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아누스는 24살에 부제가 되어 갈리아 방어에서 성과를 거두었고, 이후 콘스탄티우스의 죽음으로 단독 황제가 됩니다. 그러나 그가 역사에서 가장 강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콘스탄티누스 이후 강화되던 기독교 우대 정책을 되돌리고, 로마의 전통 이교를 다시 부흥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연 정말 ‘배교자’였을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이교도 황제’였을까요? 또 그의 행정개혁과 종교개혁은 왜 현실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이번 영상에서는 율리아누스의 개혁, 이교 부흥책, 안티오키아에서의 충돌, 페르시아 원정과 죽음까지 살펴보며, 한 황제의 이상이 현실 정치와 종교 지형 앞에서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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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큰소리쳐 놓고는

내 마음대로 해석해 버리는 일이 다반사인 상황에서,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나의 정략적 사설을 늘어놓는 일이 다반사인 상황에서,

교회의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것은

말씀의 권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관한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권위 있는 말씀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어떤 목적으로 써먹고 있느냐를 검증하는 일이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실제 해석의 과정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해석학적 우상숭배’를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권연경,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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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에서는 천국의 길 앞에서 계속 도망치려는 한 유령이 등장합니다. 그녀가 견디지 못하는 것은 고통 자체라기보다, 자신이 완전히 드러나는 상황입니다.
루이스는 이 장면을 통해 수치심, 자기집착, 사생활에 대한 집착, 그리고 회피의 문제를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수치심은 피하려고 할수록 더 뜨거워지고, 정직하게 받아들일 때 오히려 우리를 회복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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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기독교 - 2세기 기독교는 어떻게 교회의 미래를 형성했는가
마이클 J. 크루거 지음, 송동민 옮김 / 너머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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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란 우리말로 갈림길을 말한다. 몇 개의 길이 교차되어서 선택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지점이 갈림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2세기 기독교의 상황이 꼭 그랬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가 발흥한 1세기와 사실상 로마의 공식종교가 되었던 4세기 사이의 시기에, 그 중에서도 2세기에 집중한다.


저자가 보는 2세기는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이다. 아직 기독교가 공인되려면 200년은 더 기다려야 했던 이 시기, 물론 여러 면에 있어서 아직 공고한 체계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이후 보이는 교회 내 다양한 요소들이 어느 정도 형성되던 시대라는 것.





책의 첫 두 장에서는 당시 교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위치(사회적 하층민들이 많았지만, 일부는 잘 교육받은 상류층이었고, 여성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질적으로 다가왔을 기독교의 내용(기존 로마의 종교와 전혀 다른, 사회의 안정성을 약화시키는 위험한 운동이라는)을 설명한다.


본격적으로 내용이 흥미로워지는 건 3장부터다. 3장에서는 2세기 당시 교회의 리더십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하는데, 저자는 여전히 강한 이교문화(당시 로마는 최전성기였다) 속에서 새로운 종교운동을 지켜낼 수 있었던 데에는 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지적한다. 당시 교회들은 여러 크기와 형태로 가정교회들의 느슨한 연합 형태로 존재했고, 어느 지역의 지도자도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 특별히 더 우위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개별교회의 지도자들 사이에는 매우 빈번한 소통이 있었다.(이 점은 오늘날 교회들도 좀 배웠으면 하는 부분이다)


4장과 5장에서는 이단과 정통의 문제를 다룬다. 이단과 정통은 단지 힘겨루기에서 이긴 쪽이 멋대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요새 유행하는 수정주의적) 얄팍한 주장의 부족한 근거를 지적하면서, 이미 이 시기 어느 정도 교회들 사이에 공유되는 핵심적 교리들이 정리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6장과 7장은 당시 교회의 특징 중 하나인 텍스트 중심의 문화 부분을 되짚어 보는 내용이다. 의례 중심이었던 그리스, 로마의 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처음부터 (성경을 포함한) 다양한 문서들을 중요하게 여겨왔고, 동시에 새로운 종교적 문서들을 많이 생산해 냈다는 내용.





다분히 학자다운 겸손함으로, 이 책이 개론서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제한적인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지만, 책은 2세기 지중해 세계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에 관해 좋은 그림을 그려주고 있다. 특히나 2세기 중심으로 그 전후의 다양한 1차 사료들을 풍성하게 이용하면서 학문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4장과 5장이었다. 역사학계 전반에 수정주의적 견해가 유행하면서, 기독교 역사와 관련해서도 무조건 통설을 뒤집는 신박한 주장을 하는 것이 뭔가 특별한 것처럼 여겨지는 느낌이다. 특히나 일부에서는 반기독교 정서와 연결되어서 오늘날 정통으로 여겨지는 쪽을 깎아내리는 주장으로 전용되기도 한다.


저자는 정통과 이단의 기준 자체가 없었다는 나이브한 주장을 차근차근 반박하면서 당시 실제의 상황을 논리적 정합성을 갖춰 재구성해 낸다. 온통 구성주의에 기초한 파괴적 창의성이 남발하는 이 바닥에서 간만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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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차분히 물어야겠지요.

정치 환멸이 퍼질 때 이익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혹 그들이 정치 환멸을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를.

아울러 그 결과까지 종종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멀리할 때

결국 특권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자신의 삶이 좌우되는 상황을 맞게 되니까요.

정치는 우리의 무시에 반드시 보복하거든요.

'정치 무시의 정치'랄까요.


손석춘, 『손석춘 교수의 민주주의 특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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