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 - Genova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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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1. 줄거리 。。。。。。。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조는 두 딸과 함께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탈리아의 제노바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한다. 하지만 엄마를 잃은 두 딸은 쉽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큰 딸 켈리는 바닷가에서 만난 남자 친구들과 밖으로만 어울리려고 하고, 둘째 딸 메리는 자꾸만 죽은 엄마의 모습을 따라 어디론가 사라진다. 조금씩 균열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가족 간의 틈은 미로 같은 제노바의 골목처럼 쉽게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2. 감상평 。。。。。。。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제노바의 모습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들과 모두의 마음을 풀어지게 만드는 자유로운 해변으로 표현된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분위기는 영화 속 주인공 중 하나인 큰 딸 켈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수렴된다.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인한 혼란함을 보여주는 골목과 그 분출구로서의 해변은 극히 불안정한 그녀의 심정을 잘 묘사해 준다. 또, 죽은 엄마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둘째 딸 메리에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과 골목은 길을 잃기에 너무나 좋은 무대다. 감독의 배경 설정은 탁월했다.

     하지만 영화 속 갈등은 좀처럼 진전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도 그다지 섬세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냥 상황이 던져지고 난 뒤, 이리저리 부딪히다가 엉겁결에 해결(?)되는 것 같다.(심지어 이것도 그냥 느낌일 뿐, 진짜로 해결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리 길지 않은 런닝타임인데도 불구하고 내용의 전개가 지지부진해 영화 내용보다도 영화의 배경이 더 기억에 남을 정도.

     어떻게 보면 갈등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냥 갈등이 만들어지고 해결되는 스토리가 약하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란 영상과 음향과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어울려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 아닌가. 전문가적 소양을 갖춘 관객들에게는 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같은 그냥 평범한 관객에겐 좀 부족한 느낌이 강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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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 제국 - 헤로도토스, 사마천, 김부식이 숨긴 역사
박용숙 지음 / 소동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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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고대 동아시아의 역사와 소아시아, 중앙아시아, 나아가 지중해 동부 일대를 포괄하는 하나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나 사마천, 김부식 등 각각의 사가들에 의해 서로 다른 것으로 기록되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기존의 고대 세계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을 모두 뒤엎고 진시황이 알렉산드로스와 동일인물이며, 부여의 대소왕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같은 인물로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하나의 고대 세계의 정신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샤머니즘’이며, 고대 세계 전역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의 유사성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2. 감상평 。。。。。。。

 

     저자는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남아 있는 자료가 부족하니(어쩌면 누군가가 고의로 없애버렸을 수도 있으니) 자료들 사이의 넓은 간격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채워야만 고대 역사의 참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 낸다는 것 자체는 애초부터 불가능하기에, 모든 역사 기술에는 어느 정도 역사가의 상상력(전제나 추측)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 상상력을 뒷받침 할 만 한 어느 정도의 논리적 증거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역사가의 주장은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그저 개인의 ‘의견’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 뭐라 할 수 없겠으나, 역사서로서는 함량미달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면 이 책은 어떤 논리적 정황이나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저자는 크게 두 가지를 근거로 제시한다. 지중해 동부와 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의 공통점과 같은 지역의 고대사를 다룬 역사서들에 등장하는 지명과 인물들의 발음상의 유사성이 그것.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사실 이 두 가지는 ‘증거’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수백, 수천의 개체가 수억 개 이상의 유전자까지 동일하게 진화되었다’는 가능성 제로에 가까운 설명을 믿는 것이 아니라면, 인류는 한 쌍의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을 것이다. 그 조상들로부터 상대적으로 가까웠던 고대의 유물에서 발견되는 공통점들은 바로 여기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이것은 원줄기로부터 멀리 나온(시간이 많이 지난) 오늘날에 왜 문화권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가 크게 달라졌는지도 설명해 준다. 나아가 발음상의 유사성이라는 것도 지나치게 자의적이어서 어디에서는 발음의 유사성을 취하다가, 또 다른 곳에서는 단어의 뜻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그것도 아니면 한자의 이두 발음까지 꺼낸다. 그 유사성이라는 것도 긴 단어의 한 부분만 일치하는 듯 보이면 곧바로 연결시키는 식(중국의 노나라가 ‘로도스섬’의 첫소리를 옮긴 것이라는 주장, 326쪽)이니 이래선 강아지와 망아지는 원래 같은 동물이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책은 저자의 지나친 상상력으로 인해 일찍부터 산으로 올라갔고, 좀처럼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이미 세워 놓은 역사적 가정에 각종 서적과 유물을 꿰어 맞추는 식으로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역사가가 피해야 할 잘못된 접근방식이다. 특히나 책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성경에 대한 언급은, 그것의 역사적 가치를 최소한으로 인정하는 가장 진보적 해석을 취하는 학자들조차 동의하기 어려운, 기초적 사실관계에 있어서의 잘못된 인용들을 남발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내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다른 여러 역사서들에 대한 인용과 해석부분에 있어서도 그 진실성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거의 유일한 공헌은 아시아와 유럽 지역에 살았던 고대인들에게 때때로(‘항상’이 아니다) 나타나는 매우 놀라울 정도의 공통적 기억에 관한 발견과 그 자료들에 대한 매우 견실한 수집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 점만으로도 이 두꺼운 책은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지나치리만큼 자주 등장하는 저자의 억측과 자의적 연결은 책의 가치를 전반적으로 떨어뜨리며, 특히 책의 구성은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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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준비중인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 열린음악회'.

 이쯤 되면 개념이 없는 거지..

서해에서는 병사들이 수장된 채 시신도 못찾고 있는데

부산에서는 삼성 전 회장 '탄생'을 기념은 음악회?

그것도 국민에게 수신료를 받아서 운영하는 공영방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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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법학자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김두식 지음 / 홍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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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개혁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미 한국의 많은 교회에서 

교인들이 목회자를 ‘참아 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 요약 。。。。。。。


     저자는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자신이 그동안 교회 때문에 느낀 슬픔, 절망 그리고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6) 1장부터 3장까지는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은 교회의 현실을 지적하며 이를 ‘교회 속의 세상’이라는 표현으로 정의한다. 이런 현상을 발생시킨 것은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라고 지적하는 저자는(4장) 국가에 의해 교회가 인정을 받게 되면서 너무 많은 것을 내어준 결과, 세상 속에서 교회의 독특성을 드러내야 함에도 반대로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와 버렸다는 것. 그 결과 중세 말 종교개혁의 시기에 이르러서는 교회 문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극도로 심해졌고 30년 전쟁이라는 극심한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고도 지적한다.(5장)
 

     6장부터는 그러면 ‘대안’은 어떤 것인지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저자는 그 시작을 중세에 등장했던 ‘이단들’에서 찾기 시작하는데, 사실 그들이 주장했던 것들은 성경에 좀 더 가까운 주장들이었으며, 이는 위클리프나 후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약자를 품을 수 있는 교회(7장), 그로 인해 진정한 샬롬이 이루어지는 교회(8장)가 되어야 한다고 천명한 저자는, 더 이상 개혁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간곡한 부탁(9장)으로 글을 마친다.



2. 감상평 。。。。。。。

 

     이런 책의 서평을 쓰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저자의 뜻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나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그 비판받는 공동체의 한 일원이기 때문이리라. 나아가 책이 지적하는 내용들이 아예 사실과 거리가 먼 것도 아니기에, 단지 내가 한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는 식의 간단한 반박도 통하지 않는다. 책을 쓴 저자도 많은 고민과 아픔을 안고 썼겠지만,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것도 그 못지않게 힘든 일이다.

  

     저자가 오랫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사실과 다르지 않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 교회는 여러 가지 내장질환을 앓고 있었고, 결국 그 질병이 겉으로 드러나기에 이르렀다는 데에는 교회에 대해 긍정, 혹은 부정적 감정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이다. 문제는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교회 자체에서 기인하는 문제로 보고, 또 다른 사람은 외부적 상황을 좀 더 중요한 요인으로 본다.

 

     이 책에서 저자는 후자를 좀 더 주도적인 원인으로 진단하면서, 그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교회의 잘못을 함께 지적하는 방향으로 내용을 진행한다.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은 박해받던 교회에게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결국 국가에 의한 교회 개입이라는 좋지 않은 전례를 남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이 교회 속으로 들어오면서 교회의 본질이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진단.

 

     기본적으로 문제의 구조에 대한 저자의 진단에는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저자의 훑어 나가는 역사에 대한 약간의 보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매우 단선적으로 교회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그 중심에는 ‘주류는 언제나 잘못이 많고, 비주류는 선하다’라는 일종의 선입관이 있는 것 같다. 콘스탄티누스는 문제의 원인이고, 카타리나 왈도는 선한가? 어쩌면 ‘주류’라는 것은 그것이 더 지속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더 많은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아닐까? 카타리나 왈도파가 끝까지 남았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었을까? 분파는 교단을 형성하고, 교단은 기득권을 만들며, 기득권은 다시 분파를 낳는다는 교회사가들의 말은 좀 더 깊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교회가 왜 그래’라는 비난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비난의 대상과 원인을 적절히 잡아내서 하는 비난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기독교인 중 누가 하는 짓을 보니 기독교는 나쁘다는 식의 일차원적 비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물론 그런 비난과 지적일지라도 잘못된 것이라면 귀를 열고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지적의 깊이가 얕고 어설프면 그 해결책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우리나라 범죄자들의 99%가 쌀밥을 먹었다고 해서 쌀밥이 범죄를 일으키는 건 아니지 않은가.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드러내는 모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곧 하나님 나라는 아니다. 우리가 교회 문제를 생각할 때는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자는 교회에 대한 대책 없는 비난을 자제케 해 주고, 후자는 교회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로부터 깨어나게 해 준다.

     이 책은 나름대로 문제에 대한 진지하면서 애정 어린 지적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적 교회 모델도 나름 흥미로운 ‘실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저자 역시 느끼고 있듯 그러한 실험을 어느 정도까지 밀고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헌법의 풍경』에서 받았던 저자에 대한 인상은 다루고 있는 분야는 다르지만 이 책에서도 꽤나 짙게 느껴진다. 역시나 꼭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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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1~6권 세트 - 전6권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다른 스승 신들이 노여워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어쨌거나 그게 진화의 방향이 아니냐?> 하고 말이다.

단단한 것이 무른 것을 이긴다. 파괴하는 자가 도피하는 자를 이긴다.

그러니까 경쟁자들을 없애 버리는 자는 싸움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1. 요약 。。。。。。。

 

     영계(靈溪)를 탐사하다가(『타나토노트』) 죽어 천사가 된 후(『천사들의 제국』), 마침내 신 후보생이 된 미카엘 팽송. 그는 다른 143명의 신 후보생과 함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을 스승으로 삼아 새로운 지구를 탄생시키고 자신이 맡은 부족을 승리자로 만드는 거대한 게임에 참여한다. 하지만 타고난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는 그는 다른 후보생들과 함께 게임이 벌어지는 ‘아에덴’을 벗어나 그 ‘위’에 누가 있는 지를 찾아 나서고, 그러는 중에도 게임은 지속되면서 하나 둘 탈락자들이 늘어간다. 게임의 결말이 가까워지면서 신 후보생들 간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팽송은 마침내 ‘9’에 이른다. 하지만 이어지는 반전..

  

 

2. 감상평 。。。。。。。

 

     사후세계에 관한 작가의 관심은 마침내 신들의 세계까지 올라갔고, 모든 것을 부정하는 데(無)까지 이른다. 모든 것이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는 결론은 이제까지 그 ‘신들’을 우려먹으며 많은 책을 팔았던 저자의 이야기치고는 썩 특별하지도, 탁월하지도 않은 마무리였다. 최악이라고 까진 못하더라도 고심 끝에 차악(次惡)의 선택이라고나 할까.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이 함께 고민했던 수많은 문제들과 질문들은 결론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개미』를 처음 손에 든 지 10년 만에 느끼는 저자의 상상력 고갈의 징조였다.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작품들과 더불어 마침내 작가의 사후 세계에 대한 탐구가 드디어 끝이 났다는 점이 이 작품을 읽고 든 가장 긍정적인 느낌이었다. 사후 세계에서, 천사들의 세계, 나아가 신 후보생과 신 자체의 세계까지 나아갔으니 구조만 보면 단테의 「신곡」의 패러디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패러디의 수준이 원래의 그것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점이 아쉽다.

     기발한 상상력들이 담긴 단편집 『나무』라는 작품에서 이미 ‘어린 신 후보생들’의 이야기를 간단히 언급했던 적이 있었던 걸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에 관한 착상은 꽤나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문제는 판을 너무 크게 벌인 것 같다는 점이다. 대충 단편으로 끝났을 때는 여운이나마 남을 여지가 있었지만, 여섯 권이나 될 정도로 꽉 찬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해지는 느낌이 강해졌고, 결말은 허무했다.

     가장 좋아하던 작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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