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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책표지 안쪽에 오른 작가의 웃는 프로필 사진이 낯설지 않다. 그러고보니 이름도 들은 적이 있는 것같다. 이 작가의 데뷔 즈음이나해서 문학계간지의 단편을 보았을 수도 있고...)
1) 울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는 수 없이 대필을 직업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작가는 더 빼앗길 어떤 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인공 대필작가는 아내를 잃었고 정붙이고 키우던 개마저 먼저 보냈다. 반지하의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대필 작업을 함께하고 나와 새벽공기속에서 아내를 하늘나라로 보낸 남자는 아내를 잊지 못하고 온 몸의 통증을 안고 살아간다. 그녀를 그리워 하는 마음은 도릉 더해 문고리가 살아 움직이고 살아움직이는 것들이 살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하는 착란에 이르고 드디어 죽은 이들을 보게 된다. 살아서 못다했던 것을 하기 위해 죽은 자들은 산 자와 똑같은 공간을 돌아 다닌다. 가장 가슴을 때리는 애통한 이들이야말로 죽은 자들이다. 주인공은 그들과 함께 기꺼이 울며 걸어간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도 자신속의 우는 사람을 끄집어내고 다독거린다.
2) 일상의 진부함이 정화의 그물이 되고
주인공 남자는 주차장에 기름이 새니까 고쳐달라는 303호 반장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엔진오일도 발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검색해 알게된다. 그리고 얼마전 탈고해 넘긴 원고의 머리말을 쓰기 위해 일상의 무미건조함을 표현할 말들을 이리저리 바꾸어본다. 일상을 따분하게 분주하게 어설프게 시들하게 만지작거려보지만 모두 마음에 안든다. 다시 갉아먹고란 표현으로 돌아간다. 이 소설은 한 대필작가의 일상에 관한 글이다. 그는 진부한 일상에서 자신의 기억과 환상의 세계를 오간다. 그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슬프고 가슴찡하다. 그는 일상에서 못느낀 또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기억속의 친구에게 잘못을 사과하고 어정쩡한 삶을 살다간 아버지세대를 떠올린다. 일상의 사물은 누군가의 시절이 괴어있는 낯익은 슬픔을 던지는 대상이다. 이 소설 전체에 배어있는 낯익은 슬픔을 통해 독자는 세속의 웅덩이에서 끌어올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3) 살치살은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전설의 자객이다
어색한 교훈적 이야기가 아니다. 문체는 너무나 편안해서 자신의 일기장을 보는 것같은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끅끅 참지못할 쓴 유머에 공감하고 만다. 농협에서 의뢰한 한우고기 부위를 에세이식으로 표현한 안내장은 대필작가에게 나름의 도전이 되었다. 쇠고기 부위 안심에 무슨 주제가 있겠나, 입속으로 수십번 안심이라 중얼거려보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등심도 마찬가지다. 등심도 넘어간다. 다음은 살치살, 이건 뭐가 나올 것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살치살은 왠지 무협지의 자객 이름같다. 단 한번도 실패한 일이 없는 전설의 자객... 이렇게 시작된 에세이식 홍보글은 다행히 오케이를 받지만 다시쓰기 다섯번씩 스무꼭지를 한다면 자서전 한권과 다를바 없는 업무의 과중함에 걱정이 앞선다. 다음부위는 채끝, 채끝, 채끝이라고 되뇌어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치과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그는 아롱사태에 대해 생각했다. 부위특성은 다 외워도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고 홍대입구역에 내릴 때까지 그의 머리속에는 아무것도 아롱거리지 않았다. 아롱거린다로 시작해야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였음에도. 자신은 울면서 독자를 웃게 만드는 처절한 이 페이소스.
4) 내맘대로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내가 만약 이 소설을 다시 쓴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이 완결된 한권의 소설을 어찌 감히 손댈 수 있으리오마는 나라면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더 덧붙이고 싶은데......
@ 장자익 선생의 경우 좀더 드라마틱하게시리 하려면 자신을 포장마차에서 만난 것이 죽은 뒤의 상황이었다고 바꾼다. 그리하면 죽은 자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라는 부분과 연결도 자연스럽고 후반부의 장선생의 출현과도 맥이 통할 것이다.
@ 태인(기르던 개)의 죽음설정이 조금 당혹스럽다. 그것도 아내를 살리기 위한 개의 희생으로 설명되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진돗개가 아닌데 주인이 진돗개로 알고 있는 사실이 부담스러운 개의 입장이 되어보는 설정은 재미있지만 그렇다고 개가 목을 매는 형국은 영 접근이 어렵다.
@ 아내의 병명이 무엇이었을까. 아내의 신비한 예지력은 작가의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상징하지만 아내의 병과 죽음은 그저 주어진 전제로 보기에 독자의 마음은 답답해진다.
@ 어느 날 갑자기 죽은 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은 책에서도 나오듯이 영화 식스 센스의 변용인가. 또는 산 자인줄 알았던 내가 죽은 자일지도 모른다는 현실과 환상의 교차는 이야기의 진행중에 정말 갑작스럽게 등장한다. 환상의 필연성과 일관성이 조금 아쉬웠다.
@ 후반부 공원시절의 주인공을 떠올리는 부분은 전체 흐름과 좀 생경한 느낌을 준다. 자신속의 인식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멋진 소재가 조금 느닷없게 다가왔다.
@ 이야기 중에 좀더 부각되었더라면 하는 부분은, 종우형, 중학시절 유일하게 자신이 때렸던 친구와 때렸던 이유, 아내와 함께한 시간들이다. 또 운명에 대한 작가의 생각 즉 슈레딩거의 고양이 이야기를 인용한 부분은 이야기 전체 흐름을 꿰는 소재로 크게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내맘대로 상상해본다.
5) 왜 '두번째 대문'일까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는데도 왜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두번째 대문의 의미가 잡히지 않을까. 아내가 쓴 문패에 쓰인 말인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아홉번째 집이란 그들이 마지막으로 이사한 집이 아홉번째 집이었고 그렇다면 두번째 대문은 무얼까. 마지막에 태인이의 환생으로 보이는 강아지를 발견하는 주인공. 이제 아홉번째 집의 첫번째 대문은 닫히고 그 강아지와 함께하는 좀 더 밝은 일상이 펼쳐질 두번째 대문이란 뜻일까. 아무래도 그렇게 보고싶다. 더이상 상처한 우리의 주인공이 울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