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마지막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저녁에 서둘러 영화관을 찾았다. 그날 상영작을 너무나 보고 싶어서 개뻥을 치고 업무용 약속도 조기 땡땡이쳤다. 그날 정말 추웠다. 초봄에 접어든 지금 그렇게 추웠던 날이 언제 있었냐 싶지만, 정말 추웠다.

 

초저녁 허기를 달랠 겸 오렌지맛 환타와 살구파이 하나를 덜렁덜렁 들고 극장로비를 배회하던 중 한분과 마주쳤다. 10년전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분이다. 부서도 다르고, 일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꽤 있던 터라 가까이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 다만 항상 훌륭한 성품을 얼굴로 웅변하시던 분이라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다가가 인사를 했고, 다행히 알아보셨다. 상영시간이 임박했기에 짧게 안부만 묻고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곧 영화가 시작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그분과 단출한 식사를 했다. 우동과 맥주 한잔씩. 영화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서로 근황을 물었다.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편하게 응대해주셨다. 그래서인지 이런 말이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요즘도 글을 쓰세요?”
시인에게 이런 무례한 질문을 하다니! 부끄럽다.

 

겨울의 첫걸음
                         채충석

 

남들은 4년이면 마치는 것을
나는 5학년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도 지방 사립 대학을
증서 없는 졸업식 날 학교 떠나는
친구들이 모아 주는 30만원으로
나머지 1학점의 등록을 마치니
노천 강당의 개나리 넝쿨은
올들어 두 번째 피어났다.
낯선 이름과 언어가 붐비는
수요일의 한 시간을 위해
두시간 거리의 직행 버스로 등교하면
지독하게 피곤하였다. 그 다음 날도
이렇게 한 주간이 쉬 지났다.
대학원에 다니냐는 후배들은
모란이 피자 모두 아스팔트 위로
파도처럼 밀려나고, 나만이
텅 빈 풀밭에 오그리고 앉아
흩어진 과우들에게 엽서를 쓰거나
도시의 변두리가 돼버린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동네 어른들이 입을 모아 흉년이 들었다고 하는 동안
코스모스 피는 가을은 슬쩍 찾아들고
5학년 1학기도 한달을 더 끌다
끝났다, 자, 가야지 내일은
경제학사 학위를 받으려
성이 최씨로 바뀐 무거운 앨범도 찾고
홀로 교문을 나서는 나를 만나러
서랍만 달린 겨울을 만나러

 

몇 번을 거듭해 읽은 ‘겨울의 첫걸음’은 내 가슴을 아련하게 만든다. 젊은 날의 시인이 있고, 일상이 있고, 세상이 있고, 세월이 담겨있다. 서른 해의 시간을 뚫고 공감할 수 있는 이 시는 시인의 처녀작이다.(시인은 ‘겨울의 첫걸음’으로 81년에 등단하였다.) 그가 이 시를 내놓지 한참이 지난 후 나는 그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시인은 시를 쓰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아련한 시로 등단했다는 것도 모른 채 멀어졌다. 다시 세월이 흘렀고, 우연히 만나 그에게 나는 싸가지 없는 질문을 냅다 싸질렀다. “요즘 글을 쓰세요?” 더 한심한 건 내가 무례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며칠이 지나서 깨달았다.(이눔아, 백일간 묵언수행이다!)

 

그런데 시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요즘 들어 다시 쓰려고 해요.”
그러더니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난해 일본에서 68살의 할머니가 발표한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할머니가 발표한 첫 시집이었다. 우연히 그 시집을 읽었고 느낀 바가 있었다. 68살의 나이에도 시작을 하는데. 시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뭐 이런...
그날 시인과 함께 본 영화는 신도 가네토라는 감독의 <오후의 유언장>이라는 영화였다. 감독이 83세에 찍은 이 영화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 성찰한 작품이다. 시인은 신도 감독의 작품이 무척이나 좋았다고 말했다.(신도 감독은 지금도 살아있고(무려 100살!), 지난해 <한 장의 엽서>라는 작품으로 공식 은퇴선언을 했다. 99세에 찍은 <한 장의 엽서> 역시 삶에 대한 노련한 성찰이 담긴 무시무시한 작품이다.)

 

집에 돌아와 시인의 첫시를 읽고 있자니 쫌 묘했다. 시인의 첫시와 엊그제 모습이 오버랩 됐고, 나의 어제와 오늘이 뒤를 따랐다. 침대 위에서 두터운 이불을 돌돌 감고 나는 어렴풋이 내일도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다.(나에게 내일은 너무나 두려운 것이기에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떠올릴 수 없다.) 그리고 그 끔찍한 몰골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살아있는 시체의 날들이여! 꺄아아악~.

 

한해가 지나간 것처럼 새 계절이 왔다. 곳곳에 낯선 기운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꽁꽁 얼어버린 한강을 보고 혼자 낄낄거리며 흐뭇해하던 겨울은 이제 끝장났다! 떠밀리듯 ‘서랍만 달린 겨울’을 뒤로 하고 첫걸음을 내딛어야할 때가 어김없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 또 삼월이다. 지금이라도 입 다물고 시작해야 한다, 최소한 자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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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0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1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촌방향> 홍상수, 2011
<달빛 길어올리기> 임권택, 2011

 

어쩌다보니 한국영화만 네 편을 내리 보게 되었다. 두 편은 최근 개봉한 영화고, 두 편은 지난해 작품이다. 불과 한 해 차이로 개봉된 작품인데 그 모양새가 워낙 달라서 신기하기까지 하다. 최근작 두 편(<댄싱퀸>, <파파>)은 특별히 말할 거리가 없다. 그냥 한숨과 하품만. 그런데 2011년산 두 작품은 그렇지 않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재미있다는 거다. 언제부터인가 영화를 보며 시간을 확인한다. DVD나 PC 환경에서 영화를 볼 때 타임코드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되서 그런지, 아니면 영화들이 워낙 따분해서인지 두어 차례 시간을 본다. 극장에서도 그런다. 모래폭풍처럼 질주하는 <미션 임파서블4>를 볼 때도 시계를 열었다. 그런데 <북촌방향>과 <달빛 길어올리기>는 그러지 않았다. 스크린 속에 끊임없이 시선을 묶어두는 무언가가 있었다.

 

 

홍상수 감독을 겉으로만 인정할 뿐 내심 싫어한다. 임권택 감독은 존경한다는 생각뿐었다는 걸 고백한다. 그렇다고 <북촌방향>과 <달빛 길어올리기>를 본 후 홍상수를 좋아하게 되었고, 임권택 감독을 마음까지 다해 존경하게 되었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홍상수 영화는 싫고, 여전히 임권택 영화(특히 <춘향뎐> 이후 작품들)는 선뜻 품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북촌방향>과 <달빛 길어올리기>는 최근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어떤 평론가의 블로그를 보니 <북촌방향>에 대해 열변을 토했더라. 얼핏 보니 홍상수의 작품세계, 신화적 공간, 북촌의 의미, 순환구조 등을 언급하며 영화에 대해 침을 튀며 열광하는 것 같았다. 모두 맞는 말일테지. 하지만 난 그냥 이 영화가 재미있었으며, 그 뿐이다. 그 이유도 너무 단순하다. 요즘 한국영화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야기 집어치우고, 나는 <북촌방향>의 익숙함과 엉뚱함이 재미있었다. ‘홍상수는 영화로 일기를 쓰냐?’며 빈정거린 적 있다. 홍상수의 영화가 본격적으로 흥미로워진 것은 <극장전>부터인 것 같다. 근데 그때부터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일정치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며 한 영화감독의 ‘사생활’을 보기 싫었다. <북촌방향>에서 홍상수는 또 그 짓거리를 한다. 근데 비죽비죽 끼어든 엉뚱함과 뻔뻔스러움이 반갑고 재미있었다.

 

원색 바탕에 커다란 타이포그라피로 제작된 타이틀 화면이 인상적이었고, 대낮에 촬영한 장면을 한밤중이라고 ‘쌩까는’ 능청스러움에 신났고, 1인2역 설정이 풍기는 야시시한 분위기도 신선했고, 등장인물이 시종일관 똑같은 옷만 입고 나오는 것도 웃겼다. 나중에는 조악한 흑백화면도 정이 들더라. 요즘 한국영화의 관습과 틀을 희롱하고 야유하는 듯한 태도가 유쾌해 보였다. 게다가 상영시간도 짧다!(이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지점이다!!) 홍상수는 감동이고 작품성이고 관심 없는 듯하다. 그냥 꼴리는 데로 찍는다. 오십이 넘은 이 아저씨,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제멋대로잖아. 이런 영화 왜 찍으세요? 하하하.

 

 

반면 일흔살이 넘은 임권택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관객을 배려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까봐, 알기 쉽게 표현하려 노력한다. 임권택의 영화를 꽤나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관객을 생각하는 영화는 처음이다. 자기 이야기가 외면 받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그 조바심이 싫거나 불편하지 않다. 마음을 전하려는 마음이 느껴져 고맙다. 그 진짜 선의가 영화 속에 앉아있다. 이런 작품을 두고 작품성과 대중성을 논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관객의 비위를 맞추거나 관객을 낚으려는 영화가 넘쳐나고, 그렇지 않으면 관객을 개무시하는 감독 뿐인 요즘, 팔십을 바라보는 노인이 만든 <달빛 길어올리기>는 참으로 순수하고 순진한 영화다. 그런 영화가 주는 감동이 있다.

 

아쉬운 점 한 가지. <달빛 길어올리기>는 우리의 전통한지를 소재로 삼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전통한지의 은은하고 강인한 매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쩐지 그 정서는 아날로그 어법에 어울리는 듯하다. 그런데 HD로 촬영한 <달빛 길어올리기>의 화면은 전통한지의 아름다움과 임권택 감독의 마음을 담기에는 너무 깨끗하고, 선명하며, 차갑다. 하지만 어쩌랴? 필름의 시대는 이미 끝났는걸. 지난주 이스트만 코닥사가 공식적으로 파산을 선언했다.

 

생각할수록 <북촌방향>과 <달빛 길어올리기>는 이상한 나라에서 온 영화같다. 임권택과 홍상수가 특별하게 보이는 2012년 이 겨울의 ‘설정’은 뭐지? 도무지...
혹 길을 가다 임권택 감독님을 보게 되면,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싶다. 그리고 “다음 작품은 개봉관에서 보겠습니다, 꼭”이라는 말도 덧붙일 거다. 그러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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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3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술이 덜 깬 아침, 아른 거리는 여자. 그녀의 눈을 보며 세상과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한달전에 헤어졌다. 덕분에 성숙한 거 같다. 근데 딱히 실감은 나지 않는다. 젠장, 술은 깨질 않고 그날 아침만 떠오른다.

 

행복한 나날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가 남긴 지랄같은 기분만 남았구나. 지금 숙취처럼 말이야. 하지만 난 변할 거다. 그날 아침 기억 때문에, 숙취 따위로 이렇게 망가질 순 없어. 일어나자! 엿 같은 상황은 조만간 바뀌겠지.

 

내가 또 사랑이란 걸 할까? 뭐 그렇다면 또 실연을 당하고, 또 병신이 되겠지. 아님 운이 좋으면 실연의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수도... 젠장, 그날 아침 그녀가 또 아른거린다. 골 아파.
속이 울렁거려서 도무지 쉴 수 없군. 난 제대로 망가졌는데, 그녀는 멀쩡하게 지내고 있겠지. 그녀가 무엇을 하든 나는 끝까지 모를 거다. 사람들이 나한테 이야기해주기 전까지는, 내 눈으로 그녀가 뭘하는 지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말이야. 사람들이 뭐라든 그냥 그렇다고.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과 사랑에 빠진 느낌이 들게 하던 그녀. 자꾸 아른 거린다. 젠장, 아침인데 술이 깨질 않아.

내 이야기가 아니다. 엘리엇 스미스의 ‘say yes'라는 노래의 가사다.
어제 아침 저녁 오가며 이 노래를 대략 50번은 들은 거 같다. 아이팟 랜덤 모드로 듣다가 갑자기 가사가 궁금해졌고, 반복재생 모드로 줄기차게 들었다. 좋은 곡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오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중딩영어 단어로 된 가사인데, 도무지 의미를 모르겠더란 말이다. 아무리 내 영어가 병신이라지만 어이가 없었고, 오기가 발동했다.


웹서핑을 하니 성기완이 번역한 가사가 있었다. 세 번 읽어봤지만 더 병신된 느낌. 이건 아니잖아. 원문 가사를 소개한 외국 웹사이트에서도 가사의 의미를 두고 지들끼리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 같더라. 엘리엇이 술(혹은 약?)에 ‘쩔어’ 쓴 가사라서 그런가? 그럼 나도 술(혹은 약?)에 ‘쩔어’ 노래를 듣고 가사를 보면 통하려나?


암튼 버스에서 가사원문과 함께 반복청취를 하며 ‘진짜 멋대로 해석’한 것이 윗글이다. 노래에서 줄기차게 반복되는 'the morning after'가 ‘숙취’와 ‘그날 아침’을 함께 의미하는 것 같아서 맘대로 이해했다. 꿈보다 해몽!

 

전에 알던 친구는 ‘엘리엇 스미스는 들을수록 지겹다’고 했다. 나는 엘리엇 스미스의 열혈팬은 아니다. 하지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 며칠 전에는 유투브에서 엘리엇의 라이브 동영상을 보고 울컥한 바 있어 솔직히 더욱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난 침묵했다. 죽은 사람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게 싫었고, 그 친구는 엘리엇 스미스의 앨범을 한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니까. 그런데 오늘 만원버스 구석 좌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say yes'의 가사를 해석하고 있자니 그때 엘리엇을 위해 반박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죽은 엘리엇에게 미안했다. 엘리엇 형, 미안해!

 

집에 돌아와 엘리엇의 앨범들을 뒤졌다. 오랜만이다. 근데 앨리엇의 마지막 앨범의 CD가 실종되었다. 케이스와 북클릿만 보일 뿐 정작 CD는 보이질 않는다. 엘리엇은 이렇게 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엘리엇 형, 미안해! 

 

뭐 이제 다 지난 이야기다. 엘리엇도, 그 친구도, 엘리엇 때문에 혼자 맘 상한 것도, 사라진 CD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망가지 않은 CD를 듣는 거... 자살하기 전 마지막 무대의 영상을 보며 마음 아파하는 거... 그것 뿐이다. 죽은 사람한테 다시 살아나라고 할 순 없지 않는가?

 

2003년 9월 19일 마지막 무대 중에서.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f8oLojgTMVA

 

나는 바보. 유투브 동영상 띄우는 거 몰라서, URL만 뿌린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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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1-3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ㅎㅎ 저도 엘리엇 스미스 한 때 엄청 빠져서 들었었어요. 특히 작년에 혼자 -_-;;;
between the bars는 수백번 들어도 질리지도 않더라구요. 으..
say yes가 저런 내용이었군요. 흠. 들을 떈 몰랐는데ㅠㅠ

아이팟 노래 다 날리는 바람에 엘리엇오빠 노래도 다 날아갔는데 다시 파이럿베이 뒤져봐야겠다는;; ㅋㅋㅋ

lazydevil 2012-01-31 14:24   좋아요 0 | URL
제발 쫌! 실시간 댓글에 놀랐잖아요!!
가사 해석 믿지 마시고...
CD는 도망가고, 파일은 날아가고... 그들은 살아있음이 분명하네요.ㅠㅠ

Forgettable. 2012-01-31 14:49   좋아요 0 | URL
놀라긴ㅋㅋㅋ
지겨운 회사생활이 다 이런게 낙 아니겠어요? ㅋㅋ

왠일로 시간 나셨나봐요?
근데 왜 제 서재에 반말했다가 존대말로 수정했어요? ㅋㅋㅋㅋ 반말해도 돼요 ㅋ

lazydevil 2012-02-01 00:17   좋아요 0 | URL
젠장, 댓글 수정하다가 삭제됐네요ㅜ
암튼 반말 안했다고요...!ㅎㅎ

Forgettable. 2012-02-05 20:36   좋아요 0 | URL
우연히 버려진 유에스비에서 노래 찾아서 다시 들었습니다.
좋습니다. ^^

lazydevil 2012-02-06 18:34   좋아요 0 | URL
지랄맞게 좋지요?
버림받은 것들도 잘 살펴보면 쓸만하다니까요.ㅎㅎ

2012-02-02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2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4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017에도 엘리엇을 듣고 있는 1인입니다. 좋은 가사네요 가사 번역 감사드립니다

lazydevil 2017-04-26 15:3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들어요, 요즘도. 게을러서 요즘 서재는 방치... 트윗으로 가끔 음악 이야기하네요^^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9
김준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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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백 페이지 넘도록 음담으로만 채워진 이 책을 읽는 동안 꼴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꼴림이 욕망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짜릿하고 도발적이며, 때로는 파격적인 음행이 어두운 욕망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 것은 웃음이라는 건강한 밑바탕 위에서 까발려졌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성소화선집>은 제목 그대로 야하지만 웃기는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에서 야한 거 못지않게 주목해야할 것이 웃음이다. <조선후기 성소화선집>을 읽는 동안 어린 조카나 여동생이 무단침입해도 놀라지 않았던 것은 ‘조선후기’ 때문이 아니라 ‘소화(笑話)’ 때문이다. 웃음은 건강함와 쾌활함을 담보하기 때문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다.
반면 ‘심각함’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 야동, 그러니까 포르노는 늘 심각하다. 정확히 말하면 심각한 척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심각할 것을 강요한다. 야동(설) 속의 인물들도 심각하고, 야동(설)을 보고(읽고) 있는 사람도 심각하다. 야동이나 야설에 몰입하는 사람의 표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어찌나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 민망하고 웃기다.(뭐 이런 표정을 살펴보는 게 더 변태같이 들리는군!ㅎㅎㅎ) 아무튼 필요이상으로 심각한 것은 위험 신호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진작 펼쳐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백여 페이지와 옮긴이의 해설을 남겨놓고 꽤 오랫동안 미뤄두고 있었다.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터라 뒤로 갈수록 책읽기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어쩌다 옮긴이의 해설을 읽고 난 후 못다 읽은 나머지 분량을 읽어치웠다. 순전히 좋은 해설 덕분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책은 해설부터 읽어야 한다’는 거다. 아니 반절쯤 읽다가 해설을 읽은 후 마저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알기 쉽고 유용한 이야기로 가득한 해설은 조선시대 음담을 어떻게 이해하고 즐겨야하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해설에 실린 다음 글귀는 의미심장하다.

윤리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공동체를 위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현재의 상황이 미래까지 지속되기를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절망의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이 오랫동안 유지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때문에 금지된 영역을 보여줌으로써, 금지된 것을 위반함으로써, 자신의 울분을 드러낸다.(p.649)

이것이 해설을 쓴 옮긴이의 생각인지, 푸코의 주장인지, 바타유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이 즐긴 ‘꼴리는 이야기’들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열쇠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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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나온반달 2011-10-08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 근사합니다.
해설부터 먼저. 명심하지요.

lazydevil 2011-10-09 12:15   좋아요 0 | URL
제목 빼고는 건질 거 없는 리뷰죠~~~ㅎㅎ

쥬베이 2011-10-14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lazydevil님께서 저런 저속한 표현을 쓰시다니ㅋㅋㅋ
어울리지 않아요^^ lazydevil은 지적이고, 고상한 표현이 어울리십니다ㅋ
아, 저 책 진짜 끌리네요. 조선시대 야설(?) 같은거죠?
춘향전도 원본은 야한장면이 많다더라고요 나중에 읽어야지 ㅋ

lazydevil 2011-10-17 15:17   좋아요 0 | URL
저요.. 고상하지도, 지적이도 않아요~ㅎㅎ
근데 이 책은 고상하지도, 지적이도 않지만 활달하고 재미있어요.^^

2011-10-17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1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 내 사랑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1.
(...) 모자를 벗어서 머리를 만져보았다. 멋지고 오래된 내 머리, 너무 오랫동안 달고 다녔지. 지금은 약간 무른 과육 같고 꽤 아팠다. 그렇지만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가볍게 얻어맞은 정도였다. 모자가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대로 여전히 쓸만한 머리였다. 어쨌거나 내년에도 쓸 수 있을 것이다.(p96)

지난 주 내내 며칠간 뒷골이 당길 정도로 짜증이 범람했다. 폭주하는 ‘골땡김’을 극복하는 처방이랍시고 한 짓거리. 책장에서 챈들러를 꺼내 읽으며 매실주 음용하기! 쫌 찌질하다. 이런 때 챈들러라니? 무슨 허세냐. 게다가 위스키 사워나 김릿도 아니고 발암물질 함유가 다분히 의심되는 매실주가 뭐냐?

2.
굴착기 삽만 빼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얻어맞은 것처럼 얼굴이 여기저기 찌그러져 있었다.(p.14)

암튼 오랜만에 말로를 다시 만나는 동안 잠시 골땡김을 잊었던 것은 사실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다가 키득거리고 웃었으니까. ‘말로가 날 웃겼어. 말로가 나를 웃겼다고.’라고 혼잣말을 해본다.

3.
어찌나 예의 바르던지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그를 침실까지 업어다 주고 싶을 지경이다.(p.182)

원래 책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이지만, 확실히 챈들러를 읽는 속도는 더욱 느리다. <안녕 내 사랑>을 거의 나흘 이상 붙들고 있었으니까. 오래전 처음 읽었을 때는 더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분명히 그럴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느리게 읽기와 다시 읽기의 댓가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챈들러를 추앙하고, 말로를 흠모하기에 억지로라도 엇나가고 싶다. 하지만 말로를 만나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즐겁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챈들러를 추앙하고, 말로를 흠모하노라고. 어찌나 흠모하는지 그를 침실까지 업어다 주고 싶을 지경이다. 아고 허리야...

4.
한기가 느껴지고 나 자신이 역겨워졌다. 가난뱅이의 주머니를 턴 기분이었다.(p.198)

말로는 죄 많고 더러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위악적인 태도를 보호색으로 삼는다. 그것이 때로는 지독한 냉소나 환멸로 표출되기도 하고, 때로는 신념을 지키는 다크 나이트의 정의로움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그의 매력은 냉소와 환멸이다. 그것은 썩어빠진 세상에 대한 야유이기에 전혀 밉살스럽지 않다.

5.
“나는 매끈하고 화려한 여자가 좋아요. 비정하고 죄를 잔뜩 짊어진 여자들 말이에요.”(p.287)

북하우스판 번역은 매우 충실한 편이다. <빅슬립>부터 <기나긴 이별>까지 차례로 읽을 때도 느낀 점이지만 뒤로 갈 수록의 말로에 어울리는 번역본으로 진화한다. 다만 다시 거슬러 <안녕 내 사랑>을 펼쳐보니 말로의 어투가 조금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들린다. 깍듯한 말투로 이죽거리는 말로도 재미있긴 하다. 하지만 터프한 척 허세작렬하는 남자, 그게 말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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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나온반달 2011-10-08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를 읽고도 책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lazydevil 2011-10-09 12:15   좋아요 0 | URL
허걱, 오디션 프로에서 심사위원들에게 칭찬을 받는 기분임다.^^;;

Forgettable. 2011-10-08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번에 읽으셨군요?? 재밌죠 ㅋㅋ 동시대(?)에 님과 같은 책을 읽은 경우는 이번이 첨이 아닐까 싶네요 ㅎ 전 챈들러가 좋은지 말로가 좋은지 점점 헷갈립니다ㅡ ㅋㅋ

lazydevil 2011-10-09 12:24   좋아요 0 | URL
일년에 한번 정도는 꼭 말로를 읽어줘야 말로식 허세를 흉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ㅋㅋㅋ

전 헛갈리리지 않아요. 챈들러는 질투, 말로는 흠모임다.

느린산책 2011-10-08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씨 어찌 이리 재기발랄 솔직본능 멘트들이 날라다닐 수 있는 거인지..
정말 부러워요. 데빌님. (아 질투나)

lazydevil 2011-10-09 12:21   좋아요 0 | URL
부러우면 지는거...ㅎㅎㅎ
근데 저따위를 질투하는거.. 아무짝에 쓸모 없다는...^^;;

쥬베이 2011-10-14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zydevil님~ 리뷰에서 말로의 향기가 풍기는데요^^
레이먼드 챈들러 작품은 아직 읽은게 하나도 없어요.
입문자가 읽을만한거 하나 추천해 주세요^^
요즘 주말에 공부는 안하고 소설만 읽고 있어서 ㅋㅋㅋ

lazydevil 2011-10-17 15:20   좋아요 0 | URL
음.. 말로 시리즈는 순서대로 읽어야 할 거 같아요.
아마도 첫작품 <빅슬립>이 고비가 아닐까...시리즈 전체를 놓고 보면, <빅슬립> 후반부터 힘이 폭발하기 시작해요^^
전 개인적으로 <리틀 시스터>를 제일 좋아합니다. 좀 말로답지 않은 구석이 풍기지만 <호수의 여인>도 무척 재미있게 읽어요. 물론 가장 역작은 <기나긴 이별>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