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배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7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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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숨을 죽이고 천천히 나선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몇 개의 둥글고 커다란 거울들이 있었고 거울 앞에는 의자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아 내 모습과 저 아래 풍경들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낯선 곳에서 한참을 내 모습만 바라보다가 다음에는 동선이 이끄는 대로 좁고 어두운 통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붉은 기운이 감도는 둥근 방이 있었는데, 저 멀리 태아가 보이는 게 마치 엄마의 자궁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리고는 또다시 동선에 발걸음을 맡겼고 마지막으로 엄마 품에 안긴 아기를 바라보며 짧은 탐험을 마쳤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올라갔던 그 탑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I do, I Undo, I Redo라는 설치작품이었다(물론 제목과 자궁 속의 생경했던 느낌은 잊지 않았지만). 그리고 특별한 배달을 읽고 나서 오랜만에 이 작품을 다시 떠올렸다. 두 작품 모두,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듯한 개운한 마음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I do 그렇게 살아가다

대한민국은 입시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우등생에게나 있고 모든 권력은 성적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학생들을 시험기계로 여기는 청년 사회의 암묵적인 헌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나가서도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고 각종 스펙과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우리 모두의 헌법이 될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사람들은 승자와 패자로 나뉘고 뛰어난 사람과 무능력한 사람으로 나뉘며 그 밖에도 또 다른 이분법의 잣대들에 의해 언제나 우열로 가려진다. 열등한 축에 속한 사람들은 주권도 권력도 없으니 이 사회에서 존재감을 잃은 셈이다. 그래서 장래희망을 잉여인간이라 적어내는 태봉이의 행동이 그리 엉뚱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태봉은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머물면서 원망과 분노를 오토바이에 실어 달린다. 그는 그렇게 살아간다. 한편, 우월한 축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슬아의 삶이라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1등을 고수해야 하고, 모든 것에 완벽해야 하며 엄마가 꿈꾸는 명품가정의 품위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다들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지만 그것은 허브 오일로 잠을 쫓아가며 독하게 버티는 탓이다. 그녀는 그렇게 살아간다.

 

두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쏟아놓는 고민, 불만, 초조함, 분노를 통해 우리는 그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다. 늘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삶. 아무런 변화는 없고 무언가를 탓하며 분노만 늘어가는 삶. 태봉과 슬아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내 앞의 둥근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또 나의 살아가는 이 현재를 가만히 응시하게 한다.

 

 

 

 

I Undo 시간을 애도하다

가끔 인생에 대한 질문들을 빽빽이 채워놓은 책을 만난다. 이런 책 속에는 종종 등장하는 질문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만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가?이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답변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고 또 하나는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다. 이 중에서 결정적인 순간으로 가고 싶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과거의 어떤 선택을 후회하고 있으며 그것을 되돌린다면 현재가 더 만족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과거의 선택을 바꿔 현재를 만족하게 만든다 해도 그만큼 잃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후회를 통한 성숙함이다. 인생은 성공하고 만족하기 위해 꾸려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더 큰 의의는 성숙하는데 있다.특별한 배달 이 점을 잘 지적해준다. 후회할 일도 내 인생이고 내 선택이라는 삼촌의 멋진 한 마디와 함께.

 

슬아와 태봉이 평행우주를 통해 자신들의 과거와 만나는 시간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도의 시간과도 같이 느껴졌다. 애도의 시간이란 상처 입었던 과거,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그 장면으로 돌아가 그 때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상황에 대한 책임을 형평성 있게 생각하고, 담담하게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내가 겪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에서는 Undo의 경험에 해당된다. 여기서 Undo는 과거의 do들을 하나씩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행동들을 충분히 되새기고 원망과 집착으로부터 홀가분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행선지가 Redo일리 없다.

 

 

 

 

I Redo 새롭게 변화하다

자신의 과거, 정확하게는 나를 만들어왔던 선택과 나의 내면과의 치열한 대화를 거친 후,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살아가는 시간은 달력 속의 날짜를 따라가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들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된 카이로스(kairos)의 시간들이다. 사람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세상 속에서 탈피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이 원리를 슬아는 매우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

 

한번쯤은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가 있는 거 같아.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다른 형태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 주는 거라고 생각해. 자꾸 그렇게 점검하며 길을 내는 게 제대로 사는 거 아닐까?(p.138)

 

 

자신을 돌아보며 다른 형태의 기회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후회할 것을 받아들이며 성숙해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돌아봄으로 인한 변화가 없다면 새로운 기회 또한 없다. 언제나 후회라는 단어를 회피하고 선택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했던 나였지만, 특별한 배달』을 읽고 나니 용기가 움찔 솟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새로이 태어난 아기, 그것이 평행우주 저편에서 삶을 시작한 또 다른 나인지 모르겠지만(이론적으로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시간을 아장아장 걸어보라고 희망을 주는 이 책의 특별한 배달이었다.

 

 

 

* 글 제목은 위에서 언급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설치작품 『I do, I Undo, I Redo』에서 차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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