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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 1,2,3번<안나 카레니나>이어 4번째 책인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페루의 세계적인 작가이자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 1936~)가 1973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콜롬비아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남미를 대표하는 작가로 여러 문학상과 함께 1985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1990년에는 페루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패해 낙선했다. 이후 다시 문학에 전념하여 1994년 스페인어권의 최고 문학상인 '세르반테스상', 2010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그의 외모 만큼이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이전 작품에서는 어떤 유머도 사용하지 않던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소설에 '유머'를 도입함으로써 문학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바꾼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바르가스 요사는 1958년과 1962년에 아마존 지역을 방문하면서 '아마존 수비대원들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페루 군부가 조직했던 특별봉사대'라는 조직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를 쓰려고 했으나 곧 그럴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는 익살과 농담과 웃음을 요구'하고 '문학에서의 유머와 장난이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내주면서 진지한 문학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고 서문에서 밝힌다.
1956년 페루, 리마에 있는 병참사령부에서는 아마존 밀림 지역에 주둔한 군대 병사들이 마을 부녀자들을 상대로 저지르는 겁탈과 강간을 중단시키기 위해 특별 모임을 소집, 모범 장교로 정평이 나있는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를 책임자로 아마존 밀림 지역인 이키토스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여든 명의 장교 중 판토하 대위가 책임자로 선택된 이유는 '천부적인 조직력, 정확하고 엄밀한 질서 의식, 행정 능력'(p.17)을 가지고 있다고 평이 나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술, 담배, 여자를 멀리하는 그는 장교로 복무하면서 한 번도 징계를 받은 적이 없는 뛰어난 장교이다.
고립된 밀림 군부대에서 복무하는 병사들은 성에 너무 굶주린 나머지 마을 여자만 보면 물불 안 가리고 무조건 덤비고 보는데,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냐면 1년도 안되서 43명의 여성이 임신을 할 정도이다. 당연히 지역주민의 분노는 끓어오르고, 군대는 가해자인 병사와 피해자인 임신한 여성을 강제로 결혼시키는 말도 안되는 조치만 내릴 뿐이다.
따라서 페루 군부는 더 극단적인 방법을 고안, 그것은 성에 굶주린 병사들을 위한 '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줄여서 수국초특)를 창설하기로 하고 바로 이 책임자로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를 선택한 것이다!
군대와 가정밖에 모르던 '바른 남자'가 하루 아침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임무를 맡게 되니 얼마나 괴로울까 싶지만 군인에게 명령은 목숨과도 같기에 판토하 대위는 울며 겨자먹기로 특별봉사대를 조직하기 시작한다. 철저히 비밀리에 운영되어야 하기에 민간인으로 위장, 아내와 어머니에게도 비밀로 하며 판토하 대위는 본격적으로 창녀들을 모집, 군대에 창녀들을 공급하기 시작하는데...더 이상 내용을 말하지 않겠지만 한 가지는 말하고 싶다. 일을 너무 잘해도 문제라는 거...
이 책은 그 불편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작정하고 경쾌하고 웃기게 쓴 글이라 중간중간 빵빵 터진다. 특히 2장은 상부에 보고하는 문서로 '수국초특' 창설과 운영 상황을 알려주며, 특히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병사 개인당 월 평균 희망 횟수와 평균 희망 소요 시간-결과를 도표로 작성한 판토하 대위의 진지한 보고서는 읽으면서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소설은 형식과 구성이 독특하다. 빠르게 전환되는 대화 장면들, 보고서, 편지, 신문 기사, 라디오 방송 대본 등 다양한 장르가 삽입된 점은 이 소설의 특징이자 재미이다. 이러한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구성은 작년에 읽은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익의 <거미 여인의 키스>(1976)를 생각나게 했다. 그러고보니 두 작품은 1970년대 남미 문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위선적인 페루 군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언론인, 혼란한 정치 상황, 그 가운데 극성을 부리는 신흥사이비 종교집단,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그러나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특별봉사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개성 만점 창녀들 등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유머러스하게 그려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무언가가 담겨있다. 앞에서는 바르고 도덕적인 척 하지만 뒤에서는 온갖 더럽고 추잡한 짓을 벌이는 페루 군부, 그 추악한 위선과 여성의 성이 권력에 의해 재물로 희생당한 역사는 이 소설을 마냥 웃으면서 읽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이 말도 안되는 정책이 페루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놀랄것도 없다.
우리나라에도 달러 버는 애국이라며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국가에 의해 미군기지로 보내졌는가...달러벌이를 위해 나라가 직접 나서서 성병관리를 했고 병든 여성들은 따로 모아 수용한 역사는 참 너무나 가슴아프다. 기지촌 여성들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자발적으로 일했으면서 이제와서 왜 아쉬운 소리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직업소개소에서 속아 잔뜩 빚을 지고 일할 수밖에 없던 여성들도 많았다. 나라가 외화벌이 수단으로 매춘을 조장한 역사는 우리나라에도 있는 것이다.
웃기는 소설이지만 아픔도 담고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