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기 전 해묵은 보관함을 정리하면서 총 230여권의 도서목록 중 100권을 덜어내기로 했다. 처음엔 눈 딱 감고, 뒤도 안 돌아보고 삭제하리라 결심했지만 포기할 수 없는 좋은 책들은 너무 많았고, 시간은 자꾸 흘렀고, 삭제버튼 누르기는 점점 더뎌졌다. 그러다가 내가 도서목록을 만들던 초기 시절의 폴더에 이르렀는데, 여기 담긴 책들은 워낙 명작들이라 대략난감...난 완전 멘붕상태에 빠져든다. 사실 이 폴더에 있던 책들을 그냥 묵혀만 뒀던 것은 아니다. 벌써 수많은 책들을 구입했고, 남은 것이 약 20여권인데 그간 장바구니에만 들락거리다가 결국은 그 자리에 남은 것이다. 이 중에서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고전문학! 누구 말대로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라더니, 유명세에 담아두긴 했으나 나 역시 '안 읽는' 무리 축에 속하고 있었다.
고전문학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꿔놓은 것은 바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카뮈의 <이방인>(일러스트판)이었다. 어릴 적 읽어놓고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요즘 들어 다시 보니 이건 고전문학에 실례를 범했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대체 이런 감동을 왜 그땐 느끼지 못했을까? 너무 일찍 읽어서 그랬을까, 아님 나만 유독 뭐가 모자랐던 것일까? 하긴, 이제 와서 이유를 밝혀봤자 무슨 소용인가! 지금은 그저 고전문학을 읽을 시간일 뿐.
1. 내 보관함의 오래된 책들
보관함에서 오래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책들과 옛날엔 빌려 읽었기에 내 것으로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중남미문학의 대표작이자 '마술적 리얼리즘'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마르케스에게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안겨 준 작품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책 소개를 살펴보면 대략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구조가 신화적 구성을 통해 펼쳐진다'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매개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에 솔깃해지는데, 사실 더 매력적인 것은 책 속에 등장하는 '클라비코드'의 은유이다. 예전에 나의 이웃님께서 이 책을 읽으시고 클라비코드의 연주 동영상을 올려주셨는데, 애잔하고도 신비로운 음색, 기타인 것 같으면서도 피아노인 듯한 독특한 소리에 매료돼 독서욕이 팍팍 자극되었다. 책을 읽게 되면 아마도 그 음색을 많이 떠올릴 듯하다.
<달과 6펜스>는 인상파 화가인 고갱을 모델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좀 더 친숙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첫 대면, 그러니까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자아낸다. '달'이랑 '6펜스'. 참 묘한 조합이다. 보관함에 담으면서 찾아보니 제목의 '달'은 상상의 세계를,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한다(오..그런 뜻이!). 한 마디로 자유분방한 예술혼을 불사르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의 물질문명과 욕망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줄 것 같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읽으면서 참으로 후끈했던 책이다. 조르바의 행동들은 기이하면서도 이상한 힘이 있었다. 이 책은 좀 더 늦게 만났다면 좋았겠지만 너무 일찍 읽어 버렸다. '20대라면 조르바를 읽어라'고 하는데 10대 초반에 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조르바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잠시 책 소개를 읽어보니 조르바에게서 찾아야 할 형상들은 그 이상인 것 같다. 추천의 글에서 방송작가 최영미의 한 마디가 생각난다. '조르바처럼 '꼴리는 대로'살기 위해 틈틈이 마음을 열어본다. 그리고 묻는다. 네가 진정 원하는 게 뭐니?'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내게 묻고 싶다.
<데미안> '누구나 한 번쯤 데미안을 만나고, 누구나 한 번쯤 데미안이 된다!!' 서점에서 뒤적이던 <데미안>의 뒤 표지에 쓰인 문구이다. 누가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데미안>이 무척이나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 책 역시 조르바와 비슷해서 너무 일찍 읽어버렸고, 되돌려주었기에 내겐 없다. 데미안은 조르바와 좀 다르지만 역시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자유분방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느낀다. 게다가 온화한 듯하지만 열정적이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그리 길지도 않아 단숨에 읽어버리고 싶은 책! 다시 한 번 '알'과 '아프락사스'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다.
2. '고전 강사'의 로드맵에서 고른 책들
얼마 전 로쟈님의 <아주 사적인 독서>라는 책을 읽었다. 위에서 말한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라는 글귀도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로쟈님은 내게 '인문학 강사'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번에는 '고전 강사'를 자처하시며 고전문학을 쉽게 읽어주셨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았다. 그런데 역시나, 고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말에도 명료하고 속 깊은 이유가 담겨있었다.
이런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각자가 자기 안의 햄릿과 돈키호테와 파우스트와 돈 후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배합비율까지도 예민하게 의식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주인공들이 바로 근대인의 전형적인 초상입니다. 사정이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고뇌와 욕망과 광기와 탄식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것이 고전의 현재성이라고 생각합니다.(p.7-8)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근대인의 한 개인'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다루는 저 부분은 내게 무척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구체적인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냥 어떤 테두리가 더 확장된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고전들을 중 관심가는 몇 편을 읽으며 저자가 살펴갔던 부분들을 좀 더 음미하며 읽고싶어 졌다. 아래는 그 대상이 되는 세 권의 책이다.
<주홍글자>, 하면 내겐 청소년 도서의 이미지가 있다. 아마도 내가 중학교 1학년 언저리쯤 아이들 사이에서 많이 읽히던 책이라 그런 것 같다. 애들이 책을 돌려가며 읽기에 다 읽은 친구에게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더니 어떤 외도를 한 여인이 'A'자 낙인을 받는 이야기라고 했다. 난 낙인을 주는 형벌, 하면 아주 고리짝 시절 이야기일거라 (짐짓) 생각했고, 여성의 외도 같은 소재는 끝이 뻔할거라 (또 짐짓) 결론 내렸기에 이 책은 단 한 페이지도 펼쳐보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사적인 독서>를 보니 내 추측은 정말 헛다리를 짚은 거였다.
헤스터 프린은 광장에서 일정 시간 동안 서 있는 형벌을 받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드러내는 거죠...(중략)...헌데 너무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죄수에게 수치를 주려고 처형대 위에 세워놓았는데, '만약 이 청교도 무리 속에 카톨릭 신자가 있었다면 바로 이 여인네의 모습에서 성모마리아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할 정도니 형벌의 원래 의도와 맞지 않죠.(p.56)
난 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이렇게 당당한 여성인 줄 몰랐다. 말할 수 없는 비밀과 아이까지 품은 채 세상의 이목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인내하는 여성인지도, 역시 몰랐다. 책 속에 드러난 주인공의 캐릭터를 보니 <주홍글자>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더불어 가슴에 찍힌 'A'자에 대한 중의적인 의미도 책을 읽어나가며 하나씩 발견하고 싶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관해서 로쟈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극작가 버나드 쇼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가리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도서관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책이다. 만약에 여학생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결혼허가서를 떼 주지 말아야 한다."(p.92)
이 작품이 단순한 성애문학의 차원을 넘어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시대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남편 클리퍼드는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반신불구가 되지만 재활 치료를 받아서 회복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온전하게 낫지는 못해서 하반신 불구가 되고 생식능력도 상실하죠. 여기서 클리퍼드는 불구의 몸, 나아가 서양 문명 자체의 불구성을 상징합니다. 반면 나중에 등장하는 산지기 멜러즈는 회복되어야 하는 자연을 상징합니다.(P.92)
이 책에 대한 추천사는 아마도 버나드 쇼의 것이 가장 최고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단순한 성애문학에 가깝다고 보았던 나의 편견을 지우고 보다 큰 그림 속에서 윤곽을 잡아 나간 상징성을 음미하며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어쨌든, 못 말리는 쇼의 재치 덕에 한껏 웃으며 유쾌하게 선택한다.
<파우스트>는 유명한 고전문학 중에서도 대작으로 인정받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이 청소년 권장도서, 심지어는 이십 대 권장도서로는 맞지 않다는 로쟈님의 의견에 다소 안심을 하며 이번 기회에 반드시 읽어보리라 결심해 보았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는 중년을 위한 작품집입니다.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은 나이가 중년이라면요...(중략)...이대로 늙기엔 뭔가 억울하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기엔 좀 늦은 듯싶은 나이가 <파우스트>를 읽기에 딱 좋은 나이입니다.(p.198)
게다가 <파우스트>를 통해 세 가지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지식에 대한 욕망이다. 책 읽기 좋아하고 많은 지식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뜨끔한 일이다. 파우스트가 이 욕망을 추구하면서 어떤 갈등을 겪는지, 그리고 결국엔 어떤 결론을 얻게 되는지 확인하고 싶다. 그것은 반면교사일까? 아니면 순응해야 할 진리일까? 궁금하다.
인간에게서 무한한 욕망이라고 하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먼저 지식에 대한 욕망, 곧 지식욕을 꼽아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파우스트는 지식에 대한 욕망, 앎에 대한 욕망의 화신으로 등장합니다. 이것이 학자 파우스트의 비극입니다. (p.199)
3. 새롭게 진가를 발견하게 된 책들
마지막으로 리스트에 올리는 책들은 <죄와 벌>만큼 많이 읽히는 것은 아니지만 고전 반열에 오른 책들이고 개정판으로 출간될 때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책들이다.
<모비딕>은 제목만 익숙했다가 어느 디자이너 작품을 통해 '고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호기심이 생겼다(난 그냥 바다, 고래가 나오는 책들을 좋아한다). 또한 아직까지 고딕문학을 읽어본 경험도 없고, 고래를 통한 '한 인간의 투쟁과 파멸'이라는 점에서 <노인과 바다>와 대조될 것 같아 읽어보고 싶다. 특히 허먼 벨밀은 '바틀비'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해 낸 작가이기에 그의 대표작인 <모비딕>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개정판으로 출간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 다시 보니 이미 구간이 되었다. 그래도 <모비딕>에 한 표!
<폭풍의 언덕>은 영화로도 몇 번이나 제작되었던 만큼 흥미와 작품성 면에서 보장(?)할 수 있는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영화로도 유명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기대감을 더한 것만은 분명하다. <폭풍의 언덕>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 이 책이 에밀리 브론테의 단 하나의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머싯 몸이 선정한 '세계 10대 소설' 중 하나이며,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멜빌의 <모비 딕>과 더불어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힐 만큼 대단한 이야기를 썼다. 얼마나 열정을 다했기에 이런 소설이 나왔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 그리고 둘째,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엮어가는 사랑에서 '낭만적 로맨스'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찾아보고 싶다.
<좁은 문>은 이성복 시인이 번역해 새로 출간되면서 주목하게 되었다(와, 지드와 이성복이라니!) 어릴 때는 막연하게 프랑스 소설, 하면 난해함으로 귀결되던 탓에 손도 대지 않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비교적 짧으면서도(200페이지 남짓한 분량)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고전문학 몇 편을 읽고 이렇게 짧은 고전문학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 그리고 종교적 윤리에 대한 정당성을 다루는 이야기라 하는데, 이루지 못한 사랑 이외에 더 많은 사유의 재료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문장도 아름답다니, 매우 기대된다.
이렇게 읽고 싶은 고전들을 고르다 보니, 세상에는 정말 주옥 같은 고전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가급적 아주 오래된 고전, 그리고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고전들만 고르려 했는데도 아직 못 다 한 책들이 있으니 갈 길은 무척 멀어 보인다. 하지만 로쟈님처럼 '나는 햄릿이다', '나는 보봐리다'라고 생각하며 나만의 사적인 독서를 쌓아가다 보면 그 길이 그리 힘겹고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