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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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거미여인의 키스>를 읽고 난 후 독후감을 쓸 생각은 없었는데, 샤워를 하던 중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몇 마디 적는다.

읽는 내내 독자를 발렌틴의 역할로 소환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눈에 띄었다. 두 인물의 대화가 이 작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있고, 대화는 이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했고, 무엇을 생각했으며, 무엇을 욕망했는지를 전달하는 거의 유일한 단서다.
흥미로운 것은 두 주인공의 대화 중 대부분이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거미여인의 키스>는 대부분 대화로만 구성되어있고, 그 대화 중 대부분은 몰리나가 보았던 영화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몰리나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발렌틴은 대부분 입을 다물고 있다. 즉 발렌틴은 몰리나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의 역할에만 만족하고 있는데, 이는 <거미여인의 키스>를 읽는 동안 독자가 하는 짓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작품 속에서 발렌틴은 몰리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동안에는 책을 읽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슨 책을 읽는 지는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 작품 내내 발렌틴이 하는 짓거리란, ‘책읽기’, ‘디비자기’, ‘처먹기’, ‘물똥싸기’, ‘몰리나 이야기 듣기’가 전부다.(이건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했던 짓거리와 무척 닮았다!ㅎㅎ) ‘책읽기’, ‘디비자기’, ‘처먹기’, ‘물똥싸기’ 등을 하는 동안에 무슨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고로 대화가 중심인 이 작품은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이야기가 전부고, 발렌틴은 철저히 듣는 사람 역할만 할 뿐이라고 우겨도 된다. 결론은 작품 전체로 놓고 보면, 발렌틴은 ‘삐꾸’고, 몰리나야 말로 이야기의 ‘갑’이라는 것. 동시에 발렌틴과 독자는 하는 짓거리가 똑같다. 발렌틴은 독자나 다름없다는 것. 그럼 뭐야? 몰리나는 작가 마누엘 푸익이란 말인가? 맞다. 어찌보면 이 작품에는 “나도 여자랍니다.”라는 몰리나의 육성을 발렌틴과 독자에게 학습시키려는 푸익의 음모가 숨어있다. 그 증거, 몰리나와 푸익은 둘 다 게이이며, 지독한 영화광이었다는 것. 너무 억진가? 
근데 이건 샤워하면서 떠오른 생각이 아니라 삼천원짜리 커피 마시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머리에서 삼푸 거품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동안 떠오른 생각은 좀 다르다.
이 작품에서 독자의 시선을 발렌틴에 고정시키는 것은 멍청하고 단순한 이해라는 것. 작가 마누엘 푸익은 이 작품에서 서술자라기보다 기록자 역할을 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작품은 대화로만 이뤄진 작품이다. 아니 대화 말고 몇 가지 요소가 더 있다. 사건 기록이라든가, 신문기사, 각주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조차 해석과 설명보다는 기록 및 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감옥에 갇힌 몰리나와 발렌틴에 관한 하나의 ‘감시 기록’이라할 수 있다. 지극히 객관적인 소스만 나열하고 있다. 마치 감옥에 설치한 도청장치를 통해 몰리나와 발렌틴의 대화를 엿듣는 형국이다. 간간이 삽입된 몰리나와 소장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사건 취조 녹취록에서 발췌한 내용같다. 결국 독자는 발렌틴의 시선으로 몰리나의 이야기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훔쳐듣는 도청자의 시선으로 소환된 것이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독자는 상상하고, 추측하고, 이입한다. 그러고 보니 <타인의 삶>이라는 독일영화가 떠오른다. 한 연극연출가의 생활을 감시하는 도청전문가의 이야기를 다룬 그 영화는 ‘무대와 객석’, ‘예술과 독자’와의 관계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푸익은 전통적인 소설기법에서 벗어난 독특한 양식을 통해 독자의 위치를 한 곳에 묶어두지 않고 이리저리 옮아가게 만든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동안 독자는 발렌틴/몰리나/감시자/독자의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오가며 이야기 속에 빠져든다.
솔직히 명성에 비해 무시무시할 정도로 재미있거나 놀라운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이건 순대국 먹다가 떠오른 생각인데, 사람 사는 동네는 모두 비슷하다.
어쩌다가 1950,60년대 우리나라 정치상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후 읽는 책마다 정치적 은유와 풍자가 선명하게 읽히더라. 아르헨티나든, 인도든, 대한민국이든, 도미니카 공화국이든 독재국가의 모습은 비슷하고, 독재자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비델라를 인디라 간디로 바꾸고, 인디라 간디를 이승만으로 바꾸고, 이승만을 다시 트르히요로 바꿔서 이해해도 무방하다. 이건 무바라크→후세인→김정일→카다피 등으로 개명놀이를 계속할 수 있다는 말이다. <거미여인의 키스>가 출간될 당시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상황을 모름에도 작품을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다.
 
독후감을 마무리하며 느닷없이 떠오른 생각. 이 따위 리뷰를 끝까지 읽는 사람이 있을까? 이 글을 서재에 올릴 필요가 있을까?

참 자꾸 ‘거미여인의 키스’를 ‘거미여인의 최후’라고 실수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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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9-22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지데빌님은 뭘 많이 하시면 생각이 많이 떠오르시나 봐요. 책은 못 읽었는데 저는 못 읽은 책 리뷰에만 관심이 많아서, 너무 재밌어서 페이퍼 읽었어요. 얼마전부터 가끔 오는데,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lazydevil 2011-09-22 16:31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 작품보다 리뷰에 읽는 걸 더 좋아한 적 있습니다. 소설이든, 시든 리뷰만 읽었던 기억이...ㅎㅎ
요즘은 그 반대죠. 작품만 읽고 해설은 대충 넘겨봐요^^ 근데 알라딘에 리뷰랍시고 올리니 좀 웃기죠. ㅋㅋ
반갑습니다.^.^

June* 2011-09-22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페이퍼. 막ㅡ 저녁을 먹고 책을 읽으려고 앉아있던 참에 폰으로 여기저기 서재탐방 중이거든요. 소장은 하고 있는 책인데 몇년째 먼지 속에 묻혀있어요. 리뷰를 보니까 갑작스레 읽고싶어지는걸요 ^^

lazydevil 2011-09-23 09:30   좋아요 0 | URL
저도 벼르고 벼르다가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전 푸익의 다른 소설 <천사의 음부>까지 쟁여놨어요..ㅡ.ㅡ 암튼 읽고 나니 빚청산한 기분이랄까요?ㅎㅎ 준님도 얼릉 청산해보세요.
반갑습니다.^.^

Forgettable. 2011-09-22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끝까지 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리뷰써달라고 부탁한 것도 있고 해서 ^^

전 이거 재밌었단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아요. 그런데 마누엘푸익이 정말 영화광에 게이였나요?? 흥미로운 정보군요.. 이 책과 [타인의 삶]이 함께 놓이다니, 그럴법해요.
[타인의 삶]에서 감시자에게 주는 말인 'HGW XX/7 gewidmet, in Dankbarkeit' 이 헌사와..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제가 밑줄 그어두었던
'하지만 커튼을 젖히고 몇 분 동안에 걸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북서쪽을 바라보고 있었음.
즉 후라멘토가와 바우네스가의 교차로,
좀더 정확하게 방향을 표시하자면,
교도소가 있는 비야데보토 지역을 향해 쳐다보고 있었음.'

이 부분이 묘하게 겹치는 느낌이네요..
재밌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

lazydevil 2011-09-23 09:33   좋아요 0 | URL
뭡니까, 코드번호까지 증거자료로 삼는 포겟님의 댓글....ㅋㅋ
근데, 인용하신 대목...
다시보니 참 쓸쓸하네요. 감시일지에서 몰리나의 내면이 백푸로 묻어나는군요.
푸익, 정말 대단합니다.

낮에나온반달 2011-09-29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따위 리뷰"에 관심이 많습니다.^^

lazydevil 2011-09-29 17:45   좋아요 0 | URL
뜨거운 격려가 다른 '이 따위'를 부르네요^^ 감사합니..ㅎ
 

감기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그거 참아보려고 도움을 청한다, 막걸리에게.
근데 취한다.
원래 막걸리 슬렁슬렁 마시며 음주독서하며, 음주음악감상하려했는데...
술만 달린다. 끄억~~
술김에 한곡 나눠본다.
어렸을 땐 그냥저냥이었는데, 나이 먹으니 이 밴드가 왜 그리 좋은지.
역시 강한놈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라는 진리!
펄잼, 오래간다. 그들의 음악은 점점 깊고 단단해진다. 그리고 여유로워진다. 

pearl jam, 'daughter + it's ok' NY live, 2000, 8, 24

http://www.youtube.com/watch?v=_GYlgOGy0xk&feature=fvst
 

무대 말미에 “괜찮아, 괜찮아. 도망치거나 숨을 필요 없어. 이건 기회야.”를 연창하는 에디 베더...('it's ok'는 원래 배드문이 부른 펑크 넘버다.) 
그렇게 다독거려주고 격려해줘서 고마워... 진심으로... 


처음 올리는 주정이며,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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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1-09-1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어제 같은 시간에 취해있었군요 ^^

lazydevil 2011-09-18 11:34   좋아요 0 | URL
포겟님도 나홀로 음주클럽인가요?ㅋㅋ

글샘 2011-09-17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걸리 주독엔... 복국이 최고입니다.

lazydevil 2011-09-18 11:38   좋아요 0 | URL
막걸리 한병 1300원, 복국 한끼 무려...^^;;;
아 시원한 복지리가 생각나는 21도C 가을 아침입니다.

글샘님, 반갑습니다.^^

쥬베이 2011-09-18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주독서를 하시다니^^
저한테 lazydevil님은 항상 모범생 이미지였는데 말이죠ㅋㅋㅋ

lazydevil 2011-09-18 11:37   좋아요 0 | URL
전말이죠, 늘 범생이를 가장한 호박씨였슴다.ㅋㅋ

카스피 2011-09-1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막걸리라....저도 요즘에 막걸리+홍어+돼지수육+김치에 푹 빠져있답니다.오늘 저녁도 나홀로 홍어와 김치와 막걸리 한잔 쭉 걸쳤지요^^

lazydevil 2011-09-19 00:38   좋아요 0 | URL
막걸리+홍어+돼지수육+김치!!!
거의 아토스+프로토스+아라미스, 그리고 달따냥에 필적하는 최강멤바네요!!
급땡긴다, 막걸리~홍어~ ㅜㅜ
 

<나와 마릴린> 이지민, 그책

‘그냥 그렇게 묻히기는 아까운 작품’이라는 아는 사람의 멘션과 ‘1954년에 우리나라에 방문한 마릴린 몬로의 통역을 맡았던 한국여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발상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최근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급 매혹되어 있는 터라 <나와 마릴린>은 게으른 자의 필독 리스트에 올랐고...
아는 사람의 멘션과 달리 이 작품이 그냥 묻힐 수밖에 없는 이유만 확인했다.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는 특유의 섬세함은 돋보이지만, 그뿐이다.(미안하게도 이건 내가 우리나라 여성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 제일 불편해하는 대목이다. 묘한 날카로움과 신경질이 묻어나는 여성 캐릭터!)
주인공 앨리스 킴의 상처와 고뇌는 너무나 보편적이다. 그의 갈등과 상처를 이야기하는데, 굳이 ‘1950년대’가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마릴린 몬로의 방한 역시 마찬가지다. 아,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은 전쟁 직후 폐허가 되어버린 대한민국과 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몬로가 이뤄내는 우스꽝스럽고 슬픈 역사적 부조화의 풍경이 아니었는가? 안타깝다.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창비

베스트셀러가 맞긴 맞는가 보다. 요즘 지하철이나 동네 문화체육센터에서 이 작품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독자의 대부분은 여성.
김애란은 분명 재능 있는 작가다. 우울한 이야기를 웃으며 이야기할 줄 안다. 등장인물만 웃는 게 아니라, 독자들도 웃게 만들 줄 안다. 아니 울릴 줄도 안다. 작가의 재능이 가장 반짝이는 대목은 대화다. 전반적으로 대화가 좀 많은 편인데, ‘뭐 불필요한 대화 없나?’하는 못된 마음으로 읽었다. 없다. 모든 대화가 가볍고 리듬감 넘친다. 그야말로 촌철살인. 혼자 심각한 척하거나 징징거리지 않아서 좋다.
한 대목 아주 짠했다. 펄럭펄럭 책장을 넘기다 말고 밑줄을 그었다. 이 작가 참 감정을 쌓아올릴 줄 아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조금 뒤로 가니 그것이 뒤통수였다. 물론 작가는 주인공의 비극적 상황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장치로 설정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반전’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것은 주인공만이 아니다. 진심으로 상황에 몰입하며 눈물을 흘렸던 독자에게 모든 것이 ‘뻥’이었다고 고백하는 소설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심정으로 작품 후반부를 읽었는데, 참으로 헛헛했다.
더불어 작품 말미에 실려있는 주인공 한아름이 남기고 간 글 ‘두근두근 그 여름’은 사족이 아닌가 싶다.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황현진, 문학동네

계간지를 구독하는 덕분에 올해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을 공짜로 받았다. 읽었다. 재미있는 성장소설이다. 어쩌다보니 요사이 성장소설 몇 권을 내리 읽게 되었는데,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의 순서가 제일 끝머리다. 먼저 읽은 작품을 열거하면, <한밤의 아이들>, <두근두근 내 인생>. 신인작가로서는 불리한 대진운이라 할 수 있지만, 이와 상관없이 작품에 대해 딱히 할 말 없다. 굳이 말하자면, 지난해 수상작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는 것 정도.
한 가지 실수라면, 수상작에 내놓은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읽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덕담을 위한 자리라지만 공감할 수 없는 칭찬을 쏟아내는 심사위원들의 태도가 거슬린다. 독자들이 애정 없는, 혹은 형식적인 칭찬을 못 알아챌 것이라 생각했는가? 솔직히 소설가 윤성희의 심사평을 제외하면 작가와 작품에 대한 공정한 관심이 느껴지질 않는다. 수상작으로 뽑기가 마뜩치 않았을까? 내키지 않으면 뽑지 말고, 뽑았으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라. 그것이 신예작가와 독자에 대한 예의다.
생각해보니, 지난해 수상작의 심사평을 읽었을 때도 속이 틀어졌던 것 같다. 어쩌면, 앞으로 심사평 따위는 읽지 않는 것이 방법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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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산책 2011-09-1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쏙 들어오는 단순명쾌 소개글.
트위터에선 여기와는 또다른 모습의 데빌님 ㅋ
앞으로 자주 뵈어용.

lazydevil 2011-09-20 12:26   좋아요 0 | URL
트친님^^;;;
 
한밤의 아이들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9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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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달랑 세 작품만 놓고 보자.(<광대 살리마르>, <피렌체의 여마법사>, <한밤의 아이들> 세 작품만 읽었으니까.)
<광대 살리마르>가 최고다. 인도의 역사를 환타지, 박식함, 수다로 능청스럽게 엮어내는 솜씨에 그야말로 입을 닥치고 감탄만 했다. 거기다가 심장을 뜨겁게 하는 감동의 순간까지 있었으니, 돌이켜보면 <광대 살리마르>는 루슈디 최고의 작품이다.

그러지만 말이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아니 조금만 더 읽어보면, 이게 좀 그렇지 않다. <광대 살리마르>의 작품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최고의 작품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루슈디라면 죽고 못 사는 독자라면, 함께 나이를 먹으며 그의 행보를 쭉 지켜본 동시대 독자라면 <광대 살리마르>를 윗길로 치지는 않을 것이다. ‘최고의 작품 <광대 살리마르>’는 순전히 늦된 독자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까 ‘삼십대의 소지섭’을 첫만남으로 기억하는 나같은 사람말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천재성이 소란스럽게 요동치는 데뷔작 <한밤의 아이들>로 루슈디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응당 <한밤의 아이들>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을 것이다.

루슈디를 알고 싶으면, 인도를 알고 싶으면, 인도에 가보고 싶다면, 인도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하고 싶다면, <한밤의 아이들>을 읽어야 한다. <한밤의 아이들>을 읽은 후 인도와의 만남을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알 것 같았다. 루슈디는 시종일관 인도의 삶에 대해 들려준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인도의 새역사가 시작된 순간부터,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로 찢겨진 굴곡의 역사를 호들갑스럽고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기록하며 풍자한다. 아픔의 역사를 한편의 유쾌한 소동극인 마냥 떠들어댄다. 이제 나는 인도에 대해 비로소 조금 알 것 같다.

달랑 세 작품만 놓고 보자.
루슈디는 늘 인도만 이야기한다. 그런데 매 작품에서 보여주는 인도는 이형동체의 모습이다. 그래서 인도를 만나는 맛과 재미가 다르다.
<한밤의 아이들>이 인도의 근현대사를 42.195 킬로미터로 요약한 마라톤 같은 작품이다. 반면 <광대 살리마르>는 카슈미르의 아픔과 미국의 위선에 초점을 맞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이고, <피렌체의 여마법사>는 무굴제국의 영광과 쇠락을 그린 매혹의 시대극이다. 이들 작품에 비춰지는 인도의 모습은 그야말로 만화경 속 이미지 같다. 이슬람 문화와 힌두 문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뒤섞인 인도는 힌두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진심으로 인도에 가보고 싶어 한 적이 없다. 기회가 되면 한번 가봐야 할 곳 정도랄까? 아마 공짜 항공마일리지를 당장 써야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인도는 절대 삼등 안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루슈디가 바꿔 놓았다. 겁 많은 여행자에게 인도는 여전히 두려운 곳이지만 <피렌체의 여마법사>에 묘사된 무굴제국의 옛 수도, 비운의 도시 시크리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루슈디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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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1-09-14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인이 보지 못하는 인도를 책을 읽으면 볼 수 있는건가요?
다 스러져가는 폐허가 된 왕국의 무너진 궁궐터에 앉아 바람을 쐬며 눈을 감고 화려한 인도 여자들이 인도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그것을 감상하는 왕의 모습을 상상한적이 있는데요. ㅋㅋㅋㅋㅋㅋ 유치하지만 그래도 손에 꼽는 행복한 기억입니다.

궁금한 책이네요.

lazydevil 2011-09-15 10:53   좋아요 0 | URL
유치하다니요???
'다 스러져가는 폐허가 된 왕국의 무너진 궁궐터에 앉아 바람을 쐬며 눈을 감고 화려한 인도 여자들이 인도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그것을 감상하는 왕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 이거 해보려고, 저도 인도에 가고 싶은 겁니다.

수다스러운 루슈디는 늘 재미있더라고요.
이상하게 읽을 수록 작가의 호감도는 옅어지고, 작품의 호감도가 커져만 가는, 루슈디와 작품들이었습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를 200 페이지 정도까지 꼼꼼히 읽고, 그 이후는 듬성듬성 넘겨가며 읽다. 글이 못마땅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읽은 글도 있었거니와, 이 정도면 신형철이라는 문학평론가가 어떤 글을 쓰는지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단상은 이 정도에서 그치고, 그의 본격 평론집인 <몰락의 에티카>를 읽고 싶다. 출간된 순서는 <몰락의 에티카>가 앞선다. 하지만 젊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을 만나는 순서는 어쩐지 <느낌의 공동체>가 먼저인 것이 좋을 듯싶다. 

  

 

 

 

 

 

 

신형철은 짧은 단평에서도 지식을 자랑하고, 멋을 부리고, 감수성을 뽐낸다. 그런데도 거슬리거나 거북살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글이 참 쉽다. 그야말로 글재주가 돋보이는 글들이다. 그래서 더욱 진짜배기가 실린 <몰락의 에티카>가 궁금해진다.
쉬운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글을 쉽게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반대로 어려운 글은 독자를 진저리치게 만든다. 특히나 현학을 뽐내려는 과시욕과 자기애에 빠진 사람들의 글을 보면 짜증스럽다 못해 한심하다.
언젠가 원로감독의 회고전을 위한 소책자를 읽은 적이 있다. 소책자 첫머리에 알만한 영화평론가가 쓴 원로감독에 대한 헌사는 그야말로 코미디였다. 불과 2페이지짜리 헌사를 20분 넘게 낑낑거리며 읽었는데,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난감.
‘개별적 영화들의 차이가 빚어내는 운동을 XXX(감독 이름)으로 보자’는 둥, ‘급변하는 시대적 공기와 제도와 환경의 작용과 관습과 포기되지 않은 예술적 자율성과 상호작용으로 개별 작품을 바라보라’는 둥, ‘그 과정을 통해 XXX을 주어가 아닌 술어로 드러내라’는 둥, ‘XXX적이라는 하나의 메타 언어로 되돌아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둥... 이게 무슨 개소린가!! 평생 한국적인 것을 고집했고, 영화로만 삶을 이야기해온 노감독이 이 ‘개소리’를 끝까지 읽었을까? 읽었다면 무슨 소리를 했을까?

닥치고 영화나 봐.
멍멍...

현학으로 자기 한심함을 폭로하는 아이러니. 영화연구가와 영화평론가들의 글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낯 뜨거운 코미디.

아무튼, 한국문학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변화를 모르는 문예지는 언제부턴가 관심 밖이다. 유명작가가 출간한 수준 미달의 신작에 대해 입바른 평론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는다. 시대저항과 예술혼을 어쩌구 하면서 지들끼리는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세기가 바뀌도록 이어오고 있지 않나? 차라리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소설이나, 스티븐 킹의 신작을 읽는 것이 감동적이고 신난다. 예술혼을 맛보고 싶으면 부커상 수상작이나, 노벨문학상 작가들과 씨름하는 것이 낫다 싶다.

그런데 신형철같은 글 잘 쓰는 평론가의 책은 독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한국문학에 대한 순정과 싫은 소리 못하는 소심함은 여전히 마뜩치 않다. 하지만 그가 소개한 아름다운 시와,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는 아름다운 글은 불신으로 가득한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그리고 그가 소개한 시에 손이 간다.  

<몰락의 에티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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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나온반달 2011-07-18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낌의 공동체가 먼저인 게 더 좋을 듯하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느낌의 공동체는 짧은 글 위주(산문집이라 불러달라 말하는 것처럼)인데 몰락의 에티카는 본격 평론이니까요. 몰락의 에티카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처음 인사드리죠? 방문은 자주 하고 즐겨찾기도 옛날옛적에 해두었지만 댓글은 처음이네요. 고령화가족, 에브리맨, 아그네스 리뷰를 인상깊게 봤습니다. 아, 아래의 쥬베이님 말씀처럼 잔학기 서평도요. 입에 발린 칭찬 같은 건 못하시더군요. 화려한 수사 없이 핵심에 곧장 다가서는 글솜씨가 부럽습니다. 드러내진 않지만 님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건, 글이 자주 올라오진 않는다는 거.^^

반갑습니다.

2011-07-18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9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쥬베이 2011-07-18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완전 공감한 부분이 있어요.
[어려운 글은 독자를 진저리치게 만든다. 특히나 현학을 뽐내려는 과시욕과 자기애에 빠진 사람들의 글을 보면 짜증스럽다 못해 한심하다.] <-- 바로 여거ㅋㅋㅋ

저도 예전에 쓴 서평 읽어보면, 잘난체 하는게 몇개 있더라고요
그럴때마다 놀라서 얼른 수정하곤 하는데...참 글쓰는 이들의 불치병인듯 합니다ㅋㅋㅋ
lazydevil님 무더위 잘 이겨내시고요.
화끈한 소설하나 추천 부탁드릴께요~ 아주 HOT~! 한걸로요ㅋㅋㅋ

lazydevil 2011-07-18 22:54   좋아요 0 | URL
이열치열, 열공모드이신 쥬베이님^^
놀랄 필요도 없고, 수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쥬베이님글은 잘난체 하는 거와 멀거든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HOT~!라... 글쎄요.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위대한 개츠비> 김영하 번역본을 읽었어요. 가슴이 터질 것 같더군요. 잠시 더위를 잊을 정도로요.ㅎㅎ

꿈꾸는섬 2011-07-18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느낌의 공동체 읽는 중인데 몰락의 에티카가 몹시 궁금하답니다.^^
느낌의 공동체를 먼저 만난 게 더 낫다는 님의 말씀에 전적을 공감이요.^^

lazydevil 2011-07-18 23:03   좋아요 0 | URL
섬님, 반갑습니다.
신형철이라는 평론가, 제법 널리 읽히고 있군요. 다행입니다.
<몰락의 에티카>는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 한국문학을 등안시해서 좀 꺼림칙합니다. 평론만 읽고 멋대로 작품을 제멋대로 짐작하는 후안무치한 짓거리를 할까봐요. 아마도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