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정신을 침범하므로 무해하고 사소한 감정이 아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결핍되었다고 느낄 때 다르게 행동한다.


- 뤼트허르 브레흐만,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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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제임스 패커의 기독교 기본 진리
제임스 패커 지음, 김진웅 옮김 / 아바서원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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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은 오늘날 가장 많은 교회에서 고백하고 있는 신앙고백문이다.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 모두에서 고백하고 있는데(약간 형태는 다르다), 정교회에서는 사용을 하지 않는다. 사실 개신교회가 가톨릭교회와 일정 부분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방교회 전통을 함께 이어오는 측면이 있는 듯하다.


재미있는 부분은, 정교회가 사용하는 니케아 신경과 달리 사도신경 자체는 보편 공의회에서 합의를 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 이 신경을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물론 그 기원으로 추정되는 몇 가지 신앙고백들이 있었고, 대략 4세기 경 로마 인근에서 정리된 것으로 보이긴 하고, 역시 중요한 건 그 내용이 초기 기독교회의 신앙을 잘 정리, 요약했다는 점에서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그렇게 자주 고백되고(많은 교회에서 예배 순서 중 하나로 넣고 있다), 익숙하지만 그 내용에 관해 차근차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분명 한글로 된 내용인데, 몇몇 구절들은 한자어와 신학용어로 되어 있어서 ‘그게 무슨 뜻인지?’하고 혼자 궁금해 했던 적이 있다.


이 책은 잘 알려진 복음주의 저자 제임스 패커가 사도신경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내용이다. 책 자체가 굉장히 작고 얇은데, 일종의 핸드북 성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책은 사도신경의 각 구절을 하나씩 떼어내서 차례대로 설명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각 장의 말미에는 함께 읽어 볼만한 성경 구절과 생각해 볼 질문들이 덧붙여져 있다.



간략하지만 담아야 할 내용은 충분히 담겨 있다. 저자는 기독교의 공통적인 신앙(C. S. 루이스의 표현으로 말하면 “순전한 기독교”)에 기초해 설명을 하고 있기에 (다만 “교회”에 관한 내용에서는 가톨릭교회와의 차이를 언급하긴 한다) 널리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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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내 머리로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떼를 쓸 때,

불현 듯 ‘지금 하나님이 보시는 내 모습과 똑같군’하는

생각이 든다.

신앙은 자라나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키우기에 고단하신 거였다.


- 무근검 편집부, 『교회 다닌다고 말도 못하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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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출판사 마케터와의 하루 동행, 첫 번째 영상입니다.
기독교 출판계 속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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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뉴비긴, 세상 속 교회의 길을 묻다 - 계몽주의와 현대 문화, 과학주의 세계관을 넘어서
레슬리 뉴비긴 지음, 신국원 옮김 / IVP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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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뉴비긴이라는 저자를 처음 만난 게 벌써 20년 전이다. 선물 받았던 책은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라는 제목의 그리 두껍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사안을 탁월하게 분석해 내는 문장에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무엇보다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남달랐다. 아마도 여기에는 40여 년 간 인도에서 선교사로 살았고, 선교를 위한 교회협력 기구에서 활동했던 이력도 분명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 그리 두껍지 않은 책에서도 레슬리 뉴비긴의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난다. 교회가 세속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또 어떤 식으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지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사실 지금으로부터 40년도 전에 쓰였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여전히 지금도 통하는 이야기를 느낌을 준다. 주님의 몸인 교회는 여전히 분열되어 있고,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이지 못한 채, 중구난방식의 대응을 하다 자멸하는 중이다.





1장과 2장은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담고 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은 채 살고 있으며, 그 근원에는 계몽주의라는, 다분히 자아도취적 철학/이념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의심을 통해 객관적인 진리에 도달하겠다는 계몽주의적 이상은 그 자신의 타당성조차 의심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로 상대주의와 허무주의로 빠져버렸다는 것.


이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기독교적 비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이 비전은 단순히 과거를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 실패한 모델인 기독교 왕국(크리스텐덤)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세상 전체를 하나님께 돌리는 성경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이 과정에서 현대의 중요한 발견, 특히 과학과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건 과학으로 재구성한 성경읽기를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증인의 증언으로서의 성경이라는 성격을 강조하면서, 더욱 충실한 성경읽기를 통해 현대 문화를 구성하는 틀에 도전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세속사회 속에서 한국교회는 길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는 다시 기독교 왕국의 비전을 꺼내들며 시대착오적인 언설을 내뱉고 있고, 이를 위해 교회의 이름으로 정치에 깊숙이 끼어들더니 결과적으로 그들이 이단으로 정죄했던 이들과 한 배에 올라타고 말았다.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이미 우세를 점한 세속사상에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는 대가로 그들이 심심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책들의 목록에 성경을 넣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많은 교회들은 세속과 신앙 사이에 담을 쌓은 채 애써 (되지도 않을)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뉴비긴의 대답이 여전히 유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세상과의 대화에 충실하게, 그리고 겸손한 모습으로 나서면서도, 우리의 것을 자신 있게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중요한 표지를 보여준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이 작업을 해 낼지에 대해서는 이 작은 책 한 권으로는 다 담을 수 없지만, 그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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