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백가기행 조용헌의 백가기행 1
조용헌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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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한다면 나는 집에서 보낸 시간보다 집을 지으며 보낸 시간이 더 길었다. 어떤 집을 만들까 고민하고 실용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갈등하며, 모형 만들기에 스케치, 도면작업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쏟아부은 밤이 곧 집을 보듬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 모든 작업의 관심사는 독창성에 쏠려있었고, 실무에서의 수익성과 저울질해가며 어느덧 참다운 집의 의미를 구하는 일에서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집’하면 부동산을 떠올리고 집이 부(富)의 상징이 된 것을 한탄할 때, 집에 부(富)를 더해 예(藝)까지 입히는 나의 경우 그 한탄도 두배로 늘어났다.
 
바로 이런 현실에서 <조용헌의 백가기행>은 ’집 안에서 구원을 얻으라’는 ’가내구원’의 가르침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건축가들의 고민과 담론에서 벗어나 동양철학자에게 색다른 답을 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더욱이 그가 소개한 집들은 그동안 돌아보지 않았던 한옥이기에 왠지 옛 선현의 지혜가 발견될 것 같아 더욱 마음이 갔다.
 
작은 오두막부터 거부의 명가까지 모두 22채의 집을 순례하는 사색의 시간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맑음’이다. 저자 조용헌이 찬찬히 들려주는 집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지만 집주인들이 가지고 있는 집에 대한 가치관과 애정, 그리고 안목이 어찌나 올곧고 섬세한지 그동안 흐려졌던 집에 대한 의미들이 하나 둘씩 선명하게 살아나는 것 같다. 뿐만아니라 "한 집을 20년동안 살펴보며 한옥 보는 안목을 틔웠다"는 저자나 "사람이 자식도 만드는데 어찌 집 하나 못 짓겠소"라던 방외한옥 송일근씨의 말은 맑은 공기를 가로지르며 들려오는 풍경소리처럼 청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는 집짓는 사람으로서 되새겨야 할 교훈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조용헌의 백가기행>에는 집에 대한 가치관을 되돌아보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성찰적 요소들이 가득 담겨있으며, 공간과 사람, 땅과 볕과 바람이 어우러져 현대인들이 잊고 있던 평온의 정취를 회복시켜주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아름다운 집들 중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단연 저자가 감탄하며 꼽았던 장성 축령산 도공의 집이다. 단지 2만 8천원으로 손수 집을 지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인간과 자연을 살펴 그 규모에 담은 철학이 예사롭지 않다. 집주인은 산중의 넓디 넓은 터에 자신이 기거할 딱 그만큼만 차지하고 더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집이 작으면 작을수록 더 넓은 자연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내어주고도 얻는 지혜...이러한 마음을 도시의 집에서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또한 이 작은 집에 나있는 작고도 나즈막한 창(窓) 역시 눈여겨볼만 하다. 집주인이 도공인지라 자신이 아끼는 도자기에게 각별한 사랑을 표현한 창문 같기도 하고, 앉은 자세에서 빛을 받는데 가장 적합한 위치를 선택한듯도 한데,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만든 모양새가 자연스럽고도 이색적이다.
 

 

 
축령산 도공의 집은 충격에 의한 충격이었지만 담담하고 소박한 진주 석가헌은 평범한 가운데 깃든 기품이 있어 다시 돌아보게 된다. 첫눈에는 이 집의 아름다움을 쉽게 알아볼 수 없지만 내부로 흘러드는 은은한 볕과 차(茶)를 즐길 수 있는 공간에서 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밥처럼 질리지 않으면서도 따뜻하게 품어주는 맛에 이 집에는 항상 차를 즐기는 손님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좋은 집이란 역시 사람을 불러모으는 재주가 있나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진주 효주 허만정 고택은 위풍당당하면서도 전통적인 멋이 있다. 이 집은 돈이 모이는 풍수명당에 지어져 대대손손 부유했으며 동시에 의부(義富)집안으로 알려졌는데, 독립운동, 신분해방 운동, 장학금 등에 자신의 재산을 아끼지 않아 오늘날 집으로 부를 과시하는이들에게 진정한 부의 의미를 일깨운다.
 

  


이 책에는 전통 한옥뿐만 아니라 건축이나 실내디자인에 현대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집들도 다수 소개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땅 집’이라 불리는 건축가 조병수의 집인데, 이름처럼 땅을 파 집을 앉히고 어머니의 품에 안기듯 대지의 품에 안겨 산다. 내면으로 침잠하여 가내구원에 이르는 이 집은 고요함의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평선 아래에 거하면서도 햇살로 충만하고, 하늘이 땅인듯 땅이 하늘인 듯한 풍경을 누리는 것은 오히려 강한 시적 감동으로 다가온다.




집을 짓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서구 근대건축의 정신을 지상명령으로 강요받는다. 대량생산 가능성, 효율적인 공간계획, 간편한 시공...이에 따라 모든 것이 획일적으로 계획되는 가운데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 마저 생기없고 단조롭게 변해가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가 말하는 가내구원은 현대인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소중한 우리의 개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은 값비싼 저택에서만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천편일률적으로 솟아나 있는 아파트라해서 이루지 못할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대대손손 명가든 소박한 한옥이든 인간에게 안식이 되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공간은 어디서나 가능한 것이다.
 
<조용헌의 백가기행>을 통해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의 더 큰 혜안을 엿보며 집에 대한 애정과 철학을 새롭게 정비했다. 더불어 잘 알지 못했던 한옥의 깊은 멋과 자연을 공간에 어우러지게 하는 독특한 안목들도 인상깊게 눈여겨 보았다. 이젠 그들이 가르쳐 준 교훈을 바탕으로 집에서 부(富)와 예(藝)를 벗겨내고 사람살이로 가득 채우려 한다. 부(富)와 예(藝)를 입힌 집에는 항상 사람살이가 깃드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살이로 가득 찬 집에서는 부(富)와 예(藝)가 절로 우러나옴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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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2-08-31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헌. 이라서 전통적인 옛 한옥만 나오나 싶어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관심이 가네요.

탄하 2012-08-31 23:36   좋아요 0 | URL
전통적인 한옥도 있지만 한옥 내부를 현실에 맞게 레노베이션한 것들도 있고,
한옥의 정취를 살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들도 있고, 다양한 집들이 있답니다.
운치있는 실내공간을 좋아하신다면 맘에 드실거예요.^^
 
유랑극단 사계절 1318 문고 77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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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시간은 소멸과 함께 생성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무한대의 시간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 반대인 시간의 부재(不在)가 이에 더 적합한 설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생은 무한대로 이어진 시간의 어느 시점에 삽입돼 일정구간을 점유하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소멸(죽음)로 출발하는 탄생을 통해 부재 상태였던 시간을 생성시키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분량을 사용하다 떠나는 것이다. 다만 시간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고 생각하게 되는 까닭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생명을 이어왔기 때문이며 낮과 밤을 기준으로 일정하게 나뉘어진 시간체계가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의 존재는 생명의 살아감으로 가능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소멸해간다는 것의 동어반복이다. 과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철학자들이 말하는 시간이란 이러하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정 분량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 끝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대체적으로 스스로 정지시키지 않고 잘 진행시키려 애쓰며 주어진 시간을 감당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시간이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고 해서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도 같을 내일을 연명하며 일상적인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을 살아가고, 누군가는 삶의 중대한 의미를 만나 획기적으로 변화하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매 순간 마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연령 80세의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가 될만한 사건을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다면 그는 시간의 부재(不在)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무생물이나 매한가지다.

 

여기 하네스라는 남자가 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주어진 형량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을, 갑갑하고 지루한 감옥에서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도 무미건조한 감옥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탈옥을 시도해 보지만 번번이 붙잡혀 다시 감옥으로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네스의 사정을 듣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이 든다. 비록 담장 밖에 살고 있지만 크로노스의 시간을 감당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네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형량을 받고 감옥에 던져진 하네스처럼 우리도 인생의 분량을 선고 받고 이 세상에 던져진 가련한 존재들이다. 신체의 자유라는 점에서는 죄수들보다 조금 나은 면이 있겠지만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것에서는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날이 그날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책 속에서 유랑극단이 공연했던 연극의 제목을 빌자면 하나는 자유분방한 판타지가 펼쳐진 <미로>에 빠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냉혹한 기다림이 가득한 <고도를 기다리며>에 동참하는 것이다. 하네스와 탈옥수 일행이 첫 번째 방법을 택했을 때 그들은 호수에서 서로 뒤엉겨 물놀이를 하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고, 합창단으로 대중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며, 그뤼나우라는 한 도시의 예술과 문화를 부흥시켜 감옥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명예로운 찬사까지 받기도 했다. 하지만 판타지 세계의 쾌감과 아름다움은 진실을 만남과 동시에 붕괴된다. 이것이 허무한 판타지 세계의 법칙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을 외면하게 하는 치명적인 이유다. 탈옥여행이 승승장구함에 따라 '사람은 자기 능력대로 사는 법'이라며 우쭐해 하던 하네스도 어쩌면 죄수에 불과한 비루한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일종의 주문을 외운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을 외면하고 판타지의 일탈을 추구하는 것은 삶의 무게를 잊을 수 있는 매우 단순한 방법이지만 한편으론 마음의 방어기제가 만들어 놓은 미로에 빠져 영영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는 위험한 방법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하네스가 두 번째 방법을 택했을 때 그는 앙상한 나무 아래 서 있었고, 늘 '교수양반'이라는 부르던 감방 동료 클라멘스를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함께'와 '견딘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해졌다. 드디어 그가 감옥이라는 견고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난 당신을 혼자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소, 클라멘스."(p.127)


"여러 번 생각했소. 견딘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견뎌 내야 해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자신에게 닥치는 것, 사람들이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견뎌야 해요. 가끔은 타인도 견뎌 내야 하는 법이죠. 그런 점에서 당신은 함께 지내기가 한결 쉬웠소. 모든 면에서."(p.127)

 
온통 탈옥에 대한 생각으로 현실을 외면했던 하네스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견딤의 미학을 깨달았다는 것은 그가 카이로스의 시간을 경험했음을 의미한다. 겉으로 보기엔 여전히 비루하고 보잘것 없는 죄수에 불과하지만 그의 내면은 갈등을 겪는 사이 건장하게 성장한 한 남자로 변한 것이다. 한때 환상과 허무 사이에서 방황했던 나약한 내면은 이제 용기로 바닥을 다져 참다운 자아가 자리를 잡았으며 친구에 대한 우정과 신뢰까지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감옥에서의 자기 자리를 지키는 하네스의 손에는 클레멘스의 저서, 『슈투름 운트 드랑』이 들려있다. 클레멘스에게 있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있을까! 클레멘스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하네스의 제스쳐가 무척이나 갸륵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처럼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수많은 고통과 번민이 따르는 힘겨운 방법이지만 일단 현실 세계의 맨얼굴을 대면하고 나면 견딤의 미학이 조력해주고 친구까지 생기는 안전한 방법이기도 하다.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첫번째 방법을 택했다면 유랑극단 가수처럼 <안녕, 너무 오래 떠나 있지는 마!>라는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유랑극단>을 덮고 나니 눈 앞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떠오른다.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세트였던 볼품없고 앙상한 가짜 나무이다. 이 나무는 하네스가 몰래 자신의 감방으로 가져오면서부터 정체되어 있던 그의 시간을 조금씩 조금씩 흐르게 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일탈과 자살의 충동을 뛰어넘어 견딤이 있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해 주었다. 만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비참하게 느껴진다면 마음 속에 나무 한 그루를 심어보도록 하자. 나무는 하네스의 나무처럼 목공품에 앙상한 모습이어도 좋다. 그저 꼿꼿한 자세로 땅을 딛고 서서 온전히 감당하는 자의 의지를 표상할 수만 있다면 그 하나로 충분하다. 그러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며 당신을 새로운 삶으로 초청할 것이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서로 보듬고 의지할 수 있는 당신의 클레멘스와 함께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유랑극단>이 제안하는 살아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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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있고 또 없다

 

 

 

 

 

 

 

 


초원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이 여행에서
문득 이 시구(詩句)를 떠올린 까닭은 무엇일까?

 

 

 

 

 

 

 

 

 

 

 

 

 

여행의 시작. 실크로드란 푸른 초원이 펼쳐진 낭만의 길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탄탄한 대로와 표지판을 맨 먼저 만나는 순간 갑자기 세월이 무상해졌다. 한반도로 이어진 초원로의 어귀라는 션양. 그곳으로 가는 길은 역사의 발걸음들을 기억해주지 않는 것일까?

 

- 랴오허 대교

 

 

 

 

 

 

 

 

 

션양을 지나 '세계 4대 문명'을 저만치 앞질렀다는 '훙산문화'로 향한 길도 마찬가지였다.훙산문화의 심장 츠펑으로 들어서는 톨게이트며, 츠펑시 입구의 길이며, 어느 것 하나 실크로드를 떠올리게 하는 흔적을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 청난 톨게이트

 

 

 

 

 

도대체 나는 무엇을 바랬던 것일까? 실크로드가 가로지르던 그곳이 현대화되지 않고 남아있길 기대했을까? 아니, 사실 무언가를 바랬다기 보다는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그들이 사라졌음이,하여 길이 그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서구중심으로 재편되었음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만일 이 길을 개척해 걸어왔던 이들이 지금까지 이 길을 지키고 있었다면 오늘날의 풍경은 사뭇 다르지 않았을까..

- 츠펑시 입구

 

 

나의 불만과는 상관없이 기필코 '초양노옥(草洋撈玉, 풀바다에서 문명의 옥석을 가려 주옥을 건져내다)'하겠다는 정수일 선생 일행은 훙산에서 칭기즈칸이 묻힌 곳을 지나 대흥안령 정상의 흙먼지길을 쉬지않고 달려간다. 정성이 이러할진대 관광객의 일원으로라도 그 땅을 밟아보지 못한 내가 무슨 할말이 있으랴. 그저 그들 일행이 찾아내는 고대 역사의 흔적과 교과서 밖의 이야기들에 얌전히 감탄할 수 밖에. 하지만 대흥안령부터는 흔히 볼 수 없는 유목민의 삶과 너른 벌판이 간간이 비춰진다. 그리고 순수하고 유서깊은 풍경들은 몽골초원로에 다가갈수록 더욱 깊어진다.

 

- 대흥안령 정상


 

 

대흥안령에서 몽골로 이어지는 어진 풍경 중 유독 눈에 띄는 거리들이 있었다. 하나는 우리야쓰타이 거리이고, 다른 하나는 시린하오터 거리이다. 우리야쓰타이 거리의 경우 고구려 서경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인데 사진은 아마도 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곳의 풍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쨋든, 내가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바로 사진 오른쪽의 서양식 건물들이다. 오래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면 훨씬 고풍스럽고 풍부한 건축적 디테일로 장식되어 있었겠지만 이 건물들은 심플하면서도 서양건축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조금은 유럽스런 어색한 풍경. 이런 건축요소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 우리야쓰타이 거리

 

 

 

 

 

 

 

시린하오터 거리는 중세 유럽풍의 가로등(이것 역시 현대화된 형태)에 루미나리에까지 갖추고 있다. 사실 러시아 건축에 대해서는 잘 몰라 이것이 러시아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유독 이곳에서 유럽적인 거리 풍경이 두 컷이나 잡혔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곳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싶다.

 

- 시린하오터 거리

 

 

 

아! 고대의 마역로로 추정되는, 그러나 이젠 207번 국도가 되어버린 이 길. 마역로는 북방 기마문화의 남북통로로 실크로드의 일익을 담당해왔던 길이며 베이징으로 이어진다. 초원 실크로드는 동서축을 따라 이어져 있지만 단순히 동서만으로 난 길이 아니라 남북으로 가지를 뻗기도 했는데 마역로가 바로 이런 길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길도 역시 여느 아시아국가의 평범한 도로와 별반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에서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207번 국도라니...마역로일지도 모를 이 길에 아스팔트를 깔고 번호를 붙이면서 마음이 편했을까?

 

- 마역로(207번 국도)

 

 

 

 

 

 

 

 

 

그래도 안타까움은 마역로가 끝이었던 것 같다. 여행이 깊어갈수록 아직 현대문명의 획일화에 물들지 않은, 앞으로의 여지가 더 남아있는 길과 영역들이 종종 눈에 띈다.

 

- 차오자잉쯔 마을 흙길

 

 

 

 

 

 

 

 

 

 

 

 

그리고 때론 초원로의 샛길이 아직 저렇게 남아있다는 것에 흥분되기도 했다.

 

 

- 대흥안령 무수꺼우의 초원로 샛길

 

 

 

 

 

 

 

 

 

 

 

이젠 칭기스칸의 서정로(서쪽정벌의 루트)를 살피고 사막으로 향하는 길. 물이 귀한 곳이라 원 없이 물을 보고 가라고 강이 인사하는 것 같다.

 

- 남타미르강 계곡 돌길

 

드디어 고비사막. 황량하고 너른 공간을 달리는 긴긴 시간동안 일행은 가끔씩 하차해 기지개를 편다. 펼쳐지는 것은 팍팍한 풍경뿐일 텐데 저리 강행군을 했으니 무척 피로했겠다 싶다. 하지만 이후에 만나는 것은 진귀한 보물과 다를 바 없는 암각화와 고분, 얼음공주, 그리고 우리나라와의 옛 우정(?)이 담긴 증거들이니 상기된 마음에 피로할 여유도 없을 듯하다. 고비사막 이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의외로 흉노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물론 기원전 인물인 얼음공주의 살갗에 새겨진 문신을 바라보는 것도 충격이긴 했지만 장장 600~700년 간이나 유럽 고대사를 바꿔놓을 만큼 활발한 활동을 했다는 흉노족의 역사는 내게 있어 무척 새롭고 놀라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 고비사막


 

 

 

 

 

 

 

 

 

 

거리의 풍경이 바뀐다. 그저 도로와 차들인데 180도 바뀌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색다른 풍경이다. 이곳은 블라지보스또끄(블라디보스톡). 초원 실크로드는 아시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베리아까지 이어져있다.

 

- 블라지보스또끄 거리

 

 

 

 

 


그리고 시베리아 초원로는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달린다. 이곳은 우리나라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스키타이족의 동물의장은 시베리아를 거쳐 중국으로, 그리고 다시 한반도로 전해져 왔고, 한때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나라 역사의 일부가 이곳에 묻혀있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냉전시대만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러시아와 훨씬 더 가까이 지내며 교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고는 하지만.

 

- 시베리아 철도

 

 


 

 

다시,
여행의 끝에서...


길은 있고 또 없다
를 되뇌어 본다.

 


흔적으로서의 초원로는 있었으나 역사로서의 초원로는 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점에서 이 길을 있도록 한다는 것은 다시 길을 따라 교역을 하고 그 길이 번성함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길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길이 간직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 바로 저자가 꿈꾸는 일이며 이번 답사의 화두인 '초양노옥'이 대변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밖에 몇가지 것들

 

#1. 저자 정수일은 중국 연변에서 출생했다. 한국사람인데 그곳에서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본래 그곳 출신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어지는 경력 또한 특이하다.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평양 국제관계대학, 평양 외국어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는 점이고, 카이로, 모로코, 말레이 등에서도 활동했으며 이슬람에 대한 학식도 풍부하다. 마치 실크로드를 연구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중국과 북방과 이슬람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어쩌면 출생을 제외하고는 본인의 계획과 의지에 의한 것일지도..). 뿐만아니라 중세의 대탐험가인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세계에서 두번째로, 그것도 옥중에서 완역해 내기도 했다(참고로 <이븐 바투타의 오디세이>는 정수일 역은 아니지만 해설서에 준하는 도우미가 될 듯하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고, 올곧은 신념이다. 선생은 이전에 출간된 <실크로드 문명기행>(오아시스로 편)을 비롯 앞으로 바닷길까지 총 3권으로 실크로드를 완결한다고 하시는데, 이 시리즈의 완성이 기대된다.

 

 

 

 

 

 

 

 

 

 

 

 

 

 

 

 

#2.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숨겨진 선물의 발견!
사실 이 책은 지도없이 볼 수 없는 책이므로 3부로 나뉜 각 장 앞에는 그 지역의 지도와 지명, 이동경로가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지도를 따로 떼어 놓고 나면 세계지리에 밝지 않는 이상 그 부분이 어디즈음인지 큰 그림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 땐 책날개를 살짝 펴고 그 밑에 숨어있는 전도를 찾아보면 된다. 어쩜, 이렇게 숨겨놓았는지 정수일 선생의 약력을 읽다가 우연히 책날개가 젖혀지지 않았다면 감쪽같이 모를 뻔 했다.

 

 

 

#3. 이 글은 <초원 실크로드>에서 길이 나오는 부분만 발췌하여 사진을 찍고 글을 쓴 것이다. 책 속에는 그 지역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으로 분분한 이야기들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추후에 다시 한번 모아 글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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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7-27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날개 밑에 있는 지도 발견했지요!^^
세심함이 느껴지는 편집이랄까 그랬어요.
그나저나 분홍신님의 퍼스나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작게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정말 대단한!!!

탄하 2012-07-27 22:59   좋아요 0 | URL
앗! 이 책을 알고 계시군요.
정말 대단한 답사기임에도 많이 주목받지 못해 아쉬웠는데 독자가 또 계셨네요.
지도는 정말 감쪽같죠? 책을 꼼꼼히 살피시나봐요. 이거 발견하기 힘든데...

음, 퍼스나콘의 주인공은 아쉽지만 누군지 잘 몰라요.
사실 무용수가 유명해서 간직한 사진이 아니라 어느 사진작가의 웹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몇 장 건진 것 중 하나거든요. 그나마 거의 10년전엔 그 사진작가의 웹사이트를 즐찾해 놨었는데
컴터 몇 번 포맷하고 하면서 삭제해 버렸어요. 저도 그걸 후회하고 있답니다.ㅠ.ㅠ
 

 

 

아, 얄미운 반값도서의 법칙.
맘먹고 찾아보면 살 것 없고
책 안 사야겠다 싶으면 눈에 콕 찝힌다.

 

 

 

<축의 시대> 역시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반값도서. 지난 6월 29일, 월말까지 설마 또 책을 사랴 안심하고 있었더니만 우연히 '이달만 반값'을 클릭하는 바람에 즉시 사버렸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알라딘 13주년을 맞아 7월 내내 반값도서로 등극...ㅠ.ㅠ 사실 카렌 암스트롱의 저서는 진작부터 <신을 위한 변론>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하지만 과학vs종교 논쟁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 보류하고 있다가 <축의 시대>를 발견, 이 책이 오히려 주저서라고 할만큼 탄탄한 내용을 갖추고 있어 사려고 별렀었다. <축의 시대>는 동서양의 고대종교가 집약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방대하고도 대단한 책이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7년이나 수녀였다가 무신론자가된 종교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이다. 나는 단순한 무신론자나 유신론자의 책보다는 이렇게 변화를 겪은 이들의 책을 더 선호하는 편인데, 양편에 대한 경험과 이해를 모두 갖췄다는 면에서 균형잡힌 시각을 기대할 수 있고 양편의 합리성과 비합리성에 대해 심도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축의 시대>가 유신론대 무신론에 관한 내용은 아니지만 저자의 독특한 이력은 책 속에 내재하리라 생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종교와 철학의 접점에서 인류의 사유혁명이 진행되었던 과정을 지켜볼 수있을 것이기에 기대된다.

 

 

 

반값도서의 맛을 짭짤하게 보고 나니 <내면기행>이라는 책도 반값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물론 읽고 싶은 책들이 모두 반값이라면 좋겠지만 실현될 리는 만무하고, (나 홀로지만) 소박하게 이 한 권에 가능성을 걸어본다. <내면기행>은 우리나라 선인들의 '자찬묘비명'을 고증해 총망라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책인데, 제목은 전혀 다르지만 한 쌍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좋았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는 왕이나 선비뿐만 아니라 중인, 예술가, 승려 등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자서전(문학양식도 제각기다)을 엿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위인전과는 또 다른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게다가 이들의 대부분은 '위인'도 아니다) 것이 장점이었다. 묘비명과 자서전...이 콤비라면 삶을 돌아보기에 충분한 자극제가 되어주지 않을까?

 

 

 

 

 

6월에 샀던 책들을 잠시 살펴보니 특이하게도 과학분야의 책이 3권이나 된다.

뒤늦게 혼자만 과학의 달을 맞이한 듯.^^;


<기하학과 상상력>은 중고샵에서 건진 월척이다. 세상에나 고마워라, 누가 이런 책을 중고샵에 팔았을까? 기하학에 관한 책은 정말 드문 편인데 여기에 '상상력'까지 보태졌으니 정말 홀깃하다. 여기서 상상력이란 도형의 상징성을 떠올리고 확장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각적 상상의 도움을 받아 개념과 계산에 얽매이지 않고도 연구를 위한 기하학적 윤곽을 집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이상, 작은 따옴표 부분은 책의 내용을 축약한 것). 물론 책 속에는 수학공식들이 도처에 등장하지만 이것은 계산 없이 상상력으로만 해석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니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하지만 새삼 수학의 정석을 복습할 필요는 없을 듯.

 

 

<현대물리학, 시간과 우주의 비밀에 답하다>는 현대물리학의 난제 중 하나인 '시간의 화살'을 다룬다고 하여 잠시 의아했다. 사실 이 용어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을 통해 접하게 된지라 지질학 분야의 개념인 줄 알았는데, 내가 번지수를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쨋든,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인데다 빅뱅이 우주의 시작은 아니라는 주장, 그리고 상대성이론, 입자물리학, 다양한 현대우주론 등 융합과학의 향연이라는 면에서 분명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우주의 풍경>은 끈 이론 창시자의 한 사람이라는 레너드 서스킨드의 저서이다. 끈이론과 메가버스라는 개념으로 우주의 생명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하는데, 이 이론이 등장하던 무렵부터 과학에 관한 새 정보를 제대로 업데이트하지 못한 까닭에 작심하고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들었다. 게다가 <우주의 풍경>을 구입한 직후 힉스입자(일명 신의 입자라고도 하는)를 발견했다는 기사가 뜬 것을 읽고 나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을 빨리 쫓아가야겠다는 조바심(?)마저 든다.

 

 

6월의 충격탓일까? 그래도 7월에는 <신의 뇌>, <미적분 다이어리>와 같은 과학/수학분야의 책들을 읽었다. 물론 우주, 물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그동안 읽은 책들과는 전혀 다른 분야라 신선했다(비록 아쉬운 점도 있지만...). 먼저 <신의 뇌>는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였다. '신의 뇌'라고 하기에 신의 말을 듣고 영적인 체험을 가능케하는 뇌의 부분을 다루는 줄 알았더니 심리학과 진화론에 관한 내용이 태반이고 뇌와 호르몬에 관한 부분만 조금 '과학적'으로 들린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뇌과학의 중요 연구결과를 정리하면 100페이지도 채 안된다는 사실..@.@ 아직 한참 미개척분야가 아닌가 싶었고, 종교에서 말하는 '영(靈)'이란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까지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은 영장류인 침팬지를 통한 관찰과 임상실험을 위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고, 내가 기대했던 것과 가장 유사한 정보는 '신의 뇌'라는 것이 세로토닌과 관련돼 있다는 정도였다. 아무래도 인간의 뇌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한다는 것엔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인 듯하다. <미적분 다이어리>는 정말 읽으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의 재치와 유머가 어찌나 대단하던지 이런 내용을 직접 강의로 듣는다면 웃다가 꼬꾸라질 것 같다. 머리아픈 공식이나 계산같은 것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그림을 통해 간결하고 쉽게 '그 어마어마한 미적분'을 잘 설명해 준다. 미적분을 가지고 일상에서 뭘할까, 싶겠지만 이 책을 열어보면 도로주행, 카지노, 다이어트 등 다양한 측면에 활용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저자의 입담이 너무 좋은 탓에 전체 페이지의 1/3은 수다에 할애되고 있음이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미적분과 관련된 학자들의 생애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쉽게 읽히며 재미있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핵심에 도달하기까지 좀 산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쨋든 골치아프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

 

 

 

 

 

 

 

 

 

 

 

 

 

 

 

 

이밖에도 7월엔 심리학에 관한 책 2권, 교양심리학과 자기계발을 모두 포괄하는 책 2권을, 매우, 빠르게, 단숨에 읽어버렸다. 먼저 심리학 분야는 <내가 말하는 진심, 내가 모르는 본심>과 <나는 왜 상처받는 관계만 되풀이하는가>. 심리학에 관한 책은 3년전에 꽤 많이 읽어서 작년 이맘때 쯤 <마음 작동법>(심리학의 한 획을 그은 대단한 책이라더라..)을 끝으로 그만 읽어야겠다 싶었는데, 새록새록 등장하는 심리학 책들을 보니 요즘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괜스레 궁금해졌다. 이 중 <내가 말하는...>은 방어기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이 책은 자신이 어떤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것을 바람직하게 다룬(방어막을 제거한) 사례와 함께 읽어가며 자신을 비춰보게 한다. 이렇게 질문(혹은 체크리스트)과 사례를 병행하며 스스로를 확인해 볼 수 있게 하는 방식은 요즘 대중적인 심리학 도서의 경향인 것 같은데, 실상 이것이 얼마나 유용할지는 의문이다. 심리상담사도 오랫동안 교육을 받고, 실습을 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심리상담을 받아 어느정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만 타인을 왜곡없이 볼 수 있다고 한다(그래서 어떤 학교의 경우 심리상담 '받기'가 필수코스 중 하나다). 물론 자기 자신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전적으로 자가진단이 옳다면 심리상담소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므로, 너무 자가진단 테스트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음으로 <나는 왜 상처받는...>는 보다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의 예이다. 일상에서 관계가 껄끄럽다든지, 성격이 모났다든지 하는 문제와는 좀 다르다. 예를들어 어릴 적 성폭력을 당해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경우,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어머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년 남자 등 어느정도 '심각한' 관계상에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다룬다. 대체적으로 B형 트라우마(여기서 B는 Brutal의 약자였던 것으로 기억...가물가물한 기억...ㅠ.ㅠ)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일반적인 대인관계를 예상하고 읽는다면 조금 실망할 듯하다.

 

별로 기대 안하고 읽었는데 의외로 좋았던 책은 <왜 나는 항상 결심만 할까>였다. 자기계발서란 속된 말로 '영양가 없는 책'이라는 취급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 책은 심리학, 생리학, 뇌과학, 진화론의 관점에서 상세하게 '의지력'의 실체를 더듬어 가며 말 그대로 '의지력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째서 충동적으로 쇼핑을 하는지, 그 때 뇌에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결국 무엇과 닮았는지 알게된다(무엇과 닮았을까? 만족감을 얻기 위해 발이 상처입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전기충격 버튼을 눌러대는 쥐와 닮았다). 뿐만아니라 의지력의 수준이 높은 생활을 유지하게 되면 그것이 다른 부분에서의 의지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과 '식욕'에 관한 의지력 만큼은 다른 의지력과 상당히 다르다는 다소 안심스러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사실 '자기절제와 인내심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지력의 재발견>보다는 <왜 나는 항상...>에 더 어울릴 것 같다. <의지력의 재발견>의 경우 보다 풍부한 과학적 실험과 연구결과들을 보여주는데, 너무 심도있게 파고 들어가다 보니 솔루션부분이 좀 약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두 책 모두 자기계발서라기 보다는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가 종횡무진하는 인문교양서에 더 가깝게 느껴졌고, 내용도 거의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기대하고 있는 책은 <일반의지 2.0>과 <대목장 신응수의 목조건축 기법>이다. 의지력에 관한 책을 읽고 책 사기를 덜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이 중 <대목장 신응수의 목조건축 기법>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당장 사지 않고 올해 안에 사자고, 충동을 뒤로 미루는 수법을 잘 활용하고 있을 뿐.^^

 

 

 

 

 


<일반의지 2.0>은 또다시 의지력에 대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으로 유명한 아즈마 히로키의 정치사상서로 '소통없는 민주주의'에 대해 논한다. 헉, '소통'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이것을 없애다니...일단 책을 쓴 의도부터 독특했다. 그런데 '데이터베이스'가 등장하는 것을 보니 정보화 시대의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될 듯하다. 책 소개에 목차가 전혀 없어 답답하지만 '정보환경에 새겨진 행위와 욕망의 집적, 사람들의 집합적 무의식=일반의지에 충실해야만 할 것이다'만 봐도 이를 통해 어떻게 민주주의를 펼치자는 것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대목장 신응수의 목조건축 기법>은 책을 본 순간 감탄부터 했다. 이전에도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이나 <한옥 짓는 법>을 보면서 한국건축이 선전하는 모습에 무척 반가웠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이신 신응수옹께서 이런 책을 내셨다는 자체가 기적같이만 느껴졌다. 이 책은 그가 '수원 화성, 창덕궁, 경복궁, 숭례문 등 중요한 문화유산을 복원.보수하면서 연구하고 배운 옛 장인들의 기법과 50여 년의 목수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개발한 건축술을 총망라한 책'이라는 설명인데, 축조과정까지 잘 정리된 사진으로 실려있어 마냥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2주 전부터 쓰기 시작했던 페이퍼를 미적거리는 동안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되어 지금 급! 읽고 싶은 책으로 떠올랐다.
대선후보로서의 안철수. 반갑고도 기대되는 인물이지만 일단 그의 출마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다.

 

그간 바빠서 뜸한 사이, 책의 세상에는 또 이렇게 대단한 일이 벌어졌구나...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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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7-2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된 책 모두 마음에 드네요.

탄하 2012-07-26 00:41   좋아요 0 | URL
앗! 마립간님이시닷! 오랜만이네요.^^
이번엔 수학/과학분야의 책들도 꽤 많은 편이죠?
아마도 마립간님 서재에 드나들었던 여파이지 싶은데요.

라로 2012-07-26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의 시대]라는 책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가 인생의 책 5권 중 한 권이라고 고르셨더라고요.
그 기사보고 저도 [축의 시대] 사서 읽으려고 결심했는데 반값이군요!!!
금방 주문했지만 7월까지니 얼른 주문해야겠어요!! 힛

탄하 2012-07-27 00:3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뤼야켈레벡님.
책을 산 것이 아주 뿌듯해지는 소식이네요.^^
제가 책 지름신쪽에 깃털 하나를 얹은 것이 아닌가 모르겠어요.
하지만 13주년 행사까지만 반값이라니 이 기회를 그냥 보내기가 참..아깝죠?
 

책을 읽는다. 지하철에서도 읽고, 점심 먹고 남은 시간에도 읽고, 누군가를 기다리면서도 읽고, 아주 가끔은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책을 읽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익숙한 독서시간은 야심한 밤 내 방에서 앞쪽에 스탠드 불빛을 두고 책을 읽을 때이다. 이 때만큼은 하루의 피로를 잊고 나만의 세계로 편안히 몰입할 수 있다, 와 같은 말로 맺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사실 상황은 그리 편안하지 못하다. 책상 위에 포터블 작업대를 떡 허니 올려 놓는 바람에 책상에서 책을 읽지 못하고 침대 위에 엎드려 읽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엎드려서 읽다 보면 팔이 저려오고 어깨와 등쪽 날개 뼈에도 부담이 간다. 이렇게 한 시간 정도, 혹은 그 이상 책을 읽다 자면 다음날 아침 반드시 근육통이 찾아온다. 이건 뭐, 독서력이 아니라 근력을 키우는 것 같다.

 

하지만 불편한 자세임에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 읽은 책들이 있다. 거참, 불편한데 익숙해지고는 있단 말이지…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런 책들을 읽었음에도 리뷰를 꿀꺽! 해버렸다. 나름 독서 후유증으로 인한 체력저하 때문이라고 ‘변명’을 해보기도 하지만 조금 찔린다. 하여, 이젠 올해도 반이나 지났겠다, 더 더워서 귀찮아지기 전에 몇 권만 골라 빨리, 간략히, 한꺼번에 마무리 해본다.^^

 

 

 

 

   <위풍당당>


성석제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부터 ‘입담’이라든지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를 익히 들어 무척 궁금했던 작가인데, 올 봄 유독 노란색에 홀려버리는 바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뿐만 아니라 노란색 표지의 책을 거의 연달아 4권이나 읽었다). 결론은? 입담. 인정한다. 물론 겨우 작품 하나를 가지고 그의 입담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결론 내릴 처지는 못되지만 적어도 <위풍당당>에서의 입담은 무척 능청스러웠다, 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의 능청스러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싶으면 바로 이 책의 표지를 보면 된다. 얼핏 보기엔 고풍스런 산수화처럼 어엿한 품세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서 발전소와 양옥마을을 눈치챌 수 있다. 순간, 호연지기 충만한 산수화의 이미지는 뿅~!하고 증발하고, 문명에 오염된 산골마을의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문장의 서사도 마찬가지이다. (각 장의) 처음엔 잔뜩 폼을 잡아 진지하고도 장엄한 입담으로 시작하곤 하지만 결국엔 어떤 찌질함과 맞부딪히는 것, 그래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며 하찮은 인간과 마주하게 하는 것, 그것이 그의 입담이 가지고 있는 ‘척하다가 뒤통수치기’ 기법이었다.

 

<위풍당당>은 간략히 말해 각자의 가족에게서 상처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식구’라는 이름으로 단합해 조폭에 대항하는 이야기이지만(그리고 그밖에 정치적 부도덕과 생태계에 관한 메시지가 내포된 이야기지만), ‘인생이여, 고마워요’라는 마지막 장의 제목을 보니 결국 작가는 ‘연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모든 소제목들이 그렇지만 사실 ‘인생이여, 고마워요’는 노래 제목으로, 특히 이 곡은 아르헨티나의 국민가수 소사의 노래(원래는 비올레타 파라의 곡)였기 때문이다. 군부 독재시절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었던 <인생이여, 고마워요>. 그들의 노래는 바로 (그리고 아직도) 우리들의 노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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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어서
나에게 준 두 개의 밝은 별
그것을 열면
흑과 백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으니까
높은 하늘 깊이 별들이 보이고
군중 속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네요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어서
나에게 준 귀로 전부 새겨 넣게 되는
밤과 낮의
귀뚜라미와 카나리아 소리
망치 소리와 물레방아 소리, 공사장 소리와 소낙비 소리
그리고 마음 깊이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어서
나에게 소리와 문자를 주어서
내가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할 수 있는 언어를 주어서
어머니 친구 형제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영혼의 길을 비춰줄 빛을 주어서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어서
힘차게 뛰는 심장을 주어서
인간의 두뇌가 이룩한 성과를 보며
선이 악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 해주어서
그의 맑은 눈 깊은 곳에서 내 시선이 가 닿게 해주어서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어서
웃음을 주고 눈물을 주어서
덕분에 행복과 슬픔이 구별되고
그것들이 내가 노래를 만드는 재료
당신들의 노래, 그것도 같은 노래, 모두의 노래
그것은 나 자신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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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의 아이들 1,2>


입담에 있어 한 술 더 뜨는 사람이라면 인도의 작가 살만 루슈디가 있다. 그의 입담은 마치 덩굴줄기처럼 넘실대며 증식하여 마침내 읽는 사람이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나를 알려면, 나 하나를 알기 위해서는, 당신도 나처럼 그 모든 인생을 먹어치워야 한다.(p.26)'는 엄포로 시작하는 이 책은 뭐라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아주 진부하고 대책없는 표현이지만 저절로 이런 감탄사가 튀어나오는 것을 막을 순 없다. 균열에 맞서 모진 호흡을 이어가는 주인공 살림 시나이처럼 이야기는 여간 해선 끝을 양보하지 않으려 하며, 정작 끝이 나려 할 즈음엔 읽는 사람이 오히려 그 끝을 거부하고 싶어진다.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하는 이야기, 영원히 숨죽이며 읽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 <한밤의 아이들>인 것이다.

 

<한밤의 아이들>은 격정적인 인도의 현대사를 해방둥이 살림 시나이의 인생과 병치해 이끌어가고 있는데, 해방을 겪은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유사한 점이 많아 단순히 먼 나라 인도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다. 해방이 희망과 안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혼돈과 분열의 계기가 되었던 역사, 그리고 식민 지배자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허울뿐인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살림은 새 바람을 몰고 올 차세대의 지도자가 아니라 이 모든 업보를 짊어져야 할 희생자의 운명이었다. 그래서 살림은 자신의 한 많은 삶을 공들여 피클로 저장한다. ‘먹어치워야 한다’는 말이 이유 없는 은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피클은 상당히 커다란 의미가 있다. 우리로서는 피클을 이태리나 미국 같은 서구 음식으로 생각하지만 인도 역시 피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클은 단순히 삭히고 저장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닌 인도 고유의 무엇(우리로서는 김치와 같은)이며, 그 피클에 살림의 삶을 절여 담는다는 것은 후대에게 간절히 가 닿고 싶은 역사의 메시지일 것이다.

 

이 책은 이후에 영화로도 제작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기억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이 책만큼은 영화로 나오면 꼭 보고 싶다. ‘역사’를 많이 언급해서 복잡하고 어려우리라 예상할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판타지적 요소가 있어 더 매력적이고 풍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다시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책, 다시 읽게 되면 리뷰를 꼭 써야지.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사실 마르크스에 관한 입문서를 신간으로 읽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기존 입문서에도 꽤 괜찮고 잘 알려진 것들이 있어 이른바 스테디 셀러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음엔 곧장 데이비드 하비를 읽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를 주목하게 된 것은 이 책이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의 책이기 때문이었는데, <푸코...>에서 그가 보여줬던 명쾌하고도 친절한 설명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던 거 같다.

 

이 책은 우치다 타츠루와 그의 지인 이시카와 야스히로가 서신을 교환하는 형식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시카와가 마르크스 저서들을 하나 하나 소개하며 핵심 내용으로 '기초'를 정리하는 역을 맡았다면, 우치다는 해당 저서의 내용에 개인적인 인문학적 사유를 보태 '확장'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르크스의 사상을 정리하고 이에 더해 자신들의 의견을 토론하는 모습은 청년들이 마르크스를 읽으며 실천했으면 하는 그들의 제안인 동시에 솔선수범인 듯하다. 뿐만 아니라 두 노 교수가 신나게 마르크스에 몰두하는 것에서 풋풋한 청년의 열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사실 마르크스를 읽기 위한 '본격 입문서'라고 소개하긴 곤란하다. 문 앞에서 친절하게 손잡이를 돌려주는 도우미 같다고나 해야할까? 따라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 하겠고, 다만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했던 (내용 이외의)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마르크스를 읽으며 사회를 보는 시각을 달리하자는 것, 그리고 마르크스를 읽을 때는 그의 생애에 걸친 발전을 고려하며 저서마다 '시기'를 알고 읽어나갈 것, '시기'에 주목해 읽되 구체화되거나 더해지는 개념들을 염두하며 읽을 것, 마지막으로 저자들처럼 읽은 것을 통해 사유를 확장하고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의견을 주고받을 때는 누가 옳다 그르다 편을 나누지 말 것 등이다. 그들은 특히 똑같이 마르크스의 사상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관점을 내세워 논쟁과 편가르기에만 열을 올렸던 기성세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았다. 이 멋진 두 분의 뜻을 위해서라도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어봅시다.
 

 


<무조건 살아, 단 하나의 삶이니까>


이 책은 평소 ‘휴먼스토리’나 ‘성공스토리’와는 무관해 보이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이라 호기심에 클릭했다가, 그만 북 트레일러를 보고 깜짝 놀라 읽게 된 책이다. 세 살 때 부모에게 버림받고, 다섯 살 때 고아원에서 탈출, 그 때부터 껌팔이로 전전하며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결국 자신의 꿈인 성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한 청년의 이야기. 너무도 소설 같은 삶이기에 오히려 사람들에게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그래서 진실을 글로 새겨 보여줘야 했던 파란만장의 결정체. 이것이 바로 <코리아 갓 탤런트>의 스타 최성봉의 삶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젠 그리 대단하다 싶은 삶도, 비참하다 싶은 삶도 없는 것 같았는데, 이 청년의 이야기를 읽으니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간다. 그리고 ‘무조건 살아’라는 단순한 한 마디도 몇 번의 자살을 시도했던 그의 외침이기에 더욱 간절하고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정말 그는 무조건 살았고, 무조건 살아야 했다. 무조건 살기 싫어 죽으려 했지만 무조건에는 엄청난 가속도가 있어 삶을 멈추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만일 유일한 희망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무조건의 힘을 다시 한 번 믿어봤으면 좋겠다.

 

나는 일년에 한 두 번쯤 누군가의 인생에 대한 책을 읽게 되는데, 신경 쓰고 챙겨 읽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꼭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문득 깨닫는 것은, 누군가는 몇 십 배나 더 큰 불행을 가지고 태어나 그것을 몇 백배나 더 큰 행운으로 만들며 살아간다는 것. 그래서 사소한 불만들이 부끄러워진다는 것. 마지막으로 인생의 종점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다는 것. 

 

 

 

이 밖에도 약 10권의 책이 나의 밤을 삼켰고, 나는 그 책들을 삼켜버렸지만 지난 6개월간 함께했던 책들과의 시간은 내 안에 고스란히 함께할 것이라 믿는다. 이젠 가급적 읽은 책들은 그 때 그 때 정리해야지. 가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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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7-03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편한건 사실인데, 그래도 침대에서 책읽기는 포기할 수 없어요. ^^ 엎드려서 읽다가 어깨 아프면 또 자세 바꿔서 읽고 또 앉아서도 읽다가 누워서도 읽다가 말이죠. 덕분에 저도 요새 근육통에 시달려요.하하 ^^;

앗. 안그래도 <위풍당당> 장바구니에 넣어놨는디요. 책표지에 그런 숨은그림찾기가 있었단 말이군요. 음..이런 뒷통수치기는 아주 통쾌한데요.

탄하 2012-07-04 13:01   좋아요 0 | URL
저만 근육통이 오는 것이 아니군요. 그래도, 맞아요..포기할 순 없죠?^^

<위풍당당>의 핑크색 띠지를 벗겨보면 제가 말씀드린 부분이 있어요.
이 책은 유쾌한 입담이 즐겁긴 한데, 호기심을 유발+유지하는 면에서는 그럭저럭이네요.
뭐랄까, 구성이 치밀하게 짜인 건 알겠는데 그게 다 드러나 보여서.^^
하지만 노랫말과 함께 읽어보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저는 다 찾아보진 못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