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 웰스 : 붐비는 지구를 위한 경제학
제프리 삭스 지음, 이무열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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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열심히 직장에서 일하고 가정을 잘 꾸려가고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창조하고 발명하고 등등 우리 인간이 일상에서 하는 일들은 일차적으로 개인적 수준에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좀더 타당하고 숭고한 목적이 있다. 그게 무언가하면 바로 다 함께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같은 예술창작 같은 분야 역시 다 같이 잘 살기 위함이란 큰 키치아래 활동하는 것이어야 오래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 커먼 웰스가 뜻하는 바가 이 다함께 잘살기이다. 그런데 왜 당연한 듯한 커먼 웰스가 새삼스레 등장하느냐하면 지구환경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음을 경고하고 그 보존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현명한 대처가 필요함을 말하기 위해서다. 환경문제를 언급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고 전직 미국 부통령까지 환경문제 홍보대사가 될 정도로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지구온난화와 온실가스,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양, 빙하가 녹아 세계기후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등 그간의 매스컴의 보도 덕에 이젠 평범한 시민들도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지각한다. 그런데 여태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확실한 처방을 내려 구체적 묘안을 다루고 있는 안내서는 드물었던 것같다. 저자는 다양한 유엔기구의 실무경험과 연구소의 학자들과의 교류, 아울러 후원단체및 실제 정부책임자들의 친분을 토대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구환경 정책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이 책에는 상세한 통계자료를 첨부하여 사태의 심각성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현명한 처방을 제시한다. 그가운데 특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들도 드러난다. 이를테면 인간이 지배해버린 지구의 모습을 설명하는 과정에 지구광합성능력의 50프로가 인간의 용도에 맞추어져 전유되고 있다든가,대기중 이산화탄소의 양중 약 4분의 1이 근래 인간활동의 결과물이라는 사실, 또 이용가능한 강물의 60프로가 댐과 관개시스템 등 물돌리기 사업을 통해 인간의 용도에 맞춰졌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경제발전이 향후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얘기가 있듯이 중국은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이미 미국을 앞질렀고 앞으로 인간이 일으키는 기후변화의 최대 원인제공자은 중국일 거라는 추정이다. 중국자동차보유율을 추정예산하면 2050년이면 5억 6천만대의 자동차가 중국의 도로에 등장하게 된다니 석유사용과 탄소배출량은 미국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저자는 발전도상국들이 선진국보다 더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것이라고보고  1인당 온실가스배출량이 여전히 많을 선진국들이 발전도상국들을 지원해야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서점가에 등장한 중국과의 전쟁이라는 주제의 책들을 통해 미국인들이 느끼는 중국의 힘에 대한 위협을 언급하면서 그는 미국의 대외정책의 방향전환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사실 이 책의 목적은 큰 테두리에서 부시정권의 실패한 대외정책을 경고하는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그것은 다시말해 지구상에서 공동의 운명과 공동의 부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타인에 대한 지배가 아닌 자신의 번영과 안전에 도움이 되는 커먼웰스라는 궁극적 생존방법을 받아들여야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계인구의 5퍼센트밖에 안되는 미국이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배출하고 있는데도 기아, 가무, 말라리아확산 등 온실가스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 빈국들에게 발전도상국도 똑타은 의무를 지지 않는한 미국도 배출억제에 착수조차 않겠다고 분개하며 말한 나라가 미국이었다.

 

저비용 탄소관리사례로 저자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탄소포집격리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전자의 경우는 최근 국내업체에서도 생산을 시작했다는 뉴스를 접했지만 후자는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있는지 우리역시 국가 차원에서 연구 관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생물 다양성보존이라는 현안에서 에드워드 윌슨이 제안한 웹을 기반으로 생명백과사전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탁월해보인다. 위키피디아를 만들어가듯 생물종 백과사전을 웹에서 만들어간다면 전 세계의 멸종, 희귀종 생물에 대한 관심이 더욱 확대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편, 빈곤의 덫 걷어내기란 장에서 저자는 빈국에 대한 지원을 언급하는데 과거사례로서 한국, 대만에 대한 지원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1960년대 한국과 대만의 경제적 도약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초에 미국의 원조뿐 아니라 식민지 시대 일본의 투자도 기여한바 있다고 했다. 일본이 기간시설에 약간의 투자를 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그들이 더크게 수탈하기 위한 얄팍한 도구에 불구했는데 어떻게 이런 해석이 나올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시아 산업화성공에 대한 경제분석가 로버트 웨이드의 견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우리 경제학자의 철저한 해명과 국제 학계에서 잘못된 인지 부분을 수정하는 노력이 요구되겠다.

 

아울러 저자는 미국의 자유시장적 정부정책이 북유럽의 사회복지국가와 비교할 때 적나라한 문제점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물론 현단계 미국의 사회보장 시스템은 강국 미국의 또다른 어글리 페이스이고 오바마정부도 이 문제의 해결에 고심중일 것이다. 그런데 북유럽 역시 그간의 지나친 사회주의적 사회보장시스템으로 인한 불만이 고조되었고 100년 가까이 시행된 시스템에 이탈과 허용의 범위를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목격한 북유럽은 행복과 온유함이 넘치는 그런 복지국가는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인간에게는 거창한 윤리도, 용기있는 행위도, 조율의 미덕도 필요치 않으며 단지 제각각의 자기이익만 필요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극빈층이 시장에 참여할 수 없을때 보다 복잡한 형태의 협력이 필요하고, 공공부문과 비영리부문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제도가 요구된다고 제프리 삭스는 말한다.

 

그는 책의 말미에 평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세계건설이라는 세대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우리 각자가 취할 수 있는 여덟가지 행동을 제시하였다. 그가운데는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만큼까지 여행하라라는 항목도 있다. 다른 곳을 돌아보는 것만큼 이해의 첩경은 없을 것이다. 다른 일곱가지들은 우리가 하고 있는 것 주변에서 누누히 강조되는 것들이기도 하지만 나머지 실천강령이 궁금한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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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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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들의 바로 옆에 있어서 너무나 익숙하지만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것. 아니 부동산시장에선 가격의 기준이 된지 이미 오래고 부동산 시장의 가장 매력있는 투자처가 된 아파트. 그러나 좀더 깊이 있게 우리의 삶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 바로 아파트다. 이제는 어디사니?가 아니라 어느 아파트에 사니?로 상대방의 주거에 관한 질문을 할 정도가 되었다. 이미 아파트는 보통사람들의 거처로서 상징적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제목이 대단히 선동적이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아파트에 미쳐있다는 이야기다. 영어의 어딕션이 어디에 빠져서 못헤어나는 의미라면 아파트 어딕션이란 말도 가능할 것같다. 아파트 중독...... 나역시 결혼후 소형아파트에서 시작하여 우려 여덟, 아홉번을 아파트 평수와 경쟁하며 이사한 끝에 이제 소위 빌라라고 하는 연립주택에 도달했다. 넓은 의미로 보면 아니, 서양개념의 아파트 의미로 보면 우리나라의 빌라라는 것도 아파트에 다름없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아파트 거주자인 셈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저자는 이 아파트라는 물건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 사회학적 의미를 파헤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제목만을 보았을 때 아파트가 미치는 도시환경의 추한 모습에 대한 비판적 글이려니 하고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보다 건축학적인 시선이 강조되어야하는 테마일 것이다. 그에 비해 이 책은 한국인들이 어떻게 해서 아파트라는 주거환경과 처음 접했고 어떤 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아파트라는 건물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사적으로 검토한 후에 아파트라는 한 대상의 사회적 속성들을 분석고찰해나간다. 거기에는 이데올로기와 미시적 규모의 정치적 의미도 포함된다.

 

홍콩에 갔더니 구룡반도의 좁은 길에는 현대건설이 지었다는 초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좁은 땅에 최대의 주거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카이 스크래퍼의 초고층 아파트들이 필요하리라. 홍콩에는 화장장도 도심한가운데 있다고 하지 않던가. 어떤 건축가는 서울이란 도시는 공간효율성이란 면에서 좀더 높아져도 된다는 말을 한다고도 한다. 강남과 여의도에 이어 용산을 뒤덮어가는 초고층 력셔리 아파트들을 보며 걱정도 되었는데 아직은 더 높아져도 된단 이야기인가.

 

지방의 왠만한 도시에도 15층짜리 이상의 아파트들이 늘어간다.  80년대에 기차나 버스를 타고 경부선을 오가며 간혹 볼 수 있었던 지방 도시의 아파트들이었건만 이제 수도권의 비교적 덜 개발된 지역에도 빈틈없이 아파트가 들어섰다. 한국에 아파트가 뒤덮인 이유로 책은 기본적으로 알려진 것들 외에 공급과 수요라는 두 측면에서 접근했다.가장효율적인 주택공급방식으로 아파트를 택한 정책이 그 한 원인이고 한편 수요의 차원에선 난방과 방범및 부대시설이라는 차원에서 무시못할 편의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경제개발정책과 발전한 국내 건설기업체들의 기술성장이란 배경도 중요한 한몫을 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저자는 이슈에 대한 논쟁적 서술이리라는 기대와 달리 많은 부분 분석적 접근에 책을 할당한다. 브랜드 아파트의 등장과 더불어 조장된 신분차별적 의미, 부의 원천으로서의 투자가치로서의 의미, 개폐식 삶으로 일원화된 주거모습이란 의미, 아파트내에서의 새로운 사회공동체 현상, 구조에서의 한국적 아파트의 등장등 다양한 접근방법으로 아파트를 해체한다. 마지막 장에서 한국의 건축문화와 관련하여 단독주택 멸종위기, 작금과 미래의 아파트 전성시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보여주지만 독자의 기대에는 크게 부족하다. 저자는 강릉의 선교장, 해남의 녹우당, 담양의 소쇄원과 같은 귀중한 문화유산이 100년, 200년 뒤에 후손에게 전해질 수 있을 것인가 걱정한다. 그는 이 시대를 대표할 주택문화의 상징물이 남을 수 없으리라 예감했다. 물론 타워 팰리스가 100년뒤 흉물스런 모습으로 전해지진 않을지 모르겠다. 80년 뒤쯤에는 완벽한 폭파기술을 이용해 말끔히 청소하고 그 자리에 다시 또다른 스카이 스크래퍼를 쌓아 올릴 것이다. 아, 갑갑한 마음을 달래줄 진정한 건축가의 시선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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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1
츠츠미 미카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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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나라의 허상이 솔솔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마이클 무어라는 다큐영화감독의 영화들을 하나둘 보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미국내 총기소지, 9.11테러에 대한 정치권의 배후,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그가 다룬 주제들은, 미국이란 거대한 이미지뒤에 감춰진 실제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듯 위대하거나 결토 낭만적이지 않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미국의 비만인구에 대한 반성과 패스트푸드 식습관을 고발한 모건 스퍼록의 '수퍼사이즈 미' 역시 또하나의 이면을 드러내주는 자료영화라 할 것이다.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요즘에는 마구잡이 신용팽창이라는 미국의  경제적 부실과 직면하여, 케네디시절의 프론티어 정신이 무색해진 취약한 나라의 뒷모습이 처량하기만하다. 마침 이즈음 일본인 작가의 미국 르뽀는 현실감과 함께 시의적절성을 띠고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빈곤대국 아메리카...... 미국이 빈곤하다는 말에 몇프로 정도가 동의할까? 달러보유고로 한 나라의 경제기반이 평가되는 시절에 그 달러의 종주국인 미국이 가난하다면 말이 되는가. 물론 빌 게이츠도 워렌 버핏도 미국국적이다. 그리고 뉴욕의, 엘에이의 명품가에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일년 생활비의 옷값 가방값이 즐비하지 않는가. 명품구매자들은 비싼 의료보험에도 가입하고 마음껏 그 혜택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미국내 빈곤계층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나. 한 나라가 국민 생활의 기초를 보장하고 사회적 재분배를 통해 빈곤층을 끌어 안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에 따라 국가의 기본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은 자본주의가 가장 성공적으로 실현된 나라이자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단도 몸소 겪고, 아니 앓고 있는 나라이다.

 

<빈곤대국 아메리카>가 꼽고 있는 빈곤 미국의 요소들은 크게 5가지이다. 비만, 재난의 민영화, 의료보험, 청년층의 학자금대출과 모병비리, 그리고 전쟁의 민영화가 그것들이다.

 

비만이란 소득이 높은 계층에서 발생하는 질병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란 것이 저자의 견해다. 실제로 고소득층의 자녀들은 가정에서 질좋은 재료로 만든 슬로 푸드와 영양가 있는 음식들로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는 반면 빈곤층의 자녀들은 푸드스탬프로 겨우 한끼 때우는 방식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햄버거와 피자등 고열량, 저영양의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적은 돈으로 수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재료는 저가에 요리가 간편한 냉동음식들 뿐이다. 이렇다보니 빈곤층의 아이들중에 비만아가 많아지는 것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쑥밭이 되어버린 뉴올리언즈는 사실 좀더 일찍 재난 방재를 준비할 숟 있었음에도 재난이라는 중대한 사안마저 민영화라는 자본주의적 발상에 노출되어 뒤늦은 처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폐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정부의 일은 어디에 있는가?

 

민영화의 폐단은 의료보험제도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 '식코'에는 넷째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절단당하는 사고를 입은 환자가 어마어마한 치료비때문에 가운데 손가락의 치료를 포기하고 넷째 손가락만 잇는 수술을 받았다고 피력하며 절단된 가운데 손가락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처럼 고가의 보험료를 부담할 수 없는 중류층이하의 사람들은 그저 살아있는 동안 아프지 않기만을 간절히 고대하며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를 출산한 산모가 당일 퇴원이라는 무리수까지 무릅써야 한다니 이 무슨 비극인가. 호주 정부는 임산부의 건강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영양제(초유같은)를 공급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비교되는 현실이다.

 

학생들까지 학자금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빚을 갚기 위한 방편으로 전쟁에 파견될 군인 모집에 어쩔 수 없이 응하게 된다는 보도는 또다른 놀라움을 자아냈다. 얼마전 우리나라에도 대학졸업자의 학자금대출 신용불량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짧은 뉴스를 접한 적이 있는데 무엇이든 미국만 따라하는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의 한 단면인 것같아 우울해졌다.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근거는 애국심에 불타는 젊은이들이 많아서가 결코 아니었다. 한계상황에 도달한 청년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었고, 대출금 전액 상환과 전장파견불가라는 계약조건을 위반하면서 전쟁터로 학생들을 가게한 정부의 술수로 가능한 것이었다. 심지어 낙오된 고등학생들에게도 군대는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꾸며진다.

 

젊은이들을 모병한다면 민영화된 전쟁관련 파견회사들은 전장에 수급되는 물자를 나르는 운송트럭의 기사를 모집한다. 전국을 다니며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물색해 조건을 제시한다. 핵에 노출된 시신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풀어낸다. 그만큼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부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파견회사와의 계약으로 전 세계 약소국에서 모여든(아니 팔려온) 계약자들은 군인들이 마시는 생수조차도 얻어마실 수 없고 최악의 조건에서 계약기간을 버텨낸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스스로에게 인식시키는 일이 된다. 참으로 모든 영역이 비즈니스가 된 미국사회를 바라보면서 이러한 잔인한 거래가 테러에 버금가는신형 공포가 아니고 무얼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아직도 유학하면 미국을 떠올리고 세계비즈니스의 현장하면 월가를 염두에 두고 세계 학문이 몰딩되고 다듬어져 세계인의 표준치로 거듭나는 곳이라고 생각되는 미국이다. 미국비자가 면제되면 미국에 쉽게 입국할 수 있을 것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한편 땡기고 헐리우드작 영화로 맛을 돋구고 보스톤으로 날아가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순회해보고... 미국하면 가서 경험해보고 싶은 게 셀 수 없이 많아진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보도되지 않았던  이면에 눈을 돌리고 그들의 삶의 노곤함도 헤아려 볼 수 있어야할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집잃은 서민이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홈리스 텐트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어제의 멀쩡한 중산층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렇듯 신자유주의의 방만이 낳은 병에 호되게 시달리고 있는 미국이 우리가 더 궁금해야할 미국의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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