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책을 읽고 글을 올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요즘 책을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인지 책에 집중을 할 수 없다. 그러니 책읽기가 힘겹고 재미없을 수밖에. 책읽기의 즐거움을 잊어먹었다.(잃어버렸다,가 맞는 표현일까? 암튼~~)
지난해 말, 책과의 관계가 돌연 소원해질 무렵, 잠시 TV에 빠졌다. 밤시간 TV 앞에서 멍하니 시간을 죽이고, 또 죽였다. 한동안 지속된 이 습관은 시간에 대한 인지능력을 묘한 방식으로 변화시키거나 퇴화시켰다. 가령 TV를 보는 밤시간 동안 시간의 흐름은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으로 환산된다. 요일의 변화 역시 시간대별 프로그램의 변화로 인지하고, 한주의 시작과 마무리도 고정 프로그램의 다음주 예고로 깨닫는다.
가령 일요일 저녁에 가 끝나면, ‘한주가 끝났구나!’ 혹은 ‘일요일이 끝났구나’ 뭐 이런 식. 채널을 돌리다가 MBC <100분 토론>이 방영되면, ‘어라, 오늘이 목요일이었네?’하는 반사적 반응!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체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터라 나의 TV 중독은 심야 시간에만 편중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간대가 바로 하루 중 주로 책을 읽던 때라는 것. TV 때문에 침대 옆에 쌓여있는 읽다만 책은 먼지를 위한 아늑한 안전지대가 되어버렸다.
이런 멍청한 습관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방송사 파업이다. MBC가 파업을 했고, 얼마 후 KBS도 파업을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더욱 한심해지거나 재방, 삼방이 반복되었다. 이미 본 프로그램을 또 보고 있을 때 드는 자괴감은, 멍청하고 한심한 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만큼이나 심각하다. 나의 병신스러움을 어찌 변명할 수 있을까? 병맛.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병맛을 떨쳐버리려고 TV를 껐다, 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어쩌다보니 TV 대신 뭐 딴 거 없을까?하는 심산으로 오랜만에 DVD플레이어를 켰다. 집에 굴러다니던 DVD, 일 년전 빌려와서 돌려주지 않은, 보지도 않을 거면서 꿀꺽하기로 작정한, 해적판 불법 리핑 싸구려 DVD, <역마차>(1939, 존 포드, 2,900원에 알라딘에서 구입할 수 있다.)를 틀었다.
그런데 그만 빠져버리고 말았다. 옛날 영화에 말이다. 이날 이후 나는 주인에게 즉각 DVD를 반납했다. 왜냐고? 다른 걸 빌려야 하니까. 그는 보지도 않은, 앞으로도 보지도 않을 옛날 영화를 꽤 가지고 있다. <역마차>를 돌려주고 <이키루>(1952, 구로사와 아키라), <우리 생애 최고의 해>(1947, 윌리엄 와일러)를 생포해왔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이 소위말하는 대박이었다. 특히 <이키루>는!
요즘은 거의 매일 밤, 맥주와 함께 옛날 영화를 보고 잔다. 고색창연한 옛날영화를 보며 희희낙락하는 것이 어찌나 깨알같은지... 이 재미가 맥주와 오징어 다리 때문인지, 위대한 감독들의 위대한 작품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즐겁다. 심히 즐겁다.
내가 생각하는 옛날 영화의 기준은 ‘1975년 4월 30일’ 이전에 개봉한 영화다. 앞으로 1975년 4월 30일 이전 작품만 편애하기로 했다. 왜 1975년 4월 30일이냐고? 뭐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내 생일도 아니다. 그냥 베트남전이 공식적으로 끝난 그 날이 어쩐지 현대사의 전환점인 것 같아서이고, 뭔가 역사적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시간의 흐름이 쌓인 시점인 것 같아서이다. 그러니까 1975년 4월 30일 이전 영화라면 무조건 사랑하기로 한다.
물론 옛날 영화 중에 특히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건 40년대, 50년대, 60년대 영화들이다. 이 시기의 영화들은 약간의 시차와 제작 환경의 차이에 따라 흑백과 컬러 영화들이 뒤섞여 있고, 스탠다드 화면과 시네마스코프 화면이 공존한다. 특히 50년대 영화는 정말 그렇다.
TV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흘러간 옛날영화를 보며 소일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TV는 병맛이고, 옛날 영화는 고상한가? 절대 아니다. 중요한 건 옛날영화는 나를 야릇하게 흥분시킨다는 점이다. TV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극’이 옛날영화에는 있다.
이 흥분에 관한 변태적인 반응에서 소외되는 것은 TV 뿐만 아니다. 요즘 영화도 마찬가지다. 최근 아는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건축학개론> 봤어?” 당연히 안 봤다. 꽤 괜찮은 영화라며 추천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마도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심미안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한가인과 수지보다 지난밤에 본 나루세 미키오의 <밥>(1951)에 출연한 하라 세츠코와 하나이 란코가 더 예쁘게 보인다.(물론 난 이들보다 최은희나 조미령, 윤인자 같은 우리나라 여배우를 더 좋아한다!) 그러니까 딴 여자가 더 예뻐 보인단 말이다. 뭐 사랑이 변한 거지.
책읽기의 재미를 잊어먹어(혹은 잃어버려) 속상하다. 책읽기에 대한 사랑은 변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뭔가 서로 엇갈리고 있을 뿐 곧 서로 뜨거운 밤을 불태울 것으로 믿는다! 뭐, 언젠가 그 분이 다시 오시겠지. 당분간은 옛날영화와 맥주와 오징어다리로 만족하자. 책을 못 읽어서 알라딘 리뷰 좀 못쓰면 어때! 언젠 열심히 썼나?, 싶다!
유치하지만 올려본다, 두 분의 여신님이 함께 한 흐뭇한 사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