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에 신경 쓰느라 몇 걸음인지 일일이 세어야 한다면
그건 춤추는 게 아니라 춤을 배우는 거라고 해야겠지.
편한 신발이란 신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신발이야.
눈이나 조명, 인쇄나 철자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야
제대로 된 독서가 가능하지.
완벽한 교회 예배는 그 형식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예배,
그래서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께로만 향하는 예배일 거야.
- C. S. 루이스, 『개인기도』 중에서
담배는 모자이크 처리하면서
유흥업소에서 남자 손님들이 홀복을 입은 여성을 초이스해서
옆에 앉히고 술을 먹이고 멸시하는 장면은
모니터를 통해 버젓이 흘러나왔다.
- 황유나, 『남자들의 방』 중에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는 가장 주된 요소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우리는 예배라고 답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예배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겉모습만 보면 그들과 다른 이들 사이에 차이는 많지 않다. 월요일이면 피곤한 얼굴로 출근과 등교를 해서 맡겨진 일을 처리하고, 사람들과 만나고, 종종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때로 슬픔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역시나 예배다.
일주일에 하루를 빼서 진행하는 공예배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배의 삶이기도 하다. 믿음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의 일은 다른 효과를 낳는다. 그 일 자체가 하나의 예배로 올려드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바로 그 예배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쓰인 책이다.
저자는 “바른 방식”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이건 다분히 이 책이 쓰일 당시 미국의 많은 교회들 사이에 이른바 “이머징 처치”라는 유행에 휩쓸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배 후 “라인댄스”를 추는 정도는 약과고, 이른바 “R등급”의 설교(기독교인의 성이 주제인)를 한다고 광고하고, 역시나 예배 후에는 밴드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교회도 있고, 또 다른 교회는 예배광고 문구에 서커스와 곡예사, 동물과 팝콘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조합되어 등장하기도 한다.
저자가 말하는 바른 방식의 예배에서 강조되는 건 말씀(바른 교훈과 교육적 목적이 어우러지는 설교)이다. 이건 주로 공예배에 해당하는 지적이지만, 책에는 삶의 예배에 대한 강조도 빠지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도 예배(!)라고 말하며, 심지어 죄의 고백에도 예배적 성격이 있다고 언급한다. 상당히 보수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식으로 조금 더 나아가는 통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책의 후반부는 예배자의 태도, 예배자가 알고 있어야 할 하나님에 관한 지식 부분에 할애되어 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자연히 예배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 자연스러운 전개다. 여기에서 특히 강조되는 건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 그분의 엄격하심에 대한 환기 같은 주제들이다.
책 말미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찬양에 관한 고찰도 읽어볼 만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찬양”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지만, 영어로는 찬송(Hymn)과 가스펠송(Gospel song)으로 나뉘고, 그 둘 사이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Gospel Hymn같은 장르도 있다. CCM이라고 부르는, 현대적인 멜로디를 따르는 노래들도 보이고. 역시나 여기에서도 저자가 강조하는 건 그 가사의 내용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계속 새로운 노래들을 만들어야 하고, 그 형식도 고정되어 있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바른 내용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
사실 하나씩 뜯어보면 나름 일리가 있는 내용들인데, 전체적인 구성이 살짝 아쉽기는 하다. 내용들 사이의 연계와 전환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달까. 주제가 조금씩 쌓여가며 발전한다기 보다는 각각의 내용이 한 데 모아져 있는 느낌이다. 물론 한 번에 다 읽을 것이 아니고, 필요한 만큼 필요한 대로 찾아 읽어본다면 크게 문제는 아니긴 하다.
참 많은 예배를 하지만, 정작 예배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듯하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이런 고민을 하는데 좋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흔히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로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구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식과 사고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는 다시 기독교를 통해 서양 문화와 문명에도 그 흐름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은 낯익어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들의 이름은 좀처럼 귀에 익지 않은 것이 사실. 이 책은 바로 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화를 정리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건설자들은 수메르인이다. 물론 그들 이전에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따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전모를 살피는 건 불가능하다. 수메르인은 세계 최초의 문자인 설형문자(쐐기문자)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겼고, 이들은 다시 셈어족에 속하는 아카드인들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아카드인들도 수메르인들에게 쐐기문자를 배워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겼다.
이 지역에 흔한 진흙을 말려 만든 점토판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건조한 기후 덕에 오랜 시간이 지난 후까지 남았고(일부는 불에 탄 덕분에 더 강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근대의 학자들에 의해 비로소 그 의미가 조금씩 해독되기 시작했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그 결과물인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깨지고 사라진 것들 때문에 일부 내용은 알 수가 없다.
책에는 세상의 창조 이야기부터 다양한 영웅 설화들이 소개된다. 사실 이 지역의 신화라는 것이 각 거점들(도시들)마다 저마다의 전설들이 있었기에, 큰 틀과 인물은 유사해도 내용상 차이가 있는 경우들이 많았을 것이다. 또한 수메르인에서 아카드인으로 주도세력이 변경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의 변용들이 생겼을 것이고. 어느 정도 강력한 중앙권력이 나타난 후에야 어느 정도 이런 것들이 정리되었을 텐데, 책에는 그런 식으로 정리된 결과물들이 실린 것 같다.
메소포타미아의 천지창조 이야기는 확실히 복잡하다.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고, 인간은 부속품으로, 신들의 도구로 창조된다. 신들 사이의 계급이 나뉘고, 자신이 낳은 신들을 불쾌하게 여겨 전쟁을 일으키는 티아마트와 그녀의 몸을 조각내 세상을 창조한다는 이야기는 어질어질하다(종종 이런 신들 사이의 싸움은 그 신을 주신으로 섬기던 도시들 간의 싸움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잘 알려진 길가메쉬 이야기는 홍수에 관한 내용 때문에 창세기의 노아 이야기와 자주 비교된다. 흥미로운 건 이런 홍수 전설은 여기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고대 신화 속에서 전설이라는 모양으로 자주 등장한다는 점.(예컨대 인디언들의 신화나, 심지어 고대 중국 신화 속에서도 발견된다) 어떠면 이건 인류 공통의 “원기억” 같은 건 아닐까 싶기도. 참고로 길가메쉬의 홍수 이야기는 소재 말고는 세부 내용의 경우 노아와 비슷한 게 없다.
이런 책은 일본인 저자가 쓰는 경우가 많은 게 참 부럽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일본 국내 대학에서만 공부하고 교수까지 된 저자가 쓴 것인데, 이 책이 연구적 수준이 높다기 보다는 기존에 연구된 내용 가운데 본문을 잘 정리해 낸 수준이긴 하지만, 이런 책들이 꾸준히 쌓여야 더 깊은 작업이 나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