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응의 건축 -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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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의 첫 머리, 첫 문장부터 거침없이 내 가슴을 쓸어 내렸던 한 권의 책에 관하여...

 


필자는 첩첩산중, 내륙의 작은 도시 무주에서 1996년부터 1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공공건축물 설계작업에 매달린 적이 있다.

면사무소부터 납골당까지, 무려 30여 개의 건축을 다루는 일은 행운이면서 동시에 고난의 행군이었다.
(p.6, 저자의 서문 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이 초단위로 환산되면서 모래같은 시간의 알갱이들이 와르르 엄습해왔다. 가슴을 쓸어 내리는 느낌도 분명 이 모래 알갱이 같은 시간의 낙하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토록 시간의 무게가 절절했던 까닭은 공교롭게도 머나먼 타국의 낙후된 도시에서 500여 일간의 파견근무를 마친 후 이 책과 만났기 때문이다. 말이 쉽지 대도시의 편의와 가족을 떠나 산골짜기 농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평범한 일상생활이 아니라 일개 시()를 맡아 그곳의 공공건물들을 설계한다는 것은, 그리고 관()을 상대로 그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최대치의 열정과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며 저자의 표현 그대로 '고난의 행군'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는 이 고난의 행군을 한편으론 '행운'이라고 불렀다. 결코 만만한 시간이 아닌 10여 년의 세월을 첩첩산중에서 30여 개의 공공건축물과 씨름하며 보냈던 그가 이를 행운이라 부르는데 더 이상 무어라 항변할 수 있을까, 그저 존경스러울 밖에. 남은 것은 숙연한 마음으로 한 건축가의 혼이 누적된 10년의 세월을 조심스레 들춰보는 일밖에 없었다.

 

<감응의 건축>은 한 도시와 한 건축가의 성장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생생한 일대기이며 건축을 너머 사회와 환경 전반에 울림이 되는 소중한 발언들이다. 얼핏 보면 무주시 프로젝트에 관한 작품집 같지만 건축가 한 개인의 '작품'보다는 농촌문제, 건축행정, 민주주의, 자연과 생태에 더 주목하고자 하며 언변에만 그치는 이상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경험 속에서 우러난 실천 가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저자, 건축가 정기용 선생의 한결같은 건축생애의 행보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건축가 누구' 하면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어떤 어떤 건물을 설계한 사람'이라고 해야 겨우 그 건축물의 인지도에 따라 '~!'하는 동의나마 얻을 수 있다. 정기용 선생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그가 건축계의 저명인사라 할지라도 '() 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 '기적의 도서관'을 들지 않고는 대중들에게 소개할 길이 없다. 그런데 이같은 건축가들의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그의 건축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가 개봉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CEO든 학자든 예술가든 '듣는' 것을 미덕으로 강조하는 요즘 세상에 굳이 '말하는' 자를 자처하며 나섰던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의 건축과 인간과 자연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이었으며, 대장암 말기로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한 건축가의 사회를 향한 간절한 유언이기도 했다. 그리고 <감응의 건축>은 바로 그 말들이 비롯된 선생의 건축적 경험과 소신의 산실을 기록한다.

 

‘감응의 건축’은 정기용 선생에게 있어 모토(motto)와도 같은 중심개념이다. ‘말하는 건축가’로 알려지기 이전부터 그는 늘 ‘감응의 건축가’였으니까. 여기서 감응이란 쌍방적인 것, 느끼고 응하는 것, 영어로 하면 ‘correspondence’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를 한자로 풀이하면 ‘생성’의 의미가 드러나면서 좀 더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감응을 한자로 표현한다면 ‘어질 인()’자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어질 인’자는 사람이 둘이다. 사실 ‘어질 인’자에는 ‘생성’의 의미가 있다. 은행나무 열매를 행인(杏仁)이라고 하는데, 열매를 인()이라고 쓰는 것은 감응해서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p.330)

 

감응해 싹을 틔운 것. 그것의 참 모습을 집약해 보여주는 것이 바로 무주 프로젝트이다. 여기서는 자연, 시간, 기관, 주민, 건축가가 서로 소통하며 모두를 위한 30여 개의 공공건축물들을 탄생시켰다. 설계를 의뢰했던 무주군수부터 공공건축과 행정에 대해 남다른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건축가는 그와 함께 주민들의 의견을 직접 묻고 귀로 들었으며, 콘크리트와 아파트로 대변되는 근대건축이 밀어내 버린 자연과 시간을 건축 환경 속에 다시 회복시켰다. 일례로 애초에 계획했던 주민자치센터(면사무소)는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여타 자치센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목욕탕을 포함하기로 했다. 모든 주민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였고, 목욕을 하려면 봉고차를 빌려 대전까지 다녀오는 것이 그들의 상황인데 어찌 천편일률적인 자치센터의 시설을 고수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공설운동장의 경우에도 주민들의 뼈아픈 충고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공설 운동장에서 행사를 할 때면 주민들이 오지 않아 그 이유를 알아보니 “높으신 분들만 그늘에 앉아 있고 우리들은 땡볕에 나 앉아 있어야 하니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답변이었다. 그래서 공공건물의 권위주의를 벗겨내고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위해 시도한 것이 등나무 그늘막이다. 그늘막을 위한 구조는 평범한 철골로 토대를 세우고 여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등나무가 자라나 타오르게 만든 것이다. 등나무가 자라 철골구조를 다 덮으면 친구처럼 서로의 굵기도 엇비슷해지고 그늘은 기성품 천막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천연의 휴식처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그늘막의 풍경도 달라지고 일년에 한 계절은 꽃 향기까지 맡을 수 있으니, 이보다 아름다운 민()의 공간이 또 어디 있을까!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비록 정기용 선생 스스로 조금 비약적이라 표현했지만) 건축이 사회적 제안임을 확인시켜주었고, 감응을 통해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주시는 보기 드물게 우리나라의 옛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농촌이니만큼 여기서 농촌문제가 대두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 투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농촌의 토지, 농촌 개발이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밀려드는 신도시, 공장, 골프장들…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농촌은 더 이상 농민의 것이 아니라 부를 소유한 큰 손들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문제는 농민들의 땅에 대한 인식과 정체성마저 침식당했다는 점이다.

 

…농촌 사람들에게 개발의 개념이란 땅값이 오르면 땅을 팔고 도시로 떠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p.85) 

 

이러한 현실의 문제에 대해 정기용 선생은 건축가가 사회적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건축이 맞선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의 문제점들을 향해 수많은 분야들을 끌어안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가는 설계자이기 이전에 세상에 대한 번역가이고, 세상을 읽어주는 사람이고, 사회를 제안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당차게 말한다. 앞서 언급한 농촌문제의 경우도 단지 도시와 같은 생활의 편의를 그곳에 옮겨 심는 것이 아니라 국토개발이나 건축행정, 지역성 등의 관점에서 그들의 미래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제안이 필요한 것이다.

 

<감응의 건축>은 공공건축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건축의 사회적인 측면들을 많이 언급하지만 각각의 건물에 함축된 아름다운 의도와 그것을 이끌어나갔던 사유의 자취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하늘의 질서를 따르기로 했다는 부남면의 건물들, 망자로 하여금 마지막으로 마을을 돌아보도록 창을 만든 무주 보건의료원, 최재천 교수를 쫓아다니며 배운 곤충과 식물과의 공생관계를 적용한 곤충박물관, 이 밖에도 자연과 현실과 미래를 고민한 많은 건물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 펼쳐진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들은 “문제도 이 땅에 있고, 그 해법도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라는 커다란 명제 아래 치열하게, 때론 포근하게 진행된다. 평소 해외 건축사조와 건축철학을 답습하며 늘 선진사례, 선진사례, 하는 것을 염려했던 선생이었기에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이 땅의 것을 만들어 내려는 의지가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기용 선생은 삶의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나무, 바람, 하늘, 공기, 모두 다 고맙습니다."


처음엔 그저 생을 마감하는 이가 고맙다는 말씀을 남겼기에 어쩐지 가슴이 찡했지만 나중에 문득 이 책을 떠올리고 나니 보다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자연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가며 모두에게 고맙다고 했던 것은 이생을 통해 그들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건축을 함께 만들어나갔던 친구였으며, 스승이자 조언자이기 때문이었다. <감응의 건축>은 정기용 선생이 자연과 인간을 통해 가장 많은 것을 배웠던 행운과 고난의 10년을 살뜰하게 기록해 우리가 가야 할 지점까지 작은 오솔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 길을 걷다 보면 그가 말했던 모든 것들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말보다도 더 많은 습작들이 우리의 열정을 인도할 것이다.

 

 


 

* 덧붙임 : 고(故) 정기용 선생의 마지막 작품집. 노란색이다. 환히 웃으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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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4-2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쓰시는 스타일이 멋있어서 오래도록 읽고 있는 리뷰입니다. 아..이미 아시다시피 그 인연의 시작은 <조드>였구요. 최신 글부터 하나씩 하나씩 읽고 있어요. 이 댓글은 임시 댓글입니닷. 몇 번 더 읽고나서 다시 본 댓글을 달겠슴돠. ^^

탄하 2012-04-28 11:23   좋아요 0 | URL
에공, 이런..감사합니다. 하지만 연재소설도 아닌데 역주행까지..^^;
저야말로 오늘은 달사르님 서재에서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걸요.
주말 오전이라 느긋하게 볼 수 있어 좋네요.
 

 

 

 

 

 

 

 

 

 

문명세계의 소시민에게 몽골이란 푸른 초원이 펼쳐진 머나먼 고원지대에 불과했다. 가끔 어린이 후원단체 같은 곳에서 카탈로그를 보내오면 오늘날 몽골인들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하며 다 해어진 그들의 옷소매를 통해 삶의 편린을 엿볼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일상을 스쳐가는 무수한 정보의 일부일 뿐, 마지막 커피 한 모금과 함께 덮어버리고 나면 그만인 것이 대개 이런 카탈로그들이 받는 대우였다. 그러던 어느날 몽골이 갑자기 성큼 다가왔다. 바로 사진가 김홍희의 작품들을 통해서였다. 푸른 초원이라는 잘 포장된 모습이 아닌 현실의 몽골, 메마른 땅이 끝없이 펼쳐지고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지기도 하는 그곳을 나는 너무도 생생히 보게 된 것이다. 뿐만아니라 사진 속의 몽골인들은 더이상 푸른 초원을 말달리던 칭기즈칸의 후예인척 하지 않았다. 그들은 황량한 사막에 가판대를 설치했고, 대지에 발전소를 심었으며, 점퍼와 츄리닝 차림으로 당구를 치거나 벽에는 포르노 포스터를 붙여놓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조드>가 광야의 중세를 그리려고 했다는 점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일수 있겠지만 아직은 선량함 남아있는 몽골의 눈망울들에게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작가정신이 나로 하여금 <조드>라는 기나긴 여정의 첫머리를 출발하도록 재촉했다. 문명화와 서구화를 동일시하는 이 시대에, 그리고 이제 그에 대한 반성이 일고있는 시점에서, 작가가 칭기즈칸의 몽골을 통해 글로써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는 상당히 전염성 강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자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에 값할 '인류사 상'을 얻기는 어렵다. 낡은 역사관을 대체할 그림이 있어야 새로운 역사관이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다 바른 세계사 상(像)'을 찾으려는 노력에 나도 동참하고 싶었다. 소재가 국경을 벗어난 점도, 시대적 배경이 먼 것도 개의치 않았다. 가톨릭과 비(非)가톨릭 정신이 각축하는 성곽의 중세가 아닌, 이동문명과 정착문명, 농경민과 유목민의 충돌을 야기한 광야의 중세를 그리려는 의지는 21세기 정신의 산물이다. 특히 근대적 가치관이 주목하지 못한, 보다 광활한 세계에 부합하는 인간형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작가의 말 中)

 

 

 


광야의 신화
광야의 신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조그만 연못이 자라 아주 큰 호수가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천 개의 물방울이 모여 하나가 되고 그 하나가 다시 천개로 모이는 유기적 창조의 과정은 말씀의 권위로 이레만에 완성된 서구의 천지창조와 대조를 이루며 희미해진 이 땅의 신화를 다시 세우겠다는 의지로 비춰지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할법한 전래동화가 도란도란 피어날 즈음이면 마치 할머니의 무릎에 기대어 졸듯 꿈결같은 옛 이야기로 빠져든다. 그리고 꿈보다 더 달콤한 이야기 속에서 고운 백조와 사냥꾼을 만나고, 늑대족과 사슴족의 사랑을 목격하며, 민담을 갖겠다던 외눈박이의 순박함에 웃음 짓는다. 그래, 그 위대한 칭기스칸은 용이 꿈틀거리고 천지가 개벽하며 나타난 인물이 아니더란 말이지...문득 "유목민인 칭기즈칸의 제국주의는[...]소유하고 점령하는 게 아니라 소통하고 통과해 가는 것이 몽골의 방식이었습니다"라는 작가의 변이 떠오른다. 모든 신화에서 말해주는 것이 사랑이요, 바보와 외눈박이의 어진 마음이니 이후 칭기즈칸이 품은 뜻도 여기서 비롯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뿐만아니라 고운님이라는 뜻의 알랑고아가 달빛과 한 몸이 되어 만들어낸 자식, 강인한 땅의 생명력을 지닌 여인의 몸에서 하늘의 음기를 취해 태어난 자식의 후손이니 태양처럼 군림하는 칭기즈칸이 아니라 극복하고 소통하는 칭기즈칸의 모습이 예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조드>가 그리는 칭기즈칸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서구적 카리스마의 전형과 다르며, 바로 이 점이 몽골을 비롯한 동방인들에게 재조명되어야 할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혈흔을 닦는 시심(詩心)
전율을 할만큼 한바탕의 거친 싸움이 있었다. 바로 자무카의 말 무리를 공격하는 늑대 무리의 보복전이다. 너무도 치밀한 전략이 잔인함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이 싸움은 도저히 동물간의 육박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지혜롭고 영악했으며 때론 비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말이든 늑대든 우두머리들이 가진 리더십과 자식애에서 훗날 벌어질 유목민들간의 전쟁이 그려지기도 했다. 유목민들도 분명 이들처럼 뼈마디가 바스러지고 내장이 짓밟히는 가운데 자신의 영역과 자식새끼들을 지키려 안간힘을 썻으리라! '흰머리를 풀어헤친 귀신 바람이 불던 날' 설원 위에 펼쳐진 말 무리와 늑대 무리의 육박전은 강렬하다 못해 장렬하기까지한 싸움이었다. 그래서인지 안전지대인 헤를렌 강변에 도착해서도 이 느낌이 쉬 가라앉지 않는다. 흰머리 바람으로도 지울 수 없었던 붉은 혈흔이 비로소 스러지기 시작했던 시점은 바로 자무카의 입에서 시(詩)가 흐르는 순간. 그는 자신이 이끌던 말 무리를 도와준 이가 사라진 의형제 테무진(훗날 칭기즈칸)임을 알고 변함없는 우정을 시(詩)에 담아 노래한다. 헌데, 이 거친 사내의 시(詩) 한 수가 강렬한 싸움의 서사보다 더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를 분별하려는 세세한 마음에서 뚜렷한 단어를 짚어내긴 어렵지만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조드>의 서사가 시심(詩心)에 힘입어 때론 신비한 전설로, 때론 순수한 동심으로, 때론 달관의 지혜로 촉촉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투가 휩쓸고간 자리를 위로해주는 나직한 노래가 된다.

 

 


흰뼈와 검은뼈의 우정
가문을 세운 여자 알랑고아의 막내 아들 보돈차르 몽학의 직계 혈통. 사람들은 이들을 황금가문의 흰 뼈라 불렀고, 직계가 아닌 혈통을 검은뼈라 불렀다. 테무진은 흰 뼈 출신이며 자무카는 검은 뼈 출신. 이들의 우정을 다룬다는 것은 아직도 '계급혁명' 외에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우리들에게 그 벽을 해체해 보이려는 야심찬 시도로 다가온다. 그래서 서로를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봤다던 테무진과 자무카의 관계에 주목하게 되는데, 귀족출신으로 평민인 자무카와 의형제를 맺는 테무진은 마음가짐부터 이미 남다르다. 오늘날로 치면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더 중요시했던 테무진, 즉 칭기즈칸의 자세는 문득 하늘은 높은 것이 아니라 넓은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며 이후 넓은 하늘이 지나게 될 우정과 갈등의 해법이 어떤 것일지 사뭇 기대를 걸게 된다. 서로 지문을 보여주고 서로의 운명을 엿본 두 사람, '태어나는 곳은 달라도 묻히는 곳이 같기를'맹세하는 두 사람에게서는 신분의 경계를 허물고자하는 인간으로서의 의지가 결연히 흐르기 때문이다. 만일 이 맹세가 이뤄진다면 언젠가는 하늘이 땅 위에 있지 않고 그저 평행으로만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를 우리는 희망해도 좋을 것 같다.

 

 


조드와 칭기즈칸의 길
850년전 대자연이 다스리던 몽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한 세계로 다가온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겨울의 서식지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매섭게 몰아치는 혹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몽골에서는 그 너른 땅에 어린 추위가 움터 젊은 추위가 되고, 다시 늙은 추위로 이어지기까지 기나긴 겨울이 계속된다. 조드 또한 이 겨울의 출신으로, 한겨울 유라시아 내륙에 몰아닥치는 혹독한 추위를 의미하는데, 조드가 밀어닥치면 초원은 초토화가 되고 목숨이 달린 것들은 제아무리 인간일지라도 죽음의 문턱에서 발버둥치게 된다. 살아남을 길은 오직 서로 뭉치는 것. 이는 거룩한 어머니 알랑고아가 화살 다섯대를 묶어 일러준 교훈이었다. 그리고 어린 테무진이 칭기즈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도 신화속에 고이 간직된 어머니 일랑고아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길이었을 뿐, 누군가를 정복해 제국을 이루려는 것은 그의 꿈이 아니었다.


"죽음의 땅을 벗어나 다른 장소로 가고 싶은 것, 그걸 가로막는 장애물을 뛰어넘은 게 칭기즈칸의 정복의 이유가 아닐까"


작가의 깊은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테무진을 칭기즈칸으로 키워낸 원동력이 조드라는 신선한 해석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단지 자연의 순리에 따라 극복할 고난은 뛰어넘고 품어야 할 생명들은 감싸안았으며 함께할 동지들과는 화살대처럼 나란히 힘을 포갰다. 그러는 사이에 칭기즈칸은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는 소통자가 되었다. 다시 쓰는 몽골의 역사에서 그는 소유라는 상하의 축이 아닌 소통이라는 백방의 축으로 화(和)한 것이다.

 

 

 

 

서구화의 물결이 침투한 몽골의 사진을 보며 잠시 상상에 젖어본다. 지금도 몽골의 광야에서는 열두 가지 바람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도 타인의 불에 예를 갖춰 건드리지 않으며, 모든 가축이 생명의 존엄성을 알고 그것에 경외심을 가진 자의 손에서 죽어야 할까? 그리고 지금도...수분없는 눈보라가 말발굽 아래 부서져 쉬 가라앉지 않는 그 진기한 풍경들을 볼 수 있을까? 물론 나는 정답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칭기스칸의 몽골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왜냐고 묻는다면 푸른하늘이 내린 아이의 마음을 잠시 훔쳐봤던 설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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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5-09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홍희..찾아봤어요.
김홍희 작품집 먼저 읽고나서 다시 댓글 달아야겠어요.
ㅎㅎ 분홍신님 포스팅은 댓글 예고를 제가 자꾸 하게 되네요. 분홍신님 포스팅 글이 좋아서 그런거 같애염. ^^

탄하 2012-05-13 11:19   좋아요 0 | URL
하하, 댓글 예고편이라..
이거, 달사르님께서 신개념을 만들어 놓고 가셨군요.
김홍희님의 사진이 너무 좋아서겠지요.^^

이분 작품집 볼만 해요.
글까지 쓰신 책도 있는데 매우 감성적이시기도 하구요.
달사르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달사르 2012-05-27 22:33   좋아요 0 | URL
ㅎㅎ 작품집 멋지더이다. 첨에는 뭐이래? 이랬다가 몇 번을 다시 보고 또 보니 점점더 작품집이 좋아지던데요? 작가해도 되겠다, 란 생각이 들 정도로 글도 좋았구요. 분홍신님 덕분에 좋은 책 만났어요. ^^

탄하 2012-05-31 22:59   좋아요 0 | URL
에헤, 덕분은요..^^
이분, 김홍희님, 외모는 꽤 카리스마 있어 보이시지만 글은 참 가슴을 저리게 해요.
제일 처음 읽은 책이 <나는 사진이다>였는데, 작품만 김홍희님꺼고 글은 다른 사람이 쓴 줄 알았다가 나중에 글도 직접 쓰신 걸 알고 깜짝 놀랐었답니다. 그게 아주 오래전인데, 그때는 독서를 잘 안하던 때라 사진작가가 에세이집을 낼 거라곤 상상도 못했거든요.
달사르님도 정붙이셨다니 다행이네요.^^
 
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영화적 건축의 참다운 본질은
고체상태의 물성인 건축을
생기와 빛이 가득한 사건의 모습들로,
그것들의 에너지화된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으로
철저하게 변형시키는 것이다.

 

- 파스칼 쇼닝, <영화적 건축 선언서> 中

 


영화적 건축의 창시자 파스칼 쇼닝은 감정도 하나의 건축 재료라고 말한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처참한 사건이라는 스레브레니카 대학살을 통해 엿볼 수 있는데, 재건된 고향보다는 폐허인 피난처를 선택했던 보스니아 여인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여기서 남편과 아들을 잃었음은 물론 강간까지 당한 그들은 정부가 마련해 준 주거단지를 거부한다. 새 주거단지의 방과 창문과 벽이 오직 옛 집과 가족 파괴의 슬픔만을 상기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라예보의 폐허에 남기로 했고, 그곳에서 강간으로 생긴 아이를 낳았으며, 구걸과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결국 여인들에게 정주(定住)의 안식을 제공한 것은 다름아닌 정신세계의 집, 즉 감정을 재료로한 건축이었다. 그곳의 벽은 상실의 기억을 차단하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물리적으로 구축된 고향의 집보다 더 믿음직한 새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다.

 

 

 


<집단 기억의 파괴>는 건축물의 파괴가 민족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강조하며 이를 주도했던 폭력과 분쟁의 역사를 집요하게 추적하는데, 건축물이 한 민족에게 커다란 상처를 준다는 것은 쇼닝의 감정을 재료로한 건축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하나의 건축물이 파괴된다는 것은 기존에 한 민족 혹은 민족 개개인이 건축물에 대해 가지고 있던 경험과 의미가 파괴됨을 의미하며 정신세계에 구축된 이미지로서의 공간도 실제의 공간 못지 않게 철저히 부서짐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도 감정이 축조해낸 건축의 세계를 종종 살펴볼 수 있었다. 일례로 보스니아 내전의 또다른 충격이었던 스타리 모스트(보스니아의 다리 이름) 붕괴의 경우 이 지역 시민들에게 전례없는 슬픔을 안겨주었는데, 너무도 깊은 그들의 슬픔에 작가 슬라벤스카 드라쿨리지는 "우리는 왜 파괴된 다리의 이미지를 보며 학살당한 사람의 이미지를 볼 때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 답은 작가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마 그 이유는 우리가 파괴된 다리에서 인간의 필멸성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문명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파괴하는 행위는 이야기가 다르다. 다리는 그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개인보다 더 오래 살아남도록 지어졌다. 다리는 영원을 붙잡으려는 시도이며 개개인의 운명을 초월한다. 죽은 여인은 우리들 가운데 한 명이지만 다리는 인류 전체다.(p.40~41)


스타리 모스트는 시민들의 생활공간으로서 친근한 만남의 장소이자 도시 이벤트의 무대였으며 어떤 이들에게는 구혼의 추억이 담긴 특별한 장소이기도 했다. 드라쿨리지의 답변에 덧붙여보자면 시민 개개인이 가진 애착의 감정이 스타리 모스트를 자신만의 영원의 공간으로 상징화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은 부지불식간에 건축물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은 슬프게도 건축물의 물리적인 형태가 파괴되었을때 더욱 실감나게 드러난다.


건축물의 파괴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일찌기 전쟁을 시도했던 많은 전범자들이 간파했던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을 기억하는 우리들의 방식이 국제관계의 여파 내지는 인명피해라는 관점에 치중되었기에 문화파괴의 행위 자체는 다수에게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대부분 건축사가나 미술사가의 영역으로만 여겨져왔다. 저자는 이점을 매우 안타까와하며 '인종청소'의 일부로서 물질문화의 파괴가 갖는 힘을 역설하는데, 이는 집단 정체성의 말살뿐만 아니라 회복에의 의지까지 좌절시키는 파급력 강한 살상무기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다양한 형태의 분쟁에서 자행되었던 건축물 파괴의 저의와 양상을 구체적으로 분류해 논하며 이를 통해 '인종청소'에 숨겨진 물질문화 파괴의 실상을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파괴의 대상이 되는 건축물들은 한 국가와 민족의 문화유산이나 권력의 상징이되는 건물, 혹은 랜드마크 등이지만 평범한 마을의 주거단지나 상업지구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즉, 전쟁 각본에 따라 침략자의 의도가 반영될 수 있는 건물이라면 모두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궁극적인 영향력 또한 동일하게 파급된다. 방법에 있어서도 과시적인 유혈의 파괴뿐만 아니라 대체 건물을 통한 은밀한 파괴도 동원된다. 후자의 경우 국제 여론을 시끄럽게 달구지 않으면서도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는 실리적이고 악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파괴가 해당 민족이나 종교인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정들었던 마을회관이나 예배당이 침략자의 위상을 드러내는 건물로 바뀌어가는 것은 전쟁에서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였다.


전쟁뿐만 아니라 그보다 규모가 작은 테러나 긴장관계라고 여길 수 있는 분단에서도 건축물은 매우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내포하며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된다. 특히 테러에서는 대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건축물을 파괴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목표 건물의 상징성 여부가 중요한데, 이는 미국의 911테러 사례에서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한 국가의 영토를 가로지르는 분단의 벽은 좀 더 독특한 방식으로 파괴를 진행한다. 여기서 벽은 단지 주변지역의 물리적인 파괴에 그치지 않고 한쪽 벽 너머의 강한 이들이 반대편의 약한 이들을 고립시키고 구속하는 방편으로 사용되며 약자들의 영토 자체를 감옥으로 만들어 한 민족, 심지어는 동족을 말살시키려는 잔혹한 의도가 다분하다. 이처럼 건축물의 파괴에는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음모와 술수가 담겨져 있으며 이는 미디어를 매개로 할 것을 고려해 사기로까지 확대된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집단 기억의 파괴>는 옛 유대인의 예루살렘 성전파괴와 디아스포라, 독일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 및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각종 건축물 파괴, 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과 하츠콘크 파괴, 911사태와 무역센터, 동서독의 갈등과 베를린 장벽 등 수없이 많은 역사속의 참상들을 면밀히 살펴가지만 단지 이 사건들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재건과 대비책을 다루고 있는 점이 눈여겨볼만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재건은 반드시 합리적이고 올바르고 안정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여기에도 대외적인 선전과 '디즈니화(실제 장소나 사건에서 주로 부정적이거나 비극적인 측면을 제거하거고 건전해 보이는 형태로 재포장하는 행위(p.316))'의 위험, 그리고 정치적 음모들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 회복 보다는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건축물의 파괴 이후 남겨진 상처가 너무도 크기에 우리는 어떤 조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여기에 동참하고 조약을 지키는 국가들은 (놀랍게도) 그리 많지 않아보인다. 이를 대변하듯 전쟁 중 오직 군사적 목표물들만 공격하도록 규정한 1999년 국제협약(헤이그 협약 제2차 의정서의 수정본)에 서명한 국가도 비교적 소수였다. 하지만 집단학살과 건축물 파괴의 책임을 물어 전범으로서 처벌을 받은 사례도 전무한 것은 아니다. 비록 이를 위한 국제적 노력이 큰 결실을 맺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아직 희망을 버려서는 안되며 이 책 또한 그 희망을 향한 실천의 하나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만일 건축물의 파괴를 제재하기 위한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든 물질세계의 건축물을 버리고 영화적 건축이 제시하는 무소유, 비물질 세계에서 살아야할지도 모르겠다. 비록 영화적 건축이 인간의 감정과 시간의 지속성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간을 구축한다지만 이것은 단지 실험적인 건축의 일부일 뿐이고, 우리는 여전히 든든한 벽에 둘러싸인 집에서 자랑스런 문화유산과 더불어 살아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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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의 어린이 십자군 어린이를 위한 인생 이야기 25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준형 옮김 / 새터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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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십자군>은 전쟁 중에 길을 잃은 어린이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사실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그림 동화는 아니다. 지독한어둠과 절망이 내포되어 있는 이 이야기는 원래 2차대전 당시 브레히트가 독일의 폴란드 침공 소식을 듣고 전쟁에 휩쓸린 아이들의 불행을 시(詩)로 묘사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아이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이나 풋풋하고 감동어린 에피소드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어지는 것은 오직 공포와 굶주림과 고통 뿐. 이러한 가운데 아이들이 죽음 직전까지 따뜻한 곳을 향해 전진했다는 사실은 순백의 눈송이보다 더 한결같아 숭고하기까지 하다. 냉혹하고도 무심한 현실인 듯 시종일관 아이들의 발걸음을 어렵게 했던 눈송이도 하얗게 침묵하며 순진무구한 희망의 끝에 예를 갖춘다.

 

시작은 강렬한 붉은 색과 함께 전쟁의 참상를 비춰내고 있다. 비명을 지르는 아이의 모습에서는 흡사 뭉크의 <절규>와 같은 공포가 느껴지기도 한다. 어디선가 부모 잃은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행렬은 점점 더 길어져 갔다. 여린 어깨엔 자기 짐보다 무거운 슬픔을 지고, 유일한 희망을 남쪽의 '따뜻한 나라'라고 부르면서, 아이들은 길도 지명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그렇게 하염없이 걷기만 했다. 그들은 가엽게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죽음의 사자는 이미 그 앞을 지났는데, 이것은 개나리의 꽃망울을 소멸시키는 눈송이에서, 그리고 펑, 펑이라는 포성과 같은 운율에서 슬며시 드러난다.

 

작은 개나리 나뭇가지 위에


하얀 눈만 내리어
노랑 꽃망울이 돋아나지 못하는 거랑 같았지.

 

 

 

 

마르크스의 사상에 심취했고 반나치주의였던 브레히트는 아이들의 공동체를 통해 그가 꿈꾸던 이상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모두가 대장을 믿고 따르고,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을 돌보며(강자가 약자를 돌보듯), 부유한 유태인이 가난한 식탁을 마다하지 않고, 나치가 유태인들에게 미안해하며, 나치나 유태인이나 폴란드인이나 공산당이나 함께 다독이며 서로를 보듬어주는, 하여 종국에는 2차대전의 전범자들이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이 이루어지는, 결코 실현될 수 없지만 꿈에나마 보고픈 모습들이 펼쳐진다. 다만 이 세계에서도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이뤄지지 못함은 미래에 어떤 기대도 걸 수없다는 브레히트의 극한 절망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대장이 길을 모른다는 것은 앞으로 선한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여곡절 끝에 총상을 입은 군인 아저씨가 갈 곳을 알려주지만 여전히 잔혹한 운명의 저주가 훼방을 놓는다. 잘못된 길이지만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아이들은 백지 위에 가벼운 터치로 묘사되고, 공허한 공간 속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며 앞으로 질주한다. 바로 이 장면에서, 앞서 아이들이 길을 떠나며 품었던 '언젠가는'이 떠올라 마음 한 구석을 아프게 찌른다. '언젠가는'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작 너무도 잔인한 미래였기에.


아이들은
정말로 언젠가는
따뜻하고 먹을거리도 많은
평화로운 마을로 가고 싶었어.

 

 

 

 

길을 떠날 때의 아이들 모습이 온데간데 없다. 이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은 그저 지치고, 배고프고, 슬프고, 두려운 '세상 모든 아이들의 얼굴'이 되었고, 세계대전의 아픔은 모든 전쟁의 아픔으로, 더 나아가 암담한 미래에 대한 절망으로 아른거린다. 이는 브레히트가 <다음에 태어나는 사람들>이라는 시(詩)에서 절규했던 한 구절, "정말로 내가 사는 시대는 어둡다! 도대체 어떤 시대인가, 지금은..."을 절실히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해질녘 붉게 물든 구름들 사이로
힘없이 쪼그라진 얼굴들이
어렴풋이 아른거려.
스페인 사람들 얼굴도,
프랑스 사람들 얼굴도,
그리고 동양 사람들 얼굴도!
그 서글픈 얼굴들이 다 내 눈엔 보여.

 

 

 

 

이제 아이들은 순진한 희망이 눈보라 속에 숨진 노란 개나리와 동행할 시간. 간절함과 간절함이 서로를 부비대는 삐뚤빼뚤한 손글씨 편지는 결국 그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아이들의 편지를 목에 매단 개는 먼 훗날 굶주려 숨진 채 발견되었다. 전쟁의 참상이 사랑을 거세해 버린 세상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최후였던 것이다. 브레히트의 <어린이 십자군>은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55명의 아이들을 통해 잔혹한 현실과 이상세계에 대한 좌절을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어둠의 시대를 묵묵히 견디려했던 아이들의 순진한 의지는 작가의 절망을 너머서며,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상실된 유토피아의 꿈을 잠시나마 바라볼 수 있었고,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그 꿈을 다시 이어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덧붙임 : <어린이 십자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다룬 시(詩)이므로 문학작품 답게 역자 후기와 해설, 각주까지 갖추고 있으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용어들로 풀이하고 있어 문학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뿐만아니라 해설에는 본문과 관련된 실화나 전설들이 곁들져 독서의 풍요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상기 이미지 중 마지막에 삽입된 개와 손글씨의 이미지 책 속의 두 컷을 재조합한 것으로 실제 도서의 이미지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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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직업의 역사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8
이승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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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통조림 공장에서 일했고 평생 깡통만 만졌어. 깡통 재질이 변하는 거나 뚜껑 여는 방식이 달라지는 걸 보면서 세상이 점점 살기 편해진다는 걸 느꼈지. 깡통 포장 디자인이 바뀌는 걸 보면서 사람들 취향이 변해가는 걸 알았어. 사람들 입맛이 달라지는 건 새로 통조림이 생기거나 양념 맛이 달라지는 걸로 실감했어. 말하자면 이 깡통으로 세상을 알아 간 셈이야.


편혜영의 단편집 『저녁의 구애』 中 <통조림 공장>, 221쪽


 

산업화와 기계화의 전반부에 태어나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가는 것을 들어보자면 통조림이 있다. 물론 통조림이 그 때 그 시절처럼 병문안이나 명절선물의 인기품목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통조림 공장에는 통조림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배웠다고 자부할 만큼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이 몇 명쯤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전화교환수, 변사, 기생, 전기수 등 9개의 직업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소설 속의 공장장과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비록 냉정한 역사가 이 직업들을 필요로 하지 않은 방향으로 발전해 갔고, 직업의 태생 자체도 제약이 많거나 평생을 일할 만큼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 힘겨운 직업들 역시 우리에게 들려 줄 세상사가 있다. 근대의 욕망으로 태어났으나 더 큰 욕망으로 힘없이 사라진 9개의 직업들은 일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사고방식, 그리고 경제적 메커니즘의 성장통을 밑바닥에서 고스란히 겪어왔기 때문이다.
 

기계와 인간 사이에서...전화수, 물장수, 인력거꾼
근대화에서 눈에 띄게 변화한 것은 '기계'의 출현이다. 기계는 많은 사람들의 직업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직업을 생산해 내기도 했고 혹은 직업의 형태를 진화시키기도 했다. 전화수의 경우 기계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직종이었다. 전화기는 처음부터 각 가정의 기계만으로 통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어서 중간에 연계자가 필요했는데, 송신자와 수신자를 연결해주는 기계 앞에 앉아 자신도 기계의 일부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이 바로 전화수들이다. 또한 이들은 피크타임에는 무려 210통화라는 반복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동시에 서비스직으로서 진상같은 고객들까지 감당해야 했던 감정노동의 시조격이기도 하다. 물장수는 힘만 좋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직업 같지만 의외로 까다로운 점이 많았다. 물이란 게 먹거리의 기본이고 보건위생과도 직결되는 부분이 많아 철저한 관리가 필요했고 물을 퍼다 팔 수 있는 급수권, 자리권의 문제를 비롯 독점과 같은 시장의 문제와도 직면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1908년 이후 근대식 수도가 개통되면서 물장수들은 한차례 큰 변화를 겪었는데,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어이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물밀매까지 성행했다. 그렇다면 인력거꾼이라고 평이한 직업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인력거꾼도 물장수처럼 힘 좋고 발 빠르면 그만이라 생각하겠지만 단발령에 항의하기도 하고 조합을 만들기도 하며 최하층민의 권리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뿐만 아니라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겠다고 3천명의 인력거꾼들이 단결한 가운데 박봉을 모아 자식들의 학교를 설립한 일화는 하층민들의 비장한 삶의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은 점점 더 기계화 되어갔다. 그리고 전화수는 통신 자동화의 속도에, 물장수는 거대한 수도 시스템의 흐름에, 인력거꾼은 희대의 발명품 자동차에게 생존의 수단을 빼앗겼다. 물론 현재는 고객센터 상담원이나 택시운전사 같이 이전 직업의 진화된 형태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직업들이 생겼지만 이들이 가난과 비인간화에 맞서가며 초석을 놓은 노동자의 권리 투쟁은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결실이었다.
 

강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기생, 유모, 여차장
근대화가 이뤄지면서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다. 물론 그 당시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그리 많지도 않았고 숫자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커다란 변동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들 중 기생은 사실 고려시대부터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주로 왕이나 고관대작을 상대했으므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매춘부와는 전혀 다른 격이다. 기생에는 여러 층이 있어서 최고의 기생 ‘예기(藝妓)’는 말 그대로 문화예술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이미 1927년, 전난홍이라는 기생이 '기생도 노동자'라는 주장을 했다고 하니 자부심마저 대단한 듯하다. 여성 직업인으로서 요구되는 자격은 유모에게 있어서도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유모를 두는 가정이 주로 부유층이었고 아이의 교육과도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여차장의 경우 그나마 자격조건이 크게 까다롭지 않은 편이어서(하지만 그 때에도 '어느 정도' 예뻐야 했음은 오늘날과 같다) 경쟁률이 대단했지만 교통사고와 소매치기의 위협, 더 심각하게는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이란 순수한 여권신장을 의미하지 않았다. 자본가들은 여성을 값싼 노동력이나 구색 맞추기의 일환으로 여겼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으로 여성이 진출하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았다. 뿐만 아니라 이전의 부유계층을 통해 주어진 자격들도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격하되어 갔다. 하지만 여성들에게도 꿈이 있었다. 비록 사회의 약자에 해당하는 위치에서 남성들로부터 부당하고 억울한 취급을 받았지만 경제권이라는 비밀의 열쇠를 향해 묵묵하게 인고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여권신장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낮은 곳으로부터 솟는 활력...변사, 전기수, 약장수
유럽을 거닐다 보면 길거리 예술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마술쇼, 때론 춤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근대 풍경 속에서 이와 유사한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 풍경의 주인공들이 바로 전기수와 약장수이다. 전기수는 한 마디로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다. 해외의 경우 전기수는 노동자들의 위안이 되기도 했으며, 우리나라는 담배가게, 약국, 주막 등을 무대로 낭독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한 때는 이동 도서관의 역할도 했으며 전기수들 여럿이서 무리를 지어다니는 기업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약장수들은 악기연주나 서커스로 호객행위를 하며 팍팍했던 시절 일상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엔터테이너 역할을 (본의 아니게) 했다. 그러나 의약품 또한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이들의 호객행위 보다는 불법 매약행위가 더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의료기관과 약품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 가난한 사람들에게 반가운 이동약국이 되어주기 보다는 짝퉁 약품으로 그들을 등쳐먹던(?) 약장수. 그들의 약을 사먹느니 차라리 호객행위만 바라보는 것이 건강에 더 도움이 될 듯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무성영화에서 대사를 읊어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변사는 마치 오늘날 영화스타에 준할 정도로 인기있는 연예인이었다. 또한 변사의 전성시대에는 각 변사마다 전문적으로 맡아 하는 영화의 장르도 분화되어 있었고, 극장들은 변사 모시기에 열을 올릴 만큼 대단한 위치였다. 하지만 영화산업이 발달하면서 그들의 연기나 막간 엔터테인먼트는 삼류 취급을 받기 시작했으며 영화를 즐기는 지식인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변사의 비중은 영화산업의 발달 가운데 변화를 겪었으며 유성영화, 칼라영화, 3D, 4D로 진화하는 가운데 어느덧 우리 기억에서 잊혀졌다.
 
비록 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묘기요, 음악이었겠지만 이들로 인해 거리가 활력에 넘쳤음에는 틀림이 없다. 지나치다 곁다리로 듣는 음악, 그러다가 둘러보는 짝퉁 물건들, 이것이 거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던가! 변사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마니아인 지식들이 보기엔 이류, 삼류에 해당하지만 자신의 직업적 본분을 다하기 위해 열정적인 막간연기를 펼치고 사랑과 박수를 얻어내는 모습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흥겨움에 대한 욕망을 충분히 충족시킨다. 이들이 아니었더라면 가난하고 무료하고 지친 삶에 위안이 되어줄 것이 또 무엇이 있었을까!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근대의 문화와 일상을 대표하는 직업들을 통해 시대상과 사람들의 의식, 경제 메커니즘을 통찰하려 했다.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직업들에 관련된 법률, 노동에 대한 관념, 언론으로부터의 시선, 부작용과 돌발적인 에피소드들을 볼 수 있어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관련된 영화와 문학, 사료 등을 통해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갔으며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는 기사들을 제시해 마치 그 날의 신문을 읽는 것처럼 과거의 시간에 푹 빠져들었다. 비록 근대의 수많은 직업들 중에서 거대한 경제의 흐름을 다스리는 선망직업도 아니요, 오직 생활고에 시달리는 하층민들의 9가지 직업이었지만 그 직업에 종사했던 이들의 애환과 치열한 삶, 그리고 그들이 비춰내는 일상을 통해 역사책에 등장하지 않는 이면의 세계를 엿볼 수 있어 유익했다. 역사란, 작은 것들을 밀어낼 수 있지만 삶이란, 그 어떤 큰 것이라도 담아내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사라진 직업들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무척 의미있는 일이다. 요즘처럼 평생직장의 개념이 흔들리고 이전에 없이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시점에서, 직업들의 탄생이 빈번해지고 또 죽음과 변화마저 빈번해지는 상황에서, 직업이란 무엇인지, 거대한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진지하게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이후로 나와 직업을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이 만연했었다. 물론 이것은 성공지향적인 사회풍조 때문에 더 왜곡되어 두드려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직업이 없거나 내 직업이 사라질 경우 내 존재의 의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한편으론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라진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삶이 답해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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