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침묵>의 작가로 유명한 엔도 슈사쿠의 책을 7월에 처음으로 읽었다. 읽은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 다시 책을 꺼내 살펴보니 참으로 줄을 많이 쳐놨다. 평생을 신과 구원에 대해 고민했던 작가의 마지막 소설이다.

 

종교는 진리는 찾아가도록 길을 인도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의 삶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가 종교에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종교는 답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미리 답을 정해놓고 그 답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하는 듯 하다.

어찌보면 종교도 주입식 교육이니 스스로에게 질문할 기회가 없음은 당연하다.

 

이 소설에는 카톨릭 신부인 오쓰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신부가 되기위해 프랑스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지만 그의 믿음에는'이단적인 구석'이 있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신의 사랑은 너무나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서양 중심적이라 일본인인 오쓰는 그 사상에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결여되 있음을 느낀다. 그가 느끼는 신은 유럽의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생명'처럼 그 어디에나 있는 존재이다. 

 

"신이란 당신들처럼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더구나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고 화초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p.177)

 

"신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계십니다. 유럽의 교회나 채플뿐만 아니라, 유대교도에게도 불교도에게도 힌두교도에게도 신은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p.182)

 

"저는 오히려 신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계시며 각각의  종교에도 숨어 계신다고 생각하는 편이 진정한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p.184)

 

오쓰는 프랑스의 성직자 앞에서 이런 말들을 쏟아낸다. 기독교만이 절대라고 믿는 서양 성직자의 도도함 앞에서 그의 이런 발언은 '순종의 덕'이 부족한 이단적인 것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며 생각하는 오쓰에게서 나는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을 보았다.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 안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실현하고 구하고자 한 그의 정신과 행동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에는 각기 사연이 다른 4명의 인물이 나온다. 이들은 인도 단체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되는데, 무슨 사연으로 인도라는 나라를 찾게 됐는지, 이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인도를 배경으로 번갈아가며나온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강', 정확히 힌두교도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찾아오는 성스러운 장소인 갠지스 강은 신의 손길처럼 한없이 자애롭고 더 이상의 차별이 없는 모두를 구원으로 이끄는 어머니와 같은 강이다. 우리 인간에게 어머니의 마음으로 감싸주고 받아주는 그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은 굉장한 위안이고 어찌보면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기도 할텐데, 교리와 원칙의 노예가 된 종교는 인간에게 진리로 가는 길의 안내자가 될 수 없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책 속에서 오쓰가 자주 읽는 <마하트마 간디 어록집>에 나오는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지점에 모이고 통하는 다양한 길이다. 똑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한, 우리가 제각기 상이한 길을 더듬어 간들 상관없지 않은가." (p.287)

 

우리는 같은 목적지(진리)를 향해 가는 모두가 가련하고 애틋한 사람들인데 왜 길이 다르다고 서로를 죽이고 미워하며 등 돌리는가...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신인데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0-09-18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이 엔도 슈샤쿠 선생이 돌아가실
적에 무덤에 넣어 달라고 했던 두 권
책 중의 하나가 아닌가요...

이번에 문지에서 엔도 슈샤쿠 선생의
<바보>가 출간되어 도서관에서 빌려
다 놓긴 하였으나 그놈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때문에 당최 책을 못잡고
있네요.

뭐든 그 시리즈부터 다 읽고 난 다음에...

coolcat329 2020-09-18 20:54   좋아요 1 | URL
네 이 책과 침묵 같이 묻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도쿠가와 화이팅!
 
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서머셋 몸이 '인물보다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삼아 쓴 소설'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야기의 전개가 재미있고 몰입도가 높다. 누군가 민음사 세계문학 중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고를 것이다.

 

주인공 키티는 남편의 지위(정부 세균학자)가 자신을 돋보이게 해주지 않는 현실, 무엇보다 사랑없는 지루한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의 욕망을 자극하는 매력남 찰스와 불륜관계에 빠진다.

이야기는 이 둘의 불륜 현장에서 키티가 어떤 인기척을 느끼며 깜짝 놀라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첫 장면, 첫 문장부터 흥미진진하다.

 

그녀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p.15)

 

모든 불륜이 그렇듯 남편 월터가 알게 되고 매력넘치던 불륜남은 역시나 본색을 드러낸다. 월터는 자신을 배신한 키티에 대한 복수로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 오지마을에 책임자로 자원한다. 만약 키티가 따라가지 않겠다면 불륜으로 고소를 하겠다는 월터의 협박에  키티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야기는 오색의 베일 painted veil 처럼 다채롭게 전개된다.

 

허영으로 가득찬 키티라는 여인이 남편에게 불륜을 들키고 질병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낯선 오지에 가서 다양한 인간의 삶을 체험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고 부끄러운 삶을 살았는지 깨닫는다는게 이 소설의 간략한 줄거리이다.

 

키티는 월터가 자기를 사랑했기에 스스로를 경멸한다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건 부당해요. 내가 어리석고 경박하고 천박하다고 해서 날 비난하는 건 공평하지 않아요. 난 그렇게 자랐어요. 내가 아는 모든 여자들은 다 그래요. (...)난 그냥 예쁘고 명랑해요. 장터 노점에서 진주 목걸이나 담비 외투를 찾지 마요." (p.182)

 

사실이다. 키티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왔다. 야심많고 엄격한 그녀의 엄마는 출세에 대한 의지가 없는 하급 변호사인 남편을 경멸한다. 그러나 자신의 성공이 오직 남편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에 그를 출세시키기 위해 '가차없이 들볶는다'. 이런 엄마를 보며 자란 딸들은 아버지를 '수입의 원천 이외에 다른 존재로는 여기지' 않는다. 아버지의 존재란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수단일 뿐 그 이상은 아닌 것이다.

또한 엄마인 가스틴 부인은 자신의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딸들을 좋은 곳에 시집 보냄으로써 보상받으려 한다. 특히 두 딸 중 더 아름답고 매력적인 키티에게 '타산적인 애정'을 쏟았으니 키티가 이렇게 자란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서머셋 몸은 남편의 성공을 통해서만 자아실현을 하려는 당시의 여자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했던것 같다.

<달과 6펜스>에서도 남자만 바라보는 독립적이지 못한 여자들을 안좋게 생각하는 그의 생각이 드러났던게 언뜻 기억난다.

 

역병의 한 가운데서 이성을 잃지 않고 죽어가는 병사들과 고아들을 돌보는 수녀들을 보며 키티는 무한한 경외심과 알 수 없는, 그러나 자신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느낀다. 호기심으로 갔던 수녀원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키티는 수녀들이 남편인 월터를 존경하고 높이 평가함을 알게 되고 그동안 월터를 경멸했던 자신을 경멸스러워한다.

 

키티의 깨달음과 반성. 그리고 월터의 용서. 낯선 오지에서 둘의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잘 살길 바라며 책장을 비교적 빠르게 넘겼는데...

삶의 의미, 진정한 의미의 통찰은 이렇게 쉽고 단순하게 오는게 아니라고 서머셋 몸은 보여준다.

 

마지막 영국으로 돌아와 엄마는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아버지와 만나 나누는 대화는 매우 감동적이다. 어머니와 딸들의 욕망의 수단으로 집안에서 그 존재감이 미미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며 자신에게 과거의 잘못을 보상할 기회를 달라고 다시 한번 사랑할 기회를 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 "전 희망과 용기가 있어요." (p.329)

 

첫 장면에서 자신의 불륜 현장이 들켰을까봐 조마조마 하며 깜짝 놀라던 그녀가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깨닫고 희망과 용기를 가진 새로운 강인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은 참으로 기분좋은 결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결말이 유치하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은 건 바로 서머셋 몸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0-08-30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머싯 몸의 광팬입니다. 그의 책을 거의 다 읽었어요. 이것도 흥미롭게 읽었어요.
한 여성의 변신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죠.
인간이 변하기가 어려운 것도 맞지만 얼마든지 변한 모습으로 새 삶을 살 수도 있다고 봐요.

coolcat329 2020-08-30 17:41   좋아요 1 | URL
서머싯 몸의 광팬이신줄 몰랐네요. 앞으로 서머싯 몸하면 페크님 생각나겠어요.☺<면도날>도 가지고 있는데, 더 기대가 됩니다.^^

페크pek0501 2020-08-30 18:03   좋아요 1 | URL
면도날도 재밌게 읽었습니당~~ 즐거운 독서가 되시길 바랍니다. ^^

초딩 2020-09-05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베일을 읽으며, 안나 카레리나의 키티는 레빈과 참 밝았는데.. 라는 생각을 했어요.
베일은 잘 읽히고 잼있었고, 6펜스도 그림이야기라 좋았어요 ㅎㅎ
책들로 추억 돋는 중입니다~

coolcat329 2020-09-06 13:47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레빈과 월터가 진지하고 성실한 면에서 많이 비슷하네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인리히 뵐의 작품을 지난 달 처음으로 읽었다. 1917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난 그는 1951년 '47그룹 문학상'을 비롯 197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이 작품은 아주 예전에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당시 내가 꽤나 이 작품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이 청춘의 독서를 생각하면 바로 이 카타리나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1974년 2월 24일, 한 일간지 기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범은 바로 27세의 평범한 여성 카타리나 블룸. 그녀는 스스로 경찰을 찾아가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다. 생활력 강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받던 그녀가 왜 이런 살인을 저질렀는지, 이 작품은 살인이 일어나기 5일 전으로 돌아가 그녀의 행적을 재구성하여 그 정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사건의 결말을 미리 알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추적해 나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이 작품은 진실을 알려야 할 언론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공권력이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한 인간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성실한 여인 카타리나 불룸은 댄스파티에서 범죄 용의자와 춤을 추고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아침에 '살인범의 약혼녀', '창녀', '살인범의 정부', '음탕한 공산주의자', '테러리스트의 공조자'가 된다. 

통속적이고 선정적인 일간지 <차이퉁> 기자 퇴트게스는 어떠한 혐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룸을 용의자와 공범으로 몰아가기 위해 처음부터 그녀를 용의자의 정부로 단정, 추측성 기사를 써 여론몰이를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녀의 사생활을 부정적으로 폭로,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이혼녀라는 점, 그녀의 부모와 오빠의 바르지 못한 행동 등도 기사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런 보도에 그녀를 좋아했던 이웃들도 다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블룸은 직장은 커녕 모든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남용되는 경찰의 공권력도 매우 폭력적이다. 수사과장 바이츠메네는 불룸에게 "그 자가 너랑 붙어먹었지?" (p.21) 라고 묻는다. 성적인 면에서 지나치게 예민하고 결벽증이 있는 그녀를 자극하여 수치심을 느끼게 함으로써 자백을 받아내려는 언어 폭력이다.

경찰은 블룸을 범죄자로 단정하고 수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 그녀의 인권은 무시한채 수많은 유도심문과 폭력적인 심문을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니라 '이야기'라고 말한다.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허구(fiction)에 있을텐데 이 작품은 '세상사와 무관하게 생산된 텍스트가 아니라는 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쓰여진 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책의 맨 앞에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낸 것'이라 말함으로써 현실과 어떠한 유사점이 있다하더라도 그건 우연임을 강조한다.

현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이지만 '꾸며낸 것'이라는 그의 말은 작품해설에서 나와 있듯이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할 것에 대비한 발언이겠지만 그만큼 이 작품이 현실사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 하인리히 뵐은 '전통적이고 고답적인 독일 작가의 이미지'가 아닌 '독일의 죄의식'을 작품화한 작가라고 해설에서 말한다. 그가 살던 당시 독일의 사회 현실 문제에 늘 양심있는 작가의 목소리를 냈던 그의 이 작품 역시 사회가 한 인간에게 가하는, 언론과 공권력으로 대표되는 폭력을 다루고 있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가상의 인물과 언론사를 통해 보여주는 그의 글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효력이 있다. 늘 언론의 주목을 받는 유명인들, 언론 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던 이들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또한 익산 약촌 오거리 사건과 같이 공권력을 앞세운 경찰의 강압수사에 굴복, 허위 자백을 하게 해 무고한 한 인간을 옥고를 치르게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이 안 나지만 얼마나 이런 일들이 많겠는가! 그런 고통을 당한 무고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동안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에 반응한 나의 저급한 취향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보고서를 읽는 듯하여 소설이 주는 재미는 크게 못 느꼈지만 꾸며낸 이야기를 통해 감춰진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사회의 부당한 폭력을 비판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작가로서 의무를 다한 하인리히 뵐은 훌륭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0-08-25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주문해서 오늘 받습니다. ㅋ
내용을 대충 알기에 더 기대됩니다.

coolcat329 2020-08-25 13:39   좋아요 0 | URL
네~이 책은 내용을 알기에 더 기대되더라구요. 즐거운 독서 되시길요!☺

2020-08-25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0-08-25 18:57   좋아요 1 | URL
저도 미룬 책이 참 많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즐거운 독서되시길 바랍니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로 향년 70세에 세상을 떠난 작가를 기리며 5월에 읽은 책이다.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나누어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겠지만, 인간과 자연을 놓고 볼 때는 도저히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악 그 자체이다.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과 그에 맞서 문명의 이기에 대항해 싸우는 인간을 그리던 그가 코로나로 세상을 떴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지금 우리에겐 환경과 자연에 대해 말할 사람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뜻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제야...작가가 죽어서야 읽게 된게 미안하다.

주인공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 노인은 제목대로 연애 소설 읽는걸 좋아한다. 노인은 책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 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음절과 단어와 문장을 차례대로 반복하는 노인의 책읽기 방식은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돋보기가 틀니 다음으로 아끼는 물건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p.44,45)


글자와 문장을 대하는 노인의 방식, 연애소설 속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자 조심스럽게 겸손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 노인이 돈이 되는 모든 것을 이용, 파괴해서 자기것으로 만들려는 인간의 모습과 대조되어 더욱 애잔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짧으면서 따뜻하고 유머러스 하지만, 지금의 암울한 현실이 더 느껴져 슬프게도 하는 소설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0-08-23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이스 세풀베다가 코로나로 세상을 떠날 줄이야... 참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휴...

coolcat329 2020-08-23 20:29   좋아요 0 | URL
네 처음에 듣고 정말 놀랐죠. 잠자냥님도 건강 조심하시고 하루하루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Falstaff 2020-08-23 2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너무 솔직하면 곤란하지만, 재미 없는 책 아닌가요? 물론 명성에 비해서 말하자면 말입니다. ㅡ.ㅡ;;

coolcat329 2020-08-23 20:33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님은 재미가 없으셨군요. ㅎ 세풀베다 책 첨 읽었는데 아마존을 배경으로한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무엇보다 읽기 참 쉽더라구요. ☺ 폴스타프님도 건강 유의하셔요.
 
자기만의 방 쏜살 문고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이민경 추천 / 민음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조적 예술이 이루어질 수 있으려면 먼저 마음 속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협력해야 합니다."

 

여성을 옹호하는 단순한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과 남성, 즉 '양성적 마음'을 가지는 것이 글쓰는 작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그녀만의 문학론이 가장 인상깊었다.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둔 글쓰기는 작품에 치명적이며 작가의 뜻을 온전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마음 전체가 활짝 열려'있고 자유와 평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예로 든 작가가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이다.

차별받는 여성을 대변하듯이 책 속에서 제인 에어는 자신의 분노를 여성주의자가 연설하듯이 쏟아낸다. 이를 가리켜 울프는 '등장 인물에 대하여 써야 할 곳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쓴 글이라 하며, 제인 오스틴보다 더 많은 재능을 가진 그녀가 이런 식으로 자의식을 감추지 못하고 글을 쓴 것을 지적한다. 제인 에어의 독백은 작가인 샬럿 브론테의 세상을 향한 억울함을 토로한 것에 불과, 어느 순간 제인 에어가 자신이 되어 소설 속 캐릭터를 객관적으로 그리지 못하게 되고 이는 문학적으로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페미니스트라면 이런 제인 에어의 여성의 불평등에 관한 독백에 박수를 칠 수도 있을텐데, 울프는 작가의 분노와  비탄이 소설 속 인물을 통해 자연스럽지 못하게 드러나 마땅히 써야 할 이야기를 쓰지 못하고 작가의 상상력은 분노로 인해 빗나갔다고 말한다.

울프는 "만약 샬럿 브론테가 일 년에 300파운드를 소유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녀 부류의 사람들과 접촉하고 다양한 인간들과 교제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묻는다.

 

울프는 자유로운 글쓰기, 창조적인 글쓰기를 위해서 물질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책의 도입부분에서 울프는 여성이 글을 위해서는 매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함을 논제로 제시한다. 그 돈이 자기가 번 돈이든 유산이든 상관 없다. 창조적인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돈과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여성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그저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던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p.157)

 

울프는 마지막 장에서 작가의 의무란 '리얼리티를 찾아내어 수집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겠다는 생각, 남성과 동료가 되거나 대등해지겠다는 생각을 떠나 그저 자기 자신이 되라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가 공동의 거실에서 조금 탈출하여 인간을 서로에 대한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와 관련하여 본다면, 그리고 하늘이건 나무이건 그 밖의 무엇이건 간에 사물을 그 자체로 보게 된다면,(...)매달릴 팔이 없으므로 홀로 나아가야 하고 남자와 여자의 세계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의 세계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p.165)

 

여성성에 고립되지 않고 여성이라는 성을 극복하기를 버지니아 울프는 말하는 듯 싶다. 남성과 여성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고 남성성과 여성성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양성적인 마음이 창조적 예술로 이어짐을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처음 읽었다.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에서시작하여 시대별로 정리된 자신의 책장을 하나씩 살펴가며 의식의 흐름에 따라 뻗어나가는 작가의 생각, 그런 여러 생각들이 책의 도입부분에서 말한 주제로 마지막에 가서 귀결되는 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울프의 여성문학에 대한 생각과 그녀의 문학론을 알게 된 점이 가장 좋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20-08-2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현재 이 팬데믹으로 모두 집안에 있으니 자기만의 공간을 너무 가지고 싶어요 ㅜㅜ
모두 소리를 치고 있어요
현재 저희 집 상황 ㅜㅜ
(주제에 좀 벗어난 이야기지만 했습니다 ㅜㅜ)

coolcat329 2020-08-23 18:21   좋아요 1 | URL
아 ㅜㅠ 정말 100% 동감입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 이런 소통이 힘이 됩니다. 초딩님 건강 조심하시고 화이팅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