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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산티아고는 이미 유명해졌다. 오래전에 서명숙씨가 중앙일보에 산티아고 완보기를 연재하던 무렵에 이 순례길을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 나는 내가 대학원때 배우던 음악사책에서 필사본으로 유명한 산티아고 디 콤포스텔라의 그 산티아고인지는 몰랐다. 산티아고는 유행이 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래도 가보지 않은 자로선 신기하고 궁금한 동경의 대상이리라. 

산티아고는 기독교 성지순례팀이 예루살렘과 그 근방을 순례하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걸어서 4-50여일을 간다면 단체로 일주일 도는 것과는 충분히 다를 것이다. 소설가 서영은씨가 나이 오십에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한창 생각과 의식이 초롱초롱하던 20대에 알게된 이 소설가는  적어도 내게는 여지껏 '먼 그대'의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 에세이집을 대하고 한 사람에 대해 복잡한 생각이 소용돌이쳤다. 사실 이 작가의 소설을 많이 보지 못했다. 이상문학상 수상후 계간 문예지엔가 '사막을 건너는 법이 실린 것을 읽었던 것같다. 물론 그 단편의 충격에 비하면 심심해 큰 감동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당시 미디어의 대단한 홍보도 있었지만 소설 그자체만으로도 작가의 수상작 소설에 대한 신비적일 정도의 이미지가 조성되었나보다. 그래선지 이 책을 읽고 나서 실망도 큰 것같다.  

작가는 말했다, 이 책엔 절대로 픽션의 요소가 없다고. 정말 그렇다. 이 에세이집에는 인간 서영은이 그대로 녹아 나온다.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적 깨달음의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만 우선 그보다도 순례도중에 겪는 사사로운 심적 상태가 너무나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특별히 종교적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그녀의 깨달음(특히 말인지 나귀인지와 대면한 장면)은 약간 과장되어 보이기도 할 것이다. 반면 동행인 손위 제자와 함께하는 하루하루의 여정은 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운 내적 갈등의 연속으로 솔직히 기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행기의 정석이 여행중의 중요한 에피소드를 조금은 부풀려 재미있게 쓰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순례기에는 별로 그런 장면이 없다. 비좁은 한 알베르게에서 버너에 차를 끓여 마시는 한 할아버지로부터 차를 얻어마시는 여유로운 장면도 곧바로 쓰러진 지팡이때문에 찻잔을 엎지르고 뜨거운 물세례를 받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두 60대 여인의 감정적 간격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어떨 때는 독자마저 당황스러워진다. 일주일만 넘어도 여행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 처음에는 예의를 차리다가도 일주일을 보통 못넘기는게 상례다. 더이상은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는 게 힘들다. 여행지에서 동행자와 더불어 짊어지는 정신적 피로는 육체적인 곤함을 능가한다. 그런지라 작가의 사소해보이는 불평들이 솔직해서 고맙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왠지 기대한 모습과는 다른 왜소함에 못내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 이 에세이집 책장을 덮고 던져지는 책 내용은 크게 세부분으로 다가오는데,간증의 현장,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자연과 착한 사마리아인들과 오래된 집들, 그리고 이러한 동행과의 토닥거림이다. 

표지가 참 예쁘다. 제목도 여운이 깊다. 노란 화살표가 관통한 한 여인네의 기다란 그림자역시 멋지게 들어맞는다. 그처럼 책속에는 이 소설가가 읊는 적지 적소의  상쾌한 경구도 눈에 띈다. 후반부에는 김동리작가와의 에피소드와 자신의 생각도 잠시 섞여있다. 그중에 세번을 끊었다는 말이 놀랍게 다가왔다. 여행중에 그만 그곳에서 정착하면 어떨까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은이는 늘 그런 마음으로 여행을 해왔나보다. 또 그렇게 살아왔나보다. 결혼이 자신을 완성한다고 생각하면서 몇십년을 산 후에, 자신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여인들이 있다면 지은이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같다. 최근에 이 책 처럼 물음표(부정적 의미의)를 많이 그리고 읽은 책도 없다. 그런데 한가지 기억하고 강조하고 싶은 점은 그녀가 말한 '끊었다'는 말이었다. 우린 여태까지 너무 연결되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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