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강 - 2012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작 Dear 그림책
마저리 키넌 롤링스 지음, 김영욱 옮김, 레오 딜런.다이앤 딜런 그림 / 사계절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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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흙 밟고 물 스치며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무언지 모를 특별함이 있다. 물론 아이들이야 다 저마다의 특별함이 있겠지만 시골아이들에게는 유독 더 투명한 천진함과 소박함, 자유로움이 한껏 묻어난다. 이것은 분명 산과 들에서 놀고 배우며, 땅을 일구고 거기서 난 것들을 먹고 자라는 생활 덕분일 것이다. 이렇게 자연의 품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을 닮아 넉넉하고 바라보는 사람마저도 평온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비밀의 강>의 당찬 소녀 칼포니아도 예외는 아니다. 숲으로 둘러싸인 외딴 집에서 엄마와 아빠,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강아지 버기 호스와 함께 사는 칼포니아의 하루는 시작부터 활기차고 여유롭다. 이 꼬마 아가씨가 무슨 좋은 일을 예감하는지 모르겠지만 단정하게 리본을 동여매는 그녀의 모습에서 이른 아침의 평온, 그 자체가 느껴진다.

 

 

 

아침식탁에서 맞은 소식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다. 불경기가 무엇인지,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칼포니아는 잘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엄마, 아빠가 매우 걱정하신다는 것과 생선을 잡아야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설사 불경기와 가난의 뜻을 알려준다 할지라도 소녀의 잔잔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 단어들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 만족할 줄 알고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기특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칼포니아가 불경기와 가난에도 굴하지 않을 소녀라는 것은 그녀의 시에서도 잘 나타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너무너무 좋은 날.(이하략, p.8)

 

생선이 있다면 참말로 좋겠어.
그럼 어려운 시절도 끝날텐데.
하지만 난 티끌만큼도 걱정은 안 해.
모두와 북적북적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니까.(P.11)


칼포니아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좋은 날이라고 했다. 이것은 비록 나쁜 일이라도 좋은 날을 망칠 수 없다는 의지이다. 그리고 어려운 시절에 대해서도 '티끌만큼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리지만 대단히 낙천적이며 당찬 모습이다. 이렇게 흔들림 없이 밝은 마음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을 감동시키기에도 충분하다. 아니, 자연이 다 뭔가! 우주, 운명, 이런 거대한 힘들마저 감동시킬 만큼 충분하다. 칼포니아는 당차고 시도 잘 지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씨도 뛰어나다. 물고기를 잡아야 하는데 지렁이가 유리병에 갇혀있는 것이 싫을 거라고 생각해 다른 미끼를 찾아본다. 물고기는 무엇을 좋아할까? 그녀가 열심히 고민한 끝에 떠 오른 것은 아름다운 장미. 칼포니아는 분홍 종이를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곱고 정성스런 미끼를 만든다. 칼포니아가 '내가 물고기라면'하고 물고기의 마음을 상상하는 장면은 자연을 공감하고 배려하려는 소녀의 선한 마음과 더불어 신비롭고 따스하게 펼쳐진다. 이 장면을 바라보는 어른인 나로서는 '풋'하는 웃음과 함께 '과연 물고기가 장미를 좋아할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자연에 대한 배려와 상상이 어우러진 그림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한동안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비밀의 강>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소녀가 자연과 교감하며 그것을 통해 어려운 세상을 헤쳐나가는 신비스런 경험을 이야기한다. 덕분에 칼포니아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나무들의 변화가 상당히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 또한 이야기의 신비스러움을 한껏 더해준다. 칼포니아가 물고기를 잡는 문제로 고민할 때는 나뭇가지와 나뭇잎도 물고기 형상으로 나타난다. 마치 나무도 함께 물고기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삼나무 밑동에 걸터앉으며 '네 무릎에' 앉아도 되겠냐고 하면 나무는 등 뒤에 앉아있는 사람의 자세가 되어 얼굴을 드러낸다. 어두운 밤길에 대한 두려움은 나무에게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귀신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나뭇잎마저 무시무시한 누군가의 눈길 같아 더 으스스하다. 소녀의 마음이 표현되는 나무, 그리고 꿀벌, 꽃, 물고기와 겹쳐지는 소녀의 얼굴. 이 모든 것들이 칼포니아가 가진 자연과의 공감력을 아름답게 잘 드러낸다.

 

 

 

칼포니아는 당차고 낙천적인 아이지만 당면한 것은 오직 어린 소녀에겐 버거운 현실뿐이다. 하지만 구하는 자에게 길은 열리는 법. 마을의 지혜로운 아주머니로부터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곳, 바로 비밀의 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칼포니아가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비밀의 강의 '위치'를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딘가에 있지만 그 어딘가를 알 수 없는 비밀의 강. 아주머니가 매우 애매한 힌트를 주긴 했지만 혼자서 강을 찾아낸 것은 칼포니아이다. 이리저리 이끌려 부지불식간에 도달할 수 있었던 비밀의 강을 생각하면 자연은 그를 찾는 이에겐 언제든지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너무 많이 갈취하는 것이 문제지, 자연이 우리에게 등돌려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비밀의 강에 도착할 수 있었던 비밀은 어쩌면 칼포니아가 가진 간절한 사랑, 그 하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연은 사랑으로 구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반겨 맞아주니까. 비밀의 강은 칼포니아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물고기를 가득 품어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찌나 물고기가 크고 많던지 오히려 낚시를 하는 칼포니아의 배가 아주 작게 보인다. 세상에 가득한 자연의 생명력이 물고기의 힘찬 꿈틀거림을 통해 한껏 펼쳐지는 것 같다. 그리고 고맙게도 물고기들은 칼포니아의 종이 장미를 마다하지 않고 덥썩 물어준다. 어린 소녀나 좋아할 분홍 종이장미를 물고기가 덥썩 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묻지 않아도 알 것이다. 만선으로 환호를 지르는 칼포니아. 풍요로움이 넘치고 또 넘친다.

 

 

 

이 책의 묘미 중 하나는 비밀의 강으로 향하는 길과 비밀에 강에서 돌아오는 길의 대조이다. 가는 길은 자연이 이끌어주는 듯 어찌보면 너무 쉽고 홀린 듯이 금방 이르렀지만 돌아오는 길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라고 하는 듯 어린 칼포니아 홀로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사뭇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칼포니아의 긍정적이고 순수한 마음씨는 무서운 동물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길을 열어간다. 그녀 특유의 최고의 배려가 숲속의 험악한 동물들에게도 통했던 것이다. 기분좋게 일어났던 아침을 위해 가장 좋아하는 리본을 정성스레 매고,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고기가 제일 좋아할만한 아름다운 것(분홍 종이 장미)을 골랐던 것처럼, 그리고 나무와 배와 물고기에게도 예의바르게 대했던 것처럼, 칼포니아는 자신을 겁주는 무서운 동물들에게도 최상의 것을 최고의 정성으로 기꺼이 나눠줬다. 그녀가 무서운 동물들에게 물고기를 나누줄 때마다 볼 수 있었던 '깨끗한 풀밭'에 내려놓았다는 표현은 꺼려하는 상대라도 마음을 열어 대하고자 하는 작은 소녀의 넉넉한 마음씨가 담겨있다. 소녀가 잡은 수많은 물고기는 먼저 배고픈 숲속의 동물들에게, 그 다음으로는 도움의 손길을 주신 아주머니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그리고 결국엔 아빠의 생선가게로 가서 힘없고 배고파 일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한테로까지 이어진다. 비밀의 강의 풍요가 작은 소녀로부터 마을 전체에 전해진 것이다. 결국 한 소녀의 간절한 사랑이 자연을 감동시키고 어려운 시절까지 이겨내게 해 주었다.

 

 

 

비밀의 강은 지금도 도처에 있다. 다만 우리가 그곳을 알고자 하지 않을 뿐이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채운 마음은 비밀의 강을 볼 수 없다. 지혜로운 아주머니께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비밀의 강은 바로 우리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어디 비밀의 강 뿐일까? 비밀의 산도, 비밀의 선물도, 비밀의 약도 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감추어진 것, 그래서 비밀이다. 또한 비밀의 강은 순수한 마음이 간절한 필요와 맞닿았을 때 열린다. 어려운 시절을 넘기자 더 이상 비밀의 강을 찾을 수 없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것은 대자연과 세상이 우리들에게 작용하는 원리를 담고 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필요할 땐 기적처럼 나타나는 자연과 세상의 이치. 이것 역시 비밀이 가진 또 다른 의미이다. <비밀의 강>은 사랑의 마음이 해낼 수 있는 위대한 일과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요즘처럼 내 손안의 작은 화면에만 몰두하는 아이들이라고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눈을 들어 옆 사람을 바라보고, 저 앞의 나무를 바라보고,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면 비밀의 강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가 뭐라해도 자연에서 태어난 자연의 일부가 아닌가! 우리가 순수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자연으로 눈 돌릴 때 자연은 언제든지 두 팔을 벌려 반가이 맞아준다. 그런 다음 눈을 감고 가만히 느껴보자. 칼포니아가 이렇게 응원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네 마음에도 강물이 흐를거라고...

 

 

 

 

 

 

 

* 상기 이미지들은 해당도서의 부분, 혹은 전체를 발췌하여 재조합되었으므로 원본과는 크기와 순서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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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3-03-24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 때 이 동화책을 읽는다면, 커서 문득 어려움에 처했을 때 떠올리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줄 것 같아요. 어른인 나는 이미 어려움도 많이 겪었고, 위기 극복도 많이 해봤지만, 그리고..신비한 경험도 꽤 했거든요.
소녀의 비밀의 강 처럼 말이죠.

아..아이들이 이 책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비밀의 강의 힘을, 소녀의 믿음을, 나눠 갖도록요.

탄하 2013-03-25 12:49   좋아요 0 | URL
웅? 어떤 신비스런 경험을 하셨을까? 그것이 꽤 궁금해집니다.
역시 '신비한'이라는 것에 대한 설렘은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네요.^^

이 책은 상당히 긍정적이고, 이상적이고, 순조로운 내용이지만
'애들 책이니까 그렇지..'하기엔 그 이상의 순수함과 맑음이 있네요.
아마 이 시대가 실제로 대공황 시대라 다음 세대들이 이것을 용감하게 헤쳐가길 바라는
작가의 간절한 마음이 바탕이 되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들만넷 2014-10-15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참 멋지네요~ ^^

탄하 2014-10-29 23:38   좋아요 0 | URL
네, 이국적이고 독특해요. 특히 주인공의 상상력을 표현하느라 더욱 신비스러운 것 같아요.
아..`아들만넷`이라니... 그것도 참, 멋지십니다.^^
 

겨울이 가기 전 해묵은 보관함을 정리하면서 총 230여권의 도서목록 중 100권을 덜어내기로 했다. 처음엔 눈 딱 감고, 뒤도 안 돌아보고 삭제하리라 결심했지만 포기할 수 없는 좋은 책들은 너무 많았고, 시간은 자꾸 흘렀고, 삭제버튼 누르기는 점점 더뎌졌다. 그러다가 내가 도서목록을 만들던 초기 시절의 폴더에 이르렀는데, 여기 담긴 책들은 워낙 명작들이라 대략난감...난 완전 멘붕상태에 빠져든다. 사실 이 폴더에 있던 책들을 그냥 묵혀만 뒀던 것은 아니다. 벌써 수많은 책들을 구입했고, 남은 것이 약 20여권인데 그간 장바구니에만 들락거리다가 결국은 그 자리에 남은 것이다. 이 중에서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고전문학! 누구 말대로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라더니, 유명세에 담아두긴 했으나 나 역시 '안 읽는' 무리 축에 속하고 있었다.

 

고전문학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꿔놓은 것은 바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카뮈의 <이방인>(일러스트판)이었다. 어릴 적 읽어놓고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요즘 들어 다시 보니 이건 고전문학에 실례를 범했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대체 이런 감동을 왜 그땐 느끼지 못했을까? 너무 일찍 읽어서 그랬을까, 아님 나만 유독 뭐가 모자랐던 것일까? 하긴, 이제 와서 이유를 밝혀봤자 무슨 소용인가! 지금은 그저 고전문학을 읽을 시간일 뿐. 

 

 


1. 내 보관함의 오래된 책들


보관함에서 오래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책들과 옛날엔 빌려 읽었기에 내 것으로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중남미문학의 대표작이자 '마술적 리얼리즘'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마르케스에게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안겨 준 작품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책 소개를 살펴보면 대략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구조가 신화적 구성을 통해 펼쳐진다'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매개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에 솔깃해지는데, 사실 더 매력적인 것은 책 속에 등장하는 '클라비코드'의 은유이다. 예전에 나의 이웃님께서 이 책을 읽으시고 클라비코드의 연주 동영상을 올려주셨는데, 애잔하고도 신비로운 음색, 기타인 것 같으면서도 피아노인 듯한 독특한 소리에 매료돼 독서욕이 팍팍 자극되었다. 책을 읽게 되면 아마도 그 음색을 많이 떠올릴 듯하다.

 

<달과 6펜스>는 인상파 화가인 고갱을 모델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좀 더 친숙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첫 대면, 그러니까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자아낸다. '달'이랑 '6펜스'. 참 묘한 조합이다. 보관함에 담으면서 찾아보니 제목의 '달'은 상상의 세계를,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한다(오..그런 뜻이!). 한 마디로 자유분방한 예술혼을 불사르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의 물질문명과 욕망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줄 것 같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읽으면서 참으로 후끈했던 책이다. 조르바의 행동들은 기이하면서도 이상한 힘이 있었다. 이 책은 좀 더 늦게 만났다면 좋았겠지만 너무 일찍 읽어 버렸다. '20대라면 조르바를 읽어라'고 하는데 10대 초반에 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조르바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잠시 책 소개를 읽어보니 조르바에게서 찾아야 할 형상들은 그 이상인 것 같다. 추천의 글에서 방송작가 최영미의 한 마디가 생각난다. '조르바처럼 '꼴리는 대로'살기 위해 틈틈이 마음을 열어본다. 그리고 묻는다. 네가 진정 원하는 게 뭐니?'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내게 묻고 싶다.

 

<데미안> '누구나 한 번쯤 데미안을 만나고, 누구나 한 번쯤 데미안이 된다!!' 서점에서 뒤적이던 <데미안>의 뒤 표지에 쓰인 문구이다. 누가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데미안>이 무척이나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 책 역시 조르바와 비슷해서 너무 일찍 읽어버렸고, 되돌려주었기에 내겐 없다. 데미안은 조르바와 좀 다르지만 역시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자유분방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느낀다. 게다가 온화한 듯하지만 열정적이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그리 길지도 않아 단숨에 읽어버리고 싶은 책! 다시 한 번 '알'과 '아프락사스'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다.

 

 

 

2. '고전 강사'의 로드맵에서 고른 책들

 

얼마 전 로쟈님의 <아주 사적인 독서>라는 책을 읽었다. 위에서 말한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라는 글귀도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로쟈님은 내게 '인문학 강사'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번에는 '고전 강사'를 자처하시며 고전문학을 쉽게 읽어주셨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았다. 그런데 역시나, 고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말에도 명료하고 속 깊은 이유가 담겨있었다.

 

이런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각자가 자기 안의 햄릿과 돈키호테와 파우스트와 돈 후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배합비율까지도 예민하게 의식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주인공들이 바로 근대인의 전형적인 초상입니다. 사정이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고뇌와 욕망과 광기와 탄식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것이 고전의 현재성이라고 생각합니다.(p.7-8)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근대인의 한 개인'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다루는 저 부분은 내게 무척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구체적인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냥 어떤 테두리가 더 확장된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고전들을 중 관심가는 몇 편을 읽으며 저자가 살펴갔던 부분들을 좀 더 음미하며 읽고싶어 졌다. 아래는 그 대상이 되는 세 권의 책이다.

 

 

 

 

 

 

 

 

 

 

 

 

 

 

<주홍글자>, 하면 내겐 청소년 도서의 이미지가 있다. 아마도 내가 중학교 1학년 언저리쯤 아이들 사이에서 많이 읽히던 책이라 그런 것 같다. 애들이 책을 돌려가며 읽기에 다 읽은 친구에게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더니 어떤 외도를 한 여인이 'A'자 낙인을 받는 이야기라고 했다. 난 낙인을 주는 형벌, 하면 아주 고리짝 시절 이야기일거라 (짐짓) 생각했고, 여성의 외도 같은 소재는 끝이 뻔할거라 (또 짐짓) 결론 내렸기에 이 책은 단 한 페이지도 펼쳐보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사적인 독서>를 보니 내 추측은 정말 헛다리를 짚은 거였다.

 

헤스터 프린은 광장에서 일정 시간 동안 서 있는 형벌을 받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드러내는 거죠...(중략)...헌데 너무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죄수에게 수치를 주려고 처형대 위에 세워놓았는데, '만약 이 청교도 무리 속에 카톨릭 신자가 있었다면 바로 이 여인네의 모습에서 성모마리아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할 정도니 형벌의 원래 의도와 맞지 않죠.(p.56)

 

난 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이렇게 당당한 여성인 줄 몰랐다. 말할 수 없는 비밀과 아이까지 품은 채 세상의 이목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인내하는 여성인지도, 역시 몰랐다. 책 속에 드러난 주인공의 캐릭터를 보니 <주홍글자>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더불어 가슴에 찍힌 'A'자에 대한 중의적인 의미도 책을 읽어나가며 하나씩 발견하고 싶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관해서 로쟈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극작가 버나드 쇼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가리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도서관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책이다. 만약에 여학생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결혼허가서를 떼 주지 말아야 한다."(p.92)

 

이 작품이 단순한 성애문학의 차원을 넘어서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시대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남편 클리퍼드는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반신불구가 되지만 재활 치료를 받아서 회복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온전하게 낫지는 못해서 하반신 불구가 되고 생식능력도 상실하죠. 여기서 클리퍼드는 불구의 몸, 나아가 서양 문명 자체의 불구성을 상징합니다. 반면 나중에 등장하는 산지기 멜러즈는 회복되어야 하는 자연을 상징합니다.(P.92) 

 

이 책에 대한 추천사는 아마도 버나드 쇼의 것이 가장 최고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단순한 성애문학에 가깝다고 보았던 나의 편견을 지우고 보다 큰 그림 속에서 윤곽을 잡아 나간 상징성을 음미하며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어쨌든, 못 말리는 쇼의 재치 덕에 한껏 웃으며 유쾌하게 선택한다.


<파우스트>는 유명한 고전문학 중에서도 대작으로 인정받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이 청소년 권장도서, 심지어는 이십 대 권장도서로는 맞지 않다는 로쟈님의 의견에 다소 안심을 하며 이번 기회에 반드시 읽어보리라 결심해 보았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는 중년을 위한 작품집입니다.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은 나이가 중년이라면요...(중략)...이대로 늙기엔 뭔가 억울하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기엔 좀 늦은 듯싶은 나이가 <파우스트>를 읽기에 딱 좋은 나이입니다.(p.198)

 

게다가 <파우스트>를 통해 세 가지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지식에 대한 욕망이다. 책 읽기 좋아하고 많은 지식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뜨끔한 일이다. 파우스트가 이 욕망을 추구하면서 어떤 갈등을 겪는지, 그리고 결국엔 어떤 결론을 얻게 되는지 확인하고 싶다. 그것은 반면교사일까? 아니면 순응해야 할 진리일까? 궁금하다.

 

인간에게서 무한한 욕망이라고 하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먼저 지식에 대한 욕망, 곧 지식욕을 꼽아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파우스트는 지식에 대한 욕망, 앎에 대한 욕망의 화신으로 등장합니다. 이것이 학자 파우스트의 비극입니다. (p.199)

 

 


3. 새롭게 진가를 발견하게 된 책들

마지막으로 리스트에 올리는 책들은 <죄와 벌>만큼 많이 읽히는 것은 아니지만 고전 반열에 오른 책들이고 개정판으로 출간될 때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책들이다.

 

 

 

 

 

 

 

 

 

 

 

 

 

 

 

<모비딕>은 제목만 익숙했다가 어느 디자이너 작품을 통해 '고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호기심이 생겼다(난 그냥 바다, 고래가 나오는 책들을 좋아한다). 또한 아직까지 고딕문학을 읽어본 경험도 없고, 고래를 통한 '한 인간의 투쟁과 파멸'이라는 점에서 <노인과 바다>와 대조될 것 같아 읽어보고 싶다. 특히 허먼 벨밀은 '바틀비'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해 낸 작가이기에 그의 대표작인 <모비딕>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개정판으로 출간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 다시 보니 이미 구간이 되었다. 그래도 <모비딕>에 한 표!

 
<폭풍의 언덕>은 영화로도 몇 번이나 제작되었던 만큼 흥미와 작품성 면에서 보장(?)할 수 있는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영화로도 유명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기대감을 더한 것만은 분명하다. <폭풍의 언덕>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 이 책이 에밀리 브론테의 단 하나의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머싯 몸이 선정한 '세계 10대 소설' 중 하나이며,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멜빌의 <모비 딕>과 더불어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힐 만큼 대단한 이야기를 썼다. 얼마나 열정을 다했기에 이런 소설이 나왔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 그리고 둘째,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엮어가는 사랑에서 '낭만적 로맨스'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찾아보고 싶다.


<좁은 문>은 이성복 시인이 번역해 새로 출간되면서 주목하게 되었다(와, 지드와 이성복이라니!) 어릴 때는 막연하게 프랑스 소설, 하면 난해함으로 귀결되던 탓에 손도 대지 않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비교적 짧으면서도(200페이지 남짓한 분량)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고전문학 몇 편을 읽고 이렇게 짧은 고전문학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 그리고 종교적 윤리에 대한 정당성을 다루는 이야기라 하는데, 이루지 못한 사랑 이외에 더 많은 사유의 재료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문장도 아름답다니, 매우 기대된다.

 

 


이렇게 읽고 싶은 고전들을 고르다 보니, 세상에는 정말 주옥 같은 고전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가급적 아주 오래된 고전, 그리고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고전들만 고르려 했는데도 아직 못 다 한 책들이 있으니 갈 길은 무척 멀어 보인다. 하지만 로쟈님처럼 '나는 햄릿이다', '나는 보봐리다'라고 생각하며 나만의 사적인 독서를 쌓아가다 보면 그 길이 그리 힘겹고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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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03-15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번의 두권의 책은....... 제가 손에 꼽는 가장 좋아하는 책이네요. ㅠㅠ 꼭 읽어주세요. 싫어하셔도 괜찮으니까요!!!!

탄하 2013-03-15 12:49   좋아요 0 | URL
1번의 두 권이라함은 왼쪽에서부터 두 권인가요?
사실 아무래도 좋습니다. 1번은 제가 열렬히 원하는 책들이니까요.
'손에 꼽는' 가장 좋아하는 책이시라니 읽고 싶은 마음이 더 동하네요.

네, 꼭 읽을께요. 싫어할 확률도 거의 없을 것같아요.^^

마립간 2013-03-1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관함에서 4000권을 넣었다가 비우고 다시 채우기 시작한 것이 600권이 넘었습니다. 저는 토요일 book section을 읽을 때마다 몇 권씩 집어 넣으니...^^ 제에게 문학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분야라 어렵지만 분홍신님 따라 저도 시도해보겠습니다.

탄하 2013-03-15 20:15   좋아요 0 | URL
사아천권이나요?@.@
이거, 알라딘에서는 '책 많이 읽었다'부터 '책 많이 샀다', 그리고 이젠 '보관함에 책 많다'까지 어디 명함 하나 내밀데가 없네요. 와..4천권에 완전 쓰러졌습니다.
어쩌면 문학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신다 해도 고전은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음..그러니까, 전에 유명한 책들은 다 별로라고 하시고, 추리소설 시도도 별로였잖아요?
남은 것은 고전, 그리고 안돼면? 시(詩)! (하하..제 멋대로였습니다.^^)

마립간 2013-03-16 08:55   좋아요 0 | URL
예전에 신문에서 스크랩할때는 (구입을 고려한 책을 의미하는) 보관함이 서서이 늘었는데, 블로그를 사용하면서 보관함을 채우는 속도가 급속히 늘었지요. 그 중에는 절판된 책도 많습니다. 알라딘 서재 초기부터 한 것이니, 기간도 한 8년에 걸친 것이고요.
문학 중 시詩분야는 (한시를 포함해서) 꽤 친숙합니다. (시나리오/희곡, 평론은 아예 읽지 않아 모르겠고,) 가끔 읽으면서도 거리감이 있는 분야가 소설입니다. 고전으로 여겨지는 소설은 비소설분야가 우선적으로 읽히면서 상대적으로 손이 잘 안 가게되네요. 분홍신님께서 읽고 글을 올려주시면 한 번 따라 읽는 것으로 시도해보겠습니다. (압박이라기보다 격려로.^^)

탄하 2013-03-16 19:44   좋아요 0 | URL
서재생활 하신지가 정말 오래되셨군요.
저는 8년전쯤 '어? 서재가 있네, 나중에 여기다 글 써야지..'까지만 생각했죠.^^
정말 블로그 보관함이 있으면 순식간에 불어요.
제 경우는 옛날에 북섹션을 참고할만큼 늘 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었지만
1~2개월에 한 번쯤 대형서점에 가서 실물을 보고 직접 사오곤 했어요.
그땐 정말 구입과 완독이 깔끔하게 끝났는데...

시(詩)와 친숙하시다면 소설이 별로라고 해서 그리 걱정할 건 아니네요.
어떤 방법으로든 문학을 섭취하고 계시잖아요...^^
하지만 마립간님의 독서취향(?혹은 유형?)은 어쨋든 좀 특이하신 편이예요.ㅋㅋ

에..그럼, 많은 분들의 격려에 힘입어 일단 1번에 있는 책들 중 하나를 '필히' 읽겠습니다.

달사르 2013-03-24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히히. 백 년동안의 고독. 반가운 책이네욧.

일 년 안에 읽게 되믄, 저와 저 책 이야기 도란도란 해봐요.
아니닷. 내년도 괜찮아요. 저, 내년에도 이 책 한 번 더 읽을 거거든요.
천천히, 시간을 내서 읽어보시어용~

탄하 2013-03-25 12:51   좋아요 0 | URL
올해 꼭 읽을 거예요. 가급적 ASAP로...
달사르님 서재에서 이 책을 본 순간부터 마구마구 읽고픈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구요.
 
특별한 배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7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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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숨을 죽이고 천천히 나선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몇 개의 둥글고 커다란 거울들이 있었고 거울 앞에는 의자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아 내 모습과 저 아래 풍경들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낯선 곳에서 한참을 내 모습만 바라보다가 다음에는 동선이 이끄는 대로 좁고 어두운 통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붉은 기운이 감도는 둥근 방이 있었는데, 저 멀리 태아가 보이는 게 마치 엄마의 자궁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리고는 또다시 동선에 발걸음을 맡겼고 마지막으로 엄마 품에 안긴 아기를 바라보며 짧은 탐험을 마쳤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올라갔던 그 탑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I do, I Undo, I Redo라는 설치작품이었다(물론 제목과 자궁 속의 생경했던 느낌은 잊지 않았지만). 그리고 특별한 배달을 읽고 나서 오랜만에 이 작품을 다시 떠올렸다. 두 작품 모두,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듯한 개운한 마음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I do 그렇게 살아가다

대한민국은 입시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우등생에게나 있고 모든 권력은 성적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학생들을 시험기계로 여기는 청년 사회의 암묵적인 헌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나가서도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고 각종 스펙과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우리 모두의 헌법이 될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사람들은 승자와 패자로 나뉘고 뛰어난 사람과 무능력한 사람으로 나뉘며 그 밖에도 또 다른 이분법의 잣대들에 의해 언제나 우열로 가려진다. 열등한 축에 속한 사람들은 주권도 권력도 없으니 이 사회에서 존재감을 잃은 셈이다. 그래서 장래희망을 잉여인간이라 적어내는 태봉이의 행동이 그리 엉뚱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태봉은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머물면서 원망과 분노를 오토바이에 실어 달린다. 그는 그렇게 살아간다. 한편, 우월한 축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슬아의 삶이라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1등을 고수해야 하고, 모든 것에 완벽해야 하며 엄마가 꿈꾸는 명품가정의 품위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다들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지만 그것은 허브 오일로 잠을 쫓아가며 독하게 버티는 탓이다. 그녀는 그렇게 살아간다.

 

두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쏟아놓는 고민, 불만, 초조함, 분노를 통해 우리는 그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다. 늘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삶. 아무런 변화는 없고 무언가를 탓하며 분노만 늘어가는 삶. 태봉과 슬아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내 앞의 둥근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또 나의 살아가는 이 현재를 가만히 응시하게 한다.

 

 

 

 

I Undo 시간을 애도하다

가끔 인생에 대한 질문들을 빽빽이 채워놓은 책을 만난다. 이런 책 속에는 종종 등장하는 질문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만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가?이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답변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고 또 하나는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다. 이 중에서 결정적인 순간으로 가고 싶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과거의 어떤 선택을 후회하고 있으며 그것을 되돌린다면 현재가 더 만족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과거의 선택을 바꿔 현재를 만족하게 만든다 해도 그만큼 잃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후회를 통한 성숙함이다. 인생은 성공하고 만족하기 위해 꾸려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더 큰 의의는 성숙하는데 있다.특별한 배달 이 점을 잘 지적해준다. 후회할 일도 내 인생이고 내 선택이라는 삼촌의 멋진 한 마디와 함께.

 

슬아와 태봉이 평행우주를 통해 자신들의 과거와 만나는 시간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도의 시간과도 같이 느껴졌다. 애도의 시간이란 상처 입었던 과거,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그 장면으로 돌아가 그 때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상황에 대한 책임을 형평성 있게 생각하고, 담담하게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내가 겪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에서는 Undo의 경험에 해당된다. 여기서 Undo는 과거의 do들을 하나씩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행동들을 충분히 되새기고 원망과 집착으로부터 홀가분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행선지가 Redo일리 없다.

 

 

 

 

I Redo 새롭게 변화하다

자신의 과거, 정확하게는 나를 만들어왔던 선택과 나의 내면과의 치열한 대화를 거친 후,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살아가는 시간은 달력 속의 날짜를 따라가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들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된 카이로스(kairos)의 시간들이다. 사람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세상 속에서 탈피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이 원리를 슬아는 매우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

 

한번쯤은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가 있는 거 같아.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다른 형태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 주는 거라고 생각해. 자꾸 그렇게 점검하며 길을 내는 게 제대로 사는 거 아닐까?(p.138)

 

 

자신을 돌아보며 다른 형태의 기회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후회할 것을 받아들이며 성숙해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돌아봄으로 인한 변화가 없다면 새로운 기회 또한 없다. 언제나 후회라는 단어를 회피하고 선택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했던 나였지만, 특별한 배달』을 읽고 나니 용기가 움찔 솟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새로이 태어난 아기, 그것이 평행우주 저편에서 삶을 시작한 또 다른 나인지 모르겠지만(이론적으로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시간을 아장아장 걸어보라고 희망을 주는 이 책의 특별한 배달이었다.

 

 

 

* 글 제목은 위에서 언급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설치작품 『I do, I Undo, I Redo』에서 차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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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책세상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이 시대는 행복의 추구가 보편적인 시대이다. 아니, 그보다는 보편적인 행복의 추구가 상식이 되어버렸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는지도 모르겠다. 미디어에서는 상업화된 아름다운 행복상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범람하는 행복 교과서들은 표준화된 몇 가지 요소들을 나열하며 이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가르친다. 이들이 말하는 진정한 행복이란, 부와 성공같은 외적인 요소를 뛰어 너머 내면의 건강을 중시하고 일상의 사소한 일들과 인간관계에서 기쁨을 얻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사회를 향한 손길을 내밀 때 주어진다고 한다. 행복이 유행처럼 통용되는 현상만 제외한다면 사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이 보편적인 행복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느끼는 행복이란 반대로 우리에게 낯설고 기묘한 상황이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p.138)

 

어째서 사랑이 아닌 분노가 고뇌를 씻어주고 그것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가시게 해 주었는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어째서 세계의 정다운 관심이 아니라 무관심에 마음을 열게 되었는데 거기서 형제애를 느끼고 행복하다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는 분노를 통과해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의 세계로 가 닿은 듯하다. 여기서의 무상이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며 지속적이지 않음을 의미하며 '인생무상'에서의 허망함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무상의 가르침은 변화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대상에 전도된 집착을 끊을 수 있으며 그때 나와 나 아닌 것이 비로소 참다운 관계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뫼르소의 경우 삶에 대한 집착을 끊음으로써 세계와의 참다운 관계, 즉 형제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무관심이 정답게 느껴졌던 것이다. 오랜 지속을 너머 영원을 꿈꾸는 우리들에겐 낯선 행복. 뫼르소는 어떤 이유로 이러한 행복과 만나게 되었을까?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p.7)

 

이야기의 시작은 엄마의 죽음이다. 누군가의 엄마가 죽는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에 대한 뫼르소의 반응은 상당히 이상하다. 그는 엄마가 죽은 날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엄마의 나이도 모르며, 눈물을 흘리기는 커녕 마지막 얼굴을 보는 것 조차 관심이 없다. 그저 담배를 피우고 밀크커피를 마시며 다른 조문객들을 바라만 볼 뿐. 이정도면 무관심이 정도를 지나쳐 진정 아들일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때 뫼르소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심한 행동들이, 지나치게 솔직한 답변들이, 그리고 손에 들려있는 커피잔과 담배가, 나중에 그를 얼마나 큰 곤경으로 몰고갈지. 그의 앞날에 드리운 불행의 그림자인 듯 어머니의 장지로 향하는 영구차의 모습이 육중하고 검기만하다.

 

 

* <일러스트 이방인>은 카뮈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특별판이다. 흑백대비가 강렬한 일러스트와 더불어 여백을 달리한 문단들의 배치, 공간의 이동과 뫼르소의 시선, 심경 등에 촛점을 맞춰 부각시킨 짤막한 문장들이 눈에 띈다.

 

 

평론가 신형철은 "캐릭터 기념관이라는 게 있다면 뫼르소는 특실에 전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뫼르소는 역대 소설의 주인공들 중에서도 특별 대우를 받는 인물인 것이다. 일상에서의 그는 남들처럼 직장에 다니고, 요리를 하고, 사람들과 어울린다. 겉으로 봐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첨예하게 다르다. 먼저 그는 자신의 본능에 상당히 집중한다. 뫼르소의 의식을 서술한 문장들을 보면 먹는 것이나 잠에 초점을 둔 부분들이 상당히 눈에 띄는데, 어머니의 죽음과 꺼림칙한 이웃사람이 접근하는 상황에서도 생각보다는 감각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갖는 어떤 신분이나 직업에 대한 편견도 거의 없다. 소문이 안 좋은 이웃 레몽과도 친구가 될 수 없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면 친구가 되고, 자신에게 시간의 여유가 있거나 잠이 오지 않거나 특별히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순순히 위험한 부탁마저 수락한다. 이 모든 것은 뫼르소가 외부세계에 대해 길들여져 있지 않고 더 나아가 상당히 단절되어있음을 의미한다. 비록 평범한 사람처럼 살고 있어도 그의 내면 세계는 평범한 사람의 그것이 아니다.

 

 

 

뫼르소에게 한 가지 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인과의 육체적 관계일 것이다. 한 여인을 사랑하지도 않거나,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잘 모르거나 혹은 자신의 감정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녀와 관계를 맺는 일에는 꽤나 열정적이다.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바로 다음 날에도 뫼르소는 마리라는 여인과 수영을 하고, 코미디 영화를 보고, 잠자리를 함께 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그녀의 청혼을 매우 쉽게, 아무런 계산 없이 받아들였다.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아니, 사랑한다는 것에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으면서, 단지 그녀가 원한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그가 가진 특유의 쿨함은 여느 바람둥이나 색광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마음의 자세이다. 죽음에도 사랑에도 반응하지 않는 이 남자. 그런 남자가 정욕으로 인해 고통 받으며 감옥 생활에 적응해 간다. 실상 무료함이나 무의미함에서는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지만 그에게도 박탈당할 기쁨의 한 조각이 존재하긴 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탈을 통해 감옥에 적응해 가는 일련의 과정들은 뫼르소가 부조리한 세상을 가로지르는데 커다란 힘이 된다.

 

 

이 책은 기존 사회가 가지고 있는 권위와 질서와 전통을 부정한다. 판사와 십자가 앞에서 참회하지 않는 뫼르소, 형무소 부속 사제의 면회를 거절하며 구원에의 권유를 끝까지 거부하는 뫼르소는 카뮈가 지향하는 '반항적 인간(l'homme revolte)'의 자세를 확연히 보여준다. 이에 대해 카뮈의 철학이 20대의 철없는 주장이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지만 부조리한 세상에 항변하고 신의 구원이 아닌 인간 의지의 탈출구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당시 극도로 도발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지금도 역시 그러하지만). 권위에 복종하라는 경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감옥같은 세상, 그곳에서 무의미와 무목적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 우리의 현실과도 다를 바 없는 이 세 가지 모습은 거칠고 건조한 흑백의 일러스트에서도 그대로 반영돼 문득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주인공 뫼르소의 모습은 카뮈와 무척 닮았다. 아니, 그를 카뮈라 불러도 좋을 만큼 카뮈의 초상 그 자체다. 이는 분명 카뮈탄생 100주년을 맞아 뫼르소의 모습에 카뮈를 담으려는 일러스트레이터 호세 무뇨스의 특별한 의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러스트 이방인>은 카뮈가 읽어주는 자신의 철학 책 같다. 작가로 숨어있던 카뮈가 뫼르소로 나타나 그의 고뇌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인물들의 표정이 매우 강렬하게 나타난 것이 이 책의 특징이지만 그 중에서도 죽음 앞둔 뫼르소의 표정 변화는 그의 갈등에서 깨달음의 순간까지 상당히 섬세하고 다채롭게 펼쳐진다. 자신의 방에서 뜬눈으로 새벽녘을 기다리며 심장의 소리를 듣고 또 들리지 않는 순간을 상상해보려던 초조한 모습, 뜻하지 않은 부속사제의 방문에 은근히 겁이 난 모습, 그리고 부속사제에게 화를 내다가 순간 뭔가 '툭 터지는 느낌'을 받았던 깨달음의 모습. 마지막으로 결단의 순간,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게 된 뫼르소의 모습이자 카뮈의 모습. 이 모든 얼굴 하나하나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까지 한 인간이 거쳐야 했던 고뇌와 갈등의 여정을 오롯이 담아낸다.

 

 

 

뫼르소는 살인을 했다. 우연이었지만 이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 법정 역시 공정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기에 살인이 쉬울 만큼 냉혈한이라는 논리는 살인자였지만 억울한 누명이었다. 만일 그가 세상의 권위와 질서 순응하는 보편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면 이처럼 극심한 판결을 받았을까? 여론몰이를 위해 형평성을 저버리고 그를 희생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 이 세상이라면 그것이 구축해 온 보편적인 정의, 행복, 사랑이라는 가치들이 과연 순순히 신뢰할만한 진리인가? 뫼르소의 살인과 세상의 판결을 통해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가치들은 어쩌면 당의정에 씌워진 달콤한 사탕표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쓰디 쓴 당의정의 진실을 알고 있는 뫼르소는 사랑도 행복도 정의도 그리 의미있는 것들이 아니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이 장면은 한 아랍인을 쏘기 직전 더위와 땀과 눈물과 긴장감으로 얼룩진 뫼르소의 얼굴이다. 처절하지만 살아있음이 진하게 전달돼 오는 얼굴. 무심하고 담담한 평소의 뫼르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이 순간이 바로 부조리한 세상의 가치를 저버리고 반항적 인간으로 들어서는 선전포고의 시작이기도 하다. 강렬함이 살아있는 뫼르소의 얼굴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대는 이 씁쓸한 세상의 본질에 대항해 이방인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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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02-28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생각보다 훨씬 커서 구입하기가 망설여져요.
작은 사이즈로 나오길 기대하는건 무리일까요..

탄하 2013-02-28 12:56   좋아요 0 | URL
저는 사이즈는 생각도 못하고 샀다가 너무 놀랐어요.
이것보다 좀 작은 사이즈로 나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크게 만들었는지..
카뮈 150주년 즈음엔 기대를 해봐도 좋을까요?^^

transient-guest 2013-02-28 0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러스트가 눈에 친숙한게 꼭 Sin City같은 스타일의 미국 만화의 그림같아요. 호세 무뇨스가 어떤 커리어를 가졌는지 모르지만요.

탄하 2013-02-28 13:02   좋아요 0 | URL
호세 무뇨스 대단히 유명한 일러스트인 것 같아요. 저도 그래픽노블은 잘 모르지만 이 사람의 그림이 Sin City의 프랭크 밀러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네요. 트란님께서 Sin City말씀하신 덕분에 무뇨스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마립간 2013-02-2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읽지 않은 문고판 '이방인'을 갖고 있는데, 일러스트 때문에 이 책을 갖고 싶군요.
어머니의 죽음과 꺼림칙한 이웃사람이 접근하는 상황에서도 생각보다는 감각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뫼르소는 감각이 아니라 생각에 몰두하는 모습이 아닌가요? 아, 책을 읽지 않아 잘 모르겠어요.

탄하 2013-02-28 13:12   좋아요 0 | URL
그림이 있는 <이방인>을 펼쳐들면 누고가 옆자리를 쏙 파고 들어올지도 몰라요.^^

살인 후에는 좀 더 상념이 많아지고 그 전에는 감각(졸음이 와서, 점심에 OO를 먹었으므로 배가 고프지 않아)에 관한 이야기가 의외로 많아요. 그리고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것에 집중하는 면도 있구요. 아마 지극히 무료하고 단조로운 삶을 표현하기 위해 그런 서술이 종종 비췄는지도 모르겠네요.

달사르 2013-03-2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으셨군요. 저는 책으로 '이방인' 읽고 나서, 하도 먹먹해서 '그림이 있는 이방인'을 샀는데요. 그림의 도움을 얻으면 그 먹먹함이 좀 해결될려나 싶어서요. 근데 여전히 먹먹하고 답답하고 그러네요.

겨우 발 딛고 서 있는데 땅이 흔들리는 느낌이랄까. 사람을 굉장히 불안하게 만드는 책 같아요. 근데 동시에 이 고비만 넘기면 한 단계 올라설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쉽게 놓지도 못하게 만들고 말이죠.

아고..저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 첫 문장 만으로 기함하게 놀라운지라..ㅠ.ㅠ

탄하 2013-03-28 21:49   좋아요 0 | URL
'그림이 있는 이방인'이란 이 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그런 제목을 가진 또 다른 책이 있나 싶어 찾아봤는데, 없네요.
이거 정말 그림이 격해요. 게다가 흑백이라 아주 건조하기까지...

저도 그랬어요. 굉장히 불안하게 만드는 거, 그 느낌이 딱 맞네요.
근데 저는 다행히도 아주 미남인 뫼르소가 나오는 영화를 먼저 본 덕에 조금 덜했어요.
조각같은 외모에 미소년같은 꽤나 멋스러운 남자가 주연이였죠.
이 책 리뷰쓰기 전에 그 영화 찾아봤는데 못 찾겠더라구요. 배우 이름을 알고 싶었는데..ㅠ.ㅠ

저는 이거 읽고 나서 다시 글자로만 된 <이방인>을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책이 워낙 커서 거의 이방인이라는 잔디밭에서 뒹군 느낌인데
좀 (포맷이) 단정한 책으로 보면 더 몰입이 잘 될 것 같더군요.

하여간 <이방인>은 여러모로 논란도 많았고 읽고 또 읽어도 생각의 여지가 많은 책인 것 같아요.

달사르 2013-03-27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확실히 분홍신 님의 리뷰, 좋은데요.
그냥 불안한 느낌, 만을 느끼는 저와 달리 분홍신 님 리뷰를 그것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어요.
담에 '그림이 있는 이방인' 한 번 더 보고 나서, 분홍신 님 리뷰 다시 또 읽어 볼래요.

아..단정한 리뷰..좋아요. ^^

탄하 2013-03-28 22:00   좋아요 0 | URL
음음..감사합니다.^^
불안이 조금 가시게 되면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실거라 믿어요.
저도 그런게 다 정리가 안됐는데, 나중에 텍스트로만 된 책을 읽게 되면
카뮈에 대해 조끔 더 공부하고 다른 글을 써 볼 생각이예요.
 
엄마, 사라지지 마 - 노모, 그 2년의 기록
한설희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요즘 들어 엄마의 외가댁 행이 더 잦아지셨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리니 좀 띄엄띄엄 가시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시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기에 선뜻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한다. 엄마가 외가댁에 자주 가시는 까닭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사라지지 마!', 바로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외침이 엄마의 가슴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걸 머리로는 알지만 정작 당신이 아닌 외손녀로서는 절절히 와 닿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엄마는 아직 젊은 할머니고, 예전과 다름이 건강하셔서 '엄마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나로부터 저만치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책 속의 사진들을 찬찬히 넘기다 보니 외할머니에 대한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섬'이라고 부르는 고요한 집에서 홀로 식사하시고, 앉아 계시고, 잠들어 계신 누군가의 엄마를 통해 엄마가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모습, 언젠가 내가 만나게 될 엄마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엄마, 사라지지 마>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기도 하며 내게 있어서도 효력있는 선물로 다가왔다. 비록 한 권의 책으로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그 마음을 향해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이제 엄마와 나는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p.125)

 

무언가를 사이에 두고 바라본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따른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바라볼 때, 얇은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라볼 때, 혹은 굳게 닫힌 철문을 사이에 두고 보이지 않는 상대방 쪽으로 바라볼 때, 각각 의미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만일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친밀함을 전제로 한다. 성능 좋은 줌 카메라로 먼 곳의 상대방을 가까이 불러오지 않는 이상, 투철한 기자정신을 발휘해 현장 가까이 비집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다가갈 때는 다가간 거리만큼 친밀한 사이인 것이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는 일은 서로의 상처와 결핍에 다가서는 일'이라는 문장에서 흠칫 놀란다. 엄마의 사진을, 그것도 클로즈업으로 가까이 찍을 정도라면 애초부터 매우 돈독한 모녀지간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 두 사람에게도 용서와 화해의 과정이 필요했음을 알게 된 탓이다. 그래서 페이지를 되돌려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엄마 사랑만 간절한 이상적인 딸이 아니라 상처와 결핍에 다가서려 노력했던 평범하고도 성숙한 딸의 마음으로 읽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엄마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저 남길만한 장면을 찾아내는 눈의 일이 아님을, 그것은 엄마의 상처와 허물마저 감싸 안는 마음의 일임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진만을 간직하고 있다. 좋은 데 여행 갔을 때, 생일, 졸업, 크리스마스와 같은 아름답고 특별한 날들이 우리가 사진기를 드는 대표적인 순간들이므로. 요즘 들어 일상을 사진에 담는 일이 빈번해졌다 해도 그런 스냅사진 마저 우울하거나 슬픈 모습을 담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사진 속의 엄마들은(그리고 아빠들도) 일명 ‘코닥 모멘트’라는 의무적인 웃음과 함께 늘 행복한 표정만을 짓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엄마 모습도, 엄마 모습의 전부도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소파에서 잠든 모습, 걸레질하는 모습, 면봉으로 귀 파는 모습까지 사소하고 추레한 모든 장면들이 모여 엄마의 모습 안에 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엄마의 모습들이, 비록 주름지고, 무료하고, 연약한 모습들이 끼어들지라도 진정한 엄마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어머니께서 간혹 예쁜 척 하시기도 했다지만). 이런 사진 속의 엄마에는, 비록 작가에겐 나만의 엄마이겠지만 동시에 누구의 엄마도 될 수 있는 공감대가 너그럽게 자리하고 있다. 특히 '병원에 안 가시겠다', '이렇게 앉는 것이 제일 편하다', 고집 부리시는 엄마, 은근히 새 화장품을 사두신 엄마의 이야기에선 누구나 각자의 엄마를 보는 것처럼 슬며시 웃음이 날 것이다.

 

<엄마, 사라지지 마>에는 엄마의 사진들도 많지만 엄마의 물건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누군가를 묘사하고 기억으로 남긴다는 게 오직 그 사람의 모습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므로 주변을 둘러싼 물건들은 마치 엄마의 분신인양 비춰진다. 엄마가 쓰는 서랍, 거울, 물그릇, 텅 빈 방의 이불자락에선 일상의 체취와 동시에 다가올 엄마의 부재가 교차되기도 한다.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물건들이 모두 '남기고 가실 것'이라는 사실이 떠오르고 그것이 모두 추억이 될 것임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엄마의 역사가,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는 엄마의 외로움이 묻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들은 대체적으로 어두운 톤이거나 흑백의 대비가 눈에 띄는(어둠 속에서 빛이 뚜렷이 느껴지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소멸'이라는 단어가 언뜻 연상되지만 나로서는 '침묵'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고요한 가운데 남은 시간들을 감당해내시는 엄마. 여기에 간혹 흘러 드는 강한 빛 줄기, 혹은 빛의 면적들이 때론 화사하게, 때론 쓸쓸하게 침묵과 화음을 이루는 것 같다. 어쩌면 엄마는 자궁과도 같은 아늑한 침묵 속에서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아내는 딸의 사랑을 만끽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사진 중에서는 추상화처럼 물결치는 엄마의 거친 손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출렁이는 것이 엄마의 지나 온 세월 같기도 하고, 엄마의 숨겨진 마음 구석 같기도 하고, 하얀 머리 결 같다가도 입가 같다가도...무엇을 상상해도 삶의 흔적을 상상케 하는 결들이 좋다. 나무껍질인 것처럼 보이는 옷(사실은 깔깔이, 혹은 지지미라는 불리는 옷감일 것이다)을 입고 지팡이를 짚으신 사진도 마음 깊이 다가오는 사진이다. 처음엔 보통 할머니들께서 잘 입으시는 울긋불긋하고 때론 촌스러워 보이는 옷감을 나무껍질처럼 포착해 낸 사진가의 썰미가 눈에 띄었던 사진이었는데, 그것이 딸이 사준 지팡이를 짚고 찍은 사진임을 글을 통해 아는 순간, 나무처럼 묵묵히 곁을 지켜주시던 엄마와 지금 엄마를 지켜주는 지팡이 같은 딸이 교차되면서 더 큰 감동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딸의 사랑을 엄마는 비단이불보다 더 깊숙한 곳에 감추고 계실 것이다. 소중한 것은 더 꽁꽁 숨겨두신다는 저자의 엄마이므로. 아마도 이 사랑은 몰래 감춰두셨다가 영원의 힘이 필요한 시점에서 홀로 꺼내 보실 거라 생각한다. 그분의 딸이 엄마의 사진집을 꺼내보는 그 마음으로.

 

신을 믿는 사람들은 영원(영생)을 갈망한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영원 속으로 들어가면 그 긴 시간을 뭘 하며 보낼까, 지루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들이 영원을 꿈꾸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영원에 대한 바램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나 홀로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 바로 이 책의 엄마와 딸처럼 언제나 곁에 있고픈 바램이 영원을 꿈꾸게 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영원을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들 곁에서 '찰칵'이라고 동의하며 이생에서 이룰 수 있는 영원에 최선을 다해줄 것이다.

 

 


* 본 리뷰에 삽입된 사진들은 사진집을 카메라로 다시 찍는 과정에서 빛이 반사되었으므로 톤과 질의 면에서 원본에 미치지 못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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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3-01-02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있네요.
카메라를 사서 뭐부터 찍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답이 여기 있었네요.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 동안 무척 행복했을 것 같애요. 딸과 엄마의 사랑의 매개자였으니까요.

탄하 2013-01-03 18:14   좋아요 0 | URL
엄마는 참, 여러모로 도움이 되시죠?^^
보통 사진수업을 들으면 '거리'나 '시장'을 찍게 하던데
이 추운 날씨에 그럴 필요없이 옆에 계신 엄마가, 말씀대로 정답입니다.

요즘엔 사진에 취미를 붙이셨나봐요.
달사르님...여러모로 재능이 많으시네요.

라로 2013-02-13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 추천만 했는데(그때는 아이폰으로 읽었는데) 다시 읽어보려고 컴으로 들어오니 글자가 흐릿해서 읽기 힘드네요,,ㅠㅠ
스마트폰이 좋은 점도 있어요. 그래서 가끔 알라딘 지기님들이 쓴 글은 스맛폰으로 읽으려고 할 때도 있어요,,ㅎㅎ
암튼 분홍신님 이 글 당선될 줄 알았어요,,,알라딘은 멋진 글을 잘 찾아내더라구요.^^
이 책은 꼭 읽어볼래요.

탄하 2013-02-13 18:42   좋아요 0 | URL
스맛폰으로 글 읽으면 일단 몸이 자유로와서 좋죠.
어디든 가서 엎드리고, 기대서 읽는게 약간 편지(지기님들의 글이라면) 읽는 느낌도 나요.

나비님 이 책 읽으시면서 펑펑 우시면 어쩌나..
하지만 엄마에 대한 사랑이 더 애틋해지고 작가에게서 배우는 점도 있어서 마음에 힘이 되긴해요.
하하..나비님은 멋진 칭찬을 잘 찾아내시더라구요.
피로가 몰려오는 저녁이지만 발이 붕붕 땅에 안 닿네요.^^

라로 2013-02-17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께 땡투하고 샀어요!!! 그냥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책이었는데 좋은 리뷰 덕분에 원하는 책을 얻게 되었어요!! 다시 감사해요~.^^

탄하 2013-02-18 20:47   좋아요 0 | URL
꺄~~! 정말 감사해요.
제 똑딱이 카메라가 자꾸 반사광을 만들어 무지 낑낑거렸는데
땡스투 해주시는 덕에 보람이 왈칵~ 밀려옵니다.^^
리뷰에도 썻지만 원본 사진은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겁니다.

해라 2013-02-26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홍신 님의 리뷰, 추천합니다 :) 트윗에서도 소개했어요.

탄하 2013-02-26 22:12   좋아요 0 | URL
아코! 트윗에까지요?
어쩐지 방문자수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추천도, 댓글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