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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ㅣ 한국 현대사 산책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평점 :
얼마 전 신상옥 감독의 1959년작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을 보았다. 김진규가 열연한 이승만은 그야말로 민족과 나라를 생각하는 순수한 영웅이다.(개인적으로 김진규라는 배우를 좋아한다!) 기울어가는 국운을 통탄하던 청년 이승만은 민족과 역사를 위해 활약한다.
이 영화는 이승만의 4선을 위해 고심하던 정치깡패 임화수가 제작한 작품이다. 그는 주목받던 젊은 감독인 신상옥에 연출을 의뢰함과 동시에 상상을 초월하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거대한 세트, 화려한 의상, 대규모 엑스트라 등 엄청난 물량 투여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이 작품은 꽤 잘 만든 시대극이지만 크게 감동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단조로운 연대기식 구성 탓에 드라마는 밋밋했고, 이승만을 우상화하기 위해 순진할 정도로 골몰한 결과 ‘인간’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은 재미있었다. 청년 이승만을 열연한 김진규의 연기도 좋았다. 막 물이 오르기 직전 신상옥의 연출 솜씨를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정권의 강압에 못이겨 떠밀리듯 출연한 당대 스타들의 한자리에 만나는 것은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최은희, 황정순, 이민, 남궁원, 김승호, 허장강, 독고성, 엄앵란, 이빈화, 최무룡, 이예춘, 김지미, 도금봉, 황해... 정말이지 이렇게 화려한 출연진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던 한국영화가 있었던가?
솔직히 이승만을 민족의 영웅으로 만든 미화한 것은 전혀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묘하게도 노골적인 이 영화의 불순한 의도는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않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공의 민족 영웅’을 연기한 김진규만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김진규는 얼마나 매력적인 배우인가!!!) 영화 속 청년 이승만은 실존 인물과는 전혀 오버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한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당시 선거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 것 같다”고 신상옥은 회고했다. 이 영화가 개봉된 이듬해 1960년에는 그 유명한 3.15 부정선거가 있었고, 한 달 후 4.19가 있었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권>의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다. 영화 속에서 고종의 배려 아래 조선을 탈출해 미국으로 떠났던 청년 이승만은 이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한국전쟁을 치른다.
강준만은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50,51,52년을 개괄하며, 이승만과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잘 알려진 사건과 숨겨진 사실을 정리하며 50년대 초 3년간을 추적하는 발길은 무겁기만 하다.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초대 대통령이자 부패한 정치인이었던 이승만이 저지른 패악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그가 행한 것들은 평가하기가 두려울 정도로 잔인하고 끔찍한 결과로 역사를 더럽혔다. 도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이해가 불가한 그의 판단 때문에 짓밟힌 수많은 희생자를 생각하면, 나의 부모님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50년대 초 삼년간은 참사(慘事)라는 말로 밖에 요약할 수 없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 상처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대물림하고 있다는 것.
학교 교과서 속의 한국전쟁은, 마치 남의 나라 일처럼 담담하게 쓰인 교과서 속 한국전쟁은 영화 속 ‘청년 이승만’처럼 한없이 쿨하기만 하다. 지나간 상처는 담담하게 묻어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역설하는 것인가? 50년전 참혹한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던 관객들은 스크린 속에 그려진, 그렇게 쿨하기만 한 청년 이승만을 어떻게 보았을까? 슬프게도 영화는 현실보다 늘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