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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 김숨 장편소설
김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오남매의 일원이었던 나는 성장기를 거치며 가족들의 성품을,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로 동물에 비교해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가족들의 고유한 12지중 자신의 띠 한계를 벗어나 다른 동물을 창조하기에 십대의 내 능력으론 힘에 딸리기도 했다. 가끔씩 자신의 띠보다는 12지에 없는 다른 동물이 더 나을 것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말하자면 나는 동물이 가진 일반적이나 상징적인 이미지를 연관시켜 가족의 성격분석가의 역할을 해냈던 것이다. 청소년기의 생각과 생활반경은 학교를 제외하면 가족이 전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욱하는 성질을 내붙이거나 어디가서 거짓말은 죽어도 못하고 살 성격이라든가 소심해서 상처되는 말을 용납못한다든가 살살 가족의 성격을 때때로 곱씹어보면서 소설 한 권 써낼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머니는 물, 아버지는 불, 쌍동이 동생은 금, 막내동생은 공기, 나는, 소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가족들과 자신을 이렇게 물, 불, 금, 공기, 소금으로 지칭한다. 처음부터 어머니를 물이라고 하며 수족관 운운하는 통에 독자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잠시 헷갈리고 만다. 작가는 가족을 돌보기보다 자신의 주장과 입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를 불로 상징했다. 권위적이고 아내를 위압적으로 다루는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물의 세가지 형태를 왔다갔다하면서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내는 유약한 여성이다. 그녀가 얼음상태에 빠져 한달을 입원했다가 다시 물로 돌아와 정신을 차릴 때 독자는 수증기로 된 엄마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다. 수증기가 된 어머니는 아버지가 저수지를 메꿔 지은 새 집에 딸 셋과 자신을 불렀을 때 그때 한번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시장에서 생선을 사다가도 순간 얼음으로 되어 버리기도 하고 저녁준비를 하다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얼음이 되곤한다. 어머니가 얼음이 된다는 건 유약한 상처받기 쉬운 마음이 얼어붙어 히스테리 상황이 되는 것일 게다.
불인 아버지가 항상 불의 모습으로 권위를 휘두르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 물에게 흡수되어 물만이 불을 제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금은 나인 소금에 비해 언제나 질투심을 일으킬 정도로 외모에 뛰어나다. 아버지 불은 금을 연금술로 다스리러 매일밤 금의 방에 간다. 실제로 연금술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수도검침원 아줌마와 배관공, 그리고 빚독촉을 위한 은행직원의 등장은 가족외적 구성원으로서 어떤 연결고리를 내포하는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없다. 검침원 아줌마는 밀린 수도료를 독촉하고 은행직원은 새집을 지을 때 빚을 진 돈을 갚으라고 압력을 가한다. 아버지는 이러한 현실적인 삶의 현장에서 방관자로 일관한다. 이 두 개입자는 이 가족에게 닥치는 외부 현실의 복잡하고 비참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배관공은 물이 말라버린 수도꼭지의 원인을 찾기 위해 벽을 헤집던 아버지 불을 대신해 해결사로 온 사람이었지만 그역시 닷새만에 사라지고 금에게 임신만 시킨다. 금은 열달이 지나 결국 납으로 판명된 아기를 낳고 사라진다.
납의 탄생과 더불어 소금인 나는 아버지 불과, 남겨진 납을 키우기로 하면서 함께 현실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런 이야기속에 동생 공기는 기독교 신자로서 때로는 가족의 위기를 감각적으로 헤쳐나가고 기도로서 무마하곤 했다. 결국 공기역시 금처럼 사라진다. 작가는 어머니 물의 죽음을 계기로 비난의 대상이던 아버지에 대한 편견이 감소되는 서술을 펼쳤다. 결말에서 어쩔 수 없이 화해를 모색하기 위한 방법이었겠지만 다소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 물과 아버지 불의 상극적 관계가 두 사람의 섹스에서 아버지 불이 약화되는 것으로 설명했으나 현실속에서 아버지 불이 어머니물을 수증기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물리적 사실을 망각한 건 아닐까 의심해 보았다. 불을 끄는 소화기능으로서의 물뿐 아니라 물을 가열해 수증기로 만드는 불의 힘을 상징의 고리속에 추가했다면 좀더 빡빡한 합리성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생각한다.
특히 검침원과 배관공의 등장은 마치 카프카의 소설속 등장인물같이 낯설게 하는 면이 있었다. 복잡하게 정신적으로 얽힌 심리적 환우들의 집에 등장한 외부인들은 집요하고 냉정하여 상처받은 주인공의 짐이되고 음산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매개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사물의 중요 구성 요소들을 주변의 인물들에 대입해 하나의 가상현실 스토리를 개척한 작가의 섬세한 관찰력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얼마전 건축 설계수업을 듣기 시작한 딸아이가 수업 첫시간에 프린트물로 받은 프랑시스 퐁주의 시 '물'을 들고 한참 끙끙거리는 걸 보았다. 일주일을 버티다 결국 구조의 손길을 내밀었고 덕분에 나는 독특한 상징주의 시세계에 빠져드는 감흥의 기회를 얻었다. 이 소설에도 퐁주의 '물'이 인용되었다. 작가는 바슐라르를 읽은 것이 이 소설을 쓰게된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바슐라르를 알고 이 소설을 읽으면 왜 어머니 물이 수족관으로 자꾸 들어가는지 물음표만 던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