출산한 셋째 아이 밴을 눈앞에서 잃어버리고 나서였으며 그 이후 자신이 당연한 듯 누린 행복을 누군가는 애타게 갖고 싶어 한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로부터 눈앞에서 아이를 가로채간 애거사는 메그와는 반대되는 삶을 살아왔다.

어릴 적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때 아무도 그녀 곁에 있지 않았고 제대로 애정도 보살핌도 받은 적이 없는 그녀는 남편과 아이가 있는 제대로 된 가정을 꿈꾸지만 그녀에게 아이는 허락되지 않는다.

애거사는 아이만 있으면 모든 것이 제대로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오늘도 누군가에게서 아이를 훔쳐 올 생각을 한다. 그런 그녀의 눈에 띈 게 바로 메그

애거사의 입장에서 메그는 위에 이미 두 아이가 있고 남편이 셋째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자신이 하나를 가져도 될 것이라 짐작하고 모든 것을 철저히 계획하고 또 계획한다.

떠나버린 애인을 불러들이고 셋이서 완벽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한편 예상치 못한 임신은 남편 잭으로부터 볼멘소리와 불만의 소리를 듣게 했지만 메그는 지금의 모습에 별다른 불만은 없다.

그런 그녀의 평온을 깨는 건 남편 친구 사이먼이 그녀 뱃속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일 가능성을 주장하면서부터...

남편 몰래 단 한 번의 실수는 출산을 앞두고서 내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지금 현재의 삶에 만족하기에 출산을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메그의 모습과 일상을 죽 지켜보며 관찰하던 애거사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리라곤 생각조차 않는 메그의 모습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느슨하게 시작된다.

그리고 처음부터 임신한 여자로 보이던 애거사가 왜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면서 그녀의 일상을 관찰하는 걸까 의심되는 순간 그녀의 거짓말이 드러나고 그녀의 계획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맞듯 스피드를 올리기 시작한다.

애거사의 불행했던 과거, 그녀가 왜 아이에게 집착하는지에 대한 사연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그녀가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위태로운 모습으로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이렇게 위태로워 보이는 그녀가 과연 어떤 방법으로 계획을 실행에 옮길지가 궁금해질 즈음 의외로 침착하고 완벽하게 벼락같은 스피디로 보란 듯이 벤을 부모의 눈앞에서 인터셉트하는 데 성공한다.

그녀의 범행 장면은 그야말로 과감하고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깔끔한 한판승!

이후 사라진 아이를 둘러싼 일대 소동은 대부분 짐작한 대로 흘러간다.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연일 그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서 모두가 사라진 아이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할 즈음 누군가가 제보를 해온다.

그 제보로 그들 부부의 은밀한 비밀이 만 천하에 드러나고 이제는 동정받는 부부에서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로 그리고 아이의 행방보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새롭거나 신선한 소재도 아니고 앞으로의 전개 방향도 짐작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몰입해서 보게 하는 건 역시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 싶다.

뚜렷한 범죄 사건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처절한 모성과 사랑받고 싶어 하는 외로운 여자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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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 사막의 망자들 잭 매커보이 시리즈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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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출간 1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옷을 입고 나온 허수아비

당시에도 재밌게 읽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어도 역시 재밌는 걸 보면 왜 10주년 기념으로 다시 출간된 건지 이해가 간다.

`나는 죽음 담당이다`라는 강렬한 문구로 시작했던 시인에서 자살로 위장한 살인을 일삼던 연쇄 살인마이자 일명 시인이라 불리던 남자의 정체를 밝힌 헤로인인 잭 매커보이 기자의 또 다른 이야기를 담은 `허수아비`는 역시 시인만큼 강력한 범죄자를 내세우고 있다.

일명 `허수아비`라고 불리는 사람은 현대인들이라면 모두가 피해 갈 수 없는 온갖 온라인상을 돌아다니며 그가 가진 정보를 이용해 마치 거미가 길목마다 거미줄을 쳐 거기에 걸린 먹잇감을 꽁꽁 묶어놓듯이 손발을 묶어버린다.

신용카드를 못쓰게 하고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이메일이며 휴대폰을 무력하는 건 일도 아닌 상황... 현대인들에겐 손발이 묶여 꼼짝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은 일이리라

이렇게 되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의 잭 매커보이는 자랑스럽게 다니던 LA 타임스에서 해고 통보를 받게 되고 새로 온 애송이 여기자 안젤라 쿡을 수습사원으로 데리고 다니다 우연히 그가 쓴 기사를 보고 항의하는 전화를 받으면서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흑인들이 모여사는 곳에 한 백인 댄서가 트렁크에 목 졸린 채 질식사한 사체가 발견되고 우연히 그 차를 훔친 남자아이가 범인으로 몰려 잡혔지만 그 아이의 할머니는 무죄를 주장한다.

그 사건으로 자신을 해고시킨 신문사에 빅엿을 날리기로 한 매커보이는 사건을 조사하다 진짜 그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단서를 잡게 되지만 그 사건은 자신의 수습기자인 안젤라와 데스크의 배신으로 어쩔 수 없이 연합하게 된다.

안젤라가 조사한 또 다른 트렁크 살인사건 기사를 보고 자신이 조사하는 사건과의 유사점을 발견한 매커보이는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지만 누군가 그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의 모든 행동을 제어하기 시작한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되고 통장에는 돈이 다 인출되고 없으며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던 재소자와의 약속은 영문도 모른 채 미뤄지지만 모든 인터넷 기기에 약한 매커보이는 위험성은 깨닫지 못했으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자신이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FBI 요원이자 전 애인이었던 레이첼에게 전화를 걸면서 위기를 탈출하게 된다.

트렁크에서 질식사한 사체가 발견되지만 용의자가 금방 밝혀졌던 사건들... 그 사건들은 모두 용의자가 쉽게 밝혀짐으로써 제대로 된 수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용의자를 체포하는 걸로 끝났지만 이 모든 게 다 범인이 주도했다는 걸 밝혀내는 매커보이와 레이철

하지만 그뿐... 그 범인의 얼굴은커녕 정체조차 알 수 없다.

매커보이의 위상과 연봉이 달라진 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화했고 그 변화에 발을 맞추지 못한 매커보이는 결국 조직에서 도태되지만 기자로서의 감은 누구보다 빠를 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요령 또한 남다른 매커보이가 이번엔 얼굴도 모르는 범인 찾기에 나섰다.

우리가 평소 아무런 생각 없이 올리는 작은 정보나 짧은 글이 나쁜 짓에 어떻게 쓰일 수 있고 내 정보가 그런 것으로 인해 얼마나 쉽게 드러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허수아비`는 몰입감이 끝내줄 뿐 아니라 온라인상의 정보관리의 허점과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 정보관리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면서도 이렇게 쉽게 뚫릴 것이라곤 생각해보지 않았고 이런 걸 이용해 어떻게 악용할 수 있는지 제대로 몰랐던 게 아닐까 생각하면 그 허점을 집어내 연쇄 살인마의 도구로 쓴다는 설정을 한 마이클 코넬리의 상상력은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언제 읽어도 매력적인 마이클 코넬리! 새로운 책이 나오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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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라파엘 몬테스 지음, 최필원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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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를 스토킹하지만 평범한 여느 스토커와 조금 다른 스토커와 스토킹을 당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피해자라는 다소 이색적인 시놉이 끌린 책 퍼펙트 데이즈는 확실히 여느 스토킹과는 조금 다르다.

모든 시점은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인 테우의 시선으로 그 광기를 표현하고 있는데 광기가 뜨겁거나 미칠듯한 스피드가 아닌 서늘하고 느린 속도로 표현하고 있어 기존의 작품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광기인 건 분명한데 붉고 뜨거움이 아닌 푸르거나 하얀 빛의 서늘한 광기라니...

미치광이 중에는 상당히 머리가 영리한 사람이 있는데 그들의 영리함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궤도를 보이는 점에서 더 두각을 나타내 웬만한 사람은 그들의 행적을 종잡기도 예측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스릴러에 이런 미치광이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은데 이 책의 주인공 테우 역시 범상치 않은 두뇌회전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스토킹을 하게 된 남자 테우는 의대생이면서 그가 유일하게 좋아한 사람이 게르트루드라 이름 붙인 해부용 시신이라는 점에서 여느 정상적인 남자와 다른 즉,미치광이 스토커로서의 자질이 보인다.

그가 우연히 참석한 파티에서 첫눈에 마음에 든 여자 클라리시에게 접근하고 싶어 하지만 이성과의 교재가 전무했던 테우에겐 그게 쉽지가 않아 애를 써서 한 행동이 오히려 비웃음을 당하는데 하필 상대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는 점이 테우에겐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녀는 테우와 달리 연애 경험도 풍부하고 거기다 머리까지 좋아 남자들이 하는 허튼수작 따윈 통달한지 오래여서 서툰 테우의 행동 중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건 없다.

하지만 그녀가 술에 취해 그에게 한 행동은 그로 하여금 없던 용기를 내게 했고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된다.

클라리시는 테우의 약간은 음침한 접근 방식을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단호하게 거절하는데 그녀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애원하고 매달리는 테우는 더 이상 행동에도 제동이 걸리지 않게 된다.

스스로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것이 그녀를 사랑하고 지켜주기 위함이라는 자기 기만은 자신의 행동에 면죄부를 줘 끝내는 그녀를 납치하면서도 모든 것이 그녀를 위하는 일이라 말하는 테우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사람이란 참으로 이상해서 자신의 행동이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닌 그 사람을 위한 행동이라는 명분이 서면 그다음부터는 어떤 짓을 해도 거침이 없다. 그게 불법이던 아니던 이미 안중에는 없다.

모든 게 그 사람을 위해서라는 명분은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일종의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보통 사람이 아닌 테우 역시 그녀를 납치하고 감금하면서 스스로에게 명분을 준다.

그의 이런 뜻과 달리 하루아침에 자유롭던 삶에서 손발이 묶이고 원하지 않는 약물에 취해야 하는 클라리시는 그를 구슬려도 보고 애원도 해보지만 당연하게도 테우는 그녀의 말을 듣는 듯 마는 듯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뿐 아니라 그녀의 행동마저도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를 사랑한다 말하는 그를 그녀가 받아들일 거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살짝 맛이 가버린 테우만 모를 뿐...

그녀가 마치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 여행을 떠난 것처럼 교묘하게 모두를 속여 넘겼던 테우지만 이런 잔머리도 결국은 꼬리를 밟히고 모두가 그들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하면서 이 광기의 끝은 어딜까 나름대로 짐작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 책은 결말조차 시원하고 개운하지 않다.

조금씩 미쳐가는 테우의 정신 상태를 보는 것도 그런 그에게 잡혀 마치 나비처럼 구속당한 클라리시가 서서히 체념하고 희망을 버리는 모습도 마치 서서히 미쳐가며 뒤죽박죽 뒤엉켜버린 테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이 유쾌하지 않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진짜 미치광이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듯 병적이고 침울하지만 뻔하지 않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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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씽 인 더 워터
캐서린 스테드먼 지음, 전행선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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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시체를 묻기 위해 땅을 파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쉽게 땅을 파는 것이 구라라고 투덜대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그녀가 묻으려고 하는 사람의 정체는 이내 밝혀진다.

요즘 부부 중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으면 범인은 대부분 남은 배우자라는 공식에 맞게 그녀가 묻으려고 하는 시체는 역시 남편이다.

이쯤 되면 부부간에 애정이 식었거나 둘 중 누군가가 부정을 저질렀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살다 보니 더 이상 참기 싫어 끝장을 낸 권태기의 부부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 부부는 결혼한 지 갓 석 달이 된 따끈따끈한 신혼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도대체 이 부부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궁금해하면서 그녀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넘어간다.

에린이 보자마자 첫눈에 빠진 남자 마크는 잘 나가는 투자자문가였고 그녀 역시 촉망받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젊고 매력적인 둘은 이내 사랑에 빠져 교제를 시작한 후 1년이 지난 즈음 마침내 결혼 계획을 짜고 있었다.

청첩장을 돌리고 결혼식장을 예약하고 둘은 마냥 핑크빛으로 행복이 가득했는데 석 달 후남편은 차디찬 시체가 되고 아내는 그런 그를 몰래 묻기 위해 땅을 파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그들이 이런 결말을 맞게 된 원인은 과연 뭐였을까?

마크의 느닷없는 실직이 원인이었을까 아니면 고대하던 허니문 장소인 보라보라에서 아무도 모르게 습득한 거액의 돈과 다이아몬드 때문이었을까

마크의 예상 못 한 실직으로 불안감을 안고 도착한 보라보라는 황홀할 만큼 멋진 장소였고 그곳에서만큼은 걱정을 잊고 스쿠버다이빙을 마음껏 즐기기로 결심한 두 사람을 기다리는 건 바다 한복판에서 마치 잡아달라는 듯 떠다니던 가방 하나와 그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돈과 다이아몬드였다.

주인이 없는 가방을 처음 습득했을 당시 이 두 사람은 당연하게 그 가방의 임자를 찾아 주려고 리조트 측에 전달했지만 운명이었는지 그 가방은 부부의 손에 다시 돌아왔고 당연한 궁금증에 둘은 가방을 열어보면서 이 모든 혼돈은 시작된듯하다.

그래도 마크가 예전처럼 잘 나가는 투자자문가로 근무하고 있었다면 부부는 가방을 열어보고도 양심과 도덕에 따라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에게 닥친 불행에 남편 마크의 탓도 크다.

돈이 궁하고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한 젊은 부부에게 주인 없는 돈은 분명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으리라

급하게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부부...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대부분이 예상한 그대로의 패턴을 밟는다.

누군가가 그들을 지켜보고 누군가가 그들의 집에 몰래 침입해 뒤지는 일이 발생하면서 마크는 겁에 질려 팔기 힘든 다이아몬드를 버리고 싶어 하지만 에린은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그리고 두 사람의 장래를 위해서 다이아몬드를 팔고 싶어하고 이를 위해 자신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만났던 범죄자에게까지 도움을 청하기 시작하면서 마크와 갈등을 겪는다.

이렇게 주운 다이아몬드를 처분하는 일을 놓고 서로 간의 의견 격차를 보이기 시작하는 부부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어떤 괴물이 숨어있는지 스스로도 모를 때가 있다는 걸 위기에 처하고서야 알게 되는 에린은 주운 가방 속에 있던 휴대폰을 켜서 자신들을 쫓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려고 할 만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사태를 직시하지만 마크는 에린의 적극적인 태도에 겁을 먹고 돈만으로도 만족하고 싶어 할 만큼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이런 갈등의 와중에도 에린은 남편 마크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그에게 조금 실망했을지언정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 왜 그녀가 소설 처음에 남편의 시체를 묻기 위해 땅을 파야 했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녀는 왜 땅을 파야 했을까?

작가 스스로가 배우여서인지 소설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하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휴양지 보라보라의 풍경이 태풍을 만나 한순간에 위험천만하게 변한 것처럼 부부에게도 돈이 든 가방을 만나기전과 후로 극적인 차이를 보인다.

그 가방에 든 거액은 두 사람에게 행운이라기보다 재앙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느닷없이 큰돈을 거머쥐게 된 사람치고 끝이 행복한 결말이 없었던 걸 보면 돈이란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야지 땀 흘리지 않은 일확천금은 오히려 독이 되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인가 보다

가독성도 좋고 적당한 스릴과 긴장감을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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