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 - 이탈리아 문화와 풍속으로 떠나는 인문학 이야기
엘레나 코스튜코비치 지음, 김희정 옮김, 박찬일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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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2년 월드컵때 이탈리아 대표팀이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한국을 떠날 때였다. 그들은 자기 대표팀들의 식사를 위해 자국에서 싸가지고 온 화려한 식기들을 한국에 팔고 가겠다고 해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다. 쓰던 식기 일체를 팔겠다는 발상도 의아했거니와 더한 것은 그들이 애초에 한국에 입성할때 자기 선수단을 위한 오로지  자기네만의 살림살이를 그 먼데서 일일이 챙겨왔었다는 사실이었다. 좀 유별난 데가 있는 나라였다. 한국을 아시아의 미개한 나라로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들만의 먹거리와 식재료와 식기들에 좀 유난을 떠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 나라 사람들은 축구선수들조차도 먹는 문화에 일가견이 있든지.

 

우리도 김치나 비빕밥, 나아가 설렁탕같은 것을 세계화시키겠다는 열망이 가득하다. 한 나라의 식문화만큼 그나라의 에센스를 알수 있게하는 것이 있을까. 비빔밥이나 김치의 맛에 매료된 외국인이 한국을 사랑하게 되듯이 이탈리아여행에서 아침에 마신 카페라떼의 맛을 잊을 수 없는 사람은 이탈리아를 미워할 수 없다. 아무리 대한국전에서 약삭빠르게 반칙을 해대고 심하게 헐리우드 액션을 취한 이탈리아 축구선수를 보더라도 말이다. 사흘동안 머무르는 동안 피렌체의 한 트라토리아에서 먹은 피자가 늘 보던 피자와 딴 판인것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한 적도 있다. 얇은 밀가루판을 화덕에 구워냈는데 그 위의 토핑은 커다란 토마토 반토막이 그대로, 그리고 삶은 달걀이 통째로 얹혀진 것이 전부였다. 전세계적으로 대표음식이 된 파스타가 본고장 이탈리아에선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실제로 각 지역마다 무궁무진한 파스타가 있다는데 다양한 모양의 파스타와 소스의 비결은 뭔지 비단 요리관련 업종의 사람들의 호기심만은 아닐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서문을 썼다길래 이 사람이 추천하는 책이라면 대단한 내용인가보다 했다. 물론 이 책의 참고문헌은 전체 책 두께의 20분의 1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책 두께야말로 도스토옢스키 장편소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보다 더 두껍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는 이탈리아 반도를 북, 중, 남부로 나누어 각 주별로 그 지역의 역사와 지형과 사람과 문화와 음식을 이야기하고 이에 두개의 섬 시칠리아와 샤르데냐도 빠뜨리지 않았기에 이만한 분량은 어쩔 수 없겠다. 게다가 각 주의 문화와 음식얘기 사이에는 양념처럼 소주제별로 다양한 이탈리아문화에 접근하는 재미있는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른바 이탈리아 음식 잡학사전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책의 성실성에 감탄하면서 저자와 에코의 관계를 알고 또한번 고개를 끄덕이게된다. 그녀는 러시아출신으로 에코의 수많은 책을 러시아어로 죄다 번역한 전문 번역가이자 저술가이다. 이탈리아에 수십년 살면서 이탈리아 사람들의 독특한 모습, 특히 식문화에 관한 자신만의 생각을 언젠가 한번 글로 써보리라 별렀을 것이다. 도대체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먹는 얘기만 나오면 정신을 못차릴까하고.

 

에코가 왜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는지 오랜 기간 자신의글이 러시아어권으로 연결될 수 있는 통로역할을 한 그녀의 청을 반려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 짐작도 해본다. 에코의 유려한 서문의 흐름을 그녀의 이어지는 문체가 따라주지 못하는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가 이탈리아를 이렇게 자세히, 시시콜콜 해부하여 보여줄 수 있을까. 그 어떤 이탈리아 관광, 여행 책자를 보아도 역사적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마을의 축제가 엿보이고 그 동네 사람들이 즐기는 치즈맛을 상상하고 온가족이 모이는 저녁의 파스타와 안주인의 자부심이 걸린 그집만의 파스타만들기를 떠올리게 하지 못했다. 피자의 색상(빨강은 토마토, 초록은 바질, 흰색은 모짜렐라)이 삼색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차려입는 밀라노의 비즈니스타임에는 리조토가 좀더 의례에 맞는 식단이란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페레로 로슈라는 유명 초콜릿 브랜드도 아마 피에몬테의 초콜릿 공장주였던 피에트로와 조반니 페레로 형제의 초콜릿이 아닌가 한다. 책에는 이들 형제가 1964년 미국의 땅콩버터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낸 누텔라이야기가 나올 뿐이지만.

 

이책을 읽는 동안 우연히 위성방송의 한 채널에서 이탈리아 움브리아주를 소개하는 장면을 보았다. 당장 책을 펼치고 지도에서 움브리아를 찾았다. 화면에는 아름다운 호수와 소박한 시골정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륙지방인 이 곳에 저렇게 아름다운 물의 세상이 있다니... 성프란체스코가 왜 움브리아의 아시시에서 행적을 남겼는지 무욕의 세상인 이 곳만의 특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서유럽 역사를 배웠어도 이탈리아라는 땅덩어리에선 어떤 일이 있었나 궁금했다. 르네상스의 걸출한 인재들 뒤로 여러 공국들이 있었고 메디치가의 후원이 중요한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정도의 얕은 지식으로 늘 목말랐던 이탈리아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은 해소되었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이태리어 음식 이름을 다 알지 못해도 좋다. 이탈리아 전문요리사가 될 요량이 아니라면 육고기 재료로 만든 음식부분에선 빠르게 책장을 넘겨도 무방하다. 군데군데 걸기적 거리는 번역어투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일단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면 책의 끝페이지까지 가도록 권하고 싶다. 마지막 조리방식과 파스타얘기가 나오기전까지 다 읽고 책장을 닫으면 뿌듯한 기분의 파도가 밀려올 것이다. 이탈리아가 좀더 내게 다가왔다는 느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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