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 - 로마 세계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교 ㅣ 비아 제안들 시리즈
로버트 루이스 윌켄 지음, 양세규 옮김 / 비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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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초기 기독교 시기(2~4세기 정도)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에 관해 로마인과 그리스인들이 남긴 언급에 집중한다. 저자가 선별한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사상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남긴 기록엔 일차적으로 왜 당대 어떤 이들이 기독교를 멸시하고 평가절하 했는가 하는 반감을 읽게 되겠지만, 또 그 안을 잘 살펴보면, 초기 기독교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현실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가장 먼저 나오는 인물은 행정관(총독)이었던 소 플리니우스다. 그는 당시 황제인 트라야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기독교인들을 언급하는데, 그는 비록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와 삶에서 특별히 문제될 만한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정무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공동체의 관습을 따르기를 거절했다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았다.


플리니우스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유명한 역사가 타키투스는 기독교를 미신이라고 적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인류를 증오한다고 쓰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기독교를 당대 사회와 종교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기독교에 대한 좀 더 철학적인 공격도 있었다. 여기에는 2세기 후반 의학자/의사로서 잘 알려진 갈레노스가 먼저 나온다. 그는 기독교를 당새 하나의 철학 학파(당시의 철학 학파는 일종의 종교단체와 비슷했다)로서 여기고 있었고, 비록 믿음을 뒷받침하는 지적 기반은 부실했으나 자기 수양과 절제의 삶을 살아가는 집단이라고 평가했다.


오리게노스의 반박문으로 잘 알려진 켈수스는 좀 더 교리적인 차원에서 기독교를 비판했던 인물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내용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했던 그는,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와 종족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그러니까 어떤 지역이나 어떤 민족은 그들의 신을 갖는다는) 관념을 파괴하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기독교에 대한 지적 공격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초에 활동했던 철학자 포르퓌리오스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책에는 이 내용이 꽤 길게 설명되는데, 성경의 해석과 이해에 관한 차이는 그것이 계시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애초에 공격하는 쪽에서도 완벽한 논리적 근거를 가져다 대기는 쉽지 않다. 특별하 포르뤼리오스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라는 인물을 하나님으로, 유일한 구원의 길로 여기는 부분을 못마땅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인물은 배교자 황제 율리아누스다. 그는 제국 내에서 어느 정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던 유대교까지 포용했지만 유독 기독교에 대해서는 박했는데,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나왔다는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것이 기독교에 위협이 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은 살짝 의아하기도 하다. 사실 이 부분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이 좀 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은데, 학자들은 이런 심리까지는 딱히 신경을 많이 쓰지 않으니까.





책은 처음 3세기 동안 기독교가 꽤 오랜 투쟁을 해야만 했다. 이 투쟁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지적 공론장에서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또, 저자도 지적하듯이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300년에 걸쳐 끊임없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기독교 사상이 그저 웃고 넘길 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적자들의 주장을 통해 초기 기독교의 이미지를 재구성해 본다는 시도가 꽤 흥미롭다. 다만 그런 종류(그러니까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의 글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과장은 어느 정도 염두하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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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 기니스의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3장 “깨어진 해결책”은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라는 미국식 해법이 왜 오늘날 다원주의, 국가권력, 분리주의 논쟁 속에서 흔들리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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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상에서는 이 문제를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현실에 비추어 살펴보며, 교회가 공적 광장에서 사라지지도 지배하려 하지도 않고 자유와 설득의 방식으로 서야 할 이유를 함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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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는 고리타분하고 모호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이며,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평생 한 가지의 정치적 성향만을 지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평생 보수이고 평생 진보인 사람은 정치인밖에 없다. 시민은 자유롭다.

인생 속에서 변화하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에 따라

순간순간 가장 적합한 선택을 하면 된다.

이제 미디어나 타인의 말, 혹은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말고,

나와 사회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적 입장을 선택할 때다.


- 채사장, 『시민의 교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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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혁신당의 조국 대표가 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사용한 사투리 표현에 좌표를 찍으며 일베식 표현이라고 몰아가고 있다. 말 끝에 "~노"라는 어미를 붙이는 일베 특유의 조롱 문화(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투를 조롱하는 의미가 담겼다)를 그 멤버가 사용했다는 것.


물론 그 비판은 그 멤버가 일베 사용자라는 의미는 아니었고, 일베식 표현이니 사용하지 말라는,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일베식 조롱 표현/문화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며칠 전에는 노무현재단의 이사까지 맡고 있는 조수진 변호사(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가 자진 사퇴했다)까지 여기에 한 마디를 보탰다. 나도 경상도 사람이지만 그런 표현은 쓰지 않는다고.


차근차근 따져보자. 해당 아이돌 그룹은 이른바 '중소 기획사'에서 만든 그룹이었다. 데뷔한지 1년이 넘었지만, 최근에서야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른바 역주행 중. 그 가장 주된 이유는 유튜브 채널을 통한 친근감 어필이었다. 멤버 중 거제시와 경주시 출신이 있었고, 오늘은 한 번 사투리를 원없이 써 보자는 콘셉트로 영상을 찍었는데, 이게 대박이 난 거다. 도도해 보이는 외모에 친근한, 시골 할머니나 쓸 법한 사투리로 대화를 하니 그 갭이 재미있었던 거다.


당연히 이들이 사용한 사투리에는 어색한 부분도 있다. 아무리 지방 출신이라지만 표준어 사용을 오랫동안 익혀왔을 것이고, 서울 공화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고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또 말은 그것을 사용하는 삶의 정황과도 깊은 연관을 갖는데, 어르신들의 상황과 지금 상황에는 차이가 있으니, 애초에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할 상황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의도적으로 특정한 사투리 표현을 사용해야 할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조국 씨('씨'는 경칭이다. 그 진영에서 예전에 자주 주장했던 내용이다)의 사투리 저격은 이런 모든 정황을 무시한 채, 그저 본인 귀에 거슬리는 표현을 문제 삼는 느낌이다. 물론 나 역시 일베는 우리 사회의 곰팡이 같은 존재라고 본다. 그건 혐오를 먹이 삼아 사회를 부패시키는 집단적 광기다. 그러나 곰팡이를 이 세상에서 어떻게 없앨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심각하게 곰팡이가 핀 것들은 내다 버리는 식으로 처리를 할 수 있겠지만, 공기 중에 수없이 떠 다니는 균을 완적히 박멸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정한 영역에서 특정한 기간 동안은 어찌어찌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무균실에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


이번 저격은 일차적으로 사투리 사용자 일반을 일베로 몰아가는 대단히 정치인답지 못한 공격이었다. 이건 너무나 쉬운 계산 결과다. 당장에 경남권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이 죄인가? 당연히 아니다.


애초에 이런 비판을 하려면 해당 아이돌이 해당 표현을 사용했을 때, 혹은 이전에라도 그 그룹이 보여주는 분위기가 일베스러웠을 때에야 조금이라도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그 표현이 조롱의 의미를 담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이런 면에서 최근 불거졌던 배제고의 일베응원 사태와도 차이를 보인다. 그쪽에서는 명백하게 상대팀은 광주일고를 자극하고 도발하기 위해 해당 구호를 집단적으로, 경기와 직접 상관없이 무맥락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질이 나빴다.


여기에 나도 경상도 사람인데 '무섭노' 따위의 표현은 사용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는 조수진 변호사의 말은 그냥 무너지는 배에 식량이라며 짐을 실은 격이었다. 해당 표현은 사투리를 기반으로 조금은 과장되게 상황을 표현하는 콘셉트였다. 실생활에서 해당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건 중요하지 않다. 웃자고 한 말이니 잘못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투리를 가지고 창의적인 표현으로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려 했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자신의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잘못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발로일까? 개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바로 이런 오만함 때문이었다고 본다. 윤석열이 그렇게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을 때도, 자신이 임명한 사람이니 (어쩌면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인지) 끝까지 두었다가 그 사달이 났다. 비슷한 케이스는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도 있었고. 정부 정책을 건건히 딴지 걸고, 아예 항명을 하는데도, 내가 임명했으니 틀렸을 없다는 고집으로만 비춰졌었다.


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실망과 충격이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이런 식으로라면 혁신당은 다음 총선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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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창세기 12장의 말씀을 근거로 “이스라엘을 축복해야 복을 받고,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 구절을 현대 이스라엘 국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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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단순한 영토 소유권의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땅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고, 그 땅에 사는 백성에게 정의와 언약의 책임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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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성경의 일부 구절만 떼어 현대 정치적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과연 바른 신앙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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