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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승자 - 김대중, 빛바랜 사진으로 묻는 오래된 약속
오동명 지음 / 생각비행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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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3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 당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대통령은 박정희만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국사시간에 왕조마다 왕들이 바뀌고 사화나 정변같은 것들로 암투와 권력다툼이 치열했다는 걸 배웠으면서도 대통령은 한사람 그만이 하는 것으로 알았다. 등교길 버스에서 그리그의 오제의 죽음이란 소위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걸 듣고 대한민국이 천지개벽한 줄 알았다.아침 뉴스시간에 방송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기로 한 줄 알고...

박정희 시절 김대중은 늘 뉴스의 메인에 등장했다.언제나 질타의 중심이었고 이 사람은 늘 말도 안되는 억지장이로 비쳤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이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갔고 다행히 그후 풀려나와 계속되는 반정권의 정치발언을 하는 것을 들었고 마침내 기막히는 인재들을 연이어 겪은 비운의 김영삼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아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았다. 선거운동당시 그의 아내가 준비된 대통령이며 기회를 달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시작을 아이엠에프 금융난과 함께 했고 온 국민을 금모으기 캠페인에 끌어들였다. 금모으기는 전두환의 평화의 댐 성금처럼 모은 돈의 자취를 찾을 수 없지는 않았던 것같다. 그럭저럭 외환위기가 수습되었기에. 그는 같은 라인의 진보정권을 후계로 하고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재임시절 그가 노오벨, 그유명한 노오벨 평화상을 받은 것은 민족적 쾌거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그는 그많은 상금을 오로지 김대중재단의 자금으로 밀어넣었다. 후문에는 수상을 위해 엄청낳 혈세가 동원되었다고 로비자금으로 들어갔다고들 했다. 나의 한방지기는 평화상 상금을 왜 자기가 다 가져갔는지 지금까지도 불만이 많다.

80년대, 그 다소 긴박하던 시절 지방대 교수를 하던 소장파 젊은 학자에게서 우리 김대중 선생님이란 말을 듣고 생경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로선 나의 사상반경도 꽤 진보적이었건만. 김대중이란 이름이 한국의 현대사에 던지는 파장이 얼마나 큰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도 그저 한 인간이었음을 말하고 싶다 정치적 욕망이 일차적으로 그의 인생기반이었다. 그의 독서력과 투쟁정신은 존경스럽고 선동적 지휘력역시 추앙할만 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나는 결코 정치인을 존경하지 않는 신념이 있기에 차라리 그의 일상적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는 글이 있다면 찾아보고 싶다.

이 책에는 그의 하품하는 모습이 많다. 일간지 사진기자였던 저자가 취재차 그를 만나 찍었던 여러 사진들을 모아 그의 1주기 기념즈음에 사진집을 냈다. 제목이 사랑의 승자라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만일 내가 김대중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그건 아니다. 단지 정치인에 대한 편견이 있을뿐이다. 김대중은 주로 책을 밤에 읽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낯시간에는 모임이든 인터뷰든 그는 하품을 많이했다고 한다. 오히려 그의 이점이  마음에 든다. 그는 아주, 대단히 정말 열심히 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라는 점에서 존경스럽다. 단지 그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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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다니엘 파울 슈레버 지음, 김남시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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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을 때였다. 꿈이야기를 하는 여인네들의 말을 세심히 듣고 신경정신상태를 예측하고 분석하는 프로이트의 작업을 글을 통해 읽고 이런 분야의 일도 가능한 거구나하는 감탄을 했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내가 무슨 꿈을 꾸거나 가족들이 무슨 꿈을 꾸었다고 할 때 그 꿈의 내용을 현실속 꿈꾼 사람의 마음상태와 결부해서 대체로 설명할 수 있었다. 꿈에 나타나는 것들은 잠재의식속의 불안과 공포, 또는 희망사항등이 변형되고 엉뚱한 내용끼리 결합되면서 스토리를 이루는 것으로 여겨졌다. 

최근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부쩍 뉴스에 많이 보도된다. 정신분석의 가치가 조금은 퇴색해가는 요즈음은 신경병적 증세가 나타나는 원인은 뇌구조의 불균형이나 신경전달물질의 부조화로 인한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대부분인 것같다. 오죽하면 자살에 이를 정도로 고통에 처했을까 짐작해보지만 그누구도 당사자의 심정이나 입장을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정신에 이상이 있는자가 말한 내용이나 글은 현실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법률적 권리행사에서 금치산자 한정치산자로 치부되지 않는가. 그런데 사회적 명망을 갖추고 유명인사로 활동했던 자로서 오랜 신경병을 앓은 사람이 쓴 책의 경우 어떤 사회적 영행과 파장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의 병력에 관해 상세하게 적은 글이라면. 당당히 출판되고 사람들의 관심이 되었다는 것으로 이상한 책은 아니었을성 싶긴하다.  

프로이트역시 이 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신경병을 앓은 이가 일정 시기 치료가 효과를 보아 자신의 병중 증상을 소상히 밝힘으로써 도대체 신경정신병자가 느끼고 보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증상이 이와 같을 수 없을 것이지만 대개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왜 그리 고통과 두려움을 호소하고 목숨을 끊으려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저자 슈레버는 그야말로 모든 영혼들이 자신의 몸속으로 침투하는 현상을 체험하고 자신이 여성화되어감을 느끼는 지경에 이른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한의 혼돈에 휩싸인 것으로 보이지만 환자자신은 너무나 생생하게 이상한 체험(심지어 기적이라 표현한다)을 하는 것이다. 육체적 고통역시 말할 수 없이 참혹하다. 사지의 피가 심장으로 몰리고 갈비뼈가 모두 으스러져 나가는 느낌을 현실로 부닥친다면 제정신으로 살아있을 사람이 있을까. 신경정신병자의 말못할 혼란의 세상이 이렇게 말로 표현되다보니 상당히 어불성설의 표현들이 많아 보인다. 그런데 단순히 불가사의한 증상의 나열이라고 보기엔 어쩐지 착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현재의 뇌과학의 발전단계로서는 풀리지 않은 숙제들이 산재하다. 증상의 형태를 분석하고 이해의 단계를 높혀 망상의 원인을 검거하는 실질적인 연구에 진력을 다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19세기의 정신병원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몇몇 영화들을 통해 당시의 억압적 치료방법을 더러 목격하였다. 켄케지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잭 니콜슨주연의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보면서 정신병동의 참혹한 현실에 처음으로 눈을 뜰 수 있었는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이와같은 겉은 아닌 듯하지만 실제는 고질적인 억압의 구조가 버티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을 보면서 한편 제도적인 억압이 불러올 수 있는 일반인들의 신경증 증세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자살보인자가 있다고 한다면 사회적 정신분석학의 차원에서 우리 모두는 숨은 폭압의 신경병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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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엮음, 정나리아.이은경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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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어이없고 황당하며 안타깝기도하고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은 빙긋 미소까지 불러일으키는 어떤 일이 있다. 딸아이가 초3때였다. 한창 바이올린을 배우고 연습하던 시절이었다. 4분의 2사이즈를 쓰고 있었는데 당시엔 대량생산한 연습용악기였다. 한번은 한참 연습을 하다 침대에 잠시 앉았는데 글쎄 악기를 놓아둔 자리에 그만 앉아버린 것이다. 고단한 연습이 무신경하게 해버린 건지 대책없는 결과가 나왔다. 완전히 악기가 망가진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악기를 4분의 3사이즈 수제올드로 바꾸긴 했지만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조금전 까지도 연습하던 악기가 순식간에 절단이 나버렸으니. 딸애는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고 초6까지 하던 바이올린 실력으로 대학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악장까지 맡으며 열심히 취미활동을 꾸려나가고 있다. 아마 현재 풀사이즈 바이올린은 아이에게 없어선 안될, 아니 보통의 사물이 아닌 자신의 유일무이한 무생물 친구이자 대화의 창이 아닐까 한다. 

정상의 바이올린주자가 가진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나 과르네리라는 이름을 앞에 단 최고의 악기들이겠지만 꼭 완벽을 다투진 못해도 자신의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 악기, 특히 현악기가 아닐까. 이 책의 첫 에세이스트도 자신만이 이해하는 첼로의 상징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 대학과 학계에서 활약하는 유명인사들에게 자신들에게 의미있는(정확히 말하면 어떤 정신적인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사물을 하나 골라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을 하고 그 글들을 모아 책을 냈다. 편자는 그들의 글을 크게 여섯가지 범주로 나누어 독자들에게 환기의 매개물들을 소개했다. 글들은 일기처럼 평탄하고 주변사의 자잘한 느낌을 담고 있다. 논리적이고 빡빡한 글을 평소에 썼을 이들이 어리숙하게 보일정도의 일상문을 써나가면서 자신의 과거와 인생을 정리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만화를 떠올리면 어린 시절의 꿈과 용기와 비전이 떠올라 부푼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이, 어머니의 낡은 사진 한장을 보고 그녀의 삶과 자신과의 관계를 회상하는 이, 오래전 자신이 그린 다락방의 그림은 위기에 처한 가족의 모습을 또렷히 그려냈다고 담담히 말하는 이는 추억속의 사물들의 힘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의미있는 사물들은 과거의 사물들만은 아니다. 심지어 우울증치료제와 혈당측정기마저 어떤 이에게는 삶의 최대공약수가 된다. 명 바이올리니스트에게만 바이올린이 소중하진 않듯이 늦게 시작한 발레에 애정을 붓는 사람에게 발레슈즈는 또다른 욕망과 훈련의 상징이다. 연구자로서의 지금의 인생을 가능하게한 , 소심한 한 어린 소년의 월드백과사전은 변화와 혁명의 사물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라난 고장을 떠나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해준 기차는 어떤 이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삶의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인류문화학자는 선사시대의 도끼조각 하나도 자신의 손때가 묻어 자식에게 전달되기를 염원한다.   

지오이드, 푸꼬의 추, 점균같은 대상은 과학자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마치 연인과도 같은 느낌을 던져주는 사물들일 수 있다. 사물이 있어 지금의 '나'가 있고 나의 형성과정이 있었다. 내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물들은 그냥 사물들이 아니다. 그것이 추억의 베일속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더라도 신비한 힘을 지닌 마법의 사물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보통 사물이란 내가 붙여준 이름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사물은 나의 영혼과 육신에 나보다 먼저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물체이기도 하다. 또한 누구에게나 특별한 우선권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물이 하나쯤은 있지않을까 싶다. 즐겨쓰는 스카프나 아끼는 액세서리일 수도 있다. 허나 좀더 영감을 주는 창조적인 사물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고 싶은 욕망은 비단 나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주변의 사물들이 범상치 않게 보이기 시작한다. 공기속에 자연속에 심지어 인위적인 생산품들속에서 사물은 우리와 교감하는 대상이다. 무생물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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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 - 이탈리아 문화와 풍속으로 떠나는 인문학 이야기
엘레나 코스튜코비치 지음, 김희정 옮김, 박찬일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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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때 이탈리아 대표팀이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한국을 떠날 때였다. 그들은 자기 대표팀들의 식사를 위해 자국에서 싸가지고 온 화려한 식기들을 한국에 팔고 가겠다고 해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다. 쓰던 식기 일체를 팔겠다는 발상도 의아했거니와 더한 것은 그들이 애초에 한국에 입성할때 자기 선수단을 위한 오로지  자기네만의 살림살이를 그 먼데서 일일이 챙겨왔었다는 사실이었다. 좀 유별난 데가 있는 나라였다. 한국을 아시아의 미개한 나라로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들만의 먹거리와 식재료와 식기들에 좀 유난을 떠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 나라 사람들은 축구선수들조차도 먹는 문화에 일가견이 있든지.

 

우리도 김치나 비빕밥, 나아가 설렁탕같은 것을 세계화시키겠다는 열망이 가득하다. 한 나라의 식문화만큼 그나라의 에센스를 알수 있게하는 것이 있을까. 비빔밥이나 김치의 맛에 매료된 외국인이 한국을 사랑하게 되듯이 이탈리아여행에서 아침에 마신 카페라떼의 맛을 잊을 수 없는 사람은 이탈리아를 미워할 수 없다. 아무리 대한국전에서 약삭빠르게 반칙을 해대고 심하게 헐리우드 액션을 취한 이탈리아 축구선수를 보더라도 말이다. 사흘동안 머무르는 동안 피렌체의 한 트라토리아에서 먹은 피자가 늘 보던 피자와 딴 판인것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한 적도 있다. 얇은 밀가루판을 화덕에 구워냈는데 그 위의 토핑은 커다란 토마토 반토막이 그대로, 그리고 삶은 달걀이 통째로 얹혀진 것이 전부였다. 전세계적으로 대표음식이 된 파스타가 본고장 이탈리아에선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실제로 각 지역마다 무궁무진한 파스타가 있다는데 다양한 모양의 파스타와 소스의 비결은 뭔지 비단 요리관련 업종의 사람들의 호기심만은 아닐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서문을 썼다길래 이 사람이 추천하는 책이라면 대단한 내용인가보다 했다. 물론 이 책의 참고문헌은 전체 책 두께의 20분의 1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책 두께야말로 도스토옢스키 장편소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보다 더 두껍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는 이탈리아 반도를 북, 중, 남부로 나누어 각 주별로 그 지역의 역사와 지형과 사람과 문화와 음식을 이야기하고 이에 두개의 섬 시칠리아와 샤르데냐도 빠뜨리지 않았기에 이만한 분량은 어쩔 수 없겠다. 게다가 각 주의 문화와 음식얘기 사이에는 양념처럼 소주제별로 다양한 이탈리아문화에 접근하는 재미있는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른바 이탈리아 음식 잡학사전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책의 성실성에 감탄하면서 저자와 에코의 관계를 알고 또한번 고개를 끄덕이게된다. 그녀는 러시아출신으로 에코의 수많은 책을 러시아어로 죄다 번역한 전문 번역가이자 저술가이다. 이탈리아에 수십년 살면서 이탈리아 사람들의 독특한 모습, 특히 식문화에 관한 자신만의 생각을 언젠가 한번 글로 써보리라 별렀을 것이다. 도대체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먹는 얘기만 나오면 정신을 못차릴까하고.

 

에코가 왜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는지 오랜 기간 자신의글이 러시아어권으로 연결될 수 있는 통로역할을 한 그녀의 청을 반려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 짐작도 해본다. 에코의 유려한 서문의 흐름을 그녀의 이어지는 문체가 따라주지 못하는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가 이탈리아를 이렇게 자세히, 시시콜콜 해부하여 보여줄 수 있을까. 그 어떤 이탈리아 관광, 여행 책자를 보아도 역사적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마을의 축제가 엿보이고 그 동네 사람들이 즐기는 치즈맛을 상상하고 온가족이 모이는 저녁의 파스타와 안주인의 자부심이 걸린 그집만의 파스타만들기를 떠올리게 하지 못했다. 피자의 색상(빨강은 토마토, 초록은 바질, 흰색은 모짜렐라)이 삼색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차려입는 밀라노의 비즈니스타임에는 리조토가 좀더 의례에 맞는 식단이란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페레로 로슈라는 유명 초콜릿 브랜드도 아마 피에몬테의 초콜릿 공장주였던 피에트로와 조반니 페레로 형제의 초콜릿이 아닌가 한다. 책에는 이들 형제가 1964년 미국의 땅콩버터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낸 누텔라이야기가 나올 뿐이지만.

 

이책을 읽는 동안 우연히 위성방송의 한 채널에서 이탈리아 움브리아주를 소개하는 장면을 보았다. 당장 책을 펼치고 지도에서 움브리아를 찾았다. 화면에는 아름다운 호수와 소박한 시골정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륙지방인 이 곳에 저렇게 아름다운 물의 세상이 있다니... 성프란체스코가 왜 움브리아의 아시시에서 행적을 남겼는지 무욕의 세상인 이 곳만의 특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서유럽 역사를 배웠어도 이탈리아라는 땅덩어리에선 어떤 일이 있었나 궁금했다. 르네상스의 걸출한 인재들 뒤로 여러 공국들이 있었고 메디치가의 후원이 중요한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정도의 얕은 지식으로 늘 목말랐던 이탈리아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은 해소되었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이태리어 음식 이름을 다 알지 못해도 좋다. 이탈리아 전문요리사가 될 요량이 아니라면 육고기 재료로 만든 음식부분에선 빠르게 책장을 넘겨도 무방하다. 군데군데 걸기적 거리는 번역어투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일단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책의 끝페이지까지 가도록 권하고 싶다. 마지막 조리방식과 파스타얘기가 나오기전까지 다 읽고 책장을 닫으면 뿌듯한 기분의 파도가 밀려올 것이다. 이탈리아가 좀더 내게 다가왔다는 느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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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마을의 꿈>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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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을 지키려는 아버지와 마을사람들을 이용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큰 아들, 형과 함께 일을 벌이나 열병에 감염되어 짦은 인생 하직하기전에 마지막 불꽃사랑을 찾으려는 둘째아들, 이렇게 삼부자를 중심으로한 딩씨마을의 매혈기. 오늘보다 조금더 잘 살아보기 위해 시작된 매혈바람은 마을을 죽음의 바다로 만들어버렸다. 관의 지침으로 현단위로 매혈이 강요되고 이웃마을이 피를 팔아 잘 살게 되었다는 풍문에 딩씨 마을에도 매혈의 바람이 불어온다. 인간세상에는 어디에나 남을 직업적으로 등쳐먹는 인간이 한둘이 있게 마련인가. 어리석은 양민을 이용해 부를 갈취하는 종이 있다. 관은 그들보다 선량하다. 아니 그들을 이용해 관(정부)은 유지되고 기름기가 좔좔 흘러넘친다.  

삼부자의 갈등과 함께 딩씨마을 사람들의 이기적이거나 때로는 순박하거나 어리석거나 한 모습들이 그려진다. 딩씨부자들의 모순을 들추어내고 실세가 되려는 마을의 두 사람, 관인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 아내가 병을 얻고 남편이 멀쩡하거나 남편이 병에 걸리고 아내는 살아남는 경우, 병든 몸을 하고 아내에게는 친정에 가서 재가를 하라지만 아버지에게는 아내의 친정행과 재가를 극구 만류해달라고 부탁하는 남편...... 

소설은 시한부 삶을 살게된 젊은 두 사람의 새로운 사랑에 많은 부분 할애되어 있다. 학교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한 열병에 걸린 사람들 이야기와 몹쓸 인간이 된 큰 아들의 만행을 보다 못해 목졸라 죽이려는 늙은 아버지의 갈등 못지않게 소설은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두 연인의 이야기를 애절하게 그린다. 이혼을 하고 결혼확인서를 받아야만 같은 무덤에 묻힐 수 있다는 오로지 그 한 희망이 그들의 사랑을 더 붉게 만든다.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과, 병든 사람들 못지 않게 병들어있는 관료체제를 또한 간접적으로 고발함으로써 뒤틀린 삶의 여정을 암묵화로 보여준다. 중국이 개방한 것은 최초로 영화였다. 적어도 나는 영화' 붉은 수수밭'을 보고 중국을 다시보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이십여년 전이다. 이십여년이 지난 후 2010년 여름에 딩씨마을의 꿈이 붉은 수수밭을 대체해간다. 이때 꿈은 희망이나 밤에 자는 꿈이라기보다 그저 딩씨마을에 관한 '덧없는 이야기'정도로 해석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은 잿빛으로 시작해 뻘건 채혈병으로 온 세상을 빨갛게 물들이더니 마지막에 마을의 폐허를 다시 시커먼 잿빛으로 표현하며 끝내고 있다. 소설은 마치 아름다운 한시를 읽어나가는 느낌도 준다. 때때로 반복되는 구절의 문체는  더욱 독자들의 마음을 아리게 하고 딩씨마을의 비애를 몸소 체험한 느낌이 들게 했다. 작가는 후기에서 그의 앞선 다른 소설과 달리 이 소설이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라고 헀다. 그래서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의 걱정을 기우였다. 소설이 주는 아픔은 오히려 가벼운 감동과는 질이 다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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