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방향> 홍상수, 2011
<달빛 길어올리기> 임권택, 2011

 

어쩌다보니 한국영화만 네 편을 내리 보게 되었다. 두 편은 최근 개봉한 영화고, 두 편은 지난해 작품이다. 불과 한 해 차이로 개봉된 작품인데 그 모양새가 워낙 달라서 신기하기까지 하다. 최근작 두 편(<댄싱퀸>, <파파>)은 특별히 말할 거리가 없다. 그냥 한숨과 하품만. 그런데 2011년산 두 작품은 그렇지 않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재미있다는 거다. 언제부터인가 영화를 보며 시간을 확인한다. DVD나 PC 환경에서 영화를 볼 때 타임코드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되서 그런지, 아니면 영화들이 워낙 따분해서인지 두어 차례 시간을 본다. 극장에서도 그런다. 모래폭풍처럼 질주하는 <미션 임파서블4>를 볼 때도 시계를 열었다. 그런데 <북촌방향>과 <달빛 길어올리기>는 그러지 않았다. 스크린 속에 끊임없이 시선을 묶어두는 무언가가 있었다.

 

 

홍상수 감독을 겉으로만 인정할 뿐 내심 싫어한다. 임권택 감독은 존경한다는 생각뿐었다는 걸 고백한다. 그렇다고 <북촌방향>과 <달빛 길어올리기>를 본 후 홍상수를 좋아하게 되었고, 임권택 감독을 마음까지 다해 존경하게 되었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홍상수 영화는 싫고, 여전히 임권택 영화(특히 <춘향뎐> 이후 작품들)는 선뜻 품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북촌방향>과 <달빛 길어올리기>는 최근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어떤 평론가의 블로그를 보니 <북촌방향>에 대해 열변을 토했더라. 얼핏 보니 홍상수의 작품세계, 신화적 공간, 북촌의 의미, 순환구조 등을 언급하며 영화에 대해 침을 튀며 열광하는 것 같았다. 모두 맞는 말일테지. 하지만 난 그냥 이 영화가 재미있었으며, 그 뿐이다. 그 이유도 너무 단순하다. 요즘 한국영화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야기 집어치우고, 나는 <북촌방향>의 익숙함과 엉뚱함이 재미있었다. ‘홍상수는 영화로 일기를 쓰냐?’며 빈정거린 적 있다. 홍상수의 영화가 본격적으로 흥미로워진 것은 <극장전>부터인 것 같다. 근데 그때부터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일정치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며 한 영화감독의 ‘사생활’을 보기 싫었다. <북촌방향>에서 홍상수는 또 그 짓거리를 한다. 근데 비죽비죽 끼어든 엉뚱함과 뻔뻔스러움이 반갑고 재미있었다.

 

원색 바탕에 커다란 타이포그라피로 제작된 타이틀 화면이 인상적이었고, 대낮에 촬영한 장면을 한밤중이라고 ‘쌩까는’ 능청스러움에 신났고, 1인2역 설정이 풍기는 야시시한 분위기도 신선했고, 등장인물이 시종일관 똑같은 옷만 입고 나오는 것도 웃겼다. 나중에는 조악한 흑백화면도 정이 들더라. 요즘 한국영화의 관습과 틀을 희롱하고 야유하는 듯한 태도가 유쾌해 보였다. 게다가 상영시간도 짧다!(이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지점이다!!) 홍상수는 감동이고 작품성이고 관심 없는 듯하다. 그냥 꼴리는 데로 찍는다. 오십이 넘은 이 아저씨,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제멋대로잖아. 이런 영화 왜 찍으세요? 하하하.

 

 

반면 일흔살이 넘은 임권택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관객을 배려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까봐, 알기 쉽게 표현하려 노력한다. 임권택의 영화를 꽤나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관객을 생각하는 영화는 처음이다. 자기 이야기가 외면 받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그 조바심이 싫거나 불편하지 않다. 마음을 전하려는 마음이 느껴져 고맙다. 그 진짜 선의가 영화 속에 앉아있다. 이런 작품을 두고 작품성과 대중성을 논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관객의 비위를 맞추거나 관객을 낚으려는 영화가 넘쳐나고, 그렇지 않으면 관객을 개무시하는 감독 뿐인 요즘, 팔십을 바라보는 노인이 만든 <달빛 길어올리기>는 참으로 순수하고 순진한 영화다. 그런 영화가 주는 감동이 있다.

 

아쉬운 점 한 가지. <달빛 길어올리기>는 우리의 전통한지를 소재로 삼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전통한지의 은은하고 강인한 매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쩐지 그 정서는 아날로그 어법에 어울리는 듯하다. 그런데 HD로 촬영한 <달빛 길어올리기>의 화면은 전통한지의 아름다움과 임권택 감독의 마음을 담기에는 너무 깨끗하고, 선명하며, 차갑다. 하지만 어쩌랴? 필름의 시대는 이미 끝났는걸. 지난주 이스트만 코닥사가 공식적으로 파산을 선언했다.

 

생각할수록 <북촌방향>과 <달빛 길어올리기>는 이상한 나라에서 온 영화같다. 임권택과 홍상수가 특별하게 보이는 2012년 이 겨울의 ‘설정’은 뭐지? 도무지...
혹 길을 가다 임권택 감독님을 보게 되면,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싶다. 그리고 “다음 작품은 개봉관에서 보겠습니다, 꼭”이라는 말도 덧붙일 거다. 그러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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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3 2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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