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와 철학자는 어떻게 다른가? 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머리속에 맴돌았던 질문이다. 저자 자신도 서두에서 설명했듯이 이른바 진화심리학에 대한 개괄적 이해 없이 이 책을 읽어 나간다면 저자가 적나라하게 밝히는 인간 짝짓기에 있어서의 약탈적 면모에 이르러 한숨을 쉬게 되고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이기적 차원을 넘어서 우리사회가 범죄로 다스리고 있는 강간과 성희롱등이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연구대상이 되어 설명되고 서술되는 것이 참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이 책은 과학자가 쓴 책이며 그는 단지 사실의 객관성을 추구하는 치밀한 의도에서 이것을 기획한 사람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면 이따금씩 그가 제시하는 사실의 배후를 과학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제대로된 문제의 해결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위로와 함께 너그러이 용서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남녀간의 갈등이란 인간 본성을 드러내 주는 좀더 심오한 그 무엇이 관련된 문제라고 말한다.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사랑을 체험하며 사랑을 뜻하는 단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상대에 대한 헌신, 다정, 열정을 포괄하는 이 감정에는 상당한 모순적 속성이 내재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의 짝짓기가 지닌 모순적 속성을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남녀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왜 우리는 사랑을 얻고 관계를 지속하는데 인생의 상당기간을 희생하는가? 왜 우리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여자들은 아이양육을 위해 자신의 직업도 포기하는가, 왜 아이의 교육을 위해 좀더 나은 교육환경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이사도 마다하지 않는가? 중학교 생물시간에 생물의 종족보존의 본능과 개체유지의 본능에 대해 들었을 때 당최 그 말의 속뜻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생명체의 본능이려니, 그이상의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첨부터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면 간단할 지 모르나 과학인데 종교가 아닌 이상 무슨 근거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진화론이고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유전자의 이기성때문일 줄이야. 저자에 의하면 다윈의 성선택이론은 진화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두가지 핵심과정인 배우자에 대한 선호와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경쟁을 밝혀줌으로써 짝짓기 행동을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우리역시 주류 과학자들의 생각처럼 이 이론이 인간의 본성을 주로 본능적인 행동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보며 인간의 특별함과 유연성이 중요하지 않게 다루어지고 있음에 반발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진화의 영향하에 있으며 우리가 당연시하는 근원적인 심리기제들(여기서는 남성과 여성의 짝짓기 전략과 인간행동의 대단한 유연성을 설명할 수 있는 심리기제)또한 유구한 진화과정의 산물인 것에 놀란다. 진화 심리학, 새로운 분과학이지만 참으로 다양한 학문영역을 넘나드는 분야이다. 전 세계지역의 남성 여성들을 상대로한 설문들에 기초하였기에 어떤 때는 마치 인류학 서적을 읽는 기분도 들고 자세한 통계수치때문에 사회학적 데이터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또, 여성 남성의 구애전략에서는 참으로 유용한 실용서의 감각도 갖추었다. 저자 데이비드 버스는 수많은 설문데이터를 통해 방대한 진화심리학의 한 분야를 개척한 심리학자이다. 때로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분류가 획일적인데 대하여 심한 버거움과 압박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의 말대로 이 분야에 대한 사고의 전환과 인식은 그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떡해식의 지레 포기와는 다른, 어떤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