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말하는 죽음학 수업
박중철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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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다.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을 병원 생활을 하셨고, 소위 “중환자실”이라고 불리는 집중치료실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내셨었다. 수년 동안의 입원생활로 몸의 근육이 거의 사라지면서 건강하셨을 때와는 전혀 다른 외형이 되셨고, 위독한 고비를 몇 번이나 지나신 후, 결국엔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였던 지라, 이 책의 내용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는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이 지적하는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죽음이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편안한 곳(아마도 집)에서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되도록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나기를 바라고 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에 임박해 찾는 곳은 병원이다.


일단 병원에 도착하면 바늘을 찌르고, 수액을 꽂고, 온갖 검사들을 돌아다니다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집중치료실(대부분의 병원에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임종실을 따로 마련해 두지 않는다)에서 죽을 때까지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버티다가 마침내 진이 빠져 숙는다. 이게 과연 존엄하고, 존중받는 죽음의 모습일까?





저자가 말하는 건 호스피스 의료의 중요성이다. 생애 말기에 이르러 더 이상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무작정 영양을 공급하고.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약물투입으로 환자가 고통을 겪는 시간을 늘리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환자가 남은 생을 최대한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처치를 제공하는 호스피스 의료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이 주장에 크게 동의한다. 오랜 병원 생활이 얼마나 사람을 초췌하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만드는지를 옆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의 의사들이 ‘최선’이라는 모호한 기치 아래 일종의 교조주의적 집착에 빠져, 환자에 대한 치료 아닌 치료를 고집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굉장히 여러 번 반복되는데, 동료 의사들의 고집과 자존심 지키기에 대한 저자의 분통이 터져 나오는 부분이다.


물론 여기에는 법의 모호함으로 인한 책임추궁을 피하려는 의사들의 심리와, 죽음 자체에 대해 제대로 고민할 틈이 없는 일반적인 상황들, 그리고 완화의료(호스피스 의료)가 현재로서는 병원 운영에 경제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다. 사람(의사)과 문화와 결국 돈의 문제.




난 그렇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내가 가진 것으로 내가 받은 것을 충분히 갚고 나면 남은 삶은 여유를 좀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만, 뭐 그것도 경제력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가능한 일일 게다. 그렇다고 무슨 큰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이나 노력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잠언의 한 구절처럼, 너무 부자가 되지도, 너무 빈곤해지지도 않기만을 바랄 뿐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죽음에 관해서는 부디 큰 고통이 없이 맞이했으면 좋겠다 싶지만, 책에 묘사된 대로 일단 병원에 잡혀가고 나면 그런 기대가 실현되는 건 쉽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죽음은 점점 더 익숙한 일이 될 텐데, 이에 대한 좀 더 속 깊은 대화가 좀 더 빨리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좀 편안히 갈 수 있을 테니까.


책에서 지적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볼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모습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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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회생활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안 그래도 요즘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예전에는 말씀의 은혜라든가 예배의 기쁨 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신앙을 위한 각자의 몸부림 못지않게

공동체에서의 수평적인 관계도 중요한 것 같거든요.

특히 지금처럼 사회의 규범이나 가치가 급격하게 변하는 상황 가운데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등 고민이 많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주중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교역자 분들과 함께 이야기하기에는 ‘답정너’적인 측면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 무근검 편집부, 『교회 다닌다고 말도 못하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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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로스트 -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반려동물 실종·발견 포스터
이언 필립스 지음, 허윤정 옮김 / 생각비행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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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갔다가 재미있게 생긴 책이라 들고 왔다.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반려동물 실종·발견 포스터”라는 긴 부제가 붙어 있어서 한눈에 어떤 책인지 내용을 알 수가 있다. 이 책은 정말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사연으로 잃어버리게 된(탈출을 감행한 경우도 있고, 도둑맞거나, 강도를 당한 경우도 있다) 반려동물들을 찾는 주인들의 애타는 마음을 담은 포스터들을 모아놓았다. 다만 “세계”라고는 하지만 대개는 북미 지역이고, 유럽이 그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는 그냥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은 정도다.


여전히 동물을 학대하는 어딘가 삐뚤어진 사람들의 뉴스가 심심찮게 들리지만,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드물지 않다. 요새는 동물과 관련된 예능 프로그램도 이전에 비해 그 양과 질이 훨씬 많고 다양해진 느낌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이야기가 호응을 얻고 있다는 뜻이리라.


이 책도 그런 일환으로 나온 것 같다. 아무튼 동물 이야기는 호응(돈)이 되니까. 다만 그 내용이 동물을 잃어버렸다는 사연이 모아진 포스터들이라는 게, 그냥 호기심이나 재미로 책장을 넘기기에 좀 미안해지긴 하다. 물론 여기에 실린 포스터들은 지금으로부터 20년은 지난 것들로 보이니, 그 사연 속 동물들은 진작 세상을 떠났을 게다. 그러니 조금은 편하게 봐도 되는 걸까.


책 편집이 읽어가기 쉽게 되었다. 맞쪽으로 되어서 오른쪽에는 실제 포스터가 왼쪽에는 그 번역(외국어로 되어 있거나, 삐뚤빼뚤해서, 원서에도 필요했을 부분이다)이 실려 있다. 하나하나 번역을 읽어가도 좋고, 그냥 포스터 이미지 자체만 봐도 즐겁다. 몇몇 포스터에는 아이들이 직접 그린 듯한 귀여운 동물 모습이 실려 있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동물을 찾으려고 하는 주인들의 마음이 그 자체로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다. 아주 오래 전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 한 마리를 데려왔다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이걸 ‘길렀다’고 하긴 힘들 것 같다) 죽고 난 뒤에는 말이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 큰 개가 있었던 기억은 있지만,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얼마 전 집에 작은 어항을 하나 들여놓았다.(작긴 해도 은근 돈이 들어가더라)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물고기들이었는데, 초보자의 실책인지 몇 주 새 모두 다섯 마리가 죽더니, 남은 녀석들은 이제 어느 정도 적응해 사는 듯하다. 최근에는 새끼들까지 바글거리면서 어항이 좁아지진 않을까 염려될 정도다.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교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 살아있는 무엇인가가 함께 있다는 게 꽤나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동물에게 지나치게 극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에 공감이 될 때도 있다. 동물을 언급하며 “동물권(동물의 정치적 권리)”나 “종차별주의” 같은 말까지 운운할 때면 살짝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건 좋지만, 동물을 모든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려는 욕심은 파국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다. 그건 동물에 대한 강력한 지배욕의 다른 모습이고,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동물의 의사 따위는 무시되기도 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물과의 교감을 포기하지는 말자. 그렇게 버리기엔 너무 소중한 경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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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128
김인희 외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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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동북공정”이라는 명칭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 같다(물론 2000년대 초반 나온 명칭이니 그보다 나이가 적은 경우는 패스). 사실 우리말로 하면 그저 “계획”이라는 뜻일 뿐이지만, “공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 왠지 뭔가 음모를 꾸민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결과적으로 동북공정은 중국의 동북부 지역의 역사를 자국의 고대사로 편입시키려는 당국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관치 역사개조작업이었다. 문제는 그 지역과 관련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고대사와 충돌한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부여나 고구려 등 오늘날에는 중국의 영토였던 지역을 점유했던 우리 고대국가들마저도 중국 역사의 일부로 기술하는 식이었던 것.


그런데 이런 “역사 공정”은 이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소위 삼황오제 시대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역사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중국 정부의 시도를 보여준다. 삼황오제란 중국 최초의 군주들을 가리킨다. 다만 군주라고는 하지만 반쯤은 신화에 가까운, 초기 군장 정도가 아닌가 싶은 존재들로, 그 실체 자체가 불분명한 이야기 속 인물들이다.





네 명의 저자들이 참여한 이 책에서는 다양한 방향에서 중국의 이 역사공정을 다룬다. 첫 머리에서 중국의 이런 공정이 시작된 계기에 톈안먼(천안문) 사태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인민들의 사상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역사를 그 주요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다.


90년대 말 시작된 “하상주단대공정”에서는 이들 신화 속 인물들과 하, 상 같은 고대 국가이야기를 실제 유적들과 연결시켜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려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50개가 넘는 민족들이 모여 이루어진 중국이라는 국가는 태생적으로 ‘통합’이라는 과제가 주어져 있었던 데다가, 공산당 일당독제 체제의 특성상 반체제 운동을 막기 위한 사상적 통제 작업으로서 역사가 이용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문한자료와 고고학적 발굴을 억지로 연결시키는 시도가 자주 보였다는 점이다. 애초에 이 작업의 의도에 정치적인 목적이 깊게 개입되어 있었기에, 학술적인 연구방법보다 정치적인 구호가 더 크게 들렸고, 결국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중국 전역에 이들의 유적이 동시에 존재하거나, 같은 인물의 존재 시기가 1000년이 넘게 흩어져 있다는 식. 고고학적 발굴로 중국 각지에 존재했던 고대 유적들이 연구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걸 억지로 하상주나 염제와 황제 등 신화적 인물과 연결시키는 건 무리라는 뜻이다.





사실 옆에서 보기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소동인 것 같지만, 막상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점점 이게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 또 우려스럽다. 소위 “분노청년”이라고 불리는, 맹목적인 쇼비니즘에 물들어 멍청한 구호나 외쳐대는 이웃나라의 2, 30대들과 우리는 과연 합리적인 관계라는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또, 자신들은 한 발 물러선 채, 그렇게 젊은이들이 선동당하는 것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현재의 공산당 권력층은 또 우리에게 어떤 해를 끼칠까.


또 한편으로,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자국우선주의에 근거해 역사수정주의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시대에, 자기가 먼저 나서서 식민 가해국에 면죄부를 주고, 패권국가에게 머리를 조아린 채 당신들은 죄가 없다고 안심하게 해 주는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참으로 독특한 존재인 것 같다. 이들은 세계 평화를 위해 자신을 먼저 낮춰야 한다고 믿는 진정한 평화주의자들인가, 아니면 그냥 멍청이들인가.


역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역사가 정치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 퍽 안타깝다. 물론 고대로부터 역사 기술이라는 것이 정치적 목적과 분리될 수 없었던 영역이긴 하지만, 그렇게 기술된 기록의 해석과 정립에는 최소한의 기준과 합리적 과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그냥 소설에 머물 테니까.


중국의 고대사 공정은 국제적으로 그닥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중국의 인구가 수억에 달한다는 점인데, 지록위마라는 옛 말처럼, 수억 명이 우기기 시작하면.... (아, 이걸 노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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